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어록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13

러셀 어록 -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13

몰러 0 5,610 2002.10.27 20:01
○ 도덕의 종교 의존성은 낮다

나치와 공산주의자는 기독교를 추방하면서 개탄할만한 일들을 저질렀다. 히틀러와 소비에트 정부에 의한 기독교 배척은 적어도 우리의 고민의 부분적인 원인이며 따라서 세계가 기독교 신앙으로 되돌아가면 우리 국제사회의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결론 내리기 쉽다. 나는 이것을 공포에서 생겨난 철저한 망상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위험스러운 망상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렇지 않았더라면 훌륭하게 열매맺을 수 있는 사고를 갖춘 사람들을 오도하여, 터무니없는 해결책을 취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비단 현상태의 세계에만 관계된 것은 아니다. 훨씬 더 보편적인 문제로서 여러 세기를 두고 논란이 되어온 문제이다. 이것은, 만일 사회가 독단적인 종교의 도움을 받지 못한다면 과연 적으나마 충분한 도덕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나 개인적으로는, 도덕의 종교 의존성이 종교인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렇게 높다고 보지 않는다. 심지어, 일부 대단히 중요한 덕목들은 종교 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들보다 그것을 거부하는 사람들 속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고까지 생각한다. [종교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중에서]

20세기 초중반에 미국에서 기독교 근본주의가 발호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이 현상은 베트남전까지 계속되었다. 베트남전은 미국의 도덕에 큰 타격을 준 전쟁이었다. 단순히 패배의 아픔 때문만이 아니라 모든 가치관이 뒤흔들렸던 것이다. 그런데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베트남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듯 보인다. 뚜렷한 적이 있어야만 자신을 다독거릴 수 있다던가?



○ 범죄는 성경이 아니더라도 제재할 수 있다

설사 경찰이 실패한다 해도 하나님이 계시니 도둑을 벌해줄 것이라는 얘기를 사람들이 믿을 수 있게만 된다면 그 믿음만으로도 정직성이 높아질 수 있을 것 같다.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하나님이 도둑질을 금하셨음을 기꺼이 믿을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의 종교의 유용성은, 도둑이 왕인데 그 왕이 지상의 정의 위에 군림한다는 내용의 나보드의 포도원 이야기에 잘 나타나 있다.

과거의 반문명화된 사회들에서는 이와 같은 사고방식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품행을 증대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은 부인하지 않겠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도덕의 기원을 종교로 돌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너무도 심각한 악폐들과 단단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이 악폐와 비교하면 이익이 무의미해질 정도다. 문명이 발달됨에 따라 세속적 강제력은 보다 확고해지고 하나님의 강제력은 보다 줄어든다. 사람들이 도둑질을 하면 붙잡힌다고 생각할 근거는 더욱 많아지고, 붙잡히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처벌하실 거라고 생각할 근거는 점점 더 줄어든다. 오늘날에는 극히 종교적인 사람들조차도, 도둑질을 하면 지옥에 간다고 믿는 경우가 거의 없다. 때맞춰 참회하면 된다고, 어쨌거나 지옥이란 것은 그다지 확실하지도 않을뿐더러 옛날처럼 그렇게 뜨거운 곳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명사회의 사람들은 대부분 도둑질을 하지 않는데 아마도 당장 여기 지상에서 처벌될 가능성이 보다 높아졌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종교는 우리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가? 중에서]

이런 경향은 성직자를 비롯한 종교인들의 타락이 더욱 부추긴다. 선량한 기독교인들이, 타락한 자들은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오해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사실 선량한 이들에게는 종교적 권력이나 권위가 전혀 없고 타락한 자들에게 있다는 것에 비추어 이는 변명에 지나지 않게 된다. 1000명의 신도가 세운 도덕과 경건함은 성직자 한 사람의 타락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그리고 이 타락에도 성경적인 근거와 합목적성이 있기 때문에 선량한 기독교인들은 항의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다.
또 ‘진정한 가르침’에 무슨 기준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소련을 예로 들어보자. 소련은 진정한 마르크스 주의의 나라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슬라브족은 게르만인보다 열등하다고 했는데, 볼세비키들이 이것을 받아들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극에 치달을수록 공산화되기 쉽다고 했는데, 정작 공산화는 가난한 농업국부터 시작되었다.
진정한 가르침을 따르지 않기는, 또한 가르침대로 되지 않기는 기독교가 더하다. 역사에서 600여 가지의 율법 모두를 제대로 지키는 이가 있었던가? 어떤 것은 폐기하고, 어떤 것은 수정하고, 어떤 것은 고수하는 이유를 여러가지로 설명하려 들지만 냉정하게 보면 어느 한가지도 보편적인 기준이 없다. 편함과 귀찮음 말고는 말이다. 결국 성경의 율법이 사람을 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 않으면 당장의 보복은 아니더라도 결국은 자신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되는 것들만이 금기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금기가 도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것이고 선한 것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자, 이래도 기독교를 진정한 도덕의 수호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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