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히테는 교육은 자유의지를 파괴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학생들은 학교를 떠난 후 전생애를 통해서 교사들이 원했던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이외의 일은 할 수 없어야 한다. 그러나 피히테 당시에는 이러한 생각은 실현불가능한 이상이었다. 그가 최선의 제도로 생각했던 것이 칼 마르크스에 의해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독재정치가 행해지는 곳에서는 그런 실패가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의 규칙적인 식사 배급, 의식의 주입, 강제적 명령 등이 결합되면 권위는 바람직한 것이라는 식의 성격과 믿음이 형성될 것이다. 따라서 권력에 대한 진지한 비판은 심리적으로 불가능한 것이 될 것이다. 심지어는 모든 사람이 비참한 경우에도 국가가 그들은 지금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면 그렇게 믿게 될 것이다.
지성인들은 소위 모태신앙을 자랑하는 기독교인들에게서 똑같은 현상을 목격한다. 하지만 기독교인들이 공산주의 독재국가에서 행해졌던 것과 똑같은 방식의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모방한 것이기 때문이다.
○ 이기심에 의한 제국주의적 지배
산업이 기계화된 이후 면제품은 인도와 아프리카에서만 시장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영국 제국주의에 하나의 충격이었다. 따라서 아프리카인들은 벌거벗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가르쳐져야 했으며 이 일은 선교사들에 의해 쉽게 이루어졌다. 우리는 면제품에 덧붙여서 결핵과 매독도 수출 했지만 그것에 관해서는 아무 시비도 없었다.
더 이상 종교가 제국주의의 첨병노릇을 하는 것을 방치해서는 아니 된다.
○ 신을 난처하게 만드는 일
인간과 원숭이 사이에 분명한 경계가 없다는 것은 신학을 몹시 난처하게 하는 문제이다. 인간은 언제 영혼을 갖게 되는가? 진화의 과정에서 원숭이와 인간 사이에 존재한다고 가정되는 잃어버린 고리는 죄를 범할 능력이 있는지, 따라서 지옥에 갈 수 있는지... 직립 인간은 도덕적 책임이 있는가? 베이징 원인은 죄를 범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