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배전설

성배전설

가로수 0 6,666 2007.07.06 18:17
 
성배는 예수에 관한 어떤 비밀을 구체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유럽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 치고 중세기의 기사와  성배에 관한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지금도 널리 쓰여지고 있는 '기사도 정신  (Chivalry) '이라는 말도 이 때에 등장했다.
또한 '성배 ' 에 관한 전설을 지금도 영화화하고 있다.
그  성배의 전설 이 어디에서 유래되었으며 실제로 그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어째서 성배수호자들이 유럽의 왕권을 합법적으로 주장하고 있을까?

성배의 비밀은 성단 기사단이 쥐고 있다
 
성배의 전설은 성당  기사단에 의해 퍼뜨려지기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성당 기사단의 흥망과 그 운명을 같이 한다.
 
성배의 전설이 처음 나온 곳 은 바로 성당  기사단의 영지 였던 상파뉴 백작의 궁성이었다.
그리하여 수많은  소설과 장편 시를 발생시키다가 프랑스 필립왕에 의해  성당 기사 단이 괴멸되면서 그 쟁쟁하던  이야기도 세인들의 입에서 사라지게 된다.
즉 1188년  성당 기사단과 시온 교단의  결별 이후 l00여년 동안이나 당대를 풍미하던  성배의 이야기도 1281년 예루살렘 성지의 상실, 그리고 1314년  성당 기사단의 해체와 때를 같이 하여 역사의 뒷켠으로 믈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200여 년이 지난 1470년 토마스 말로리  (Thomas Ma1ory) 경의 [아더왕의 죽음]에서 성배에 관한 테마는 재등장한다.
여기서부터 성배는 보다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고 예수에 관한 어떤 비밀을 구체적으로 암시하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성배는 예수의 가나  혼인 잔치에 쓰여졌으며 최후의 만찬에도 쓰였고 또 십자가 밑에서 아리마데 요셉이 예수의 피를  받는 데도 쓰였으며 마지막으로는 막달라 마리아에 의해 프랑스 마르세 이유 지방으로 반입되었다고 전해진다.

성배와 기독교의 관계
우선 성배의 전설을 살펴보자.
성배의 이야기를 다룬 초창기의 작품은 크레티앙에 의해 쓰여졌다.
크레티앙은 자신의 구상으로 그 작품을 쓴것이 아니고 <성배의 가문>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플랑다르의 백작 필립의 특별 요청과 자료 제공으로 썼다고 한다.

크레티앙의 작품에서 성배 이야기의 주인공은 <미망인의 아들>로 불려지는<파르지발>이라는 청년이다.

여기서 <미망인의 아들>이라는 호칭은 홍미롭고도 의미심장하다.
이 말은 오래 전부터 이원론자들이나 그노시스(영지주의) 이단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예수>를 지칭한다. 

후에 이 용어는 또 프리메이슨에서도 사용되는데, 이는 프리메이슨이 예수와  관련된 어떤 단체임을 암시한다.

크레티앙의 작품에서 파르지 발은 흘로 된 어머니를 떠나 기사가 되기 위해 십자군에 입대한다. 

그는 이곳 저곳 떠돌아 다니다가 유명한 <고기잡이 왕>을 만나 그의 성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주연이  베풀어지고 한 처녀가 황금및 바탕에 보석이 박힌 신비한 잔을 가지고 나온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파르지발은 그것을 어떤 그릇이나 컵으로 여기지 않는다.
만약 그것이  일종의 그릇이나 잔이었다면 파르지발은 <누가 거기에 담은 것을 먹을 것인가?>라든가
<그 잔으로 누구를 대접하려 하는가?>하는 질문을 던져야 옳다.

이튿날 아침, 깨어보니 성은 텅 비어 있었다.
그 후 파르지발은 자신이 성배와 관련된 혈통의 하나라는 사실과  <고기잡이 왕>이 실은 자기의 숙부였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파르지발은 이상한 고백을 한다.
성배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주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중단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크레티앙의 작품은 성배 이야기의 선구자 역할을 했으며 그 후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중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이 셋  있는데 첫번째 것은 1119년과 1199년 사이 로베르드 보롱에 의해 쓰여진 [성배 이야기의 낭만 Roman de l'estoire du Seint Graa1]이다.
 
성배는 거대한 음모를 숨기는 상징물에 불과하다
로베르는 자신의 작품이 크레티앙의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원천에서 끌어 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의 작품이  성배와 기독교의 은밀한 연관성을 설명해 줄 <거대한 책> 에 근거했다고 했다.
로베르는 성배의 기원을  예수의 가나 혼인 잔치에까지 소급하면서 성배가 신비의  마력을 지니는 것은 그것이 예수의 피를 받은 신성한 물건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는 계속하여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성배는 아리마대 요셉의 가족에 의해 보호되었으며 아리 마대 요셉은 바로  막달라 마리아의 삼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로베르의 성배이야기는 요셉의 가족이 겪는 모험과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
아리마대 요셉에게는 갈라 하드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리고 성배는 요셉의 처남인 브론스에게 전해지고 브론스는 그것을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가 <고기잡이 왕>이 된다.
 
브론스에게는 파르지발이라는 손자가  하나 있는데 크레티앙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파르지발은  <미망인의 아들>로 등장한다.
로베르의 이야기가  풍기는 특이한 점은 크레티앙의 작품과는 달리  이야기의 무대가 영국이고 시대도 아리마대 요셉의 시대라고 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무대가 영국이 된 것은 성배의 가문인  프랑스 메로빙 왕조의 후손들이 모반을 꾸미다가 영국으로 추방당한 사실과 관련이 있다.
이와 같이 크레티앙과 마찬가지로 로베르도 그의 작품에서 성배에 관련된 <혈통>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두번째 성배 이야기는 로베르의 것과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페를레스보 (Perlesvaus) 인데 이 작품은 로베르의 작품과 유사하면서도 몇가지 특이한 점들을 지니고 있고, 저자는 익명으로 되어 있다.
이에 대해 한 전문가는 당대의 시인에게 부여되었던 상당한 지위와 명성을 감안할 때 저자 익명은 이해 할 수 없는 일이며, 
페를레스보는 성당 기사단원의 한 사람에 의해 쓰여진 것이 틀림 없다고 주장했다.

성배의 비밀과 금지된 질문
크레티앙이나 로베르의 경우처럼 페를레스보도 혈통을 매우 중요시하고 있다.
파르지발의 혈통은 여러 곳에서 <매우 고귀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작품에서는 파르지발이 <아리마대 요셉>의 혈통이며 요셉은 예수 당시 유대  총독이었던 빌라도의 수하에서 7년 동안이나 복무한 반민족적 인사였고  또 <파르지발의 어머니의 삼촌>이었다고 증거한다.

이와  같이 페를레스보는 앞의 두 작품에 비해 훨씬 신비하고도 구체적인 필치로 예수와 성배와의 연관성을 암시해 주고 있다.
여기서도 파르지발은 <미망인의 아들>로 등장 한다.
작품 속에서 파르지발은 성당기사단을 방불케 하는  일단의 무리들로부터 다음과   이야기를 듣는다.
""은 속에  밀폐된 머리 그리고 이들 머리에 딸린  몸뚱이들이  있는데 당신은 이들 왕과 왕비의 머리를 본래대로 회복시겨야 하오' 여기서 <왕과 왕비>는 <예수와 막달라>로 연결이된다.

예수는  다윗왕 후손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불려졌기 때문이다.
한편 페를레스보는 성당 기사단이 행했다는 어떤 비밀의식과 유사한 장면을 그려내고  있다.

무리들은 어린애를 구워먹고 숲속에  붉은 십자가를 세워 놓는다.
거기에 아름답고 하얀 짐승을 묶어 옭아 놓은 다음 사냥개들로  하여금 갈기갈기 죽게 한다.
그리고 이파르지발이 보는 앞에서 기사 한명과 아리따운 처녀 한명이  황금 그릇을 들고 나타난다.
 
그들은 조각난 살점들을 주워 그릇에 담아가지고는 십자가에 입을 맞춘 뒤 서로 껴안고 숲속으로 사라진다.
파르지발도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키스를 한다. 
그때 숲속에서 두명의 성직자가 나오는데
 
첫 번째 성직자는 십자가를 찬양하는 반면 두 번째 성직자는 십자가를 막대기로 내려치고 침을 뱉으며 저주한다.
이런  장면은 파르 지발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이유를 묻는 파르지발에게 그 성직자는 <선생, 우리가 무슨 일을 해도 무슨 상관이오. 당신은 알 필요가 없소>하고 대꾸한다.
이와 같이 페를레스보는 십자가 모독 행위와 혈통에 대한 암시를 통하여  독자들에게 뭔가를 던져주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직접 물을 수 없는 <금지된 질문>이다.
 
작품 속에서 성배의 비밀을 묻는 한 귀족에게 성직자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구세주의 비밀은  아무에게나 공개되는 것이 아니다.
 
성당 기사단은 성배의 수호자
세 번째로 다루게 될 성배의 이야기는 가장 유명한 것으로 1195년부터 1216년  사이 볼프람 폰 예센바하에 의해 쓰여진 [파르지발(Parzival)]이다.
볼프람은 그의  이야기가 특별히 마련된 정보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작품들에 비해 훨씬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그의 작품은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역시 성배를 혈통과 관련시키고 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은 성배 이야기가  궁극적으로는 유대적인 연원에서 나왔으며  그것이 남부 프랑스로부터 피레네 산맥을 넘어 북부 유럽으로 전파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또  볼프람은 성당기사단을 성배의 수호자들로 보면서 성배는 신비와 환상의 대상물이 아니라  어떤 거대한 음모를 `숨기기 위한 상징물'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감각적인  필체 로 성배의 혈통과 가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처녀들이 성배를 보살피도록 지명을 받는다.
신의 명령으로 이 처녀들은 성배 앞에서 수종을 드는 것이다.
성배는 오직 고결한 무리만을 선택한다.
경건하고 훌륭한 기사들이 성배를 수호하도록 선택된다.
신은 성배 가문의 남자들을 비밀리에 보내며 처녀들은 공개적으로  떠난다.
 
남자들은 언젠가는 성장해서 성배를 위해  봉사하게 될 그리고 성배 집단을  풍요롭게 할 아이들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배 가문의 여자들은 바깥 세상의 남자들과 결혼할 때, 그들의  족보와 신분을 공개할 지 모르나 남자들은 이 비밀을 굳게 지켜야 하며  그들의 태생에 대한 질문을 허용하지 않을 정도로 엄격하게 숨겨야 한다.
 
그리고 신의  손에 의해 기사 단장으로 지목된 기사는 그의 이름과  혈통에 대한 질문을 금지해야 하며 외부인들의  이익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의 이름을 묻는 외부인이  있을 경우, 그때부터 그의 도움은 끊길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볼프람은 성배의 가문과 혈통이 밝혀져서는 안될 금지된 질문임을 압시하고 있다.
 
만약 질문이  던져졌을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볼프람은 로엥그린의 이야기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
<백조의 기사>로 알려져  있는 로엥그린은 어느날 성배가 있다는 문살바쉐 (MunsaI- vaeshe) 성에서 성당의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어디선가 급히 그의 도움을 요청하는 신호였다.
그 소리는 위기에 처한 여인이 보내는 구원의 요청이었다.
그녀는 브라반트라고  하는 공작의 미망인이었다.
 
그녀는 아주 위급한 상태에서 한 영웅의 도움을 필요로하고 있었다.
로엥그린은 백조들이 끄는  배를 타고 급히 그녀를 도우러 갔다.
전투가 벌어지고 마침내  로엥그린은 악당들의 손아귀에서 그녀를 구해 냈다.
 
 그러고 둘은 결혼했다.
결혼을 하면서 로엥그린은  신부에게 절대로 자신의 신분이나 가문, 그리고 조상 등에 대해서 물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처음  몇 년간 그 약속은 잘 지켜졌다.
그러나 본능적인 호기심과 주위 사람들의 충동질로 마침내 그녀는 금지된 질문을 하고  말았다.
 
이 때 문에 로엥그린은 아내와 아들 하나를 남겨둔 채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성배는 예수의 피가 이어진 혈통을 상징 볼프람의 로엥그린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끝이 난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이 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로엥그린은 파르지발의 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가 남긴 아들은 고드프리드 부용의 아버지인 데, 부용으로 말하자면 1차 십자군 원정을 지휘하여  성지를 탈환하고 시온 수도원을 건립했던 신비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부용은 메로빙 왕조에 속하여 있고, 메로빙 왕조는 바로 예수의 혈통으로 추정되고 있다는 점올 고려할 때 문제의 심각성은 더욱 커진다.

메로빙 왕조는 예수의 혈통으로 추정 이러한 여러 사실로부터 우리는 성배의 전설이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는 것 올 알 수 있다.
실제로 역사는 성배가 실제의 컵이 아니라 어떤 혈통에 관한 숨겨진  비밀임을 확실히 보여준다.
만약 성배가 명백히 예수와 관련이 있는  구체적인 물건이었다면 성배의 이야기는 기독교 초기부터 많은 신자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배의 이야기는 예수가 사라진 지  1천여 년이 지난 후, 성당  기사단의 출현과 함께 갑자기 등장한다.
따라서  성배는 예수의 피를 받은 실제의 컵이 아니라 예수의 피가 이어진  어떤 혈통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결론은 성배의 수호자들로 알려진 성당 기사단의  신비로운 내막을 살펴볼 때, 더욱 확실해진다.
성당 기사단의 창설자는  위그 드 펭이라는 상파뉴의  귀족으로 상파뉴 백작의  가신 (家臣}이었다.
그는 1118년 어느 날 예루살렘의 왕  보드앵 1세를 찾아가 기사단 창설의 취지를 설명했다.  
 
보드앵 1세는 바로 9년 전 예루살렘 성을 사라센인으로부터 탈환했던 고드프리 드 부용의 동생이다.
성배의 수호자와 성당 기사단의 내막 위그가 보드앵 1세에게 내보인  기사단 창설의 취지는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
기 위해  크고 작은 도로들을 안전하게 지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보드앵 1세는 그의 의견을 수락하였고 위그는 8명의 동료들과 함께 호화로운 궁궐에 거하면서 성당 기사단 (Temple  Knights) 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초창기에  그들은 흰색 망또를  제복으로 입었으며 머리는  삭발을 하였다.
그러다가 1146년부터는 그 유명한  붉은색 굵은 십자가 무늬를  사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2명의 기사가  한 마리의 말을 타고  있는 모습을 새긴 마패를  그들의 신분증으로 사용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성당 기사단은 9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임원을 한 명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것은 대단한 의혹을 불러 일으키는데 그것은 바로 어떻게 9명이 그것도 9년간이나 그 많은 순례자들과 그 많은 순례 도로들을 지킬 수 있었겠느냐 하는 것이다.
 
성당 기사단의 임무에 대한 의흑 이러한 배경들은 결국 성당 기사단의 목적이 표면적으로 나타난 <순례자와 도로의 보호>와는 달리 어떤 특정  인물이나 가문, 또는 혈통에 대한  <특수 경호 임무>에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불러 일으킨다.
 
이에 부합이라도 하는 듯이 많은 성배의 이야기 속에는 비밀스런 <성배의 가문과 혈통>에 대한 주제들이 반복해서 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십자군 1차 원정을 지휘했던 고드프리 드 부용은 로엥그린과 파르지발을 넘어 유태계 혈통으로 이어지는 신비한 족보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사실 ""성배""를 의미하는 상 그랄(SangGraal)은 ""왕통""을 의미하는 상 로얄(Sang Royal)의 와전일 수도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견해이다.
왜냐하면 초창기 성배의 이야기에서 성배는 상그랄(Sangraal)처럼 한 단어로 불려지다가 후대에 와서야 두  개의 단어로 끊어 읽어지면서 ""성배""를 의미하는 상 그랄(Sang  Graal)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배가 ""왕통""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누구의 왕통이냐가 문제되는데 다행히도 성배의 전설은 예수와 연결되기 때문에 문제는 쉽게 풀린다.
예수는 다윗왕의  후손으로서 왕의 혈통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막달라 마리아가 프랑스로 가지고 갔다는 성배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즉 막달라 마리아는 실제의 컵을 가지고 간 것이 아니라 예수의 핏덩이, 즉 예수의 자식을 가지고 간 것이다.
 
결국 '예수의 피를  받은 컵은 막달라 마리아의 몸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초창기의 성배의 전설은 막달라 마리아가 프랑스로  가져간 것은 <성배>였지 <컵>은 아니었다고 증거하고  있다.
 
어쩌면 사람들은 그 실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저속한 용어로 부르기를 꺼려 <성배>라는 상징물로 대신한 것인지도 모른다.
성배는 막달라 마리아의 몸을 상징 성배가 예수의 씨앗을 잉태한 마리아의 자궁을 상징한다면 예수는 결혼을 했고 그의 부인은 막달라 마리아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될 때, 프랑스 곳곳에 성모마리아보다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바쳐진 성당 건물이  더 많았고 또 더 높이 추앙되었던  사실에 대한 의문이 풀리게 된다.
또 왜 성당기사들이 십자가를 짓밟고 예수를 구세주로서 인정하지  않았는가에 대한 의문도 풀린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의 혈통을 이은 자식들을 데리고 프랑스로 이주하였으며 그 후손이 메로빙 왕조를 출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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