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추태와 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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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10.02 10:30
[ freeeXpressio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4월29일(월) 13시22분59초 KST
제 목(Title): 예수의 추태와 개구리
우선 저는 무화과나무의 이야기를 인용하고서 논평할 때에 '성경에 씌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이라는 종속절을 생략했습니다. 이것은 홍수 이야기나 창조 설화,
아브라함의 연대 추정 등에서 늘 해당되는 종속절입니다. 그것을 생략함으로 인해
혼란을 불러 일으킨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는 '성경에 묘사된', '성경
대로라면'이라는 종속절을 생략하지 않겠습니다.
둘째, 반복되는 당신의 논리를 보면서 다시 느낍니다. 이 토론은 계속할 가치가
없다는 것을. 당신의 기독교적 세계관 아래에서는 기독교회의 폭력은 정당합니다.
나치 정권의 논리 아래에서는 이민족에 대한 폭력이 정당했던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기독교적 세계관이 아닌 다른 세계관을 가진 저로서는 저의
방어논리가 마찬가지의 타당성을 갖습니다. 이 논의는 타협의 여지가 없으므로
더 이상 진행시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애초에 저는 자신의 논리를 당신에게 검증받고자 한 적이 없음을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제가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갖는 이유를 질문하셨고 저는 나름의 이유를
말했습니다. 만일 저의 세계관 속에서 제가 납득할 수 있는 반론을 당신이 펼친다면
고려해 볼 일이로되 그렇지 않다면 저로서는 더 이상 신경쓸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당신에게 저와 같은 형태의 반기독교적인 세계관을 요구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전제 왕권 하에서 일개 백성의 생사여탈권은 당연히
왕이 갖습니다. 당신은 권력에 빌붙어 왕의 폭력을 정당화해주고 있으며 저는
거기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어느 편을 택하느냐 하는 것은 당신과 저의 자유입니다.
* 온누리에님. 기독교에 대한 저의 반감을 이해하시겠지요? *
세째로, 예수가 기적을 보였으니 신의 아들임에 틀림없다는 논리(?)는 맞상대할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알아서 반성하시리라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개구리 이야기를 해볼까요. 저는 의대생 시절에 수많은 동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하루에 개구리 200마리를 죽인 적도 있습니다. 쥐 40마리를
잡은 적도 있고 순전히 저의 과실로 인해 죽이지 않아도 되는 토끼를 죽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토끼를 죽이던 날 잘 피우지도 못하던 담배를 반 갑이나
태웠습니다. 제가 어쩔 수 없는 제도의 틀 아래에 있었기 때문에 죽인 것이
아닙니다. 그게 싫으면 의대를 그만두었어야 하는 것이겠지요. 또한 제가 아니라도
누군가 그 동물들을 희생시킬 것이기 때문도 아닙니다. 저와 같은 길을 가는
친구들이 같은 폭력을 휘둘러야 하는 상황 속에서 저 하나만 빠져나온다는 것이
결코 죄갚음이 되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의대생들은 그러한 상황을 순간순간 괴로와했습니다. 실습을 마치고 실려
나가는 시체들을 보면서 저는 나중에 이러한 죄로 인하여 지옥행을 선고받는다
하더라도 할 말이 없음을 통감했습니다. 학기말에는 다같이 모여 희생된 동물들에게
사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속죄의 과정은 죽을 때까지
계속해도 이루 다함이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적어도 한 가지 점에서 성경에 묘사된 예수와 다릅니다. 성경에
묘사된 예수는 의기양양하게 '보라! 이 나무가 죽었으니 다시 열매맺지 못할
것이다. 이 저주의 의미는 어쩌구저쩌구...'라고 떠들어 댔지만 저는 그런 류의
패설을 결코 내뱉지 못합니다. 신의 권능이 저에게 그 동물의 생사에 관한 권리를
허락했다 하더라도 저는 그들의 시신 앞에서 죄인입니다. 죽는 날까지 모든 생명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며 속죄하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비천한 삶이지만
적어도 성경에 묘사된 예수보다는 값있게 살아갈 것입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