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1-9]성령영접의 허위

[칼럼 1-9]성령영접의 허위

 

웃기는 세상


  한 쪽에선 지구 인구를 심각한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대량 살상 병기가 나오는데, 다른 쪽에서는 고대로 돌아가자는 자연주의 풍조가 한창이다. 

한 쪽에서는 많이 먹어 생기는 합병증으로 가장 많은 인간이 죽고, 그래서 다이어트 열풍이 분다는데 다른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서 사람이 굶어죽어 간다.
 
인터넷이니 멀티미디어 세계가 어쩌니 하는 판국에 다른 한 쪽에서는 편지 한 장 보내는 방법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
 
어느 세상은 음부나 하초를 보이는 것만도 죄라며 호들갑을 떠는데 샌들 하나 제대로 신지 않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세상이 있다.


이 세상에 모순된 것이야 많고도 많지만 이 세계 자신보다 웃긴 것은 없나보다.

곧 죽을 생명은 왜 그렇게 힘들게 태어나서 힘겹게 살며 자손을 남기고는 죽어버리는 걸까?

하늘에는 왜 별이 저다지도 많은가? 인간이 자기 잘난 맛에 세계가 어쩌고 하지만 현기증 나는 세월을 살아 온 우주 앞에서는 신생아에 불과하다.
 
이 신생아가 우주가 어쩌고 진리가 어쩌고 하는 그 자체가 더 웃기지 아니하면 무엇이 이 우스운 세상보다 웃길까?


이 어리석은 신생아는 진리에 도전한다.
 
그래서 많은 답안이 제출되었다.

이 답안을 채점해 줄 수 있는 이가 있으면 성적표에 “낙제. 상기 학생은  방과 후 학습이 요구됨”이라 적을 지도 모르지.
 
열심히 살아온 이 신생아들은 그 복잡한 세상을 연구하고 사변에 사변을 거듭해서 결국 도출해낸 결론이 “우린 아무것도 확실히 모른다.”이다.
 
니힐리즘을 주창한 니체는 죽기 전 부정할 니힐마저도 없다고 강변한다.
 
그래.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웃기는 세상에, 웃기는, 사람들이 웃기는 결론을 내려놓았으니, 바로 삼위일체가 아니겠는가!


어떤 명제를 누구한테 물어보라.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자기 전문 분야일수록 더듬는 것은 누구나 관찰할 수 있는 사실일 것이다.
 
“이 사람은 몇 달 후에 반드시 죽습니다. 죽지 않을 리 없습니다.”고 단언하는 의사를 보았는가?

아마 의사는 “그다지 오래 사시지 못할 것 같군요. 최선은 다해 보겠습니다.” 정도의 답변만을 줄 것이다.
 
하지만 의사는 실용학문을 하는 사람이므로 그나마 정확한 숫자를 이야기한다. “식 후 두 알씩 드세요, 이틀 정도 경과를 봅시다.”라고.

천문학자를 만나보라.

태양 흑점에 대해 “그래, 그럴 가능성도 따져 봐야지.” “한 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 등의 말을 들으며, 말할수록 모호해지는 자신을 발견하리라. 웃기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 행복하신지?


누군가 “이것이 절대로 진리다. 의심하지 말고 그냥 믿으면 된다.”라고 했을 때 우선 그 말을 한 사람이 사기꾼인지 먼저 알아보시겠는지, 아니면 그냥 믿어버리시겠는지?

천문학을 몇 십 년 연구한 사람도 “이럴 가능성이 있어”라고 얼버무리는 사실을 교회에 가면 단 한마디로 일축한다.
 
목사들의 설교는 매분, 매초마다 이 세상을 뒤집어 놓을 대단한 발견이 쏟아져 나온다.

여호와가 이 세상을 창조했단다. 그게 신화가 아니고 객관적인 사실이란다. 아담이 세계 최초의 인간이고 그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후 6000년 정도 흘렀단다.

인간은 여호와가 창조한 것이며, 이 세상의 생물은 진화한 것이 아니란다. 남자는 갈비뼈가 여자보다 하나 더 많단다.
 
남자의 목에 생기는 울대-즉, 아담스 애플은 사실 사과가 목구멍에 걸려서 그러하단다.
 
메뚜기 다리는 4개란다. 세상에는 되새김질하는 토끼도 있나 보더라.
 
그 사실들이 학회에 발표된다면, 우리나라는 앞으로 몇 십년간 노벨상은 종류대로 다 가져올 것이다. 참으로 은혜스러우니, 신도들은 교회에서 그리도 울었나보다.

이제 우리나라의 고급인력 부족은 끝났다. 성령을 영접하고, 세상의 모든 의문에 답해주시는 목사님들이 계시지 아니한가!
 
아...그런데, 우리나라의 목사님들이 노벨상을 가져오지 못하시는 것은 우리나라가 약소국이어서 차별을 받아 그랬나보다.

이것이 유감스러우신가? 그리 생각하시는 분이 있다면, 당신이 이 나라에 존재하는 것이 더 유감스럽다. 왜 천국에서 주님 영접하지 아니하시고 풍진 속세에 묻혀 사시는가!


설명될 수 없는 진리


  바이블은 그 자체로 설명할 방도가 없는 텍스트이다. 그런데 이 텍스트는 무오하다고 한다. 왜? 성령의 은사로 해석하면 모든 진리가 풀린다고 한다.
 
이 치졸함에는 어이가 없을 정도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는 셋이다.” 라는 말은 분명 우리는 틀린 문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특정한 상태가 되면 왜 이 말이 맞게 되는가? 그래. 남자 더하기 여자는 남자, 여자, 아이 이렇게 셋이다. 그렇게 주장하시는 것인가? 당신은 진심인가?


 바이블은 인간에게 구원의 기회를 주기 위하여 여호와가 영을 내려 써진 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신은 인간에게 구원이라는 복권을 가지고 인간을 농락하려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내가 너희에게 복권 딸 수 있는 방법을 말해 줄 테니 능력이 되면 복권을 한번 따 보라고 말한다. 성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들도 서로 다른 해석이 난무하고 기독교 교단은 서로가 서로를 이단이니, 삼단이니 하는 판국에 평범한 일반인이 그것을 읽고 진리를 얻어라?

여호와는 구원 복권을 만들기 이전 인간의 지능 테스트를 해 보는 것이 먼저여야 했으리라. 구원 복권의 경고 문구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아직은 아무도 없으므로.


그리하여 나, 구원 복권을 반품하려한다. 허나 반품할 곳이 없다. 여호와는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인가?


성령 영접을 해야 되다는 어리석음


바이블 해석은 어찌 해야 제대로 된 해석인가? 제대로 들어본 일은 없지만, 대개 주장하는 것들을 모으면, 이렇게 된다. :


1. 예수가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하면 거의 무조건 제대로 된 해석이다.


2. 여호와는 유일신이고, 종종 나오는 복수는 삼위일체의 증거이다.

  (절대로 유대 전통의 장엄 복수나 다신 사상을 인정함이 아니다)


3.지키기 좋은 율법은 폐기되지 않았고, 지키기 어려운 율법은 폐기되었다.

  (즉 십일조 등은 폐지되지 않았고, 비늘이 없는 생선, 피째 먹는 고기 따위를 먹지 말라   는 등의 율법은 폐지된 것임)


4. 할례에 대한 규정 등 신, 구약이 다르거나 복음서간 차이가 있는 구절에 대해 :

  기도하면 안다고 하면서, 그 내용은 말해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천국에 들려면 할례를    해야 된다는 것이 여호와의 율법이었으나 사도 바울은 하지 않아도 무관하다는데 여기에    대한 언급이 없음. 예수의 가족관계나 예수의 족보, 예수 부활 당시의 상황은 복음서마다   내용이 틀림, 그런데 성령 영접을 하면 이해된다는데, 이해된 내용을 말하는 사람을 본 일   이 없음


5. 4번의 예외. 즉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이름을 증거 하라는 말과 이방인에게 전도해서 안 된다는 내용이 상충되면, 이때는 무조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이름을 증거 하라는 말이 맞음. 성령을 영접하면, 이 말은 비유가 아니고 다른 구절은 비유였음


대개 이것이 성령을 영접하고 나오는 바이블의 바른 해석의 표본이다. 즉, 여호와 예수에게 아부하고 자기들이 지키기 어려운 구절은 폐기되었다고 말하면 바른 해석이다.

하지만 십일조는 폐지되지 않았다는 것은 그래도 기독교가 양심은 남아 있다는 증거일까, 아니면 돈으로 천국을 살 수 있다는 면죄부 전통의 기독교 특유의 배금주의일까?

여성목사를 반대하는 기독교 교단의 편협을 비웃으며 과연 구약의 율법도 잘 지키는 믿음직한 우리 교단이라고 칭찬해야 할까?
 
먹지 말라는 회를 잘 드시는 목사와 성도를 보면 그다지 믿음직하지는 않은데.

  

잘못된 길에 들어서서 실족함


  이 글을 읽으시는 당신은 혹시 바이블이 길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인가? 그래, 길은 길이다. 하지만 조악하게 개설된 길이다.
 
이 길에는 무려 25000개의 갈림길이 있다. 하지만 바이블이 말하는 길은 여기도 없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우리는 증거를 보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바이블을 공부하면 항상 “뭐라고 하더라.”는 말만 열심히 듣게 된다. 내가 무슨 이적을 보았다는 말만이 무성하다.
 
기도로 병을 고친다는 안수 집사를 보는 것은 그다지 드물지도 않다. 병원에 한 번 가보라. 문을 닫아걸고 기도하는 안수 잡사나 목사들을 수도 없이 만난다.
 
하지만 병원측에서는 이를 막는다. 즉 환자에게 좋지 않다는 것이다. 유사최면효과로 인한 위약효과로 일시적인 상태의 호전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대개 그 후는 긴장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상태가 악화되는 일이 왕왕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속는 사람이 있다. 정말 할 말이 없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노력하여 사실을 말해주는데도 미신과 광신이 판을 치니, 노력하고 공부한 것이 모두 헛되다.
 
말잔치에 속아 넘어가서 오늘도 돈과 시간을 쏟아 부으시는 당신, 열심히 구주를 영접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되리라는 미신을 가진 당신.

당신이 가는 길을 막힌 길이다. 남들이 이미 가 보고 막혀서 돌아 나온 길이다. 그럼에도 진창에 발을 디디시는가!


개척된 길이 아니면 길도 아닌가? 당신이 개척하시라. 남이 밝힌 길을 같이 걸으실 것인가? 하지만 그 길은 분명 잘못된 길이다. 잘못 들어선 길 위에서 뛰어다니는 당신들. 뛰어도 소용없다.
 
그 길에는 애초에 출구 따위는 있지도 않았다. 바이블에도 이르길 천국은 너희 마음속에 있다 하지 않았는가? 애당초 당신이 믿는 종교는 기독교도 아니었다.
 
단지 목사교였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교회는 범죄의 온상이 되어있는 곳이다. 흔히 자신을 재림 예수로 칭하는 교단을 이단이라 하지만 사실상 모든 교회는 다 이단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믿지 아니하고 목사의 말을 믿는다. 이것이 재림예수를 사칭하는 사람들과 무엇이 다른가!


부디 자신의 길을 가옵소서. 당신이 아무리 진리를 모른다 해여도 다른 사람 역시 마찬가지일테니. 자신이 찾은 그 길 위에서 풍찬노숙을 하옵소서. 그 길이 진리가 아닐지라도 그러한 삶은 진실함이니.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4-09-29 09:16:15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Comments

개령 2004.09.22 01:16
성령하면 마리아를 거시기한 야훼거시기 생각이 나서 우웩!!! 개독암컷은 그렇다 치고 숫컷들은 모지?
신승문 2004.09.21 18:17
김장한님  이상하게 글씨체가 엉켜서 잘 판독이 안됩니다.
차라리 맨끝에 [말할수-----깨끗하다] 글씨체가 더 잘 보여요.
죄송하지만 글씨체 좀 바꿔 주세요.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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