[R] 딱정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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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2 10:38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5월17일(금) 08시00분51초 KDT
제 목(Title): [R] 딱정벌레
과산화수소는 생체 내에 비교적 덜 파괴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인체 내에도 대사 과정에서 활성 산소 radical들이 발생하고 축적되며 생체 조직을
공격하고 또다른 대사 과정에서 환원되어 조직에 대한 자극성이 적은 형태의
화합물로 전환됩니다. 이 과정에서의 생체 조직에 대한 공격적인 부식 작용은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며 생리학자들은 이러한 활성 산소 화합물들의 활동이 노화의
원인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조직 부식을 억제하는 토코페롤
(비타민 E)이 노화 억제제로서 각광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하이드로퀴논은 인체에서 과산화수소만큼 쉽게 발견되는 화합물이 아니지만 다른
생물에서는 충분히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의학을 공부했으므로
인간 이외의 생물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께서 보완해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막연히 퀴논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체 내에도 매우 활성이 높은 (즉, 생체를 공격할 가능성이 높은)
ubiquinone이라는 이름의 퀴논 유도체가 존재하며 활성 산소 화합물과 마찬가지로
완만하게 조직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인체에서 이러한 위험한 화합물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의 조직을 공격하지만 농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관계로 조직 손상은 매우 완만하게 진행되며 조직의 재생력과
대사 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다양한 효소들의 억제 작용에 의해 생체 내에 존재할
수 있습니다. 더우기 이러한 과산화수소와 퀴논 유도체들은 생체 내에서 아무 이유
없이 떠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세포내 호흡 과정에서 당연히 발생하는 부산물들인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논의를 바탕으로 답변 드립니다 ;
> 억제해야하는 두 화학물질 (하이드로 퀴논과 과산화수소)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 억제제의 개발은 전혀 필요없는 일이다. 반면에 억제제 없이 이미 두 개의
> 화학물질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때는 늦어서 딱정벌레는 스스로 폭파되었을
> 것이다.
진화 초기에 딱정벌레의 체내에는 오늘날의 인체와 마찬가지로 '스스로 견딜 수
있는' 농도의 퀴논과 활성 산소 화합물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예상됩니다. 또한
오늘날의 인체와 마찬가지로 적정량의 억제물질이 존재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공격적인 화학물질의 농도가 서서히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이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예는 사람의 대사성 질환에서 흔히 발견됩니다.)
그러한 농도 증가에 따라 생체는 억제물질의 농도나 활성을 서서히 증가시킵니다.
이러한 억제물질은 새로이 발명되어야 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존의 억제물질의 농도
또는 활성이 서서히 증가하면 되는 것입니다. 생체의 negative feedback system은
적정 농도를 자연스럽게 맞추어 줍니다. 이 과정에서 공격물질과 방어물질의 증가
속도가 균형을 이루지 못한 개체는 당연히 도태됩니다. '균형'은 일반적으로 그다지
정교한 제어 시스템을 요하지 않습니다. 생체 내의 생화학 반응 시스템은 높은
완충계수와 다단계 반응에 의해 비교적 넓은 safety margin을 갖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세대가 반복된 후 이러한 높은 농도의 화학물질이 천적에 대한 방어의
목적으로 사용된다 해서 신비롭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떠한 기관 또는
기관계의 사용 목적의 전환은 생태계에서 흔히 발견되는 현상입니다. 더우기,
분사관의 진화 역시 의도적으로 화학적 진화 과정과 떼어 놓고 설명하려 애를
쓰지 않는다면 매우 자연스럽게 이해됩니다. 곤충류에서 흔히 관찰되는 긴 대롱
모양의 배설기관이 발전한 것이라고 보면 어렵지 않게 설명됩니다. 아마도 진화
초기에는 이러한 배설 기관이 이름 그대로 유해한 활성 화합물을 배출하는 데에
이용되었을 것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정벌레가 억제제와 두 화학물질을 동시에 개발했다고 하자.
> 이런 결과로 얻게 된 용액은 무해한 혼합제로 남아있기 때문에 딱정벌레에게
> 아무런 이익도 주지 못한다. 그것이 딱정벌레에게 유용한 것이 되기위해서는
> 반억제제가 그 용액에 첨가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딱정벌레들은
> 어떤 특별한 이유나 이익도 없이 반억제제가 우연히 완성될 때까지
> 단지 화학물질을 섞고 저장해야만 한다고 믿을 수 밖에 없다.
우선 생체 내의 어떠한 현상도 고도의 지성을 소유한 신이 특정한 '의도'를 갖고
만들었다고 생각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더우기, 일반론 부분에서 상세히
설명드린 바와 같이 이러한 화합물들은 생물이라면 대개는 가지고 있는 세포내 호흡
시스템의 당연한 요소라는 점에서 아무런 의문의 여지도 신비로움도 남기지
않습니다.
> 반억제제가 개발된다고 해도 그것을 조절해주는 시스템이 완성되어야 하므로
> 그 동안에는 자신을 산산히 폭파시키게 될 것이다.
누누히 말씀드렸듯이 조절 시스템은 화합물의 농도 증가와 더불어 서서히 형성될
수 있으며 그 tuning은 그다지 정교함을 요하지 않습니다.
> 딱정벌레의 예에서 각 과정들 각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그렇다고 전체적인
> 방어 시스템이 모두 일시에 진화되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결론적으로, 각 과정들 각자는 매 순간마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습니다. 또한
전체적인 방어 시스템은 '일시에' 진화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진화되었지만 분명히
'동시에' 진화될 수 있습니다. 상상하기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 대자연 속에는 이러한 완벽한 조화의 예가 셀 수도 없이 많다.
또한 부조화의 예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인체 해부학이나 생리학을 공부하시면
이러한 '잘못된 설계'의 예를 셀 수 없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딱정벌레(학명을 대지 못하면 머쓱해지는 분위기인 모양이지만'봄바르디어 풍뎅이'
라는 관용명으로 대신합니다)의 경우 역시 완벽한 조화를 보여주지는 못합니다.
실제로 수많은 봄바르디어 풍뎅이가 제어 시스템의 문제로 인해 스스로의 몸을
상하게 함으로써 희생되고 있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