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4]고독-내면과 마주하는 용기

김장한 0 4,161 2006.03.05 17:31

비겁의 미학


기독교가 없어지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믿고 무엇을 해야만 하나요?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들은 문구이다.


기독교가 그다지 좋지는 않지만 그 나름대로 종교적인 선기능은 있으므로 아예 종교적 선기능을 다 잃는 것보다도 차라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폐해를 알고 선기능만을 살려 신앙생활 하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물음이다.


여기에 대답을 하자면 우선 대안을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우선 종교적 문제이니만큼, 전신앙운동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신앙은 특정 신을 섬기지 않고 단지 인간의 신앙심만으로 유지되는 순수한 신앙심의 결집체로 아직 전신앙적 모델을 가진 종교는 없다.


아니, 전신앙을 모티프로 한다면 종교 집단 성립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전신앙은 인간의 신앙심만으로 유지되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의 신앙 욕구를 만족시켜줄 수는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글쎄?


이것이 해답이 될까?


그럼, 종교성을 거세한 신앙 활동은 어떠할까?


대표적인 것이 참선과 명상이다.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종교 활동으로, 사실 기도 역시 넓은 의미에서는 명상에 해당한다.


이 명상과 참선은 마음을 비우고, 또한 생각을 정리하는 데 효과적이어서 학습 보조 방법으로도 권유되는 만큼, 대안 종교는 아니지만 대안 종교 활동으로서는 충분할 것이다.


그럼, 기존 종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를 믿는 대안이 될까?


글쎄?


실제 종교를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의 문제는 바로 고립감이다.


그 고립감이, 단지 활동을 하는 것만으로 충족될 것인가?


근원으로서의 고독


고독이라는 화두에 대해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중학교 시절부터 개인적으로 철학을 좋아했다.


그 무렵에는 그 사변을 즐겼다는 의미보다 멋있는 말이 너무 많아서 그냥 뜻도 모르면서 앵무새처럼 외고 다니는 것에 불과했는데...


특히 좋아했던 사람은 프리드리히 니체나 장 폴 사르트르같이 고독을 주제로 쓴 작가들의 글귀들이 너무나 멋있어서 중학교 시절에는 종종 억지로 외우고는 했다.


물론 볼테르 등도 마찬가지지만...


시간이 지나 대학생이 되어 그 책들을 다시 읽었을 때는 솔직히 웃음이 나왔다.


고독을 즐기는 것이 어쩌니 하는 말이 너무나 가식적으로 느껴졌고 그게 단지 멋있다고 외워댄 나 자신이 우스워서였다.


대학을 가 연고가 없는 도시의 밤은 정말 외롭다.


그 정도의 물리적인 고독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바로 나약한 인간일진대 어찌 우주적, 사변적, 존재적 고립에 대해 즐기라는 말인가?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조금 이해되고는 한다.


고독이 즐거워서 즐기라는 말이 아니고 인간은 원래 고독한 존재이므로 고독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고독을 해쳐나가는 방법을 알아 나가는 것이 삶이라는 의미이다.


물론 인생 경험 더 많은 분들은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웃고 떠들며 느끼는 것도 고독이다.


눈앞의 사람을 의식해서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수다스런 친구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해서 말을 못하고,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말을 못하고,


친구가 좋아하지 않는 화제라 말을 돌리고...


그러면서 공허하고 의미 없는 농담과 웃음만이 입 밖으로 나오고


목구멍까지 올라 온 그 쓰디 쓴 말은 술과 함께 목구멍으로 넘겨야 하는 것이 바로 그 고독이란 놈이다.


이러한 나의 내면적 자아를 공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로서의, 내면적 내지 우주적 자아로서의 신을,


*단순히 다른 종교를 믿으라고,


*신앙심만을 충족시키라고,


*활동 영역만을 넓히라고 말하여


인간에게 주어진 원초적 고립이 해결된다면 그것 또한 소설에 불과하다.


고립을 견딜 수 없게 된 인간에게, 신의 배제는 죽음이다!


나는 나의 내면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나를 죽일 수 있는가!


더욱이 그 <또 다른 나>는 이미 죽어 있는데...


인간의 본성


선인지 악인지 알 수 없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하나 명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약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거의 모든 인간의 행위는 자기 자신의 이득과 보신을 위한 행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이기적이고 잔인하며 때로는 비겁하고 추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한다.


이러한 경우는 수없이 많이 발견되는데,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미국 노예 해방 이전, 노예 찬반론이 한창일 때조차 노예 찬성론자는 노예를 부리는 것이 신성한 일이며 또한 이것은 신이 노예와 자유인을 결정한 것으로 자기는 노예를 부리는 것에 대해 신성함을 느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의 논리는 그 누구도 경험하지 않으면 그 신성한 의무-노예를 부리고 학대하는 것-를 부정할 수 없다고 한다.


이들의 논리는 놀랍도록 기독교인들의 <체험적 신앙>과 닮아 있다.


이것이 바로 다른 인격체를 노예를 부리는 추한 자신의, 비지성적이고 비상식적 신앙의 울타리를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는 자기 방어의 기제이다.


노예 옹호자들은 한 인격체가 다른 인격체를 부리는 것에 대해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으며


기독교인들은 한 인격체가 전인격적으로 종속될 수 있는 신의 존재에 대해 할 말이 없다.


그러니...


변명이라는 것은 추하고 못난 대답이 아니라 사실상 약한 인간 본성으로 인한 최후의 선택인 것이다.


그래서 신은 죽었다.


그래서 또 다른 의미로 신의 죽음을 선언하고자 한다.


학자들에 따르면 죽음에는 다섯 가지의 과정이 필요하다 한다.


*현실 도피(부정)


*우울(분노)


*좌절(포기)


*타협


*인정


말기의 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그들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말하면 위의 과정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라 한다.


현실 도피의 단계에서는 평상시 생활을 유지하려 한다.


하지만 병으로 인해 그것이 불가능하면 곧 우울해 지거나 분노를 터뜨리게 된다.


하지만 데드라인은 다가오고 선택의 폭은 넓지 않다.


그래서 좌절하고 포기한다.


그 다음으로 적극적으로 대안 치료법을 찾거나 종교에 맹목적으로 매달린다.


그리고 결국에는 자신의 마지막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종교의 포기,


*신의 죽음을 인정,


*고독에 대응


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자신의 선택이고 또한 그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용기이다.


그래.


인간은 약하다.


하지만 무작정 약하지만은 않다.


그리고 근원적 고독에 마주하는 것은 역시 진실이다.


죽음에 대한,


고독에 대한,


허무에 대한...


긍정에서만이 용기는 나올 수 있다.


*당신은 신의 지팡이가 아니라 당신 자신의 다리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당신이 당신 자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진실로 자각할 때


*당신이 당신 앞에 있는 고독을 정면으로 응시할 때


*당신이 당신 옆에 누구도 없음을 고개 숙여 인정할 때


*당신이 당신의 내면에 잠자고 있는 용기가 당신 자신임을 느낄 때


...


*그리고 당신이 당신 자신임을 느낄 때


그 때야 말로 당신은 신의 지팡이를 버리고 하나의 <인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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