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올의 비판은 반기독교라기 보다는, 주로 기독교의 개혁을 바라는 비판이 많습니다.
자아도취감에 빠져서 헛소리도 곧잘 하는 사람이니, 잘 걸러서 들으시길 바랍니다.

[발췌글]여자란 무엇인가(4)

엑스 0 5,420 2002.06.15 16:06

[발췌글]여자란 무엇인가(4)


그런데 에덴동산에 데려다놓은 걸작품의 그 부분이 울끈불끈 서는 묘한 작용을 일으키는데, 분명 그 작용은 신의 창조의 중요한 부분일 텐데, 그 작용을 완수시키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구멍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작대기를 끼워서 그 작대기의 작용을 완수시킬 수 있는 구멍을 창조하게 되는데, 그것마저도 아담의 갈빗대 하나에서 생겨난 것이다.

즉, 새로이 흙으로 빚어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아담으로부터 그 아담의 물건을 끼워 맞추기 위한 구멍으로서 주문된 것이다. 이러한 나의 너무도 적나라한 표현에 진저리를 치실 독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지만 나의 이러한 표현은 눈곱만큼의 과장이 없는 유대교-기독교 전통에서 성립한 인간관의 현실이다.

내 말을 과장이라고 생각하시는 분은 기독교인들이 매우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사도 바울의 입을 통해 나온 말에 한 번만 더 귀를 기울여주었으면 한다.

"남자는 머리에 베일을 덮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남자는 하나님의 모습이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뿐이기 때문이다. 남자는 원래 여자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며, 여자가 바로 남자로부터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남자는 여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며 여자야말로 남자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그러므로 여자들은 하나님의 사자들이 무서워서라도 그 머리 위에 그들을 초월하는 권위의 상징으로서 항상 베일을 덮고 다니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니라."

이 황당무계하게 들리는 전근대적인 망언은 여러분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어김없는 거룩한 성서의 말이며, 또 그 털보 바울의 말이다. 우리 나라의 경우에는 여자가 밖에 나다닐 때 면포(천의, 너울, 장옷 등)로 얼굴을 가리는 풍속은 조선조 후기에나 나타나는 것이고 그것은 어떠한 여성철학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치 위계질서의 변화에 따른 것이지만, 이스라엘 민족을 포함한 중동문명권의 경우, 물론 후기 서구라파 문명도 포함하여, 태곳적부터 이미 여자는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다닐 수도 없었고, 회당에서 말도 할 수 없었다.

바울은 여자가 교회에 올 때 반드시 면포로 가리고 와야한다고 으름장을 주면서, 그의 맹랑한 여성관을 피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이미 모세의 시절로부터 수천 년 내려온 유태민족의 풍습과, 그 풍습을 양식화한 창세기의 인간창조 신화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해될 수 없는 것이다.

바울의 여성관은 불행하게도 향후 2천년 인류 역사의 중요한 부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로마대제국의 전성기를 거쳐 중세기, 르네상스, 오늘의 산업사회에 이르기까지 이 기독교 문화에서 성립한 여성관의 진수를 이해하지 못하면 현금 그 문명이 제시하고 있는 철학. 종교. 문학. 심리의 결정적 패턴을 유실하고 만다.

창세기의 창조설화가 말하고 있고 사도 바울이 확인하고 또 지그문트 프로이드에게까지 연결되고 있는 이 작대기와 구멍의 신화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즉, 그 구멍은 작대기를 끼우기 위한 것으로서만 그 존재 의의를 갖기 때문에, 사도 바울의 말대로 그 구멍 자체가 그 작대기를 위하여만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그 구멍은 그 나름대로 존재 의의를 갖지 못하기 때문에 그러한 설화의 양식 속에서 그 구멍은 그 작대기의 결여태로서밖에는 인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그 구멍은 그 작대기가 없는 상태, 빠진 상태, 빈 상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지는 자지의 결여태이며,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철학자는 보다 고상하게 이를 표현하여 여성은 어떠한 속성의 결여태라고 했던 것이다.

보지는 자지의 결여태라는 생각은, 자신 있게 단언하지만, 동양인의 사유구조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나는 동양 고대사회에 있어서의 여성의 현 실태를 적나라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여성에 대한 남성의 우위가 확보된 이유는 이와 같이 본질적으로 여성을 남성의 결여태로 보는 철학에 있지는 않다.

보지를 자지의 결여태라고 하는 생각의 20세기적 표현은 비엔나의 의과대학생이었던 지그문트 프로이드에게서 강렬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소위 카스트레이숀 콤플렉스(거세불안)이라고 하는 것이며 이는 또 그 유명한 외디푸스 콤플렉스와 표리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고 이 카스트레이숀 콤플렉스는 보봐르의 <제2의 성>의 가장 중요한 테마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카스트레이션 콤플렉스란 무엇인가? 외디푸스 콤플렉스과 프로이드의 마음에 자리잡은 것은 대강 1897년 여름과 가을 사이에 일어난 것으로 보이므로 카스트레이션 콤플렉스도 그 전후로 프로이드에 의해 처음 하나의 가설로 인류사에 등장한 것이다.

그의 외디프스 콤플렉스는 바로 이 카스트레이숀 콤플렉스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것이며 표리를 이루는 양자의 관계는 유아심리의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것이며, 또 뉴로시스(신경정신질환)의 정신역학의 구조를 밝히는 데 가장 탁월한 업적으로 평가되며 오늘날 정신분석학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것임은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몰론 이 때의 유아 심리란, 주로 유아심리의 발전 단계를 프로이드의 구분에 따라 입 단계, 똥구멍단계, 자지 단계로 나눈다면 제3단계인 자지 단계에 해당되는 것이다. 제3단계가 이미 보지 단계가 아니고 자지 단계라는 사실, 즉 유아심리 발전에 있어서 보지가 결여되어 있다는 이 매우 단순한 사실에서부터 이미 프로이드학설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아로 분석을 시작하자.

거세 불안이란 이런 것이다.

어린아이가 생후 약 2년 동안은 남자와 여자에 대한 성별을 의식하지 못하고 산다. 그러다가 우리 나이로 3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남자아이는 여자 몸에 자기가 가랑이에 달고 있는 대포 같은 작대기가 없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고 여자아이는 남자 몸에 자기의 몸에 없는 것이 불쑥 뛰쳐나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프로이드에 따르면 이러한 있음과 없음의 인식이 바로 그들에게 공포와 불안을 준다는 것이다. 즉 남자아이는 자기의 자지가 여자아이처럼 "짤려 없어질 것(거세)"을 걱정하게 되고 이에 대한 공포는 때마침 생기는 외디푸스 콤플렉스 즉, 엄마라는 존재를 하나의 성욕의 대상(love object, 이 때 love는 정신적 사랑이 아니라, 정확하게 씹한다는 뜻임)으로 느끼는 심리가 발동함에 따라 그것과 가중하여 아버지가 죽이고 싶도록 저주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즉, 엄마와 씹하고 싶어지고 아버지는 내 자지를 짤라버릴 나쁜 놈, 즉 나의 정욕적 쾌감의 원천인 그 아름답고 좋은 자지를 탐낼 나쁜 놈으로서 공포의 대상이 되며 그와 경쟁의 관계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쟁의 관계로부터의 탈피 과정, 즉 아버지라는 권위의 우산으로부터의 탈피 과정, 그리고 엄마라는 성욕의 대상에서 진짜 씹을 할 수 있는 대상으로의 이행 과정이 곧 인간의 성숙 과정이며 이러한 성숙 과정에서 그러한 이행을 스무쓰하게 하지 못한 인간들에게 나타나는 정신질환적 현상이 뉴로시스(신경정신질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외디푸스 콤플렉스와 카스트레이숀 콤플렉스의 핵심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프로이드는 과연 맞는가? 과연 나는 거세불안 속에서 떨면서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가지고 성장했는가? 그대들의 삶을 뒤돌아볼 때 과연 그러했는가?

프로이드에 의하면 여아는 자기 보지에 자지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그 자지에 대한 선망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지를 가진 아버지를 좋아하게 되고, 엄마는 아버지와 자기의 욕망적 관계를 질투하는 방해물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웃기는 이야기다. 나는 과연 우리 나라의 여성들이 자기의 유아 의식을 회고해보건대 몇 퍼센트나 자지 선망을 체험했는지 의심스럽다.

내가 고려대학생 남녀 천여명을 상대로 설문을 해본 결과에 의하면 프로이드의 이론에 가깝게 오는 상황이 5%도 되지 않는다.

우선 외디푸스 콤플렉스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정은 아기가 엄마의 젖을 빨 때 두 가지의 뺨이 분화된다는 것인다. 즉 영양섭취의 뺨과 성욕적인 뺨으로 분화되는 데, 이 성욕적인 뺨에서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발생한다고 분명히 쓰고 있다. 유아가 엄마의 젖을 빨면서 그 대상을 자기 성욕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즉 입 단계로부터 시작하는 쾌감은 원래 자애적인 것인데 아이의 성숙은 이러한 자애를 포기하고 그 애(愛)를 대상화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는 데 이 과정에서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프로이드의 기술을 잘 뜯어보면 그는 매우 명백한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즉 아들이나 딸이나 다 여자인 엄마가 키운다는 사실, 그러면 외디푸스 콤플렉스는 아들과 엄마의 유방 사이에서는 전혀 성립할 수 없는 논리라는 것이다.

프로이드가 범하고 있는 제1의 오류는 인간의 성감(sexual pleasure)을 단지 이성간의 관계, 즉 보지 속에 자지를 끼워놓고 펌프질하는 행위로만 보는 오류이다. 그래서 아들 - 엄마, 딸 - 아버지라는 매우 단순한 크로스적인 관계만이 발생하고 있다. 물론 유식한 독자는 프로이드의 섹스 개념이 그렇게 유치한 이성간의 펌프질이라는 씹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일반 의식형태를 규정하는 추상적 개념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이 인간의 우주를 설명하는 보편적 원리로서의 틀리라는 것이라고 나를 반박할 것이다.

그러나 나 자신 프로이드의 섹스 개념의 추상성과 보편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러한 추상적이거나 보편적인 성격을 뒷받침하고 있는, 보다 실존적이고 이면적이고 핵심적인 그 자신의 섹스 개념은 이성간의 펌프질이라는 너무도 협소한 성개념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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