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란드러셀의 글 모음입니다. (몰러님이 정리하셨습니다) |
ㅇ 기독교국가에서 사는 불가지론자
저희 부부는 불가지론자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기독교인이 아닌데 애들을 기독교 신앙으로 세례를 받게 하여 기독교인으로 키우는 것이 좋은지 그렇게 하지 않는 편이 좋은지 선생님의 조언을 받고 싶습니다.
존경하는 휴 부인, 장차 기독교국가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아이들을 불가지론자가 어떻게 키워야 좋은가 하는 것에 대해 당신에게 어떤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저의 경우 아이들이 세례를 받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종교에 대한 저의 태도를 아이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바라는 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 애들 중에서 둘은 열렬한 영국 국교도가 되었으니까요.
저는 신학 문제에 대한 태도를 감추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통파가 아닌 입장을 고집하도록 항상 적극적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당신에게 좀더 명확한 대답을 할 수 없음을 애석하게 생각합니다만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아이가 어떤 환경에서 지내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959.12.10)
ㅇ 종교적 거짓말
‘불가지론자는 성서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물음에 대하여 당신은 성서의 편협한 해석을 모든 기독교인의 탓으로 돌렸습니다. 당신이 ‘깨달음을 포교한 성직자’라 부르는 기독교인 이외의 기독교인 말입니다.
엘리야를 놀린 아이들과 암곰에 대한 당신의 해설에 많은 기독교인이 찬성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신다면 그것은 당신의 오산입니다. 영국 국교회는 신자들에게 성서에 대한 당신의 견해와 같은 견해를 가지라거나 또는 당신이 흔히 예로서 끌어내는 정통파 기독교인의 견해를 가지라고 요구하지는 않습니다.
존경하는 주교님! 대부분의 기독교인이 성서를 믿지 않는다는 의미의 당신의 말씀에 전혀 동의할 수 없습니다. 당신은 영국 국교회는 성서에 대한 정통파 기독교인으로서의 태도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당신은 사제 임명식 예배에서 주교가 묻는 말, 그리고 그것에 대해 신임 사제가 대답해야 하는 말을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주교는 “당신은 구약성서와 신약성서라는 교회가 정한 경전을 진심으로 믿습니까?”라고 질문하고, 이에 대해서 신임 사제는 “믿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엄숙한 의식에서 교구목사가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리라고는 아무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당신은 말씀하실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미덕을 위해 헌신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그 빛나는 경력을 의례적이고 거창한 거짓말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은 실로 슬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도 말씀하셨다시피 사실상 거의 모든 성직자들은 성서 속에서 자기들의 형편에 맞지 않는 부분은 믿지 않으면서, 그들의 대부분은 커다란 고통과 고난을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것을 신에 대한 의로운 행위라고 하는 구절만은 믿습니다. 예를 들면 이혼과 산아제한을 금지하는 구절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이 산상수훈에서 가르치고 있는 평화주의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가 자기는 평화를 위해서가 아니라 검을 던지기 위해 왔다고 한 구절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1960. 6.16)
ㅇ 러셀 주교
텔레비젼 인터뷰에서 선생님은 영국 국교회의 주교 한사람을 참고인으로 채택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이 주교가 ‘선생님의 견해 중 어떤 것은 성욕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이 주교는 아주 젊은 주교였음에 틀림없습니다. 다만 제가 부가할 수 있다면, 선생님 자신이 주교가 아니었던 사실을 애석하게 생각한 것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존경하는 캐넌 콜먼씨, 2월 23일에 보내주신 당신의 호의에 찬 편지 참으로 고마웠습니다.
문제의 주교는 젊은 분이 아니었습니다. 영국 로체스터의 주교였는데 지금은 생존하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년 발표)의 어느 부분이 성욕의 증거를 제공하고 있는가를 그에게 묻는 것을 잊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주교였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진정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주교가 아니었음을 저는 도저히 애석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1961. 3.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