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셀 어록(불가지론이란 무엇인가 中에서)
몰러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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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8.25 20:41
○ 신의 능력
나는 인류의 상당수가 신을 믿지 않으면서도 눈에 보이는 벌을 받지 않는 것을 보았다.
내 생각으로는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공격에 대해
그렇게 쉽지 않은 여유와 허영을 보일 것 같지는 않다.
기독교인들은 악한 자가 벌받지 않는 이유에 대해 심판 이후에 지옥이 준비되어 있다고 답한다.
그리고 선한 자가 고통을 당하는 것에 대해서는 심판 이후에 천국이 보장되어 있다고 답한다.
악한 자가 현세에 벌받은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한다.
선한 자가 복락을 누리면 당연하다고 한다.
그럼, 선한 자가 고통을 당하거나 반대로 복을 누리는 삶을 사는 것, 그리고 악한 자가 복을 누리고 살거나 벌을 받는 것...
이러한 사례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혹은 적용과 진행의 기준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신에게는 상과 벌에 대한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는게 아닌가?
기독교인들에게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다.
고통받는 선한 자는 시험으로써 믿음을 공고히 하기 위함이요,
복을 누리는 선한 자는 이미 시험에 통과한 것이요,
복을 누리는 악한 자는 다른 선한 자를 시험하기 위한 도구요,
벌을 받고 있는 악한 자는 이미 죄가 수위를 넘었음이라....
이 궤변들은 고통의 정도와 복락의 정도, 그리고 적용되는 시기를 살펴보면 전혀 의미가 없다.
○ 지옥을 인정하는 인간들
불가지론자들은 기독교 신자들보다 선한 것과 악한 것에 대해 별로 확신하지 못한다.
그들은 기독교 신자들과는 달리 옛날에 신학상의 난해한 문제에 관해 교회 당국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은 비참한 죽음을 당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박해에 반대하며 도덕적 비난에 상당히 신중하다.
‘죄’에 관해서, 그들은 그것이 유용한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도 어떤 종류의 행위는 바람직하고
또 어떤 종류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불가지론자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종류의 행위에 대한 처벌은
그것이 예방적이거나 계도적인 경우에는 추천할 만한 것이지만, 악한 사람은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괴로움을 주는 경우라면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악한 사람은 고통을 받아야 된다는 이러한 믿음이
바로 인간으로 하여금 지옥을 인정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이 ‘죄’라는 개념이 지닌 좋지 못한 부분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자신에게 고통을 준 사람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싶어한다.
러셀과 달리 보통 사람들은 감정적인 이유에서 이렇게 생각하곤 한다.
기독교인들이 산상수훈을 주장하지만 않는다면 이러한 감정적인 반응에 대해 아무도 시비 걸지 못할 것이다.
○ 매 순간 폭발하는 아름다움과 조화
나는 자연에서 ‘아름다움’과 ‘조화’가 발견되리라는 가정을 이해할 수 없다.
자연계에서 동물들은 무자비하게 서로를 잡아먹는다.
그들 대부분은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거나 혹은 굶주림으로 서서히 죽어간다.
내 입장에서는 촌충에게서 어떤 대단한 아름다움이나 조화를 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이 창조물이 우리 죄에 대한 처벌로 보내진 것이라고 말하지는 말자.
왜냐하면 촌충은 인간보다 동물들 사이에 더 흔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아름다움’이나 ‘조화’가 의미하는 바를 별이 빛나는 하늘의 아름다운 것으로 가정해 보겠다.
그러나 우리는 무수한 별들이 매 순간 폭발하고 있으며 또 그 주변의 모든 것을 희미한 먼지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뉴턴은 어떤 알 수 없는 신이 만든 질서 속에서 조화롭게 움직이는 우주를 상상했다.
아울러 이러한 조화가 깨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주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를 알 수 있다고 상상했다.
언젠가는 그런 변화들을 모두 기술할 수 있는 시대가 오리라고 상상했다.
그리고 이 생각은 영원히 지켜질 것이라고 상상했다.
또 상상했다.
상상했다.
상상...
아퀴나스는 조화에서 적응과 일치를 보았고, 이 적응과 일치는 위대한 어느 지성의 선언이라고 선언했다.
몰러는 우연 중에서 가장 조화로운 것이 남았다고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