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란드러셀의 글 모음입니다. (몰러님이 정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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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어록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4
몰러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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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7 19:53
○ 예수님 말씀 중 기독교인에게 인기가 없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예수의 가르침이 있는데, 내가 볼 땐 아주 많은 것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부 우리의 기독교인 친구들 사이에선 크게 인기 있는 것 같지가 않다. 바로, ‘네가 완벽해지고자 한다면 가서 네가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어라.’는 말씀이다. 이것은 대단히 뛰어난 가르침이지만 말한 바와 같이, 그다지 실천되고 있지 못하다. 이 모든 좋은 말씀들은 다 좋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살면서 행하기는 다소 어렵다. 당장 나부터도 그 말씀들에 따라 산다고 공언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결국 다 그렇다 해도 기독교인은 경우가 한참 다르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기독교인들이 선행에 대한 논의를 할 때 다음과 같은 말을 곧잘 하고는 한다. ‘당신은 이웃을 위하여 어떤 일을 했는가? 당신은 사랑으로 표현될 일들을 얼마나 했는가? 그러면서 남을 험담할 자격이 있는가?’
반기독교인들은 선행을 하겠다고 천명한 적이 별로 없으며, 오히려 기독교인보다 자신의 선행을 숨기는 경향이 짙다. 반대로 기독교인들은 공공연하게 선행을 해야한다고 주장해 왔으며, 자신의 행동을 적극적으로 표시하려 든다. 이것은 자신의 허영심과 자신이 속한 종교를 선전하려는 욕구를 동시에 충족시킨다.
○ 예수의 도덕적 결함
내가 볼 때 예수의 성격에는 대단히 중대한 결함이 한가지 있는데 그것은 즉, 그가 지옥을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나는 누구든 진정으로 깊은 자비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영원한 형벌 따위를 믿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복음서에 그려진 대로라면 예수는 분명히 영원한 형벌을 믿었으며, 자신의 설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보복적인 분노를 터뜨리는 대목이 수차례 발견된다. 이러한 태도는 평범한 설교자들에게서는 보기 드문 것도 아니지만 훌륭한 존재가 그런다는 것은 어쩐지 품위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를테면 소크라테스에게서는 그러한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다. 그는 자기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매우 부드럽고 점잖았음을 보게 되는데 내 생각에도 격분하는 것보다는 그 쪽이 훨씬 더 성자다운 태도가 아닐까 싶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나는 공의를 위해서 상벌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것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기독교의 교의가 말하는 상벌의 기준은 너무나 저급한데다가, 더 큰 문제는 형벌이 영원성을 띤다는데 있다. 형벌이 영원하지 않으면 공의가 세워지지 않을 것이라고 상상하는 인간들에게서는 어떠한 자비나 긍휼도 찾아볼 수 없으며 잔인함만 남아있을 뿐이다.
○ 기독교의 잔인성이 발현되는 때
사람들은 정서적 이유 때문에 종교를 받아들이고 있다. 종교는 사람을 덕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에 종교를 공격하는 것은 나쁜 짓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나도 그런 얘길 듣는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기독교에 매달리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사악해질 것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엔 기독교에 매달려온 사람들이 대부분 극악했다. 여러분은 이 기묘한 사실, 즉 어떤 시대든 종교가 극렬할수록, 독단적인 믿음이 깊을수록, 잔인성도 더 커졌고 사태도 더 악화되었다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누구나 기독교를 철저히 믿었던 소위 신앙의 시대에는 고문기구를 갖춘 종교재판소가 존재했으며, 수백만의 불운한 여인들이 마녀로 몰려 불태워졌다. 종교의 이름으로 온갖 종류의 잔인한 폭력이 온갖 부류의 사람들에게 가해졌던 것이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기독교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종교가 꿈꾸는 세상은 그 종교가 주도권을 쥐고 있는 세상이다. 그것이 현세이든 내세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것은 양식 있는 사람을 공포나 혐오에 빠지게 만든다. 불은 분명히 뜨겁고 무섭기 때문이다.
○ 진솔하게 세계를 마주 대해야 할 이유
신에 대한 모든 관념은 동양의 고대적 전제주의에서 나왔다. 이는 자유인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하는 개념인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며 끔찍한 죄인이니 뭐니 떠들어대는 얘기를 듣고 있노라면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 저럴 수 있을까 경멸감마저 든다. 우리는 굳건히 서서 이 세계를 진솔하게 직시해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해 세상을 최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바라던 만큼 되지 않을지라도 적어도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온 세상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좋은 세상을 위해서는 지식과 온정과 용기가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 혹은 오래 전에 무식한 사람들이 뱉어 놓은 말들로 자유로운 지성에 족쇄를 채우는 짓 따위는 전혀 필요하지 않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교회가 원하는 것은 복종이지 발전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나는 기독교적 두려움이 구축해 놓은 끔찍한 세상에서 내 자손들이 살아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보다 훨씬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할 의무가 있다. 기독교적 교의를 보았을 때 이러한 의무 이행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말밖에 없으며, 이 사랑은 기독교를 배제하고서도 얼마든지 행하고 또 느낄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