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어록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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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셀 어록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3

몰러 0 5,334 2002.10.27 19:53
○ 만물과 세상사가 다 목적이 있어서 그렇게 되는 것일까?

여러분도 다 아는 얘기겠지만, 세상만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꼭 맞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이 상태에서 조금만 달라진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목적론이다. 이것은 때로 기묘한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토끼의 꼬리가 흰 것은 총 소기에 좋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는 주장도 있다. 목적론을 응용한 이 같은 해석을 토끼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의심스럽다. 패러디하기 딱 좋은 이론이다. ‘코는 안경 쓰기에 알맞도록 만들어졌음에 분명하다’고 하는 볼테르의 말도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런 류의 패러디는 18세기에는 엉뚱하게 들렸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다윈 이후로 우리는 생물이 각자의 주위 환경에 적합하게 된 이유에 대해 보다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즉, 환경이 생물에 맞추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생물이 환경에 맞추어 변해왔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적응의 기본 원리이다. 거기에 목적의 증거 따위는 전혀 없다.
이 목적론을 살펴보노라면, 온갖 결함들을 지닌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 세계를 전지전능한 하나님이 수백만 년에 걸쳐 만들어놓은 최선의 것이라고 믿을 수 있는지가 놀라울 따름이다. 나는 정말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생각해 보라. 만일 여러분에게 전지전능과 수백만 년의 세월을 주면서 세상을 완성시켜 보라고 했다면 고작 공포의 KKK단이나 파시스트 같은 것밖에 만들 수 없을까?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여기에도 기독교인들의 반격이 있다. 나쁜 일들은 모두 불순종의 결과이거나 악마가 한 짓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의 주장대로 하나님이 전지전능하고 자비와 절대선 그 자체라면 뭔가 이상하다. 우선 멸종한 동물들은 도대체 무엇인가? 이 중에는 분명히 인간의 간섭 없이도 멸종한 것이 있다. 이것들이 도대체 하나님께 어떤 반항을 했는가? 동물은 자유의지가 없다면서?
또한 악마의 짓이라는 것도 뭔가 이상하다. 악마가 세상을 결함 투성이로 만들고 있을때 하나님은 과연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 권위를 잃고 악마가 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럼 욥을 시험하는 것처럼 자신의 권능을 입증하기 위해 악마와 내기를 하신 것인가? 이는, 허영심은 악마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라는데, 하나님도 허영심에 빠지셨다는 증거밖에 되지 않는다.




○ 옳고 그름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기존의 신존재증명 이론을 폐기하였지만 새로운 도덕적 논변을 창안했고, 그 이론은 다양하게 형태를 바꿔가며 19세기 내내 큰 호응을 받았다. 그의 도덕적 논변에는 온갖 종류의 형태가 있는데 그 중 하나에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옳고 그름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옳고 그름 사이에 실제로 차이가 있든 없든 나로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나의 관심사는, 옳고 그름에 차이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럼 그 차이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만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생기는 거라면 하나님 자신에게는 옳고 그름이 아무 차이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 자신에게는 선이라는 말 자체가 벌써 아무 뜻 없는 말이 되고 만다. 만일 여러분들이 신학자들처럼 하나님은 선하다고 말하려면, 옳고 그름은 하나님의 명령과는 무관하게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이 옳고 그름을 만들었다는 자명한 사실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명령은 선이며 악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그렇게 말할 수 있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은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생겨난 것이 아니라 그 본질에 있어 논리적으로 하나님에 앞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각자의 기호에 따라 보다 우월한 신이 있어 이 세계를 만든 하나님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라 해도 좋고, 우리가 알고 있는 이 세계는 사실 신이 보이지 않는 틈을 타 악마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보는 일부 그노시스트들의 노선을 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가 대단히 그럴싸한 견해라고 종종 생각해보긴 했지만 거기에 대해선 할 말들이 많을 것이고 나는 이것을 논박하는데 별 관심이 없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이 신성을 위한 도덕론은 기독교 신자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이론이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부류들은 이해하겠지만, 나쁜 것들, 즉 악, 불의, 악마 따위를 하나님이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드는 이들에게는 수수께끼일 따름이다. 나쁜 것은 스스로 생긴 것, 또는 악마의 짓이라고 한다면 곧바로 하나님은 선하지 않거나 전지전능하지 않은 존재가 된다. 따라서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전제가 없이는 신성도덕론과 그 반론을 이해할 수 없다.



○ 세상의 불의는 누가 만들었는가?

도덕론의 아주 기이한 형태가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존재는 이 세상에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이 한편에는 너무도 큰 불의가 존재한다. 그리고 선한 자들이 고통받는 일도 많고 악한 자들이 융성하는 일도 많아서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괴로운 일인지조차 분간이 안 될 때가 많다. 그러므로 우주 전체에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기 위해서는 이 지구상 삶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주는 내세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긴 안목에서 결국 정의가 존재하기 위해 하나님은 있어야 하며 천국과 지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참으로 이상한 논리다. 만일 여러분이 이 문제를 과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결국 나는 이 세상 밖에 모른다. 우주의 다른 부분들에 대해선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확률에만 입각해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이 세상이 우주 전체의 평균적 표본일 것이고 그러니 여기에 불의가 존재한다면 다른 곳들에도 역시 불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여러분이 오렌지 상자를 하나 받아서 열어보았다고 가정해보자. 맨 윗줄 오렌지들이 모조리 상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여러분은 ‘그 밑의 것들은 분명히 싱싱할 것이다. 그래야 불균형이 바로잡히니까.’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상자 전체를 상한 것들로만 채워 보냈겠군.’이라고 말할 것인데, 과학적인 사람이 우주에 대해 주장할 수 있는 것도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엄청난 불의를 본다. 그렇다고 한다면 정의가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 따라서 그러한 사실에 근거하는 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도덕론이 아닌 부인하는 도덕론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정말로 사람들을 움직여 하나님을 믿도록 만드는 것은 지적 이론 따위가 아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대부분 어릴 때부터 그래야 한다고 배워왔기 때문이며 바로 그것이 주된 이유다.
그럼 그 다음으로 강력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것이 안전에 대한 갈망, 즉 나를 돌봐줄 큰 형님이 계시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한 갈망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고 싶어지게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요인이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중에서]

기독교의 인식론은 항상 인간적인 것을 부정적으로, 악한 것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하나님의 완벽한 섭리로 창조되었다고 주장한다. 기독교인들에게 세상의 불의는 모두 인간이 교만하고 타락한 탓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인간이 세웠다는 불의를 타파할 생각은 않고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비겁함만 보인다. 천국이 그렇게 해서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이 세상의 불의는 절대로 치유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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