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기독교인들의 친일행각 |
일제 말기의 여성 동원과 '군국(軍國)의 어머니'
이상경(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한국문학)
국문초록
여성과 민족 혹은 국가의 관계 문제는 그 구체적 상황 속에서 조망되어야 하며, 특히 일제 시대 여성 문제의 경우 식민지라는 조건 속에서 구명되어야 한다.
일제가 식민지에서 시행한 여성교육의 이념은 일본에서와 마찬가지로 '양처현모'였으나 일본의 경우 여성도 국민이라는 것으로부터 여성 참정권을 요구하거나 모성 보호를 요구하는 식으로 여성의 독자성을 추구해나갈 수 있었던 반면에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양처현모 교육은 탈정치화된 가족주의의 테두리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일본이 여성을 전쟁에 동원하려고 했을 때 이미 국가에 포섭되어 있던 일본 여성들은 적극 호응했고, 아들을 군인으로 나라(천황)에게 바친다는 생각도 국민의 어머니의 의무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반면 일본과 역사적 전통이 다를 뿐 아니라 식민지 지배를 받으며 공적 영역에 참여할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했던 조선 여성들은 전쟁 참여와 자식 희생에 매우 부정적이었다.
일제는 일본 여성들을 본받자는 운동을 전개하고 각종 선전물들을 쏟아 내었다. 식민지 조선에서 교육과 문필에 종사하던 일부 여성들은 이러한 전쟁 동원에 협력했다. 특히 당시 모성의 자리로 회귀하는 여성, 절대적인 존재에 자신을 던지는 여성상을 그리던 작가 최정희는 자식을 위해서 자신을 버리는 군국의 어머니를 그려내었다. 최정희에게서 여성 주체의식의 미약은 쉽게 식민주의와 전쟁에 협력하는 길을 밟게 했다. 그러나 최정희가 그린 군국의 어머니는 일제가 요구하는바 '황국신민'으로서의 자각을 가진 양처현모이기보다는 '삼종지도'를 지키며 자식의 결정을 따르는 어머니였다는 점에서 전쟁 협력의 경우에도 일본과 식민지 조선의 여성은 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식민지 여성의 '국가'에 대한 저항과 협력은 식민주의 본국에서의 여성의 저항과 협력과는 양상을 달리 하며, 식민지에서 여성적 자의식은 민족적 자의식과 배치되거나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를 상승시키거나 하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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