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2-6]주권회복운동

[칼럼 2-6]주권회복운동

김장한 0 2,907 2004.10.19 13:18
 

문화 현상


아는 선배 한 분이 프랑스로 유학길을 떠나셨다.


유독 일찍 결혼하신 분이라 딸과 아내가 눈에 밟히셨는지 가족까지 데리고 떠난 유학길은 정말 어려웠다고 토로하셨다.


4년간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신 후, 그 분이 공항에서 내리자 제일 먼저 찾아가신 곳이 바로 갈비집이었다고 한다.


지글거리는 고기와 함께 먹는 소주의 맛에 입맛을 다시며 갈비집을 찾았는데.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웬걸? 딸이 따라 들어가려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상해서 물어보니 젓가락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충격을 받은 그 선배는 놀라서 집에 돌아오셨는데, 딸의 이유를 들어본 즉, 딸은 이국의 학교를 다니면서 젓가락을 쓰는 동양인을 놀리는 동급생들에게 충격을 받은 것이었다.


이 때 그 선배의 고민은 대단한 것이었는데, 고작 6개월 만에 싱겁게 해결되고 말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젓가락을 쓰지 않고는 살아가기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다.


주변에 모두 젓가락을 쓰니, 쓰지 않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또한 무식하게 삼지창으로 밥을 먹냐는 비아냥거림을 또다시 겪고 나니, 젓가락 안 쓰겠다고 버틴 자신이 한심스럽기도 하였을 것이다.


“히말라야에 두고 온 내 남편 열두 명”이라는 글을 보면 아랍 문화권에서 온 한 소프라노 가수가 미국에서 벌인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그려진다.


그 가수의 명성이나 실력에 비해 너무도 실망스러운 공연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이유를 물어보니 화장실이 문제였다.


아랍 문화권의 화장실은 모두 휴지가 아닌 물로 뒤처리를 하는데, 어느 화장실이나 이 물을 담는 작은 통이 있다고 한다.


일을 보고 나면 이 컵에 든 물을 자신의 그 곳을 향해 조준하고 뿌리는데, 이 때 건더기(?)가 좀 남은 것 같으면 손가락으로 처리한다고 한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외국인 전용의 호텔이나 시설이 아니면 최고급의 호텔도 설비만 고급스러울 뿐, 물로 뒤처리를 하는 것은 그 나라 고유의 문화인 것이다.


그래서 그 가수는 “여기에 고급스러운 정장을 입고 온 사람들이 모두 휴지로 뒤처리를 하고 똥을 그냥 엉덩이에 붙인 채 근엄하게 폼을 잡고 있는 것”이 너무도 우스워서 그것을 참느라 공연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이것이 문화다.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바탕!


우리가 먹고 숨쉬고 생각하는 이 모두가 문화다!


문화 권력


기독교가 이 땅에 뿌리내려서는 안 되는 수많은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즉, 사막의 유목민-농경보다는 목축을 기반으로 하고 먹을 것이 없으면 떼강도로 돌변해야 되는 문화는 전통적인 농경민족인 우리에게 대단히 어색한 옷이다.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수입되던 시대는 미국의 군사통치 아래에서다.


그 전이야 기독교는 단지 서학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미국의 강력한 지배력이 존재했으므로 기독교는 권력의 옹호 아래에서 그 뿌리를 단단히 내리게 된 것이다.


서학의 일부 사상이 독자적으로 수입된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우리나라의 사상적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서 수입된 것으로 종교 활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고 난 후, 기독교는 우리나라에 맞는 종교인 지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다.


이미 신자는 존재하고 있었고, 이 신자들은 예정설이니 하는 기독교의 주요 교리는 모른 채 그저 할렐루야만 외치는 신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에서 기독교가 검증받기 시작한 것은 고작 10년 정도가 전부이다.


즉, 독재 청산이 거의 끝나는 무렵인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종교 비평이 없었다.


그 전에 있었던 것은 단지 철학자들의 단발적인 지적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무조건적인 할렐루야, 아멘이 무슨 종교 비평인가!


문화 비교-농경민족과 수렵민족


수렵을 근간으로 하는 민족들은 대개 “효”라는 관념이 희박하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충격적인 말이다.


그런데, 속사정을 알고 나면 이해할 수 있다.


어느 인간 집단이든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집단의 존속이다.


농경문화는 그 집단에게 여분의 먹거리를 항상 제공할 수 있다.


이것을 잉여 생산물이라 하는데, 농사를 지으면 대충 어느 정도의 먹거리가 생산되는지 그림이 그려진다.


이 잉여 생산물은 “일하지 않고도 먹을 수 있는” 계층을 형성한다.


이 계층이 학문의 시초라는 학설이 지지되는데, 이 계층에는 아이와 노인도 포함된다.


특히, 농사를 짓는데 필요한 핵심 지식을 많이 알고 경험이 많은 노인들은 농사를 짓는데 아주 필수적이다.


하지만 수렵을 근간으로 하는 민족은 그러기 힘들다.


언제 어느 때 생산이 적게 될지 알 수가 없다.


수렵도 나름대로 지식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젊고 힘이 있어서 당장 뜀박질을 하고 활을 쏠 수 있는 사람들에 비해 나이 많은 노인의 경험과 지식이 상대적으로 덜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문화에서, 먹을 것이 적으면 부모에게 먼저 공양되고 그 다음이 젊은 부부와 자식들이다.


하지만 수렵 민족은 그래서는 살아남기 힘들다.


우선 젊은 부부가 먼저 먹어야 사냥철이 왔을 때 사냥이 가능한 것이다.


그 때를 위하여 젊은 사람들이 먼저 먹고, 다음으로 아이들이 먹으며 마지막으로 노인들이 먹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동화는 흉년이 들면 자기 살을 베어내어 부모님께 드리는 이야기가 난무하지만, 수렵 민족의 동화는 반대로 부모님들이 자식이 많이 먹도록 자기 목숨을 끊는 이야기가 많다.


비난하지 마시라.


이것이 그들의 선이다.


유목 민족의 동화에 취한 한국인 이야기


사막에서 사는 괴로움을 아시는가?


최소한 나는 모른다.


하지만 상상은 할 수 있다.


이글거리는 열사, 끓어오르는 대지, 가도 가도 물 한 방울 나지 않는 땅.


바이블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강조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얼마나 그것이 강조되었으면 우리에게는 척박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가나안이 그렇게 아름답게 묘사되었겠는가.


일본의 대지는 80%정도가 화산으로 이루어진 산지이다.


그러므로 일본에는 해적이 많았다.


농토도 많지 않고, 그로 인한 소산은 더 적으며 물고기를 잡아 연명하는 것도 냉동 기술이 없는 과거에는 힘든 일이었으리라.


일본이 우리나라에 한 일은 용서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긴 하지만 최소한, 그럴 수밖에 없는 딱한 사정이 이해는 된다.


그런데 기독교가 시작된 땅은 이보다 더 척박한 곳이다.


눈을 감아도 상상할 수 있을 듯하다.


소나 양을 먹이기 위하여 긴 행렬을 찾아 떠나고, 이방인으로 어느 나라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그들의 기구한 삶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바이블에 나오는 야훼는 전투와 학살에 가장 훌륭한 권능을 선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의 바람은 아니었을까?


“일본은 없다”라는 책에도 소개된 일본의 한 동화를 읽었을 때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


그 동화는 가난한 무사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느 날 도시락집 주인이 그 무사의 아들이 주먹밥을 훔쳤다며 그 무사를 찾아오는데, 그 무사는 자기 아들을 믿는다.


그러므로 그는 그 아들의 배를 갈라 위장 속에 아무 음식도 들어 있지 않음을 보이고, 무고죄를 저지른 그 도시락 집 주인을 죽이며, 마지막으로는 할복을 하여 두 개의 살인에 대한 자신의 죄를 씻는다.


우리나라의 선비사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것이 일본의 무사정신이다.


이것을 우리나라로 가져올 수 있을까?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유목민들의 이야기를 가져오자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유대인들의 동화를 믿는, 순진하지만 그 순진함만큼 무서운 기독교인들이다.


유목민의 문화는 수렵민족의 문화 이상으로 우리나라 문화와 이질적이다.


우리는 우리 북쪽에 위치한 유목민인 몽고나 흉노에 대한 이야기를 안다.


주리면 언제든지 떼강도로 변하는 것이 바로 유목민이다.


위에서 이야기한 바, 그들이 그런 행위를 할 수 밖에 없는 처지야 이해하지만, 그 문화를 우리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유목민족의 전쟁신화


그리고 바이블을 펴 보시라.


살육과 학살이 알알이 우리 눈앞에 박힌다.


야훼가 직접 죽이기도 하고 야훼가 인간들에게 명령하기도 하며 심지어 사탄에게 살육을 지시하거나 방관하는 모습들까지 보인다.


이것이 바로 유목민족의 동화이다.


언제든지 아이들에게 칼을 들려 전쟁터로 내 보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고 여자들까지 남김없이 전쟁에 뛰어들어야 하는 비극적인 환경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하고 단련하기 위해 만든 동화가 바로 바이블이다.


형이 죽으면 결혼하지 아니한 동생이 그 형수와 밤을 보내는 일은 유대인의 율법으로도 정해진 일이다. (탈무드를 참고하시기 바란다.)


그들이 거침없는 살육을 베푸는 야훼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은 이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산이 가능한 젊은 세대를 많이 낳아 기르도록 장려하는 성적 풍습 또한 그들로서는 옳은 일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아이들이 살육과 전쟁,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추악한 행위로 간주되는 성행위를 여과 없이 표현한 바이블을 보고, 그 승리의 함성에 자신을 동조시키는 일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기독교인들이 종종 자신을 잘 몰라서 착각하고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신들이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요, 그러므로 천국이 저희에게 있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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