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기독교인들의 친일행각 |
김상용(金尙鎔, 1902~1951) 호 월파(月坡)
- 약력
1902년 경기도 연천 출생
1928년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1930년 서정시 <무상>, <그러나 거문고의 줄은 없고나>를 『동아일보』에 발표
- 작품 목록
1942.1.27 영혼의 정화 매일신보
1942.2.19 성업의 기초 완성 매일신보
1943.8.4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매일신보
아래는 김상용이 남긴 친일시
님의 부르심을 받들고서
물결 깨어지는 절벽 이마 위
가슴 헤치고 서서, 해천(海天) 행해 휘파람 부는 듯
오랜 구원 이룬 이날의 기쁨이여!
말 위에 칼을 들고 방가의 간성이 됨이
장부의 자랑이거늘, 이제 부름 받았으니
젊은이들아 너와 나의 더 큰 광명이 무어랴.
나아가는 너희들 대오에 지축이 울리고
복락의 피안으로 깃발은 날린다.
새 우짖고, 초목조차 환희를 속삭일 제
결의와 힘에 넘치는 너의 얼굴에
아침 태양은 더 정다이 미소하도다.
감벽의 대막 위에 점철한 섬과 섬
거기 10억 동포는 묶여 살았다.
그 사슬 끊이고, 해방의 노래 높은 날,
낙토 건설의 첫 개척을 우리 맡았도다.
명실 함께 1억 선진의 일원이 됨이여.
어서 저 잡초 베이고, 여기 꽃을 꽃을 심자......
충에 죽고 의에 살은 열사의 희원
피로 네 이름 저 창공에 새겨
그 꽃다움 천천만대에 전하여라.
흐미~~~~~~emoticon_008emoticon_008emoticon_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