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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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4 11:17
예수의 아내
만일 예수가 결혼했다면 복음서속에는 그의 부인에 관해 어떤 암시들이 있는가?
언뜻 볼 때 두 명의 가능한 후보자들, 즉 그의 어머니 이외에 복음서속에서 그의 측근자들로 거듭하여 언급되고 있는 두 명의 여인들이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이들중 첫번째 여인은 막달라, 즉 더 정확하게 말하면 갈릴리의 미그달(Migdarl) 또는 막달라(Magdala)라는 마을 출신의 마리아이다. 네 복음서 모두에서 이 여인의 역할은 대단히 모호하며 고의로 불명료하게 다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의 기록에서 보면 그녀는 상당히 후에 가서야 비로소 이름이 언급되고 있다. 그녀가 등장하는 것은 십자가 처형 당시 유대에서이다. 그리고 그녀는 예수의 추종자들 중에 포함된다. 하지만 누가복음에서 보면 그녀는 예수가 아직 갈릴리에서 전도하고 있을 때인 예수 사역의 비교적 초기에 등장한다. 따라서 그녀는 갈릴리에서 유대까지 예수를 따라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그 두 지방 사이를 예수의 시녀처럼 따라다니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것은 그녀가 어떤 사람인가와 결혼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해 준다. 예수 당시의 팔레스타인에서는 결혼하지 않은 여인이 동행도 없이 여행하는 것은 생각할 수 조차 없는 일이었다. 더구나 어떤 종교적 교사와 그의 측근인이 동행하지 않고 여행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전승들은 이런 곤란한 사실을 잠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따라서 때로 막달라는 예수의 제자 중 누구인가와 결혼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예수와 그녀의 특별한 관계 및 예수에 대한 그녀의 친밀성 때문에 그들은 둘 다 간음의 혐의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고소되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전승과는 달리 막달라는 복음서의 어디에서도 창녀로 언급된 바가 없다. 그녀가 누가복음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을때 그녀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 구절은 예수가 행한 일종의 귀신 축출을 언급하는 것으로, 막달라가 '귀신 들렸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구절은 동시에 모종의 종교의식이나 또는 의식적 입회식을 언급하는 것일 수도 있다. 예를들면 이스타르(Ishtar) 또는 아스타트(Astarte)의 제사의식은 일곱 단계의 입회식을 포함하고 있었다. 예수와 만나기 이전에 그녀는 그러한 제사의식과 관련을 맺고 있었을 수도 있다. 미그달 또는 막달라는 '비둘기 마을'이었다. 그리고 제사용 비둘기들이 실제로 그곳에서 사육되었다는 어떤 증거가 있다. 그런데 비둘기는 아스타트의 거룩한 상징이었다.
막달라에 관하여 말하기 전의 한 장에서 누가는 예수의 발에 기름을 부은 한 여인을 언급하고 있다. 마가복음에도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여인이 기름을 붓는 유사한 사건이 있다. 누가도 마가도 이 여인을 막달라와 분명하게 동일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누가는 그녀가 '타락한 여인' 곧 '죄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후의 주석자들은 막달라는 일곱 귀신이 들렸었음이 분명하기 때문에 죄인이었음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여기에 근거하여 볼 때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과 막달라는 동일인물로 간주 되어졌다. 사실 그 둘은 동일 인물이었을 수도 있다. 만일 막달라가 비교적 제사의식에 관련을 맺고 있었다면 그것 때문에 누가 뿐만 아니라 보다 이후의 필자들도 역시 그녀를 '죄인'으로 간주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만일 막달라가 '죄인'이었다면 그녀는 일반적인 전승의 '창녀'이상의 어떤 인물이기도 하였음이 아주 명백하다. 그녀는 보통 여인이 아니었음이 아주 분명하다. 예를 들면 누가는 그녀의 친구들 중에는 헤롯 궁중의 고관의 아내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들의 재원으로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지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도 역시 보통 여인이 아니었다. 마가복음에는 그 의식이 수행되는데 사용된 향유의 귀중함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예수의 기름부음 사건 전체는 상당히 중요한 사건인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그 사건은 복음서속에서 그처럼 강조되었는가?
그 사건의 성격으로 보아 그것은 일시적인 충동 표현 이상의 어떤 것으로 보인다. 그 사건은 주의깊게 미리 계획된 의식인 것이다. 우리는 기름을 붓는 것은 왕들의 전통적인 특권이며 '기름부음 받은자'를 의미하는 '정당한 메시아'의 전통적인 특권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여기에서 볼 때 예수는 그의 기름부음에 의하여 진정한 메시아가 된다는 결론이 생긴다. 그리고 그런 장엄한 역할로 그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이 중요하게 다루어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막달라가 예수 사역의 말기에는 극히 중요한 인물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세권의 공관복음서속에서 보면 그녀의 이름은 언제나 예수를 따른 여인들의 명단 맨 앞에 나타난다. 이는 시몬 베드로가 남자 제자들의 명단 맨 앞에 나오는 것과 똑같다. 분명 그녀는 십자가 처형 후에 빈 무덤을 목격한 최초의 증인이었다. 모든 예수의 신봉자들 가운데서도 예수가 그의 부활을 최초로 드러내 보여준 것은 막달라에게서였다.
복음서 전체를 통하여 보면 예수는 막달라를 독특하고 우선적인 태도로 대하고 있다. 그러한 대우는 다른 제자들에게 시기심을 유발할 수도 있었다. 후대의 전승은 막달라의 배경을 추하게 만들고자 했음이 아주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녀를 창녀로 묘사한 것은 예수와의 관계가 그들 자신의 관계보다 더 밀접했던 어떤 여인의 명성을 공격하고자 하여 지나치게 인간적인 시기심이 발동한 어느 좋지 못한 추종자의 지나친 보복이었을 수도 있다. 예수의 생존 동안이건 그 후이건간에 다른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영적 지도자와 막달라와의 독특한 결속을 시기했다면 후세의 눈에 그녀가 좋지 않게 보이도록 의도했을 수도 있다. 그녀가 하잘것 없는 여자로 격하된 데는 이의가 없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그녀를 창녀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중세에는 창녀들의 집을 '막달라의 집'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복음서 자체는 그녀의 이름이 이러한 창녀로 낙인 찍힐 아무런 이유도 없음을 증언해 주고 있다.
복음서에 나타난 막달라의 지위가 무엇이든간에 그녀만이 예수의 부인이 될 후보자는 아니다. 제4 복음서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베다니의 마리아, 즉 마르다와 나사로의 누이와 동일시될 수 있는 또 다른 여인이 있다.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예수와 대단히 친숙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부자 이기도하여 예수와 그의 측근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집을 예루살렘 근교에 가지고 있었다. 더 나아가 나사로 사건은 이집에는 개인 무덤이 포함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 개인 무덤은 당시로서는 사치한 장식이었으며, 부의 상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귀족적 혈통을 입증해 주는 지위의 상징이기도 했다. 모든 현대의 도시에서처럼 성서시대의 예루살렘에서도 땅은 아주 귀하였다. 그래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사유 묘지를 가질 수 있었다.
제4 복음서에 보면 나사로가 병이 걸렸을 때 예수는 몇일동안 베다니를 떠나 그의 제자들과 함께 요단강에 머물고 있었다. 나사로가 병이 났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는 이틀을 더 지체한 후--이 것은 참으로 기이한 반응이다--베다니로 되돌아 왔다. 나사로는 이미 무덤에 들어간 후였다. 그가 도착하자 마르다가 그를 맞으러 뛰어나와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 하였겠나이다](요 11:21)라고 울부 짖었다. 도대체 왜 예수의 몸이 그곳에 있었다면 그 남자가 죽지 않았을 것인가? 그것은 난처한 주장이다. 그러나 그 사건의 중요성은 마르다가 예수를 맞으러 나올 때 그녀가 혼자였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는 마르다의 동생인 마리아도 그녀와 함께 있었으리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집에 앉아 있었으며 예수가 그녀에게 나오라고 명하기까지 그녀는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예수가 베다니에 도착했을 때 마리아가 집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타당성이 있다. 유대의 관습에 따라 그녀는 상복을 입고 앉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왜 그녀는 예수가 돌아 올 때 마르다와 함께 맞으러 뛰어 나오지 않았는가? 그것은 명백히 설명될 수 있다. 그 당시 유대교의 율법에 의하면 상복을 입고 있는 여인은 그녀의 남편이 명령할 때 이외엔 그 집에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이 사건에서 예수와 베다니의 마리아의 행동은 유대의 남편과 부인의 전통적인 처신에 부합된다.
예수와 베다니의 마리아가 결혼했을 가능성에 대해 추가할만한 증거가 있다. 그 사건은 누가복음에서 다소 그릇되게 나타나고 있다.
저희가 길 갈 때에 예수께서 한 촌에 들어가시며 마르다라 이름하는 한 여자가 자기 집으로 영접하더라.(눅 10:38)
그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어 주의 발 아래 앉아 그의 말씀을 듣더니(눅 10:39)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가로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지 아니하시나이까, 저를 명하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눅 10:40)
주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누나.(눅 10:41)
그러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 한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눅 10:42)
마르다의 간청으로 볼 때 예수가 마리아에 대하여 모종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예수의 대답이다. 어떤 다른 문맥에서라면 우리는 주저하지 않고 이 대답을 결혼에 대한 암시라고 해석할 것이다. 어쨋든 그것은 베다니의 마리아가 막달라 만큼이나 열성적인 제자였음을 암시함이 분명하다.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과 막달라를 하나의 동일 인물로 간주하는 데에는 확고한 이유가 있다. 이 인물이 나사로와 마르다의 누이인 베다니의 마리아와 동일 인물일 수는 없을까? 복음서 속에서 서로 다른 3개의 문맥에 나타나는 이 세 여인들이 실제로는 단일 인물일 수는 없을까? 중세의 교회는 그들을 단일 인물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며 일반적인 전승도 그렇게 생각했다. 많은 성서학자들도 오늘날 일치하고 있다. 그러한 결론을 지지하는 많은 증거가 있다.
예를들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요한복음은 모두 막달라를 십자가 사건에 참석하고 있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들 중 어느 것도 베다니의 마리아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베다니의 마리아가 그처럼 헌신적인 제자였다면 그녀가 참석하지 않은 것은 나태한 것처럼 보였을 것이다. 그녀가--그녀의 오라비 나사로는 말할 것도 없고--예수 생애의 절정의 순간을 목격하지 못했다 함이 믿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한 생략은 설명할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을 것이다. 분명 그녀는 참석했는데 복음서에 의해서는 막달라란 이름의 사람으로 인용되었음이 분명하다. 막달라와 베다니의 마리아가 하나의 동일 인물이라면 베다니의 마리아가 십자가 사건에 참석하지 않았던 것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막달라는 베다니의 마리아와 동일시 될 수 있다. 막달라는 또한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과 동일시 될 수 있다. 제4 복음서는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을 베다니의 마리아와 동일시하고 있다. 실제로 제4 복음서의 필자는 그 문제를 상당히 명백하게 다루고 있다.
어떤 병든 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형제 마르다의 촌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요 11:1)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씻기던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비더라.(요 11:2)
다시 한 장 뒤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 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요 12:1)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새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 자 중에 있더라.(요 11:2)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수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요 12:3)
따라서 베다니의 마리아와 예수에게 기름을 부은 여인은 동일 여인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명백하게 동일하지는 않다 할지라도 이 여인이 또한 막달라이기도 하다는 것은 확실히 타당성이 있다. 따라서 만일 예수가 실제로 결혼했다면, 그의 부인에는 단 하나의 후보자 즉 복음서들에서 서로 다른 명칭들로 서로 다른 역할을 하며 거듭해서 나타나는 한 여인만이 있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