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즈니쉬의 비판]기독교인들은 세상의 어떤 종교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다
성서는 말한다. "설령 싸움을
감수하고서라도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라. 이교도들은 저속한 인간들이니 기독교인으로
개종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결코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십자군도 창설된 것이다.
기독교인들은 세상의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죽여왔다.
기독교인들 다음은 이슬람교도들이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이 단연코 일등이며, 그것도 선의의 허명을 뒤집어 쓴 채.......
그들은 기독교인으로 개종시킨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죽여왔다. 죽음과 기독교 중 선택의 문제에 부딪히면 연약한 인간들이란 분명히 죽음
대신 기독교를 선택할 것이다. 이런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여 기독교는 공포심을 조장한다;
"당신은 죽임을 당할 것이다. 다른 대안은 오직 한 가지 기독교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인들만이
그렇게 강요한 것이 아니다.예수조차도 그렇게 말했다."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강제로라도
사람들을 그 길로 인도하라."
누구나 크나큰 선의를
담고 이런 말을 한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큰 문제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이교도들에 대항하는
기독교 십자군은 매우 선량한 의도로 창설되었다. 그들은 모든 이교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고자 원했다. 이교도들은 완강히 저항을 했기 때문에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 죽음은 다른 이교도들에 대한 본보기이다; "그대 역시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기독교인이 되라!"
예수는 그대의 이웃뿐만
아니라 적까지 사랑하라고 말했다. 그 사랑이 예수의 가르침의 근본이다. 그런데
기독교는, 적은 죽여 없애야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것은 순전히 예수 자신의
책임이다. 예수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대항하는 자이다."
이는 매우 추하고 정치적인
발언이다. 그대는 그런 기독교를 종교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사람은
나를 대항하는 자이다." 이는 아돌프 히틀러나 스탈린, 무솔리니 같은 독재자나
할 말이지 종교인이 할 말이 아니다.어떤 사람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그가 나에게 대항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다. 그는 종교에 무관심한
사람일 수도 있다. 왜 그대는 무관심한 부류를 미처 빠뜨리고 있는가? 그것은 확실히
독재행위이다.그대는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길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허락하지
않고 있다. 그대는, 그들이 기독교인이 되기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인류전체에게
충성심만을 강요하고 있다. 그리고 충성심이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사회가 여러 부류로 갈라지더라도 그대는 그것을 개선시킬 수 없을 것이다.
소수의 사람들이 계속 부를 축적해 나가면서 수백만의 가난한 사람들을 양산하더라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신의 뜻이 된다. 그대는 신의 역사에 개입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종교적인
생각이 아니다. 그것은 노예를 영원히 노예로 잡아두고, 여성을 저속한 인간으로
잡아두고, 가난한 사람을 가난한 상태로 묶어 두려는 매우 교묘한 전략이다. 기독교는
충의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추악한 제도를 지지하고 있다.[라즈니쉬 <기독교와
선>중에서, 정신문화사, 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