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부끄러운 모습을 보며
번역학의 전문가인 나이다 박사가 그의 저서에서 천국-즉, 하늘나라는 하늘에 떠 있는 신기한 하나님의 나라가 아
니라 하나님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하에 나라”임을 서술하였을 때 우리의 신앙 체계는 다른 어떤 것으로 바뀌어 나가야 했다.
즉물적으로 접신하여 성령을 영접하고 그 황홀경에서 신앙 고백을 통하여 성령의 불로 세례 받음으로 죄 사함을 얻는다는 허구를 버렸어야 옳았다.
그것이 아니라, 기독교 문제에 대해 비평한, 가장 유명한 전문가였던 도올 김용옥 선생이 자신의 강연을 통해 기독교의 교리 비평을 할 때, 기독교 지도자들은 최소한, 힘으로 강연을 저지하려 할 것이 아니라 교리 연구와 다채로운 고증을 통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신앙운동을 펼쳤어야 했다.
더 이상 기도원 운동이나 부흥회는 진정한 믿음으로 가는 길이 아니요, 접신한 무당과도 같은 상태임을 인정하여야 했다.
과학적으로 온전히 입증 가능한 신앙 간증은 하나도 없으며, 우리네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온전히 우리가 노력하였기 때문이라고, 솔직히 고백하여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러지 않았으며 오로지 변덕스러운 우리네 한국인들이 이 사실을 얼른 잊고는 또다시 별 생각 없이 광신적인 신앙에 빠져드리라 생각했던 것 같다.
허구의 도덕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그들의 그러한 문제를 전혀 해결해 주지 못하였으며, 이제 과학과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은 불경하게도 그 거룩하고, 또 거룩하시다는 예수의 실존문제를 들고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제 지성 있는 보통인 들은 예수가 지옥을 언급하였다 해서, 반드시 예수를 영접해야만 하고 교회에서 십일조를 바치는 거룩한 신앙생활을 하여야만 천국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한술 더 떠서 예수가 실존인물이 아니니, 예수는 프랑스로 망명하여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적이 있느니 하는 예수 존재 자체의 진실 문제에 칼이 들이밀어진 것이다.
“예수는 신화다”에 따르면,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미스테리아 작성자들은 아마도 예수의 진실성을 믿는 이가 있으리라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려웠으리라.
그 토록이나 모순되고 허황한 이야기를 그냥 아무 생각도 없이 믿어버리는 일이 있으리라는 것은 공부를 많이 하였고, 또한 논리적이기까지 한 그들로서는 있음직하다고 믿어지지 않았음이 분명하였다.
그러나 당시도 아마, 신의 나라가 얼른 임하기를 원하는 이들은 있었을 터이고, 이 허황된 텍스트의 나열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고, 또 자기네들이 쓴 소설의 앞뒤가 맞도록 조작을 가하여, 그것을 무려 200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아무 의심 없이 믿어지리라 상상이나 가능했더라면, 그들은 그들의 신앙과 열정을 송두리째 포기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 텍스트들을 완성치는 않았으리라.
아마도 고대의 문자주의자들과, 중세 및 근현대의 기독인들은 단지 초월적 자아와의 만남을, 순수하게 정신적이고도 황홀경에 가득 찬 기쁨으로 받아들이기는 싫었나 보다.
그저. 남들이 보는 앞에서 여보란 듯 살게 해 줄 수 있는, 그야말로 재벌기업 회장처럼 돈 많고 능력 있는 신을 원했던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영혼의 소중함을 가르친다는 교리에서 육신의 부활을 말하는 세속적인 교리가 가당키나 하겠는가?
성육신(부활하는 육신은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에 가지고 있던, 털이 숭숭 나고 보기 싫은 똥배가 나온 육신이 아니라 최초의 인간 아담과 같은 순결한 육신으로 다시 구성된다는, 성서에도 그 근거가 없는 이론. 고려말엽 죽어서 절개를 지킨 사육신이나 살아서 절개를 지킨 생육신과는 무관함)이니 어쩌니 하는 잡스런 말장난은 도리어 문제를 복잡하게만 만들 수 있을 뿐임은, 이제 입증이 되고 있다.
평생 뒹굴 거리고 내키는 대로 술을 마셔서 똥배가 나온 육신이 부활의 그 날에는 보기 좋게 변한다는 그 말이 과연 신빙성이 있는가!!!
역사에 침묵하는 진리?
그럼, 신화와 허구가 분리된 기독교의 남은 선택은 무엇인가?
실제로 기독교의 허구가 과학으로 입증된 서구의 기독교는 그 몰락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과학이 모든 것을 입증해 주지 못함은 누구에게나 알려진 사실이고, 과학자들은 그저 자신의 연구만 공고히 할 뿐 성서에 나온 일을 반박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천동설 등을 주장한 과학자들이나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 등은 기독교 문제를 그리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교회가 이들의 연구에 끼어들어 창조과학을 만들고 연구했을 뿐이다. 과학자들은 눈앞에 있는 사실을 연구하고 관찰하면 되고, 자신의 가설이 다른 이에 의해 뒤집히면 검토하고 새 학설을 받아들이면 그 뿐이다. 자신의 학설을 믿어야 할 이유는 딱히 없는 것이다. 모든 성서의 과학 논증에서 먼저 칼을 들이 댄 쪽은 항상 교회였다. 진화 과학회는 없는데 창조 과학회는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보라)
그리고 1500년 이상씩이나 기독교에 물든 서구 사회는 기독교가 종교가 아니라 생활 그 자체였다는 데에서도 문제는 흔히 발견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국교가 개신교 기독교일 때 모든 프랑스인에게 영세(영아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 세를 세금으로 징수했던 역사가 있다.
단지 세금을 내기 싫어서 교회적을 빼내오는 일은 그래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카노사의 굴욕으로 시작된 서구 기독교의 행패가 수모를 겪으며 물러난 것은 1900년대의 일인 것이다.
기독교, 그 권불십년의 역사
십자군의 원정 실패로 기울기 시작한 기독교의 권력은 지동설을 탄압하며 그 한계를 드러내기에 이르렀고, 교회의 창조과학이 화석과 소진화를 제대로 설명해 내지 못해 그 종말을 예고했다.
하지만, 기독교의 역사 그 끝자락에서 강대국에 의해 아직도 신음하고 있는 중동을 보며, 이것은 아직 끝난 이야기가 아님을 느낀다.
중동 전쟁은 석유를 위한 자원 쟁탈전인 동시에 종교 전쟁인 것이다.
같은 뿌리에서 나와 예수가 신이냐 아니냐를 놓고 갈라져 버린 두 집단에서…….인간과 신 사이에 중간자 예수가 있다는 생각은 무슬림들에게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이 사고방식의 차이가 1900년대 후반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많은 피를 불러왔다고 확신한다.
위대한 이야기 한 토막
김구 선생은 위대한 인물이었으나, 나는 우리나라가 문화가 강대할 뿐인 그저 “먹고 사는 데는 부족함이 없는 나라”가 되기를 소망하지 않는다.
미국과 일본의 예를 보아도, 강대국의 문화가 뛰어난 것이지 문화가 뛰어난 나라가 강대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신라 시대를 보아도, 그 촌스럽던 신라 초 중기의 초라한 유물이 통일 왕조를 이루고 나더니 그 찬연한 아름다움을 뽐내지 않았던가!
석굴암의 장엄함을 보라!
첨성대의 웅장함을 보라!
불국사를 이루는 조형미와 가람 배치를 눈여겨보라!
이것은 모두 문화에 투자할 돈이 있던 통일왕조시대의 유물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김구 선생의 말에 동의하는 것도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괴롭히는 나라가 되지 않았으면 한다는 그 분의 말씀에는 동의한다.
무지한 한국 개신교의 현실
그리고 우리나라를 보라.
갈릴 레오 갈릴레이의 입을 막았던 저 무지한 서구 근대의 교회를, 양식 있는 지성인 도올 김용옥 선생의 입을 힘으로 막은 우리네 교회가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십자군 원정을 결의한 교황청을, 입에 거품을 물고 기도회를 열어 이라크 파병을 찬성한 우리네 목사와 성도들은 어찌 그리도 닮아 있는지를!
죄 없는 이를 마녀라며 붙잡아 화형하고 고문했던 그 악랄한 이단 심판관을, 종교의 자유를 외치며 국조 단군상의 목을 따는 우리네 교회가 얼마나 닮아 있는지를!
인류의 지혜가 담겨있는 소중한 서적을 금서라 하여 탄압하고 불사른 중세의 광신도를, 진리를 호도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우리네 교회가 세운 창조과학회가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면죄부를 팔고 농노의 등골을 빨아먹어가며 세운 중세의 성당을, 이제는 폐지된 십일조와 성전 건축 헌금을 걷어, 교회 주변 주민의 재산권을 압박해가며 지은 우리네 궁전 교회당이 얼마나 닮아있는지를!
맞아죽을 이야기
이에 나는 지금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피로 점철된 기독교에 의해 우리나라가 외국으로 십자군 원정을 나가는 것을 겪고 싶지는 않기에…….
개신교의 장로들은 과반수가 기독교 정당의 창당에 동의하고, 기독인들의 정치참여가 필요하다고 한다.
일화축구단을 특정종교의 포교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 집단이 할렐루야 축구단을 결성한 속셈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레드 데블스라는 이름이 기독교 교리에 반한다며 화이트 엔젤스를 결성하여 국론을 분열시킨 자들의 속셈은 대체 어디에 있는가?
고작 작은 시의 경찰서에 경승실이 있다며 종교자유를 위한 경승실 철폐시위에 앞장선 3000여명의 신도와 목회자들은 왜 경목실의 존재에는 침묵하는가?
공공장소에 있는 단군상이 종교의 자유를 방해한다며 때려 부수는 이들이 왜 공공장소에서 가장 잘 보이는 십자가의 존재는 무시하는가?
대한민국을 기독교라는 한 가지 색깔로 칠해버리고 난 후 그들의 목적은 세계 복음화일 것이다.
그 세계 복음화는 21세기의 십자군원정일 것이다. 아닐 것이라고 생각되는가?
우리의 기독교인들이 목소리 높여 파병을 찬성한 일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행위하라!
혹자는 이런 반문을 한다.
너는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지 왜 이런 피곤한 일을 하느냐고, 그러기보다 다른 공부나 좀 더하고 너 자신의 양식이나 쌓으라고, 너 아니어도 잘나고 똑똑한 이들이 얼마든지 있으니 너는 너 자신의 할일이나 하라고 말한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와중에 법정은 단군상 철거를 합법화하고 말았다. 기독인들이 우리 조상은 단군이 아니고 아브라함이라고 헛소리를 하는 와중에 우리가 우리 손으로 버린 고대사는 중국이 날름 주워 먹어 버렸다.
누가 우리 역사를 우리 손에 쥐어주는가?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것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잊은 것은 찾을 수 있지만, 버린 것은 찾을 수 없다.
무너지는 가슴을 다잡으며
이 땅의 기독인들에게 말한다.
한국 기독교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닌가? 서구가 보여주었고, 미국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당신들이 원하는 복음화가 이루어지면 우리나라가 역시 그것을 보여주게 되리라. 피와 학살의 역사를!
역사는 흔히 반복된다.
그것도 피로 점철된 기독교의 미래임에랴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뻔히 알면서도 나아가는 길!
근거가 없음에도 그 조악한 바이블이 정의라고 믿고!
과학적, 역사적 사실은 모른다면서 도망가며!
신의 뜻이니 알려 하지도!
지성인들의 말을 듣지도 않고!
그대들은 진정 정해진 멸망을 향해 가려는가!
아직도 우리는 고통을 더 겪어야 하는가!
“언젠가는, 언젠가는 반드시!”라는 말을 내뱉으며!
국민 모두가 천년 이상을 기독교를 믿었던 중세의 서구가 과연 행복한 하나님 나라였는가!
오히려 기독교 권력이 약해지며 부강한 국가를 이루지 않았는가!
제자들이 죽기 전 재림하는 것을 보리라는 예수의 새빨간 거짓말에 2000년을 속아놓고도 또 더 속아주려는가!
개독용어를 써서 죄송하지만, 한국사회의 병든 정신을 질타하는
'선지자'의 사자후와도같은, 참으로
'장한' 글입니다.
징하게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글 부탁드립니다...
장한님 좋은글 너무 감사 합니다.^^*..
오늘 하루 모든일 제쳐두고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에 다녀오겠습니다. 개독인이 버렸지만 같은 국민이라
철부지 저의 가족이라 생각하고 ..정신이 혼미한 미숙아 개독이라 생각하고 정상인들이 나서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