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어록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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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러님이 정리하셨습니다)

러셀 어록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2

몰러 0 5,242 2002.10.27 19:52
○ 신도 원인이 있어야 한다.

나의 경우, 젊을 때 이 문제에 대해 아주 진지하게 생각했고, 오랫동안 제일 원인론을 믿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나이 열여덟이었을 때, 존 스튜어트 밀의 “자서전”을 읽다가 다음과 같은 구절을 발견했다.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가 날 만들었는가?’라는 물음에는 해답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즉시 ‘누가 하나님을 만들었는가?’라는 보다 깊은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지만, 아주 단순한 이 구절이 내게 제일 원인론의 오류를 보여주었다. 모든 것에 원인이 있다고 한다면 하나님에게도 원인이 있어야 할 것이고, 어떤 것이 원인 없이 존재할 수 있다면 세상도 하나님처럼 원인 없이도 존재할 수 있어야 할 것이므로 이 이론에는 아무런 타당성도 없다.
이 논리는, 세계는 코끼리 등에 얹혀 있고, 그 코끼리는 거북이 등에 얹혀 있다고 보는 힌두교도들의 관점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그럼 그 거북이는?’하고 물었더니 그 인도인은 ‘우리 주제를 바꿔보는 게 어떻소?’라고 대답했다. 원인이 없다면 세상은 생겨나지 못했다고 볼 이유도 없지만, 반대로 세상이 항시 그렇게 존재해 있었다고 해서 안될 이유도 없다. ‘세상은 시초를 가진다’고 생각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사물에는 시초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야말로 우리의 상상력의 빈곤에 다름 아니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기독교인들의 반격은 크게 두 가지다.
그 중 하나는 빅벵이 바로 창세기에 표현된 현상과 유사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전능한 존재가 무에서 빅벵을 통해 우주를 창조하였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의 난점은 빅벵 자체가 아무 원인도 없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전혀 부정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조금 고급형태의 반론은 원인을 무한하게 소급해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며 결국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자체 속에 지니는 존재’에 도달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자존자가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의 문제점은 원인소급에 있어서의 무한성을 부정할 만한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만약 ‘스스로 있는 자’라고 주장하는 야훼가 실존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이는 사실 야훼를 창조한 존재가 그로 하여금 그렇게 착각하도록 창조하였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 자연법칙을 제정하고 부여하는 자는 존재하는가?

자연법칙들의 존재는 결국 법칙 부여자를 함축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이러한 생각들은 자연법칙과 인간의 법칙을 혼동한 데서 기인한다. 인간의 법칙은 여러분에게 어떤 식으로 행동할 것을 지시하는 명령으로서, 여러분은 그대로 행동할 수도 있고 따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자연법칙은 사물들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기술하는 것으로서 사물의 실제 움직임을 기술하는데 지나지 않으므로 사물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움직이도록 명령하는 자가 반드시 있다고 말할 순 없다. 왜냐하면 그런 존재가 있다고 가정하는 순간 곧 다음의 의문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그러한 자연법칙들만 만들고 다른 법칙들은 만들지 않았는가?’ 만약에 이것이 하나님 자신의 기분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일 뿐 다른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결국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뜻이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법칙의 일관성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만일 상당수 정통신학자들이 주장하듯, 하나님은 모든 법칙을 만듦에 있어 다른 법칙이 아닌 바로 그것들을 만들게 된 이유 - 물론 최선의 우주를 창조하는 것이 그 이유였다고 하겠지만 실상을 보라면 그런 것 같지도 않다 - 가 있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이 만든 법칙들에는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면, 하나님 자신도 어떤 법칙에 따랐다는 얘기가 되므로 하나님을 중재자로 끌어들여 봤자 아무런 유리할 것도 없게 된다. 결국 법칙은 신성한 칙령 외부에 그리고 그 이전에 존재한다는 얘기가 되므로 하나님은 별 소용이 없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최종적인 법칙 부여자가 아닌 셈이니까. 한마디로, 자연법칙에 관한 이러한 이론들은 더 이상 과거와 같은 힘을 지니지 못한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자연법칙과는 진짜로 상관없는 이야기 하나...

하나님이 힘들여 세상을 창조하시고 드디어 휴식을 취하고 계시는데, 한 무리의 사물들이 하나님 앞으로 왔다. 빛이 말했다.
“하나님. 앞으로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는 모든 것의 기준이 될 것이니 항상 일정하게 움직여라. 너의 앞길에 장애물이 없는 한 시간과 공간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일이 있더라도 너는 불변이니라.”
풀과 나무들이 이구동성으로 같은 질문을 했다.
“너희들은 빛을 받아서 몸에 영양분을 축적하여 동물들을 번성케 하는 기초가 되어라.”
그러자 몇몇 풀이 말했다.
“저희는 번식력이 약한데 동물들이 먹어대면 금방 멸종할 것입니다. 어떡하면 좋습니까?”
“동물들이 너희를 먹지 못하도록 독을 만들어도 좋다.”
고양이를 비롯한 네발로 걷는 동물들이 물었다.
“명령하신 대로 번성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후배위로 거시기 하거라.”
뱀이 물었다.
“저희는 디딜 뒷다리도 암컷의 몸을 잡을 앞다리도 없어서 뒷치기가 불가능합니다.”
“그럼 서로 몸을 비비꼬면 될 것 아니냐.”
고래들이 물었다.
“저희들은 짐승들처럼 다리도 없고 또 뱀처럼 몸이 유연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는 자유형을, 하나는 배영을 하면 될 것 아니냐. 둘이 측와위로 해도 될 것이니라.”

계속되는 질문에 하나님은 짜증이 나셨다. 유인원들의 차례가 오자 더 이상 참기 힘들게 된 하나님께서 버럭 소리를 지르셨다.
“새끼치기는 니들 맘대로 해라!”
결국 인간을 비롯하여 앞발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동물들은 다양한 체위를 즐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축복 속에 정해주신 것이 아니라 귀찮아서 하신 명령이다 보니 이 이야기를 듣고 음란하다고 여기고 주저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은 대체로 선교사 자세를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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