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4-3] 기호를 넘어 인식으로, 전체를 넘어 부분으로!

[칼럼 4-3] 기호를 넘어 인식으로, 전체를 넘어 부분으로!

김장한 0 6,026 2006.03.05 15:55

열정의 미신


이 세상이 모두 다 공리로 이루어져 있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행복한 것이 될 것인가.


불행히도 우리의 공리는 이미, “신은 죽었다.”라는 위대한 선언에 의해 산산조각이 난 지 이미 오래고, 이 선언이 옳든 그르든, 이미 이 명제는 선언되었으며, 선언된 명제에 의해, 공리는 무참히 망가진 장난감이 되었다.


공리를 찾아라?


글쎄...


찾고 싶으시다면, 박물관에 가 보시는 것이 나을지도.


하지만 인간의 불행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수학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고, 더 상위의 기호와 상징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급 레벨인 수학적 연산에는 참과 그름이 있고, 더하기와 빼기가 있지만, 우리는 대체 우리의 언어를 어떻게 참과 거짓을 선언하고, 어떻게 행복과 불행을 더하고 빼어, 우리의 삶이란 놈의 공리를 만족시키는 하나의 방정식을 구할 것인가.


수와 수를 더하고 빼면 하나의 수가 남지만,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언어가 부딪히면, 그 곳에는 무참한 헤게모니의 쟁탈만이 있을 뿐이고, 그 궁극은 결국 패러다임의 변화-즉 개종이라는 극단으로 치닫는다.


해체된 공리.


해체된 구조.


해체된 사회.


해체된 인간성.


인간이 구할 답이 “행복”에 있다면, 그 행복은 어디에 지어져야 할까?


해체되어 버리고 껍질만이 앙상하게 남은 공리 위에?


붕괴되어 발 하나 디딜 곳 없는 앙상한 구조 위에?


이기주의와 집단 이기주의의 전쟁터인 이 쓰라린 사회 위에?


“상실의 시대”에 거주하는 우리 인간들의 인간성에?


미신의 열정


해답은 자명하다.


인간이 인간의 행복을 논하고, 인간이 인간 사회가 지녀야 할 바람직한 방향성에 대해 논하고, 인간이 인간의 구원을 논하는, 철학, 이데올로기, 종교는 모두 쓰레기통에 버려져야 한다.


전체를 관조할 수 없는 인간에게.


본질을 관통할 수 없는 인간에게.


물질에 속박될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몸부림쳐도 결국 일개 생명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전체”라고 하는 것은, 너무나 버거운 짐일 수밖에는 없다.


인간 역시 “전체” 속에 내재된 부품으로,


인간 역시 “본질” 속에 함몰된 조각으로,


인간 역시 “물질” 속에 똬리 튼 기계로,


인간 역시 “생명” 속에 속하는 자식으로.


결국, 해체된 인간에게는 “부분”만이 남는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비극이다.


망가진 기초 위에, 인간이 세우는 초라한 해답의 세계...


애당초, 인간에게 “진리”니, “공리”니 하는 것을 최소한으로 가정할 수 있는 그 “뿌리”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종교-전체의 함정


이 담론으로서 종교만큼 잘 어울리는 것이 있을까?


종교는 결국, “인간 해방을 위한 거대 담론”에 불과하다.


종교는 인간의 언어로는 결국 이루어질 수 없는 전체를 상정한다.


기독교는 그러한 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선과 악


구원 주체와 객체


천국과 지옥


죄와 벌


빛과 어둠.


그리고, 오로지 선만, 오로지 구원의 주체만, 오로지 천국만, 오로지 벌만, 오로지 빛만을 상정할 수 있는 기독교의 교리는 결국 반쪽짜리 병신에 불과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을 양단하여 볼 수 없는 한계를 지닌 존재로, 우리는 선이라고 하는 기호와 악이라고 하는 기호를 부를 수는 있지만, 선과 악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분리할 수 없다.”


나아가서는 우리는 이 세상에 본질로서의 선과 악이 존재함을 알 수도 없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수정주의에 대한 비관적 견해는 너무나 당연하다.


구원이란 결국 하나의 기호에 불과한 것이고, 인간의 인식이 기호로 이루어져 있지, 이 세상은 “기호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이 궁극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의 한계이다.


분리할 수 없는 것은 분리한 그 어리석음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을 분리한 그 저능함


부분을 전체로 보는 그 저열함


자신이 원하는 것만을 공리로 삼은 그 치졸함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서의 세계로 출발한 기독교가, “세상”을 담을 여지는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았다.


전체를 넘어 부분으로, 기호를 넘어 인식으로...


과연 인간은 향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인간이 그리로 향할 수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어떻게 “부분의 합”을 “전체”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어떻게 “기호와 상징”을 “인식”으로 상정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는 어떻게 “만족”을 “행복”으로 상정하는 변환자를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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