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사건
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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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4 11:18
십자가 사건
간디가 성취한 업적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충분한 대중적 지지를 받는 정신적 지도자는 기존 정부에 위협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정당한 왕권을 가지고 있으며, 왕조를 수립할 자녀들을 가지고 있는 결혼한 사람은 훨씬 심각한 위협을 준다. 복음서속에는 예수가 실제로 로마인들에 의해 그러한 위험 인물로 간주된 증거가 있는가?
예수가 빌라도의 법정에 서 있는 동안 그는 거듭해서 '유대인의 왕'이라고 불려진다. 빌라도의 명령에 따라 이러한 칭호의 죄패가 그의 십자가에 부착되기도 했다. 메사츄세츠 대학의 브랜던(S.G.F.Brandon) 교수가 주장하고 있듯이 십자가에 부착된 죄패는 신약성서에 있는 어떤 것 만큼이나 진정한 것으로서 간주되어야 한다. 첫째, 그것은 사실상 아무 변경이 없이 네 권의 복음서들에 나타나고 있다. 둘째, 그것은 너무나 모욕적이고 난처한 사건이기 때문에 후대의 편집자들이 고안해 낸 것이라고 볼 수 없다.
마가복음에 보면 빌라도는 예수를 심문한 후에 거기 모인 고관들에게 다음과 같이 묻는다.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막 15:12) 이것은 적어도 어떤 유대인들은 실제로 예수를 그들의 왕이라 불렀음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동시에 네 권의 복음서 모두에서 보면 빌라도도 역시 예수에게 그러한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 그가 조롱조로 그리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제4 복음서에서 보면 그는 반대자들의 함성에도 불구하고 그런 칭호를 상당히 확고하고 심각하게 고집하고 있다. 더 나아가 세 권의 공관복음서들에서 보면 예수 자신도 그 칭호에 대한 빌라도의 주장을 인정하였다.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막 15:2) 영어 번역에서 보면, 즉 '네가 말했도다' 이러한 대답은 양면성을 띠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 아마 고의로 그렇게 표현했을 것이다. 그러나 원래의 희랍어에서 보면 그 대답의 의미는 상당히 명백하다. 그것은 단지 '네가 옳게 말하였도다'라고 해석될 수 있을 뿐이다. 그 구절이 성서의 다른 곳에서 나타날 때는 언제나 이렇게 해석되고 있다.
복음서들은 A.D 68~74년의 반란 기간 동안과 그 후에 작성되었다. 즉 유대교가 조직적인 사회적, 정치적 군사적 힘으로서 존재하지 않던 시대에 작성되었다. 더구나 복음서들은 그리스 로마의 청중들을 위해 작성되었으며 필연적으로 그들에 의해 받아들여질 수 있어야 했었다. 로마는 유대인들에 대한 처절한 싸움을 막 끝냈었다. 결국 유대인들이 악당들의 배역을 가지고 등장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었다. 더구나 유대인의 반란이 있은 직후였기 때문에 예수는 정치적 인물, 즉 전쟁을 유발시킨 선동에 어떤 방식으로든 관련된 인물로써 묘사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예수의 재판과 처형에 있어서의 로마인들의 역할은 미화되어져야 했으며 가능하면 동정적으로 묘사되어야 했다. 따라서 빌라도는 복음서들에서 십자가 처형을 마지못해 동의한, 죄가 없으며 책임감 있고 인내력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역사를 제멋데로 날조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건에 있어서의 로마의 입장은 알만하다.
복음서들에 따르면 예수는 유대교의 장로회의인 산헤드린에 의해 최초로 정죄되었다. 그후 산헤드린의 장로들이 그를 빌라도에게 데리고 가 그 총독에게 그를 재판해 달라고 간청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이것은 전혀 타당성이 없다. 세 권의 복음서들에서 보면 예수는 유월절 밤에 산헤드린에 의해 체포되어 기소된다. 그러나 유대의 율법에 보면 산헤드린은 유월절동안 모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복음서들에서 보면 예수의 체포와 재판은 산헤드린 앞에서 밤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유대의 율법에 의하면 산헤드린은 개인의 집에서, 또는 성전 경내 이외의 다른 어느 곳에서도 밤에 모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다. 복음서들에서 보면 산헤드린은 사형선고를 내릴 권한이 없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이것은 분명 예수를 빌라도에게 데리고 간 이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산헤드린은 사형선고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물론 십자가에 매달 형이 아니라 돌로 쳐 죽이는 사형선고이지만 말이다. 그러므로 산헤드린이 예수를 제거하고자 했다면 그 자신의 권한에 입각하여 그를 돌로 쳐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구태여 빌라도를 귀찮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복음서 저자들이 죄책을 로마로부터 전가시키려는 많은 다른 시도들이 있다. 그러한 시도들 중의 하나는 빌라도가 분명히 제시한 하나의 처방, 즉 군중이 선택하는 한 명의 죄수를 석방하겠다는 그의 제안이다.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따르면 이것이 '유월절의 관례'였다.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현대의 권위있는 학자들에 의하면 어떠한 정책도 로마인측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예수나 바라바 중에 하나를 석방하겠다는 제안은 순전히 허위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빌라도가 예수를 마지못해 정죄했다는 사실과 폭도의 위협에 마지못해 굴복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로 허위적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로마의 총독이, 그것도 빌라도처럼 잔인한 총독이 폭도들의 압력에 굴복했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그러한 거짓 꾸밈의 목적도 아주 분명하다. 즉 로마인들을 무죄로 하고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전가시킴으로써 로마의 청중이 예수를 받아들이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물론 모든 유대인들이 전적으로 무죄이었을 수는 없다. 아무리 로마 정부가 왕권을 가지고 있는 제사장적 왕을 위험인물로 간주했다 할지라도 자극적인 행위를 공공연하게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한 행위는 전면적인 반란을 야기시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제사장적 왕이 자신의 백성들에 의하여 분명히 배반된다면 로마에게 있어서는 훨씬 더 편리했을 것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로마인들이 어떤 사두개인들을 '대리 선동자들'로서 고용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예수는 로마 정부, 로마 법정, 로마법, 로마 군대와 로마적 처형--이런 처형은 형식적으로는 로마의 적들에게만 적용되었던 처형이었다--의 희생물이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린 것은 유대교에 대한 죄 때문이 아니라 로마 제국에 대한 죄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