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트란드러셀의 글 모음입니다. (몰러님이 정리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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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어록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7
몰러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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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0.27 19:56
○ 자유의지론이 유효한 경우
형이상학적 문제로서의 자유의지를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분명한 것은 실제에 있어서는 아무도 그것을 믿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성격은 훈련이 가능한 것이라고 사람들은 늘 믿어왔다. 알콜이나 아편이 행동에 영향을 준다고 모두들 알고 있다. 의지력만 있으면 술에 취하지 않을 수 있다고 자유의지를 믿는 사람은 주장한다. 그러나 술 취한 사람이 ‘영국 헌법’을 정신이 말짱할 때처럼 똑똑하게 말할 수 있을 때, 그는 그렇게 주장하지 못한다.
아이를 착하게 하는 데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설교보다도 적절한 음식이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아이들을 다루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자유의지론이 실천적으로 효력을 발휘하는 한 가지 경우는, 사람들이 이러한 상식적 지식을 끝까지 쫓아가 합리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방해할 때이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괴롭히는 행동을 할 때 우리는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의 성가신 행동은 선행된 원인들에서 나온 결과라는 사실과 직면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나 실제로 그러한 원인들을 깊이 파고 들어가 보면 그가 태어난 시점 이전까지 올라가게 되며 따라서 아무리 상상력을 펼쳐보아도 그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없는 사건들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종교는 문명에 공헌하였는가? 중에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것은 그의 자유의지의 결과이다. 하지만 하와가 꼬셨다.
하와가 그렇게 낭패스런 짓을 한 것은 그녀의 자유의지가 뱀에게 사기 당했기 때문이다.
그럼, 뱀이 그런 짓을 한 원인은? 뱀의 자유의지가 그런 짓을 하게끔 한 원인에 대해 성경은 아무런 단서도 주지 않는다.
이상과 같은 논의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아는 기독교인은 얼마나 될까?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복종의 의무만 주었을 뿐 왜 먹지 말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지 않은 창조주에게 잘못이 없을까?
사리판단능력과 판단의 단서 및 제한사항을 제대로 주지도 않고 그 결과만 가지고 처벌하려는 신은 과연 공의로운가?
게다가 궁극적으로는 창조주에게 모든 원인이 있는데 말이다.
○ 신이 지구인에게만 관심이 있다는 것은 자위적 가정이다
종교가 호소력을 발휘하는 대상은 공포감 외에도 몇 가지가 더 있다. 종교는 특히 우리 인간의 자존심에 대고 호소한다. 만일 기독교가 진리라면 인류는 보기보다 그렇게 가엾은 벌레들은 아닌 셈이다. 인류는 우주 창조주의 관심의 대상으로서, 행동을 잘 하면 창조주가 수고스럽게도 기뻐해 주시고 잘못 하면 불쾌해 하시니까 이것은 대단한 우대이다.
우리 같았으면, 개미들 중에 어떤 놈이 자기 의무를 다 하는가 가려내려고 개미집을 연구해 볼 생각은 하지도 못 할 것이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이렇게 해주시는 거라면 우리를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는 뜻이며 더욱이 우리들 중에 착한 자에게 천국에서의 영원한 행복을 상으로 하사한다는 것은 훨씬 더한 우대이다. 다음으로, 우주의 모든 전개는 소위 선이라는 결과, 다시 말해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결과를 가져오기 위해 계획된 것이라고 하는 비교적 현대적인 관념이 있다. 이 관념 역시도 우주는 취미와 편견을 같이 하는 존재에 의해 조종되고 있다고 보는 자위적 가정이다. [종교는 문명에 공헌하였는가? 중에서]
화성인은 비둘기를 평화의 상징이 아니라 위협으로 간주했으며(Mars Attack), 갑주를 가진 괴물은 인간을 먹이 또는 유충이 잠시 머물 숙주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Alien). 또한 우주메뚜기들은 지구를 단지 한번쯤 휩쓸 만한 자원채굴지 이상으로 보지 않았으며(Independence Day), 도마뱀들에게 인류는 창조주가 선택한 고귀한 존재가 아니라 단지 노예이자 먹거리일 뿐이었다(V).
에일리언에 나온 괴물을 제외하면, 이들 외계인을 격퇴한 것은 하나님의 섭리도 아니요, 인류가 가진 불굴의 투지와 과학적 능력 덕분도 아니며, 단지 운이 좋았을 뿐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영화가 아닌 실제 상황에서는 현재 인류가 가진 능력으로는 별다른 저항도 못해 보고 무기력하게 당할 뿐이라는 비관적인 예상만 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나먼 곳에서 지구에 올 수 있는 것만으로도 외계인들의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종교는 인간들끼리만 어느 정도 유효할 뿐이며, ET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기 싫은 사람들은, 창조주께서 아직까지는 지구인에게 적대적인 외계인들이 지구침략을 하지 못하게 해 놓았을 것이라는 기대에 머물 수 있도록 해주신 것에 감사해야 할 것이다.
○ 지식의 위험함
교회의 정의 관념은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면에서 바람직하지 못한데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지성과 과학을 경시하는 태도이다. 교회의 이 같은 결함은 복음서들에서 물려받은 것이다. 예수는 우리에게 어린 아이들처럼 되라고 말하지만, 아이들은 미분이니 통화원칙이니 현대적 질병 퇴치법이니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교회에 따르면 우리의 임무는 이런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니다. 요즘은 교회도 지식 자체를 죄악시하진 않지만 과거 전성시대에는 그랬다. 그러나 지식의 획득을 죄악시하진 않아도 위험스러운 것으로 보는 건 여전하다. 지식을 갖게 되면 지성의 교만으로 이어지고 따라서 기독교 교리에 의문을 품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두 사람이 있다고 해보자. 한 사람은 열대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열병 퇴치에 애쓰는 사람인데 그렇게 고생하는 동안에 어쩌다가 몇 명의 여자들과 관계를 맺었으나 결혼은 하지 않았다. 또 한 사람은 게으르고 무능한데도 아내가 지쳐 죽을 때까지 해마다 애를 낳았으며 아이들을 통 돌보지 않아 그 가운데 절반을, 예방만 했으면 무사했을 사고로 죽게 만들긴 했지만 부정한 관계를 맺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착한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이들 가운데 두 번째 사람이 첫 번째 사람보다 더 도덕적이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말할 것도 없이 미신적이고 전적으로 이성에 반하는 태도이다. 그러나 죄를 피하는 것이 명백한 장점보다 중요시되고, 유익한 생활이 되도록 도와주는 지식의 중요성이 인정받지 못하는 한, 이러한 태도는 불가피한 것이다. [종교는 문명에 공헌하였는가? 중에서]
기독교인들은 두 번째 사람이 나태의 죄, 자식양육의 의무를 게을리한 죄로 정죄될 것이니 하늘의 공의는 훼손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이는 첫 번째 사람과의 비교평가는 무시하고 절대평가만 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기독교인들은 이런 경우에 대하여 아무런 평가를 내릴 수가 없는 셈이다. 어쨌든 몰러가 보기에 기독교인들은 분명히 십계명의 간음죄를 나태의 죄 보다는 더 크다고 여기고 있음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