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비판은 반기독교라기 보다는, 주로 기독교의 개혁을 바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자아도취감에 빠져서 헛소리도 곧잘 하는 사람이니, 잘 걸러서 들으시길 바랍니다.

도올의 종교론-도올논어 20강(신종추원)

엑스 0 6,626 2002.06.15 16:09

도올의 종교론-도올논어 20강(신종추원)


[ 愼終追遠(20강) ]
요약: 이상훈

 

   이 강의는 대단히 중요한 강의라고 생각되며, 여러분들께 혹시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하여 얕은 실력이나마 제가 뒤에다가  도올 선생의 저서에 있는 글을 비롯하여 살을 좀 보탰습니다.   참고 하시고 유익한 토론을 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강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 상례(喪禮) : 凶禮.     빈례(빈소차리는 예)와 장례(무덤만드는 예)로 구분    

  제례(祭禮) : 吉禮  
  愼終은 喪禮를 의미하고 追遠은 祭禮를 의미한다.

 

* 종교의 주제(the main theme)는 God이 아니라 인간의 죽음(death)이다.

죽음은 유한성의 문제이다.    인간에게 죽는다는 것을 가르쳐 준 것은 언어다. 인간은 언어를 얻는 대가로 죽음의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 죽음의 해결 방식    

· 시간 밖에서 : 기독교, 모든 고대 종교

· 시간 안에서 :  유교( 나의 존재는 유한하다. 그러나 유한한 존재의 연결은 무한하다. 조상숭배는 시간 안에서 해결하는 대표적 방식)  

-  개인적 해결 : 기독교, 불교

-  집단적 해결 : 유교 

積善之家, 必有餘慶 <주역><곤례문언>  인간의 구원을 家단위로 생각하고 있다.


* Hebert spencer(1820-1903)
영국의 사회학자이며 철학자,진화론적 사고에 기초하여 모든 학문을 통합할려고 노력하였다
Ancestor worship is the root of every relligion모든 종교의 뿌리는 조상제사이다. - spencer의 <사회학원리> 중에서


* 여호와(야훼)는 유대종족의 하나님이다.  기독교인들은 절대 야훼를 믿는다고 하면 안된다.  야훼는 구약의 신이다.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다르다. 유대교의 율법 속에 갇혀 있는 하나님이 아니다.  구약의 하나님은 신약의 기독교인에게 신앙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은 낡은 약속 속의 폐기되어야 할 하느님이다.

 

* 모든 종교는 다신(多神)으로부터 출발한다.  

기독교 : 십계명 중의 제1계명 -  나 이외에 다른 신들을 ......  (다른 신들의 존재 인정 :다신론)


* 多神論(polytheism)   --->     一神論(monotheism)   ---> 무신론(無神論)


유일신으로의 신의 통일은 항상 지상에서의 권력의 통일과 일치된다.  부족국가시대에는 유일신은 있을 수 없다. 유일신의 출현은 제국(Empire)의 성립 이후의 사건이다.    유대민족에게도 다윗왕조 이래도 일신론(一神論)이 굳어진다. 중국에서도 진시왕 때에 와야 "상제" 등의 통일된 신의 개념이 생긴다. 그 전에는 모두 다신론이고 다신론의 모체는 조상숭배이다.  그리고 모든 신(神)은 족보를 따지고 들어가 보면 반드시 인간의 족보가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추상화되어 보편적인 신으로 되어간 것이다. ( 유에메니즘[Euthemenism]: BC300년 전후에 활약한 신화작가 유에메로스의 주장. 모든 神의 계보는 역사적 영웅지배자.종족의 추장,전시의 혼령에서 비롯되었다. )


* 불교는 절대적 무신론이다. 무신론은 종교진화의 최종단계이다 - Edward conze


* 불교는 심리학이다 그심리학의 궁국은 滅執이다. - 도올


 

* 윤회(transmigration)  사람이 죽었다 다시 태어나는것을 계속반복한다. ( 범어(梵語) - samsara)

무아론(諸法無我)과 윤회사상(윤회의 주체로서의 我가 인정됨)은 조화되기 어려운 이론적 갈등이 있다.

 

* 인간이 살아있다함은 하늘적 氣와 땅적氣가 골고루 섞여있는 상태이다.  땅과 하늘氣가 천천히 없어지면 안락사이고, 교통사고 등으로 인하여 하늘氣는 그대로 있는데 갑자기 땅氣가 없어지면 수(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혼) 가 된다.

땅적 氣가 없어지더라도 하늘적氣는 즉시 없어지지 않고 서서히 흩어진다.(4대 120년간 존속)

그동안 후손들로부터 제사를 받는다(4대봉사)
그러나 유교는 영혼의 영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동양인의 세계관은 영혼의 독자적 영속성(identity)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을 神滅論이라고 부른다.

 

* 不遷位-4대를 넘어서 영원히 모시는 神位

 

* 제사는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혼령과의 화해이다.  이러한 의식은 동양사람들에게 깊은 역사의식을 심어준다.  나의 행위가 자손 만대로 영향을 준다. 내가 함부로 행동할 수 없다.(집단적 해결)  그러니 도덕적으로 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갑자기 죽으면 하늘氣는 땅氣가 사라지고 없어 당황하게 된다.  굿은 鎭魂이다.  즉 혼을 달램이다.

 

* 신주 뒤뜰사당에 모셔진 혼들은 family의 개념에 속한다.
* 埋祖(매조) : 사대봉사후에 신위를 땅에 묻는 제식. 이것은 魄이 아니라 魂을 묻는것이다.

  인간의 역사는 귀신들로 인하여 그연속성이 보장된다.

* 희랍철학자 플라톤의 idea論 : idea는 시간을 초월한 영혼의 고향이다. 영혼의 독자성(identity)를 인정한다.   희랍인의 영혼은 초시간적이다 그러나 동양인의 영혼은 시간 내적이다.

불교와 기독교는 동일하게 초시간적 구원을 추구한다.  유교는 시간내적 구원을 바랄 뿐이다.

불교는 산스크리스트어,팔라어를 기독교는 히브리어 희랍어를 기초로 하고있다. 이 두 종교는 동일한 인도 유러피안 어군의 주부-술부관계속에 매여있다.

 

* 윤회는 영혼의 독자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는 것을 해탈(moksa)이라고 한다.
인도인의 열반(Nirvana) 희랍인의 idea 유대인의 천국(kingdom of heaven)은 동일한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 김성철 씨
묘법연화경에 방편품 제2편에 의하면  불자의 신행의 목표는 깨달음이 아니다.

              석가 왈 "여기서 깨달았다고 생각하는 자는 다 나가라"
불자의 신행의 목표는 깨달음이 아니라 보살행이다
윤회가있기 때문에 오히려 해탈하려는 인간의 도덕적 노력이 유발된다. 
 

* 종교에 있어서 God의 문제는 부차적이다, 서구의 근대정신은 모두 무신론 atheism에 기초하고 있다 무신론을 유신론(theism)의 한형태이다.  기는 끊임없이 娶散한다.   기철학적 세계관은 영혼의 지속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이 취산하는 한 고리일뿐이다.


 

* 동양인의 神은 歷史다.

 

* 마테오릿치(1552-1610)
italy출신의 제수이트 신부로서 중국에 30년을 살면서 동서문명의
화풍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대표작 天主實義(1603)는 우리 나라 개화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 Rites controversy-전례논쟁
1628年 중국강소성 가정 종교회의에서 시작되어 1704년 크레멘트 2세의 칙령으로 마무리된 논쟁인데 4백년을 끌었다. 공자숭배,조상숭배를 금지

 

* The second vatican council(1962-85)
토착적 의례를 천주교의 전례를 할수 있다고 선언함

 

* 金昌淑(1879-1962)
경북성주 출신의 유학자 호는 心山 평생을 항일투쟁과 반독재투쟁에 헌신.   1946년 성균관대 설립 유학발전의 결정적계기마련. 

 

* 김수환추기경이 心山賞을 받는 겸허한자세(절까지 함)에서 오늘의 종교인들은 배워야 한다.

" 기독교정신은 하느님에 대한 효로부터의 下向이고, 유교정신은 인간에 대한 효로부터의 上向이다"

      - 김수환추기경     (끝)

 

여기까지가 강의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이 강의는 종교에 대해 참으로 많은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그 중에서 제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제가 쓰고 있는 글 중에서 발췌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제가 쓰고 있는 책에서는 경어체를 쓰지 않았으니 양해 바랍니다)

먼저 왜 기독교인들이 야훼신을 믿어서는 안되는지 그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신 관념이 어떻게 형성, 발전되는지를 알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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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神)관념의 발생과 발전과정


신(神)관념은 씨족신,부족신,지방신(민족신),세계신 등으로 발전하는데, 신(神)과 그 신을 모시는 씨족,부족,민족은 흥망성쇠를 같이한다.


신(神) 관념은 원시시대로부터 종교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왔다.

신 관념의 주류(主流)진화과정은 최고 원시적 신 관념인 씨족신으로부터 부족신, 지방신, 수신(首神), 국민적 유일신의 단계를 밟는 한편 마나(mana), 애니미즘(animism), 토템(totem) 등 방계(傍系)관념의 진화과정이 별도로 전개되면서 때때로 주류진화과정과의 사이에 혼선을 이루어 오게 되었던 것이다.

씨족신은 원시장로(原始長老)의 신격화로부터 비롯되며, 노인(老人) 부(父) 조부(祖父) 지도자라는 의미를 가진 칭호(稱號)가 대부분이며, 처음에는 반인반수(半人半獸)의 형태를 가졌다가 점차로 인격화되는 경우가 많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각 촌락마다 각자의 씨족신이 있어서 최초에는 동물의 형태를 가졌다가 후대에 가서는 인격화하여 민간의 숭배대상이 되었으며, 고대 셈족에도 가나안人의 각 씨족에는 선조(先祖)이면서 군주(君主)의 의미를 지닌 씨족신 바알(Baal)이 인간의 모든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보편적 신이었고, 헤브라이人의 씨족신 여호와(Yahveh)나 페니시아人의 씨족신 틔리안·멜카트 그리고 모하메트 이전 아라비아人의 씨족신 알라(Allah)도 모두 선조이자 군주이며 각기 씨족사회의 지도자였다. 이외에 셈족의 여러 씨족신 에아(Ea) 벨(Bel) 마르두크(Marduk) 신(Sin) 샤마슈(Shamash) 이슈타아르(Ishtar) 나부(Nabu) 에슈문(Eshmoun) 등도 모두 씨족신이었다. 이러한 씨족신은 중앙오스트레일리아의 아룬타족, 북아메리카의 나바호족, 멜라네시아人, 시베리아의 골야크족, 동아메리카의 난디人, 남아프라카의 즐루人 등 전세계에 걸쳐 나타난다.

씨족신 시대에서 부족신(部族神) 시대로 넘어가게 되면 각 씨족신들 중에서 가장 힘쎈 씨족신이 그 칭호에 군주(君主)·창조자 (創造者)라는 의미를 첨가하여 더욱 발전하는 한편, 인지(認知)가 발달하고 생활양상이 복잡해짐에 따라 각 씨족신, 동물신, 자연신의 세 가지 신관념이 분과화(分科化), 기능화(機能化)하게 되면서 인간생활이 미세한 부분까지 섭리를 행하게 되어 실로 신관념의 발달이 극도에 달하게 된다.

부족신 시대에서 분화발달의 극에 달하였던 신관념은 지방신(地方神) 시대에 접어들면서 정리(整理)·간소화되기 시작된다. 지면관계상 여기에서 그 예를 다 들 수 없고, 잘 알려져 있는 제우스(Zeus)신과 여호와신에 대해 알아 보자.

제우스도 최초에는 인격(人格)의 보통성질을 구비한 야만인의 추장(酋長)으로 나타났었다. 이것은 제우스도 그리이스인의 원시추장을 신격화한 것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역사시대에 이르러 제우스는 그리이스 여러 지방의 주신(主神)이 되어 점차 다른 신들의 기능을 흡수하고 그 토지 또는 기능으로부터 유래한 여러 가지 칭호를 소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제우스는 여러 신들과 인간의 부(父)가 되었지만 아직 유일한 세계 창조자는 되지 못했었다. 제우스의 도덕적 성격이 서서히 상향 발전한 사실은 문서기록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호머(Homenos)의 시(詩)에 의하면 제우스는 아가메논의 지적, 도덕적 성질을 가장 많이 구비한 보편화한 아가메논이었다. 제우스가 어느 때에는 충동과 감성의 동물이었고 어느 때에는 사려있고 위엄있는 지배자였었다. 또 핀더나 BC 5세기의 비극에서는 세계정의와 질서의 대표자가 되고 후대에는 전세계의 선사(善事)의 대표자가 되었다. 그리고 제우스는 그리이스인의 정치적 권위 관념을 표현하여 그리이스 신화 중에 나타난 일신교의 관념에 가장 근접한 신이 되었다.

한 신(神)으로서 질서적으로 진보하여 저명한 대신(大神)이 된 가장 명료한 예는 헤브라이의 여호와에게서 볼 수 있다. 이 신은 본래 아라비아 북경(北境)에 거주한 어느 부족의 신이었던 것을 헤브라이人이 채용한 것인데, 헤브라이인의 특수한 품성과 결부하여 발달하였다. 최초에 이 신은 도덕적으로나 지적(知的)으로나 조야(粗野)했었는데 기원전 8세기에 이르러 윤리상으로 고상한 신이 되었고 또 만능의 신이 되었다. 여러 세기 동안 이 신은 다른 여러 민족의 신보다 우월하며 가장 강한 자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브라함 시대의 헤브라이人들은 자연숭배의 다신교도였으며, 헤브라이인이 다른 신들을 버리고 여호와를 유일신으로 하는 일신교를 믿는 것은 모세때 이후이다. 헤브라이 역사의 각 시대에 있어서 그 민족이 이 신에 대해 가졌던 관념은 각 시대의 경제적 내지 지적(知的) 특징과 결합된 것이었다.

봉건국가가 붕괴되고 중앙집권국가가 출현함에 따라 신관념도 큰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전국민에게 동일신의 숭배를 강요하고, 혹 어떤 국민에게는 원지방신(元地方神)들의 명칭만은 허용하기도 했으나 그들 역시 일신(一神)의 신하로 인정될 뿐이요 전국민의 숭배는 일신에게로 집중되었다. 이렇게 국민적 유일신으로 발전한 예로는 헤브라인人의 여호와, 아라비아人의 알라, 그리이스人의 제우스, 로마人의 쥬피터, 바빌로니아人의 마르두크, 페니키아인의 몰로흐, 시든人의 아수라레트, 모압人의 케모슈, 페르시아人의 아후라마즈다 등의 신들이 있다.

이러한 국민국가의 세력이 팽창해짐에 따라 제국주의가 세계역사를 장식하게 되자 신관념도 또한 그 영향을 받아서 국민적 유일신은 자국민(自國民)의 숭배에만 만족하던 종래의 태도를 일변하여 피정복국가의 신들을 배격, 정복, 말살하고 그 국민들의 숭배를 강요하며 또 종교의 홍보 방식에 의하여 다른 국민에까지 침투하여 세계적 유일신의 지위를 획득함으로써 전인류에 군림하려는 시도를 강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도에서 큰 성과를 거둔 신이 여호와신과 알라신이다. 여호와는 오늘날 전인류의 약3할을 포섭하였고 알라는 약1할을 포섭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하여 현대는 유일신들이 세계적 지위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결전장인듯한 느낌을 주게 되었다.

다음은 도올 김용옥 선생의 도올논어 강의에서 말한 내용이다.

" 유일신(唯一神)으로서의 신(神)의 통일은 항상 지상에서의 권력의 통일과 일치된다. 부족국가시대에는 유일신이 있을 수 없다. 유일신의 출현은 제국(Empire)의 성립 이후의 사건이다. 유대민족에게도 다윗왕조 이래로 일신론이 굳어진다. 중국에서도 진시왕때에 와야 상제 등과 같은 통일된 신의 개념이 생긴다. 그 전은 모두 다신론(多神論)이고 이 다신론(多神論)의 모체는 조상숭배이다. 모든 신은 족보를 따지고 들어가 보면 반드시 인간의 족보가 있으며, 역사적 영웅, 지배자, 종족의 추장, 전사의 혼령 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추상화되어 보편적인 신으로 되어간 것이다."


학자들의 견해를 더 들어 보자.

"태초에는 하느님(여호와)도 많은 하느님 중 가장 힘 센 하느님, 어떤 동네의 종족신(種族神)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6세기, 유태인들이 바빌로니아에서 귀양살이할 때 문득 이 세계의 구주(救主)라는 관념이 생기면서 성서의 신은 새로운 차원으로 발돋움한다. 옛 전통을 가꾸는 유일한 방법은 시대의 상황에 맞게 쇄신하는 길뿐이다. 구약시대 세계는 근동(近東)을 중심으로 겨우 몇 백 마일 크기의 3층짜리 케이크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사람들 중에는 아즈텍문화라는 게 있는 줄 아는 사람은 물론, 심지어는 중국이 있는 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세계가 바뀜에 따라 종교도 변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위대한 성인들도 동초서초(東抄西抄), 이것은 여기에서 꾸어오고, 저것은 저기에서 꾸어오고 해서 소프트웨어를 꾸미는데 이것을 종교의 발전이라고 한다. 성경에서도 그걸 읽을 수 있다." (죠셉 캠벨 <신화의 힘>에서)

"히브리인의 하느님은 원래 이스라엘 민족의 야훼라는 부족신(部族神)이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민족의 다곤이나 모하브 민족의 체모스와 같은 부족신과 싸우는 하느님이었다. 그러나 기원전 6∼8세기에 나타난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1세, 예레미아, 이사야 2세와 같은 예언자들은 야훼는 히브리인의 하느님일 뿐만 아니라 천지의 창조주이며 모든 역사와 인류의 심판자라고 끈질기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후 하느님은 신앙의 가족에 속하는 동족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이나 집단을 돌봐주는 하느님이 되었다." (존 힉스<종교철학 개론>중에서)

이제 신 관념에 대해 윤곽이 뚜렷이 잡힐 것이다.

   태초로부터 인류는 높은 산과 강, 바다 등의 지형으로 분리된 전세계의 지역에 흩어져 살면서 각기 그들 고유의 신(神) 개념을 갖고 살았다. 중동의 여호와신과 알라신, 이집트의 오시리스,호르스,이시스,라아 등의 신, 앗시리아 제국의 야스르신, 수메르의 아누신,엔릴신,엔키신, 메소포타미아의 탐무즈신,에아신,아누신, 셈민족의 바알신, 바빌로니아의 마루두크신,아쉬타르신,엔릴신, 그리스의 제우스신,데메테르신,아프로디테신,아폴로신,포세이돈신,아르테미스신, 이탈리아의 주피터신,비너스신,마르스신,베스타신,야누스신, 고대 페르시아의 미트라 신, 인도의 파라브라마, 중국의 반고, 일본의 천조대신, 한국의 환인,환웅,단군 등 그 민족의 근간을 형성하기까지 숱한 신들이 있었으며, 전쟁에 의하여 타민족이나 부족에게 지배받기 이전에 만들어졌던 하느님들은 그 민족에게는 절대 유일신, 또는 다신적(多神的) 존재, 혹은 전지전능한 창조주로서 그 민족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힘센 민족의 침략으로 인해 약한 민족에 의해 창조되었던 신의 이름은 자연적으로 소멸되고, 힘센 민족이 만들어낸 신의 이름은 자연스럽게 널리 퍼지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신(神)과 그 신을 모시는 씨족, 부족, 민족은 흥망성쇠를 같이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만 봐도 여호와신이 이 땅에 들어오기 훨씬 이전부터 하느님 신앙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개화와 더불어 여호와신이 득세하면서 이 땅의 많은 백성들은 하느님하면 기독교의 하나님밖에 없는 줄 알고 있는 실정이다.


여호와는 바이블에 숱하게 언급되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일뿐이다. 기독교인들이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을 모든 인류의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지만 유대인은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을 유대인의 하나님, 자신들만의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다. 구약을 보라. 타민족과의 전쟁에서도 그들을 모조리 학살하고 유대 민족에게 승리를 안겨다 주는 여호와신이 유대민족만을 선택했다고 믿는 것은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 유대교는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전도를 하지 않는 희한한 종교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구약은 일개 유대민족의 역사서요, 유대교의 경전일 뿐이지, 타민족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서이다. 온갖 대량 살육과 근친상간, 불륜 그리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으로 얼룩져 있는 기록을 어찌 성스러운 경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의 텔아비브대학 철학과의 중국철학교수로 있는 아리엘 교수에 의하면 오늘날 랍비정통의 유대교에 있어서 제일의적인 것은 『탈무드』이지『구약』이 아니다. 『탈무드』야말로 유대교의 알파요, 오메가다. 『탈무드』야말로 그들의 구체적 역사와 생활의 원형이다. 그에 의하면 『구약』은 하나의 역사서이며, 중국의 『二十五史』나 한국의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이상의 권위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역설한다. 그가 모든 유대인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유대인들은 오히려 자기들의 경전에 대해 매우 비성서적(우리가 보통 쓰는 의미에서의 성서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취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의 실체와 유리된 허구의식 속에서 그것은 절대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김용옥<절차탁마대기만성>중에서)

유대인들은 오히려 여호와신를 섬기는 다른 민족을 이상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아는가?

▣ 시간 밖에서 해결하는 방법과 시간 밖에서 해결하는 방법

우리는 여기서 서양의 직선사관(창조-타락-종말)과 동양의 순환사관에 대해 정확한 인식을 할 필요가 있다.

"  직선으로 인간세의 역사를 파악할 때에는 대부분 종말을 향한 어떤 가치관의 직선체계가 성립하게 마련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인간세는 좋아진다든가, 문명은 진보한다든가, 더 살기좋은 세상이 된다든가, 자유를 향유하는 계급이 더 많아진다든가, 자유의 의식의 점차적 증대가 이루어져서 좋다든가 하는 등등의 생각이 이루어진다. 헤겔이 말하는 변증법적 사관은 이러한 기독교의 묵시록적 직선사관의 대표적인 예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직선사관의 병폐는 역사의 목표를 역사 밖에서(시간 밖에서) 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직선으로 그 무엇을 향해 돌진한다는 생각은 반드시 그 역사의 목표를 설정하는 주체가 역사 밖에 있게 마련이다. 그 역사 밖에 주체가 있어야 그 목표가 설정될 것이며 따라서 역사는 그 목표에 의하여 일사분란하게 지배되고 작동될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 밖에 있는 역사의 주체는 더 말한 나위없이 기독교에서는 하나님(God)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직선사관의 병폐는 역사 밖에 있는 역사의 허구적 목표를 향해 역사의 현실을 연역적으로 획일화시키며 너무 일률적으로 가치판단을 고정시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매우 무서운 독단에 의해 역사의 현실적 다양성을 희생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히틀러나 스탈린이 만들어가고자 했던 사회모순의 배경에는 분명 그러한 직선사관의 오류가 숨어있을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순환은 역사가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려서부터 기독교문명 속에서 먹고 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이외의 체험이 본질적으로 결여되어 있다. 그들은 순환과 반복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일차적으로 범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중용』의 말을 빌리면 "시중(時中)"일 뿐이며 순환 그 자체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이루어지는 비반복적인 것일 뿐이다. 순환의 역사는 중용의 역사며 중용의 역사는 역사의 목표를 역사 자내의 밸런스에서 구하는 역사다. 직선의 역사는 역사의 목표를 역사 밖에 두지만 순환의 역사는 역사의 목표를 역사 안에 둔다. 역사의 목표란 현실적 인간에게 삶의 기준이 되는 이상(Idea)을 말하는 것인데, 이상이라는 것은 영원히 달성할 수 없는 영원한 이상일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은 반드시 우리의 삶의 밖에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내가 죽어서 천당을 간다고 하는 생각은 나의 이상이 분명 나의 삶의 밖에 있는 것이며 그것은 영원히 확인될 수 없는 이상이다. 그런데 내가 살아 있을 동안 나의 몸의 Input(밥)와 Output(똥)의 발란스를 취하여 완벽한 건강을 이룩한다는 것도 매우 일상적인 것 같지만 영원히 달성할 수 없는 이상의 자격으로 말하자면 동일한 것이다.

순환적 역사에 있어서는 역사의 목표가 상황적이며 자내적(自內的)이며 역사자체의 함수에 따라 역동적이다. 그리고 묵시론적 종말을 향해 모든 가치관을 일률적으로 휘몰아갈 필요가 없기 때문에 다양한 현실을 포섭한다." (김용옥<삼국통일과 한국통일[상]>중에서)

" 돌아감이 없는 직선적 발전은 파괴일 뿐이요, 절망일 뿐이요, 단절일 뿐이요, 종료일 뿐이다. 그것이 헤겔의 오류요, 맑스의 오류요, 기독교 묵시론의 오류요, 사막문명권 사람들의 절망감의 오류인 것이다. 돌아감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반복이 아니다. 순환은 끊임없는 새로움의 창조다. 돌아감이야말로 창조의 원천이다. 이 돌아감의 창조를 헤겔사관에 빠진 자들은 정체(Stagnation)와 미개와 암흑으로 오인한 것이다. 발전을 외치는 자들이야말로 미개한 자들이요, 암흑구덩이를 헤매는 자들이요, 유토피아의 신기루에 떠도는 가련한 유령들이다. 그 돌아감의 항상됨을 알아야 우리는 비로소 개명(明)하다, 밝다(明) 말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돌아감의 항상됨을 모르는 자들이 역사와 자연과 인간에 대하여 흉칙한 짓을 망령되이 일삼는 것이다." (김용옥 <노자와 21세기[중]>중에서)


우리가 만일 앞을 향하여 계속 걸어간다고 할 때, 우리 자신은 직선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구의 밖에서 바라보면 그 사람은 거대한 원의 궤적을 따라서 돌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것이 직선으로 보이는 것은 인간의 감각이 지니는 한계로 인한 근시안적인 착각이며, 우주만유는 초미시세계로부터 초거대세계에 이르기까지 순환으로 존재한다. 역사(歷史) 또한 통일과 분열의 연속이며, 순환이다. 새로운 왕조 또는 국가의 탄생기,통일기(統一期)(봄)-성장기(여름)-절정기(가을)-분열기,쇠퇴기(겨울)를 거쳐 또 새로운 왕조,국가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우주관이든, 역사관이든 직선적으로 인식하기가 쉽다. 그러나 거대한 원(圓)의 극히 일부분을 잘라 보면 직선으로 보이는 것처럼 직선사관은 단견(短見)이며, 지극히 근시안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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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각해 볼 문제들 ]

▣ 불교가 무신론이라고 하는데 찬성하십니까?  불교를 신앙하는 분들 계시면 이에 대해 게시판에 생각을 올려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불교가 무신론이라는 데에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  윤회론과 無我論은 상호모순되는 것일까요? 

참고로 라즈니쉬의 견해를 인용하겠습니다. 

《 붓다는 결코 신에 관해 얘기하지 않는다.  H.G웰스는 붓다에 관해 말했다.  "그는 가장 신적이다. 또한 그는 인류 역사상 가장 非神的인 사람이다."  그렇다 바로 그렇다. 그는 가장 신적이면서 가장 비신적인 사람이다.  그대는 붓다보다 더 신적인 사람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어떤 존재도 그 앞에서는 그저 무색해질 뿐이다.  그의 광휘는 그토록 찬란해서 그의 존재와 비교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는 신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  그가 신에 관해 결코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그가 무신론자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가 신을 말하지 않은 것은 신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길이 없기 때문이다.  신에 관한 이야기는 모두 난센스이다.  그대가 신에 관해 어떤 말을 할지라도 그것은 실패하게 되어 있다.  그것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다른 현자들도 신에 관해서는 어떤 말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들은 신은 결코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붓다는 참으로 이성적이어서 이런 말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말한다.

"신에 관해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것조차 부정적인 방법으로 그를 규정짓는 것이다. 만일 그대가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해도 그것 역시 말이다."  그는 철저하게 논리적이다.  그는 신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말했다.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해서는 안된다.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

붓다는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신에 관해 말한 적은 결코 없다.  내가 그를 특별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신에게로 이끈다.   다른 누구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을 신에게로 데려갔다. 그의 현존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신앙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신에 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신 뿐만 아니라 영혼, 진아에 대해서조차도 그는 이론을 내세우지 않는다.  그는 단순히 말한다.

"나는 그대에게 어떻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보여줄 뿐이다.  그대가 들어가서 보라."

그는 말한다.

"붓다는 길을 가르칠 뿐이다.  붓다는 그대에게 철학을 주지 않는다. 그대가 거기 있다. 들어가서 보라."》[<42장경> p24~25, 라즈니쉬 저, 황광우 이경옥 역, 성하출판]

▣  불교의 윤회론에 의하면 해탈하지 못하는 한, 영혼이 영원히 이 생에서 저 생으로 윤회한다고 하는데 유교에서는 영혼이 4대(120년)가 지나면 흩어져 사라진다고 합니다.  어느 것이 맞을까요?  그리고 그 영혼이 독자성(identity)을 유지할까요?  못할까요?   저는 도올 선생을 존경하지만 그의 기철학적 입장  즉, 영혼이 독자성을 유지하지 못한다고 하는 부분은 동의하지 않는 편입니다.  적어도 동양의 수행 세계나 무속의 세계에 대한 체험을 해 본 사람 중에는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가령 <말썽꾼 귀신도 내 말은 듣지요>를 쓴 성안스님이 쫓아내는 귀신들도 이승에서 살다가 죽은 혼령들입니다.  그들은 그 자신이 살아 생전에 가지고 있던 독자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제사는 단순히 살아있는 인간과 죽은 혼령과의 화해일까요?   

▣ 기독교는 윤회를 부정할까요?(도올강의 내용과는 무관)   기독교에서도 콘스탄틴 황제에 의해 진리가 왜곡되면서 윤회에 관련된 성경구절이 모두 삭제되기 전에는 윤회를 인정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윤회를 증명할 수 있는 성경구절들은 많이 살아남아 있습니다.(둘로스데우 著<성경에 나타난 전생과 윤회>참조)     저는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윤회와 전생을 믿습니다.  기독교도 이신칭의 같은 유치한 교리에서 벗어나 과거의 윤회사상을 다시 되살려야만 보다 도덕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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