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아적 그리스도교의 견해는 아리스토텔레스와는 상당히 다른 덕의 개념을 요구한다. 그리스도교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덕이라고 생각했던 자존심을 인정하지 않으며, 그가 악이라고 생각했던 겸손을 칭송한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다른 어떤 것보다 높이 평가했던 지성의 덕은 - 가난한 사람과 비천한 사람들도 보통 사람들과 같이 덕을 지닐 수 있도록 - 덕의 목록에서 완전히 추방되어야만 했다. 교황 그레고리 대제는 주교가 문법을 가르치는 것을 비난했다.
종교에 있어서, 특히 그것이 독단에 흐른 것일 경우 지식과 지성은 독약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의 도그마가 일관되게 추구해 온 것은 우민화이다. 심지어 신과 구원에 대한 것까지도 말이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신과 구원을 가장 잘 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
○ 천국행과 지옥행도 결정하는 사제들
사제들은 기적적인 능력으로, 누군가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거나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인가에 대하여 결정할 수 있었다. 만일 누군가가 파문을 당하고 죽으면 지옥에 가지만, 사제들이 필요한 의식을 다 행한 후에 죽은 사람은, 그가 올바로 회개하고 고백하였다는 전제하에, 궁극적으로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천국에 가기 전에 한동안 - 아마 상당한 기간 동안을 연옥의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사제들은 그 영혼을 위해 미사를 올려서, 이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사제들은 대중들 에게 스스로의 영혼을 위해 기꺼이 적절한 돈을 내겠다면 이 시간을 줄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면죄부는 미사가 귀찮아진 사제들이 만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법정이 사소한 사건에 대해 적용하는 약식기소처럼 면죄부는 시간과 경비를 획기적으로 줄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해 주었다. 몰러는 루터가 교리에 따라 면죄부를 반박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도 공인된 사제였었으며, 신을 대신하여 대중들의 죄를 사해 주어야 할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제서품을 반납하거나 스스로 취소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