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퀴나스에게서는 참된 철학 정신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플라톤이 보여주는 소크라테스의 경우처럼 어떤 결론에 도달하게 되거나, 논리가 이끌어 가는대로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탐구의 결과를 미리 알 수 없는 그런 탐구에 종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철학적으로 탐구하기 전에 미리 진리를 알고 있는 것이다. 그 진리는 이미 가톨릭 신앙에 분명히 밝혀져 있다. 그가 만일 신앙의 어느 부분에서나 외견상 합리적인 논리를 발견할 수 있으면, 그것은 더욱 바람직한 일이며, 그런 논리를 발견하지 못하면, 그는 계시로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미리 주어진 어떤 결론을 위해 이론을 찾아내는 것은 철학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아전인수론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므로 나는 그를 그리스 시대나 현대의 최고의 철학자들 중 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을 옳다고 보지 않는다.
원래 기독교는 철학과는 거리가 먼 종교이다. 기독교는 자신을 부정하면 자기모순이 되는 존재, 즉 필연적으로 실재하여야 하는 존재를 입증하기 위하여 철학적 방법을 빌린 것일 뿐이며, 이제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철학을 다시금 맹공하고 있다. ‘철학이란 신학과 과학 사이에 있는 무인도인데 양쪽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 무지의 네 가지 원인
로저 베이컨의 견해와 방법을 대충 살펴보기 위해 대작품(Opus Majus)의 몇몇 대목을 요약해 보자. 무지에는 네 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약하고 부당한 권위에 호소하는 것(교황을 위한 저술이었기 때문에 교회는 제외된다고 부언하였다), 둘째로 관습의 부적절한 영향, 셋째 무식한 군중의 여론, 넷째는 단순히 무지를 은폐하기 위하여 지혜를 열거하는 일... 이 네 가지 폐단 중에서 나중의 폐단이 가장 좋지 못한 것으로 악의 근원이 된다. (하략)
이 주장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신선하게 들린다. 기독교인들에게 한 가지 건의한다. 위 주장을 자신이 다니는 교회의 성직자에게 제시해 보라. 물론 곤란한 일을 겪지 않으려면, 베이컨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는 제외된다는 단서를 달고서 말이다. 별로 달라진 점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성직자들은 당신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일부 성직자의 경우 예전보다 더 신중하게 설교를 하고 있음을 당신은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