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5]죄는 곧 악인가?

김장한 0 3,726 2005.06.23 04:42

선과 악. 그리고 윤리


선과 악이라는 것은 형체가 있는 것인가.


당연히 선과 악이라는 것은 형체가 없는 것이다.


거기에 더하여, 그것들은 순수 관념에 불과한 것이기도 하다.


순수 선을 가정하여 형상화하여 신을 만들고 순수 악을 가정하여 형상화하면 악마가 된다.


그럼 우리 인간은 왜 선악의 개념을 만들었을까?


인간의 사고 한계는 충분치 못해서 중간 과정에 이르는 그 많은 과정들을 사고할 수가 없게 된다.


그래서 인간의 사고는 극단적인 경우를 먼저 가정하고, 그 양 극단의 중간 지점 어딘가가 세상의 모습이라고 판단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윤리 의식이 하는 일이다.


윤리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곧고 어지러짐이 없는 상태?


정당하여 부정하지 않음을 의미하는 어떤 상태?


바르고 곧은 인간의 성정?


그런 의미도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거리를 조정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약육강식이 법칙인 이 냉엄한 자연상태에서, 자기의 안전과 타인의 안전을 서로 인정하기 위한 거리 조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윤리란 인간을 대상으로 한다.


그 예외조항에 해당하는 환경윤리라는 것도 결국은 환경이라는 것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하는 환경을 만드는 그 행위를 반대하는 것에 불과하지 않은가.


2000년 전의 윤리와 중세의 윤리, 지금의 윤리, 동양의 윤리와 서양의 윤리가 서로 다른 것은 이러한 사실을 잘 증명해준다.


슬픈 열대


지금 우리에게 아주 강력한 윤리 가운데 하나인 성적 윤리의식도 사실상 유교적 영향이 수천 년을 지배한 동양의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성인식을 치르면 어떠한 성행위도 제한이 없는 미개발 지역의 원주민들의 성관념에서 잘 알 수 있다.


노자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았던 것인가.


그는 혼란의 전국시대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소규모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부족단위의 공동체라면 별로 특별한 법도 필요 없고, 그 복잡하기 그지없는 윤리의식도 불필요함을 우리는 원주민들의 예에서 잘 볼 수 있다.


수만, 수십만이 집단을 이룰 때에야 비로소 윤리와 도덕, 그리고 관습에 의한 법이 필요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개발이 되어버린 도시인인 내가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처럼 살 수 없음은 너무나 자면하다.


하지만 그들의 무한한 자유스러움은 너무나도 부럽다.


떳떳하게 성기를 노출시킨 상태에서도 당당한 그들은 우리가 가진 부끄러움이라는 관념조차도 우리가 인위적으로 생성시킨 것임을 잘 말해준다.


자유분방!


정조, 효도, 충성, 협동, 성실, 근면, 인의, 자애 등등의 괴상한 관념으로 무장하고 예의라고 하는 강력한 마음의 보호막을 쳐서 골방에 나 혼자 들어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기 위해서, 좋은 사람이라는 말을 듣기 위해서 끊임없이 투쟁하듯 살아가는 현대인이 애처롭다.


그들에게 선악이라는 관념을 내밀어 보라!


잘은 모르지만 “밥 먹고 할 일 없으니 별 짓을 다 하는군!”이라며 코방귀를 뀔 것이다.


그래.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선이란 무엇이며 악이란 무엇인가.


오늘 하루를 힘겹게 넘어온 피곤한 현대인들에게는 모두 다 헛소리일 뿐이다.


온전한 선?


순수한 악?


개에게나 던져 주라.


냄새도 고약한 이런 관념은 개도 안 먹을 것이니.


죄는 곧 악인가.


바이블이 서술하는 바, 인간의 죄는 악을 잉태한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의 상상력 부족에서 나온 그 어이없는 우화는 생략하고 죄는 악을 잉태하는지부터 먼저 생각해보자.


그럼 우선 죄를 정의해 보자.


죄란 무엇인가?


나쁜 짓인가?


그럼 그 나쁜 것은 무엇인가?


나쁜 짓이 되려고 하면 우선은 대상이 존재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리고 그 나쁜 짓을 판단하는 자도 하나 있어야겠다.


즉 인간이 저지른 일이 나쁘게 되려면 우선 필요한 것은 그 나쁜 짓을 저지르는 대상과 잣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죄라는 관념에서 대상이 필요하다는 그 자체로 우리는 그 개념이 바로 “상대적”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죄를 재는 잣대가 우리에게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지 않다고 할 때 우리는 이 관념이 바로 “사회적”인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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