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6-2]기독교의 성공 배경 : 혐오의 세일즈

김장한 0 4,294 2005.09.06 09:46
 

성애의 이해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이성애가 정상이고 동성애가 틀리다고 말한다.


그러나 글쎄?


사실상 동성애가 사회적으로 혐오 받은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는다.


그리스에서는 가장 좋은 관계가 신과 신과의 관계이며,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이 인간(고대 사회에서 인간이라 함은 흔히 남성만을 거론하는 점에 주의하실 것)과 신의 관계이며, 그 다음이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이며 가장 나쁜 인간관계는 인간과 비인간(즉, 여성을 의미)의 관계라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같은 저명한 사상가도 어린 애인을 데리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고, 그리스 신화의 아폴로 신은 인간 가운데 어린 소년을 애인으로 데리고 다니는 장면이 묘사된다.


이 믿음은 그 후 로마까지 이어졌으며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에 기초한 서구 문명은 애당초 동성애를 그다지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었다.


그리고 또한 동양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동성애라 해서 꼭 성기가 노출되는 그런 장면을 그리실 이유는 없다.


모 요구르트 선전에 나오는, 추운 겨울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있는 늙은 중과 문 밖에서 물을 떠서 기다리는 그 소년의 관계 역시 동성애적 관계이다.


이러한 점은 소크라테스가 어린 소년을 애인으로 데리고 다니며 학문을 가르치던 것과 다를 바 없는 현상이다.


다신 사상이 만연한 인도에서는 애당초 성애에 관한한 그다지 터부를 두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일이었고 일본에서는 쇼군을 비롯한 가신들은 흔히 별생각도 없이 동성애를 즐겨왔던 것이 상식이다.


흔히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군에는 장병 간 동성애를 권장함으로써 전우애를 돈독하게 하여야 한다는 말이 떠돌기도 했다.


동양에서 서양까지, 북아메리카 대륙 인디언에서 일본의 쇼군까지, 그리스와 에게 해 문명에서 아프리카의 오지인 들까지, 별반 무리 없이 동성애를 수천 년간 수용해왔다.


심지어 고양이나 개와 같은 동물에서까지 동성애 현상을 발견할 수 있고, 몇몇 조류의 경우 그 개체수가 많아지면 이성끼리 짝을 짓지 않고 동성끼리 짝을 짓는 경우가 아주 흔하게 발견된다.


이성애가 자연의 현상이라면, 동성애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갑자기 불어 닥친 이 세계적인 동성애 혐오 현상은 대체 무슨 일일까?


인종간, 문화간, 국가간, 종교간 모든 이 세상의 혐오 현상은 몰이해에서 오는 두려움에서 나온다.


즉 동성애 혐오란 알고 보면 정말 별 것 아니다.


동성애자는 소수이고,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의 정서와 문화를 이해하는 이성애자들이 드물고, 그렇기 때문에 대다수의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들이 자기 짝을 찾지 못해 자기들을 폭행하거나 어린아이를 추행할 수 있다는 무지에서 나온다.


그런데, 이러한 몰이해 역시 수천 년을 지속하여 왔다.


그런데, 갑자기 현대에 와서야 이러한 것들이 이슈가 된 그 근원이 무엇일까?


정답은 기독교와 에이즈의 공포이다.


생명을 위협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에 의한 질병인 에이즈에 대한 공포는 당연히 이해되는 귀결이지만, 기독교는 글쎄?


혐오를 팔아 성공한 종교 : 기독교


기독교가 가장 위험한 점은 바로 “혐오를 양산해 낼 수 있는 도그마 체계”이다.


자, 가정을 한 번 해 보자.


당신은 아주 정상적인 이성애자이다.


그러므로 당신은 동성애자를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고, 또한 그 행위가 더럽다고 하여 혐오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당신의 권리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은 그릇된 신념을 가질 권리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신념을 입 밖으로 꺼내기 위해서는 다소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내 머리 속에만 있는 생각일 때는 단순히 그렇게 혐오하고 싫어하면 된다.


그런데 이것을 입 밖으로 내려면 당신은 당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대어야 한다.


그냥 “더럽잖아.”라든지 “우윽, 넘어올 것 같아.”라는 말로 당신의 혐오에 대한 근거를 충분히 제시할 수 없는 노릇이고, 또한 그러한 말은 술자리에서나 가볍게 할 수 있을 뿐, 그게 아니라면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의 지성적 수준에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똑똑해 보이고 싶어서라도 이러한 당신의 혐오에 대한 믿음들을 말로 할 수 없다.


하지만 여기에 사상적 체계가 있다면 어떨까?


혹은 당신이 동성애자를 왜 싫어해야만 하는지 가르치는 경전이 있다면 어떨까?


유명한 인물이 동성애를 혐오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쓴 글이나 연설한 연설문이 있다면 어떨까?


당신은 당신이 특정 사상 체계를 선호하지 않아도, 그러한 종교를 믿지 않아도, 그 유명인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그것을 인용하여 말하지 않을까?


당신이 열렬한 기독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기독교는 당신의 동성애 혐오를 충족시켜주는 거의 유일한 체계적 사상을 제공하여 준다.


이러한 기독교적 도그마는 특정 성향의 종교나 사상을 항상 증오하게 만들고, 그 증오는 기독교 외부의 세력에 대해 항상 내부를 결속시키는, 기독교로서는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들이 왜 기독교 도그마에서 근원하냐고?


답은 간단하다.


기독교의 주적인 사탄은, 악한 신이 아니라 “신에 대적하는 자”에 불과하다.


기도교인들은 교묘하게도 이 “대적자”의 개념을 “악마”의 개념으로 치환하여 넣었으며, 그 결과 단지 “말을 듣지 않는 것”이 바로 “악한 것”이라는 단순 삼단 논법을 만들어내고, 대적자(신을 적대하는 자)를 처단하기 위한 종교적 이념의 성립으로서의 “증오”를 세일즈하여 세력을 양성한 희대의 종교이다.


교회를 다녀 보신 분들은 아마도 아실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단순한 “불순종”을 얼마나 커다란 죄로 여기고 있는지.


또한 기독교인들이 “죽도록 충성하라.”는 말을 얼마나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지.


기독교가 기저 종교인 천주교를 박차고 나와 성공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천주교는 권력 그 자체였지만 신흥 세력인 기독교 세력은 기득권층이 아니다.


기독교의 성공 배경 : 바로 혐오의 세일즈이다.


피로 쓴 기독교의 역사


천주교의 역사는 바로 권력 그 자체의 역사이므로 피의 역사인 것이 당연하게 보인다.


하지만 기독교의 경우, 그다지 권력 그 자체라고 볼 수 있는 점이 너무나 적다.


우선 교황 같은 존재가 없어 교단을 하나로 묶을 수 없고, 또한 교회의 체계도 개교회 중심이지 종단 중심이 아니어서 중앙에 권력을 집중할 수 없다.


(교황 비슷한 무슨 연합회 회장 따위의 종단 대표는 존재하지만 천주교처럼 교황무오론-교황의 말은 항상 옳아서 신의 말처럼 여겨도 된다는 이론- 따위는 주장된 적 없는 이론이다.)


또한 25000에 달하는 막대한 종파의 개수는 그나마 적은 사람들마저 기독교라는 이름 아래 뭉치게 만들어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기독교는 성공했고, 이러한 기독교의 성공 배경에는 혐오의 양산이 있었다.


우선 기존 종단에 대한 적개심을 불태울 근거를 만들고,


종파와 종파 사이에 대한 분노에 불을 지를 준비를 하고,


기독교 우월주의를 근간으로 한 인종간의 편견에 불을 지피고,


배타적인 종교를 가진 국가들끼리의 혐오심을 조작하고,


현대에 와서는 동성애자에 대한 이성애자의 우월감을 조장하고,


또한 낙태 증오에서


안락사 말살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이러한 세일즈 전략은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보답으로 인해 확실히 기독교의 역사는 피로 칠갑을 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다.


전혀 이상하지 않은 피로 뒤덮인 기독교의 역사.


그것은 혐오를 팔아 성공한 기독교의 당연한 귀결일 수 밖에 없다.


기독교 박멸론


이 세상의 사람들은, 그릇된 신념을 가질 수 있고, 또한 그러한 신념들을 말할 수 있다.


네오 나치들처럼 여전히 유태인 박멸을 외칠 수 있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주장처럼 모든 백인들의 국가에서 유색인종을 추방하자고 주장할 수도 있고


또한 에이즈 해결은 총으로(stop AIDS with guns : 동성애 혐오를 근간으로 하는 극렬 에이즈 퇴치운동)같은 활동에 찬조금을 보낼 수도 있다.


낙태 시술 의사들을 사형하자고 주장하는 집단에 정서적으로 원조할 수도 있고


안락사를 시술하는 병원을 불 지르자고 할 수도 있다.


이것은 당신의 믿음이고, 그 기저에 편견이 있든, 뭐가 있든 상관없이 당신이 가질 수 있는 믿음이다.


그것이 보편적이거나 상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믿고 말할 수 있는 권리가 당신에게는 존재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보편적으로 보아 허용될 수 있다고 할 때, 그것들은 단지 그들이 특정 조건을 가진 사람에 대한 혐오에 국한되기 때문이다.


비기독교인


타종파인


유색인종


동성애자


낙태 찬성론자


안락사 찬성론자


무신론자

.

.

.


이 모든 것들을 증오하고 없애버리자고 하는 기독교가 어찌 사회에 용납될 수 있을까?


당신은 아마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기독교가 반대하는 것들을 찬성하는 사람이라고.


하지만 기독교가 얼마나 증오와 혐오를 불러일으키는 데 천재인지 곧 알게 될 것이다.


한편으로는 끔찍한 생각마저 든다.


동성애 찬성론에 힘이 실리고 있고, 안락사는 이미 법적으로 허용되거나 긍정적 대안을 제시하는 정도에서 타협되고 있는 추세이며, 그들이 반대했던 호스피스 운동은 기독교가 주도해서 하고 있고, 낙태 찬성론에 이어 짜장면 한 그릇 값으로 낙태를 시키는 약이 시판되는 지금...


이후, 기독교는 어떠한 것으로 사람을 이간질시키고 서로를 혐오하게 만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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