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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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7.14 11:19
시나리오
우리는 이미 예수로부터 이어져 온 혈통에 관하여 하나의 시론적인 가정을 살펴 보았다. 이제 우리는 그 가정을 더 넓히기 시작했으며, 훨씬 더 시론적이기는 하지만 많은 결정적인 단서들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그러므로 전반적인 묘사는 일관성있고 타당성이 있게 되었다.
예수는 제사장적 왕, 즉 귀족이면서 합법적인 왕권을 소유한 자로 그의 정당한 유업을 다시 찾으려고 하였다는 것이 점점 더 분명한 것처럼 보였다. 예수 자신은 로마 정부에 대한 적대 세력의 전통적인 온상인 갈릴리 출신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예루살렘을 포함한 팔레스타인 전역에 명성있고 부유하며 영향력 있는 많은 지지자들을 포섭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지지자들 중의 하나이며 강력한 한 산헤드린 회원은 그의 친척이었을 수도 있다. 더구나 베다니라는 예루살렘 근교에는 그의 부인의 집, 또는 부인 가족의 집이 있었을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입성을 하기 전에 그 야심적인 제사장적 왕은 이곳에 머물렀다. 여기에다 그는 자신의 종파를 위한 중심지를 세웠다. 여기에서 그는 그의 처남의 입회식을 포함하여 의식적인 입회식을 행함으로써 그의 추종자들을 확장했을 것이다.
그러한 야심적인 왕은 불가피하게 로마 행정부및 사두개파를 비롯한 강력한 유대교적 세력에서 강한 반발을 받았을 것이다. 이 세력들 중 한둘은 왕좌를 차지하려는 그의 노력을 좌절시키려고 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를 제거하려는 노력에 있어서 그들은 바랐던 것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제사장적 왕은 높은 직위에 있는 친구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 친구들은 부패하고 쉽게 매수된 로마의 총독과 결탁하여 개인 소유지에서 몇명만 접근할 수 있는 거짓 십자가 사건을 꾸몄던 것으로 보인다. 일반 대중은 멀리 떨어져 있는 가운데 처형이 시작되었다. 그 처형에서 제사장적 왕 자신은 실제로 죽지 않고 그 대신 다른 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혔을 것이다. 먼지가 일어 한층 시야가 가려질 무렵 '몸'이 인접해 있는 무덤으로 적시에 옮겨졌으며, 그 무덤으로부터 하루나 이틀 후 '기적적으로' 사라졌을 것이다.
만일 우리의 각본이 정확하다면 예수는 그후 어디로 갔는가? 혈통에 관한 우리의 가정에 관한 한 그 문제에 대한 대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어떤 이슬람 및 인도의 전승에 따르면 그는 동방의 어느 곳에선가 살만큼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가장 빈번하게 주장되고 있는 장소는 캐시미어이다. 한편 어떤 오스트레일리아의 저널리스트는 예수는 마사다의 요새가 A.D 74년 로마인들에게 함락되었을 때 그곳에서 죽었다는 흥미있고 설득력있는 논증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그때 예수의 나이는 거의 80세가 되었을 것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지에 따르면 렌느 르 샤토에서 베랑제르 소니에르에 의해 발견된 문서속에는 예수가 A.D 45년에 살아있었다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증거가 수록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장소에 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없다. 하나의 그럴듯한 가능성은 이집트와 특히 알렉산드리아일 것이다. 그런데 그 무렵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오르무스(Ormus)라는 현자가 보다 이전의 전기 기독교적 신비들과 기독교를 혼합시켜 '장미 십자단'을 창설했다고 한다. 예수의 미이라가 렌느 르 샤토 부근의 어디엔가 은닉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암시되기도 했다. 이것은 소니에르의 양피지들에 있는 암호로 된 메시지 [ILEST LAMORT(그가 거기에서 죽었다)]를 설명해 줄 것이다.
그가 가족을 동반하고 마르세이유로 갔다고 주장할 만한 근거는 없다. 사실 상황으로 보아 그것은 타당성이 없을 것이다. 그는 여행을 할 만한 형편이 못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함께 있으면 친척들의 안전에 위협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그의 형제 야곱처럼 예루살렘에 계속 남아 그의 목적들을 계속 추구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요약하면 우리는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관하여 복음서들 자체가 제시해 주는 것 이상의 어떤 실제적인 제안도 제시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는 예수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보다 그의 가족 특히 그의 처남, 그의 부인, 그리고 그의 자녀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의 각본이 옳다면 그들은 아리마대 요셉과 어떤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타고 예루살렘을 몰래 빠져 나갔다. 그리고 그들이 마르세이유 해변에 도착했을 때 막달라는 실제로 '성배' 즉 다윗가의 후손인 '왕족'을 프랑스로 가져왔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