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망친 친일파 개독(54) - 최정희

일제하 기독교인들의 친일행각

한국을 망친 친일파 개독(54) - 최정희

※※※ 1 4,863 2005.03.18 01:15

지원병은 훌륭한 제국군인이 되기 위해서


작품과 친일활동이 꼭 일치하는 여류 최정희




최정희(崔貞熙, 1912~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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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단천 출생 숙명여고보를 거쳐 중앙보육학교를 졸업했다
1932년 『시대공론』 에 「명일(明雷)의 식대(食代)」 를 발표하고, 1933년 『형상』 (形象)에 「성좌」 를 발표했다본격적으로 친일문학활동을 시작한 것은 1935년 『조광』 에 「흉가」 를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이로부터 많은 친일작품을 썼는데, 1939년 5월 14일자 국민신보에 「어머니의 마음」 , 『대동아』 1942년 5월호에 「작가도목건작(作家島木健作)」 둥 일어 수필을 비롯, 매일신보 1942년 2월 21일자에「동아의 새 아침」 1941년 7월 IS일자에 「시국과 소하법(銷夏法)」 , 『대동아』 1942년 7월호에단핀소설 「장미의 집」 , 같은 해 『국민문학』 11월호에 「야국초」 (野菊沙), 『신시대』 1942년4월호에 「2월 IS일의 밤」 둥이 있다.

「야국초」 는 버림받은 여인이 그 전 남자에게 보내는 편지형식의 단편으로, 어린아들과 훈련소를 견학하면서 지원병 훈련생들의 '애국심'을 아들에게 전하는침략전쟁을 미화시키는 내용이다 「2월 IS일의 밤」 은 일제가 싱가포르를 공략한 날인 2월 IS일을상기하면서 아내의 애국반 활동을 반대하던 남편이 그날 싱가포르 공략의 첩보에 감격해서 아내의 시국활동을 승낙하는 시국소설이다.

친일단체에도 참여한 최정의는 1941년 12월 부민관 대강당에서 조선임전보국단 결전부인대회를 결성하고 「군국의 어머니」 라는 강연을 했다. 이 강연에서 "우리 1전5백만 여성이 한 맘 한 뜻으로총후봉공한다 하면 우리의 천추만대에 내려가면 대대손손이 황국신민으로서의 무한한 행복을 누릴것이다"라고 외쳤다.

이 밖에도 1940년 1월 조선문인협회 주최 평양대강연회에서 「자화상」 이란글을 낭독하는 둥 작품과 활동면에서 뒤지지 않는 친일행동을 하였다. 해방 후 서울시문화상, 여류문학상, 예술원문학부문 작품상 둥을 수상했다 다음은 최정희가 쓴 「야국초」 라는 소설이다.

 


야국초(野菊抄;들국화)

최정희

 잠자리가 어지러이 나는 가을의 일요일입니다. 지금 저희 두 사람은 논길을 걷고 있습니다.  한 사람이 누구일 거라고 당신은 생각하십니까? 
  당신의 아들입니다. 승일(勝一)이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이제 와서 자식 운운하니, 당신은 오죽이나 놀라셨겠읍니까?
 당신과 헤어진 지도 벌써 십이 년이나 되는데, 한번도 편지 같은 걸 드린 적이 없는 저이니까 당황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지금 저는 아이를 데리고 지원병 훈련소로 가는 길입니다. 매미가 나뭇가지에서 울고 있습니다. 요란스럽게 울고 있습니다. 하늘은 아름답게 파아랗습니다. 잠자리 날개까지도 파랗게 물들여질 듯합니다. 들국화도 많이 피어 있습니다.
  십이 년 전에, 당신과 둘이서 이렇게 논길을 걸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힘들지 않아?"하고, 당신은 제게 몇 번이고 물으셨습니다. 제가 "아니요"하고 고개를 저어 보여도, 당신은 저의 약한 다리가 걱정되셨던가 봅니다. 위태로운 외나무다리를 건널 땐 당신은 제 손을 잡아주셨습니다. 저 때문에 당신까지 떨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손을 놓으라고 몇 번이고 당신을 졸랐지만, 당신은 저를 위해서라면 강에 빠져도 괜찮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의 이 한 마디에 다리 위에서 위태로운 제 발걸음은 얼마나 평정을 되찾았는지 모릅니다. 당신께서 말씀하셨듯이, 설령 강으로 떨어져 익사한다 해도 당신과 함께라면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진심이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는다 해도 당신만 곁에 계셔주신다면, 당신만이 지켜주신다면, 저는 행복했었겠지요.
  하오나, 당신은 저로부터 떠나갔습니다. 저 혼자 내팽겨쳐둔 채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당신은 외나무다리를 건널 때 하셨던 말씀을 잊으셨겠지요? 당신의 명예를 위해서, 당신의 지위를 위해서, 무리도 아니지요. 이 세상에서 배웠다는 남자, 지위 있는 남자, 인격 있는 남자는 현명해서 항상 자신의 지위라든지 명예를 지키는 데에만 머리를 쓸 테니까요.
  그럴 정도로 자신의 지위나 명예에 마음을 쓰실 양이면, 당신은 어째서 좀더 빨리 제게서 떠나지 않으셨나요?
  당신께서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옥상이라고 부르는 부인이 싫어서, 부인도 자식도 다 친정으로 돌려보냈다고, 저는 그렇게 말씀하시는 당신의 말씀을 믿고 있었습니다.  믿지 않았다면 나중에 제가 그렇게까지 처참해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애초에 저는, 결혼해서 자식까지 둔 당신과의 결혼 같은 건 당치도 않다고 당신에게도 완강히 거절했고, 또한 스스로 체념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일까요? 당신에게서 전화가 걸려오면, 굳게 굳게 잠가둔 마음의 빗장이 다시금 열리고, 병원에서 퇴근하자마자 당신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당신께서도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연회(宴會)나 친구들 모임에는 저를 위해서 자주 사양하셨습니다. 둘이서는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델 자주 걸었지요. 때론 산을, 들판을, 피곤한 줄도 모르고 돌아다녔습니다.
  그렇게 당신과 함께 둘이 있는 시간이 제겐 더할나위없이 아름답고 즐거웠습니다. 그러다가도 당신과 헤어져 혼자가 되면, 저는 불안에 떨 뿐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어디선지 모르게 밝은 빛이 비쳐드는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불안을 동시에 느끼는 겁니다. 즉 기쁨과 불안을 함께 느꼈던 겁니다.
  이러는 동안에, 비로소 제 몸이 이상하다고 느꼈을 때, 제가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건 아무도 모르리라고 생각합니다.
  완전한 암흑에 갇힌 듯, 앉았는지 섰는지도 알 수 없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아신다면 오죽이나 기뻐하실까를 생각하고, 그날은 더욱 빠른 걸음으로 당신을 찾아갔던 겁니다.  당신은 그날도 변함없이 회사에서 돌아오셔서 저를 기다리고 계시던 참이었읍니다.
  "저, 오늘 당신을 깜짝 놀래주려고 왔어요."
  이것의 저의 첫마디였읍니다.
  "그래, 어디 놀래줘봐.  무슨 일이 있었나 보지?"
하며, 당신은 언제나처럼 작은 눈에 미소를 띠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제가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는 조금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셔서, 저는 부끄러움도 두려움도 잊고 눈꼽만치도 주저함이 없이, 제가 당신의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얘기했읍니다. 처음에 당신은 농담으로 들으셨는지, "놀래키면 못써"하셨읍니다. 그래도 제가 너무나도 진지하니까 당신도 나중에는 사실이라고 생각하셨던가 봅니다.
  어찌된 셈인지 당신께서는 조금도 기뻐하시지 않았읍니다. 고개를 숙인 채 잠자코 계시기만 했습니다. 한참 후가 되어서 입을 여셨습니다만, "어째서 주의하지 않았지?"라고, 저를 책망하시는 말씀이었읍니다. 당신의 얼굴은 굉장히 어두워져 있었읍니다. 대단히 당황하신 얼굴이었읍니다. 당신을 알고 나서 그와 같은 얼굴은 처음으로 대했던 겁니다.
  저도 할 말이 없어서 당신의 어두워진 얼굴, 당황하는 얼굴을 뒤로 하고 당신 집에서 뛰쳐나왔습니다. 당신은 저를 붙잡으려고도 하지 않았읍니다. 여느 때 같으면, "조금만 더"하고 말리셨던 당신이었건만.
  당신 집에서 뛰쳐나온 저는 어떻게 해서 하숙집까지 올 수 있었는지 모릅니다. 지나가는 전차·전신주·높은 건물 등이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이 흔들리고 있고,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돌팔매마냥 날아들었다는 것만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후 저는 외출하지 않고 쭉 누워 있었습니다.
  이삼 일이 지났던가요? 와달라는 당신의 편지가 왔습니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이제 만나지 말아야지 하고 결심했던 저였지만, 당신의 편지를 채 읽지도 않아서 저는 벌써 당신집으로 날아가고 싶어졌읍니다. 그것도 기쁨과 일말의 희망을 안고서 말입니다. 정말이지 이상하게 되었읍니다.
  그러했읍니다만 당신께서는 저의 기쁨과 희망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말았습니다.
  "내가 여러 가지 생각했는데……"
  "……"
  "그 방법이 가장 좋을 것 같애."
  "……"
  "당신이라면 그렇게 무리한일도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어……"
  "어떤 방법인데요?"
  저는 당신의 안색을 보고 눈치챘지만 이렇게 물었읍니다.
  "지우는 방법이지."
  당신께선 진지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읍니다.
  "당신이라면 간단히 할 수 있는 일이지 않아."
  법률에 위배되는 의술을 저는 배우지 않았읍니다. 어찌 그런 두려운 일을 할 수 있겠읍니까? 저는 당신의 얼굴을 똑바로 올려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두려워서, 부드러웠던 당신의 입술에서 그렇게까지 끔찍한 말이 튀어나오리라고 누가 상상이라도 했을까요?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당신은 지위와 명예와 인격과 지식이 있는 데도 런 인정미 없는 무서운 말씀을 하셨읍니다.
  저는 눈물도 나오지 않았읍니다. 도자기처럼 싸늘한 당신 앞에서 눈물 같은 건 나오지 않았읍니다. 마음도 몸도 유리처럼 식어갈 뿐이었읍니다.
  "좋아요. 당신의 명예를 더럽히는 듯한 짓은 하지 않겠어요. 아무 것도 간섭하시지 말고, 이제까지의 일은 하나의 악몽이라 생각하시고 잊어주세요. 제가 모든 걸 떠맡아서 처리할 테니까요. 여자란 본디 뒤치다꺼리를 하도록 생긴 게 아닌가요. 이제 저는 당신과 만나지 않겠어요. 안심하세요."
  밖으로 나왔을 때는 가로등에 불이 들어와 있었읍니다. 인적이 뜸한 뒷길을 걸어서 하숙집까지 돌아왔습니다만, 눈물이 쏟아져서 전등불과 별이 유성처럼 눈앞에서 흔들렸읍니다.
  그 후 당신께선 제가 말씀드렸던 대로 만사를 꿈이었다고 깨끗이 잊고 경성을 떠나셨다더군요. 당신 고향에 있는 지점의 지점장이라는, 지금보다도 한층 높은 지위와 명예가 있는 자리로 돌아가셨다더군요. 당신이 싫어서, 싫어서 견딜 수 없다던 부인과 아드님과 함께 새로이 가정을 꾸며서 즐겁고 화목하게 지내시고 계신다더군요.
  그런 소식은 듣고 있었읍니다만, 저는 당신께서 그토록 소중히 여기시는 당신의 지위며 명예를 위해서 입술을 꽉 깨물며 참고 있었읍니다.
  아버지 없는 자식을 낳는 괴로움, 자라나는 자식의 초라함 같은 모든 걸 당신을 위해서 참기로 했던 겁니다.
  때론 아버지 없는 자식을 낳아서, 그 자식에게 괴로움을 주느니 차라리 당신께서 말씀하셨던 대로 남모르게 처리해 버릴까도 생각했읍니다.
  이런 복잡한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에 뱃속에 든 아기는 점점 커가고, 드디어 낳게 되었읍니다.
  저 괴롭고 처량한 산실(産室)에서의 이야기는 하지 않기로 하지요. 그리고 눈보라치던 날 밤에 태어나, 일 주일밖에 안 된 아기를 제 오바에 싸서 친구와 함께 탁아소에 맡겼던 일들도 얘기 않기로 하지요.
  저는 병원일을 찾아서 다시 일하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는 변두리의 작은 병원이었읍니다.  전과 달라진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듯한 몸짓을 하고서.
  그러나 병원에서 돌아올 때에는 반드시 아기가 있는 델 들렀읍니다. 아기의 이름을 승일(勝一)이라고 지었습니다. 패배하지 않고 이 세상의 모든 것에 이기기를 신께 빌었던 겁니다.
  아기는 매일 변해 갔습니다. 웃고, 주먹을 빨고, 기고, 엄마 아빠하기도 하고, 이렇게 예쁜 짓을 할 때마다, 자라는 아기를 볼 때마다, 아기 아버지에게 보이고 싶었읍니다. 아기 아버지에게 펜을 들어 알리고 싶었습니다만 단념했읍니다.
  그때마다 제 인생의 실패를 반성하고,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강하게 살 것을 결심했던 겁니다. 그것이 자기 자신에 대한 복수였기 때문입니다. 호적은 오빠 앞으로 올리기로 했읍니다. 괴로운 줄은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의 장래를 위해 그렇게 해 두었읍니다.
  아이는 이제 열한 살입니다. 자라남에 따라 당신을 쏙 빼닮아 갑니다. 때때로 애의 몸짓에서 당신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합니다만, 가능한 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읍니다.
  수영도 운동도 잘하지만, 공부도 잘 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식보다는 인간을 요구합니다. 지식만 있어서 항상 교활하기 쉬운 인간으로는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인간, 인간미 있는 올바른 인간을 만들고 싶기 때문입니다.

  "엄마, 여긴 위험해.  다리가 흔들려."
  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논길을 쭉쭉 힘차게 앞서 가던 승일이가 제 쪽을 향해서 이렇게 말했읍니다. 저는 꿈에서 깨어난 듯이 눈을 깜박거리며 아이 쪽을 향해 발걸음을 서둘렀습니다.
  "어머니, 제가 손을 잡아드릴까요?"
  목소리는 아직 어린애 그대로 입니다만, 제 손을 잡으려고 하는 그 태도라든지 눈매 같은 건, 언젠가 제 손을 잡고 외나무다리를 건너시려던 당신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읍니다.
  "괜찮아. 엄마 혼자서도 갈 수 있어."
  저는 벌레라도 쫓듯이 아이의 손을 되밀쳐 버렸읍니다.
  "그래도 위험하단 말예요."
  "괜찮대두. 엄만, 아무리 위험한 데라도 혼자서 갈 수 있는 걸."
  "엄마, 화났어?"
  승일은 제 얼굴을 주시하면서 이렇게 묻는 겁니다. 말투라든지, 자기 손을 뿌리치는 저의 태도에서 제 기분을 알아챘기 때문이겠지요.
  "승일아! 엄만 화나지 않았어."
  금방 제가 옳지 못했다고 뉘우쳤던 겁니다.
  "나, 엄마 얼굴 보면 금방 알 수 있단 말야."
  "그렇고말고 엄마는 말이지 지원병이 있는 델 왔으니까 갑자기 군인아저씨처럼 강해진 거야.  화나지 않았어."
  나는 아주 부드러운 얼굴과 말씨로 승일이를 달랬읍니다.
  "정말이지?"
  승일이는 안심한 듯합니다.
  "나, 엄마가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나도 군인아저씨처럼 더욱 강해지고 싶어서 엄마 손을 잡아주려고 했던 거야."
  "그래, 이제 알았다. 그럼 승일아, 엄마 손을 잡아봐라."
  아이는 제 손을 꽉 쥐고 다리를 건넜읍니다. 아이에게 손을 잡히고 나서, 저는 당신 일을 생각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겁니다.
  다리를 건너서 얼마 가지 않았는데, 논길 저쪽에서 노래소리가 들려옵니다. 승일이도 저도 서로 짠 듯이 그쪽으로 향했읍니다.  일이만한 아이가 풀을 베면서 노래하고 있읍니다.  노래는 승일이도 언제나 부르고 있는, "어른이 되면 우리들도"입니다.

  전국에서 터져 오는
  황호성에 맞춰 뛰노는 가슴
  어른이 되면 우리들도
  나라를 지키는 군인아저씨가 되어
  멋진 공을 세울 테야

  승일이도 부르기 시작합니다. 저도 모르는 새에 따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풀 베는 아이는 허리를 펴고 이쪽을 보고 있읍니다. 승일이는 그 아이에게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읍니다.  둘은 박자를 맞춰 부르고 있읍니다. 노래소리는 잠자리가 나는, 아름답고 푸른 하늘로 울려퍼집니다.

  귀중한 군기(軍旗)를 받고
  계승한 역사와 이 긍지
  어른이 되면 우리들도
  아세아를 일으키는 군인아저씨가 되어
  세계에 자랑거리가 될 테야

  상당한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노래의 박자가 잘 맞습니다. 언젠가 두 사람 다같이 나라의 부름을 받고 진력할 거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논길인데다가 이삼 일 전에 비가 내려서 노면(路面)은 나빴지만, 승일이는 아주 야무진 발걸음입니다. 논길 저쪽에 있는 아이는 아직도 노래 부르고 있읍니다.  승일이도 뒤돌아보며 부르고 있읍니다.

  훈련소가 눈앞에 보입니다.
  "엄마! 바로 저기야, 저기에 군인아저씨가 보이네."
  "그렇구나, 지원병이 서 있네."
  "멋있다,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지금 불렀던 노래 가사 그대로를, 승일이는 얘기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노래를 흉내내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어른이 되고 싶다는 표정입니다.
  "바로 저기다. 승일이도……"
  "오늘 말이지. 하라다(原田)아저씨한테서 군인아저씨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싶은데."
  "그렇고 말고, 많이 배워야지. 하라다씨는 굉장히 친절한 분이시니까."
  이 하라다라는 사람은 지원병훈련소의 교관이신 분입니다. 언젠가 집회때 만났을 뿐 그 뒤론 한번도 만날 수 없었는데, 징병령(徵兵令)이 실시된 후 저는 승일이를 위해서 이 하라다 교관에게 지원병 훈련소를 보여달라고 부탁드렸던 겁니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나온 것도 전적으로 그 때문입니다.
  군인과는 인연이 먼 우리들은 군인생활을 알 수 없고, 군인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군인정신도 모르는 겁니다. 훌륭한 제국군인(帝國軍人)을 만들려고 하는 저입니다. 훌륭한 군인이 되려고 하는 승일이입니다.
  아무래도 군인생활-군인정신을 철저히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군인에게 군인정신이 빠졌다는 것은 혼이 없는 인간과 마찬가지니까요.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승일이를 혼이 없는 인간, 군인정신이 빠져 있는 군인으로 만들지는 않을 작정으로 있읍니다.
  이것으로 저희들이 지원병 훈련소를 방문하게 된 기분을 당신께서는 헤아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훈련소 뒷문으로 오니 보초 서고 있던 훈련생이 저희들에게 경례를 합니다.
  "엄마, 지원병 참 멋있지."
  승일이는 감격한 듯한 눈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는 겁니다.
  "암 멋있고 말고, 지원병은 훌륭한 제국군인이 되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으니까, 물론 근사하지. 그렇지 않다면 이 엄마가 승일이에게 지원병 같은 건 보여주지 않지.  승일아, 이제부터 하라다씨가 말씀하시는 걸 잘 들어라. 그러고나서 지원병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밥은 어떻게 먹는지, 정리 정돈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도 잘 봐둬라. 엄마도 잘 봐뒀다가 이제부터는 승일이와 함께 군인아저씨들처럼 훌륭하게 살아갈 테니까 말야."
  사무실 앞에 이를 때까지 저는 승일이에게 이렇게 들려주었읍니다. 승일이는 제 이야기에 일일이 수긍해 주었읍니다.
  저희들은 곧장 본관 이층으로 안내되었읍니다.  여기는 하라다 교관의 방입니다.  그는 저희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듯, 저희가 문앞에 당도하자마자, 그 늠름한 군복차림으로 저희 둘을 맞이해 줍니다.
  "잘 오셨읍니다.  먼 길 오시느라고 피곤하셨지요?"
  저희들은 권하는 의자에 앉았읍니다.
  "아드님이 굉장히 건강하네요."
  이런 식의 인사가 오가는데 급사가 차를 날라왔읍니다만, 급사도 군인과 똑같은 자세로 찻잔이 놓인 쟁반을 아주 높이 쳐들고 있었읍니다. 그리고는 무슨 호령을 하는 것은 방식으로 소리 높이 외치고 있는 겁니다. 급사까지가 이런 식이니까 저희들이 긴장하는 게 당연하지요.
  "정말이지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해야만 할 인사를 하라다씨가 먼저 하셨읍니다.
  "아녜요.  제가 뭐라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려야할지……"
  정말이지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할지 몰랐읍니다.
  "저희들이 오 년간 이 지원병 훈련에 힘쓰고 있는 동안에 가장 강하게 느꼈던 건, 반도의 모친들이 빨리 각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매년 지원병이 입소하면, 곧 그 가정 사정이라든지 부모 형제의 찬부 등을 조사합니다만, 언제나 모친 쪽의 반대가 많습니다.  수십만이라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어렵게 선발된 광영자(光榮者)들입니다만, 이런 식으로 모친되시는 분이 반대하거나 흐릿한 자는 성적도 좋지 않고, 간혹 탈출까지 하는 일도 생기는 겁니다. 아무래도 무지한 모친이란 눈앞의 맹목적인 애정만 알지, 크고 빛나는 미래 같은 건 조금도 의식하지 못해서……. 결국 이런 식의 모친은 자기 자식을 자기 손으로 죽이는 겁니다. 이것과 반대로 어머니의 의식이 확고한 자는 성적도 굉장히 좋고, 입영하고 나서도 상관으로부터 칭찬받습니다. 어머니의 감화라는 건 위대하다고 생각하고 있읍니다. 그러니까 제 관점에서 말씀드리면, 반도의 청년이 훌륭한 군인이 되려면 우선 무엇보다도 어머니들의 힘이 크다는 겁니다. 역사상 위대한 위인들을 보더라도, 그 배후에는 반드시 어머니의 위대한 힘이 숨어있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승일이 어머니께선, 오늘 보신 것을……."
  하라다 교관의 이야기가 여기까지 이어졌을 때, 정오를 알리는 사이렌이 울렸읍니다.  저희들은 묵도를 끝내고 곧바로 훈련생들이 식사하는 식당으로 향했읍니다.
  식당에는 많은 지원병들이 열을 지어 조용히 앉아 있읍니다. 너무나도 조용해서 운동장으로부터 들려오는 시각을 알리는 나팔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듯합니다. 지원병들은 밥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총을 들고 있는 것과 같은 기분으로 앉아 있는 듯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당번이 밥과 반찬, 차를 가지고 옵니다.  하라다 교관은 훈련생들에게 저희들 두 사람을 소개하십니다. 승일이는 굉장히 긴장하고 있는 듯합니다. 대단히 기분이 좋은 것 같습니다. 승일이의 눈은 지금 반딧불처럼 빛나고 있읍니다.
  반장의 호령이 떨어졌읍니다. 깜짝 놀랄 정도로 큰 목소리라서 잘 알아듣지 못했읍니다만, 그 호령과 동시에 각자의 주머니에서 식기(食器)를 꺼내는 걸 보니, 그런 것들을 꺼내라는 호령이었던가 봅니다.
  당번은 하얀 마스크를 하고, 밥과 반찬을 나눠줍니다. 그러자 반장이 담임교관에게 분배를 끝냈다고 알립니다. 담임교관은 분배상황을 점검합니다. 식사는 점검이 끝난 후에 합니다.
  "먹어도 좋다"라는 허락이 떨어지고 나서 일동은, "잘 먹겠읍니다"라고 우렁찬 소리로 외치고 식사를 하는 겁니다.
  얼핏 보니까 밥이나 반찬의 분량이 적은 듯합니다만, 훈련생의 연령과 체질을 연구해서 배정된 영양물(營養物)인 만큼, 입소해서 이 개월 정도 지나면 모두가 일제히 체중이 증가하고, 사 개월쯤 지나면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건장한 청년이 된다고 하라다 교관께서 설명해 주셨읍니다.
  식사의 예법도 놀랄 정도로 훌륭했읍니다. 밥을 기다릴 때와 조금도 변함없는 자세입니다.
  "음식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기 위해 쌀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먹게 합니다."
  "나도 이제부턴 그렇게 할께."
  하라다 교관의 얘기가 끝나자, 승일이가 제 곁으로 와서 이렇게 말했읍니다.
  "엄마도……."
  저도 승일이에게 작게 말해 줬습니다.
  "너무 맛있는 건 먹이지 않습니다, 군대에서는 먹으려고 하지 말 것, 자려고 하지 말 것, 나있지 않는 길을 갈 것, 먹지 않고, 자지 않고, 그리고 길이 생겨있지 않는 델 걸으려니 괴롭습니다. 그러나 이 괴로운 일을 해내는 데에 일본군인의 생명이 있는 겁니다.  군인정신이 깃들어 있는 겁니다. "
  저와 승일이는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읍니다.  승일이는 저보다 더욱 감격했을지도 모릅니다.  몇 번이고 침을 꿀꺽 삼키는 소리가 납니다.  그건 밥이 먹고 싶어서 침을 꿀떡 넘어가는 고통을 헤아리는 소리입니다.
  식사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습니다. 모두 일제히 "잘 먹었읍니다" 하고 식기를 각자 자기들 손으로 씻기 시작합니다.  식기뿐만 아니라 여기에서는 어디까지나 제 일은 자기가 한다는 식입니다.
  "나도 이제부턴 뭐든지 내가 할 거야. "
  "그럼. 그래야지. 이불도 자기가 개야하고, 방도 자기가 소제해야지."
  "응."
  승일이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식당 견학을 끝내고 나서 우리들은 하라다 교관실로 되돌아와서 점심을 들기로 했읍니다.  어느 샌가 테이블 위에는 음식이 차려져 있었읍니다.  아무리 사양을 해도 하라다 교관은 지원병이 된 셈치고 먹어보라고 자꾸만 권해서 하는 수 없이 먹기로 했읍니다만, 승일이는,
  "군인아저씨들의 밥은 참 맛있어."
  그러면서 밥알을 한 톨도, 반찬도 하나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고 있읍니다.
  밥은 쌀이 반, 보리가 반입니다.  반찬은 배추, 곤약, 튀김, 양파에 멸치를 넣고 부글부글 끓인 겁니다.
  저희들의 식사가 끝나자 훈련생들이 취침하는 별관으로 안내해 주셨읍니다. 방은 전부 비어 있읍니다. 못에 걸린 물통, 검(劍), 수건 같은 게 모두 다 번호 순서대로 잘 정돈되어 있습니다.
  훈련소 안의 어느 곳이든 그러합니다. 운동장도, 계단도, 먼지 하나 떨어져 있지 않고, 유리창에도 티끌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수천 명이나 되는 원기왕성한 청년들이 모여서 생활하는 장소라고는, 아무리 해도 생각되지 않읍니다. 총도 잘 소제되어 분열식(分列式)을 하는 군인아저씨들처럼 오른쪽으로 늘어서 있읍니다.
  강당은 넓습니다. 창이란 창은 모두 열려 있어서 바람이 들어와 추울 정도입니다.  고(故) 이인석(李仁錫), 이형수(李亨洙) 양위(兩位)의 사진이 검은 리본을 두르고 찬연히 걸려 있습니다.  바람 때문에 리본이 자꾸만 펄럭이는 탓인지 두 분 다 살아있는 듯한 모습으로 뭔가 얘기해 줄 것은 느낌이 듭니다.
  승일이는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모자를 벗고 두 분 앞에 정중히 절을 합니다. 저도 어느새 승일이처럼 고개를 숙입니다.
  "운동장으로 나가시지요."
  하라다 교관이 이렇게 말씀하시자, 승일이는 다시 사진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엄마! 내가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 죽어도 엄만 이제 울지 않겠지?"
  하라다 교관을 따라서 운동장으로 나올 때였읍니다. 승일이가 이런 걸 제게 묻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승일이의 손을 힘차게 꽉 움켜쥐지 않을 수가 없읍니다.
  "엄만 이제 울지 않는단다."
  이 '이제 울지 않겠지'라는, 승일이의 말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그것은 저를 깜짝 놀라게 하는 말입니다.
  훨씬 전의 일이었습니다. 벌써 삼년이나 되었군요.  밖에서 돌아온 승일이는 갑자기, "엄마, 내가 전쟁에 나가서 싸우다 죽으면 엄마는 울 거야?"하고 묻는 것이었읍니다.  저는 너무나도 갑작스럽고, 또 그 '죽으면'이라는 말에 깜짝 놀라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아이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었읍니다.  그러자 아이는 제 얼굴에서 무얼 읽었는지,
  "엄마는 안되겠어, 내가 그럴 거라고 생각했지"라는 거였읍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아이의 얼굴은, "죽는다면 울거야?"하고 물을 때와는 전혀 다르게, 실망의 빛이 감돌고 있었읍니다.
  저는 어린아이를 실망시키는 건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은 일을 하다가 죽으면 엄만 울지 않지"하고 말해 주기는 했읍니다만, 그건 힘이 없는 대답이었던 듯, 승일이는 이 말에도 기운을 차려주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 승일이가 이런 질문을 다시 했던 적이 없었읍니다.
  "승일아, 훨씬 전부터 엄만 알고 있었단다. 이제 울지 않을 테니까, 승일이는 아주 훌륭한 군인이 되어서 나라를 위해 온 힘을 다 바치는 거다."
  "응."
  승일이는, 저의 다른 얘기보다도 이 말에 가장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줍니다. 저는 아이의 손을 더욱 꽉 쥐었읍니다. 아이도 잡힌 자기 손으로, 제 손을 꽉 쥡니다. 그 힘찬 손의 감촉은, 당신에게 잡혀서 외나무다리를 건넜을 때와는 다른, 힘찬 그 무엇이 있었읍니다. 당신의 손 이상으로 제게 희망을 갖게 하는 손입니다. 당신의 손 이상으로 제게 기쁨을 안겨주는 손입니다.
  훈련소의 견학을 끝내고 운동장으로 나왔읍니다. 실내에 있다가 나와선지 하늘은 지나치게 넓고 푸르러 보이고, 잠자리 날개도 더욱 아름답게 보입니다.
  한 부대의 훈련생이 이렇게 멋진 하늘 아래에서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강철같이 늠름한 모습, 총을 든 그 놀라운 손놀림, 눈빛, 구릿빛 피부, 꽉 다문 한일자 입에서 터져나오는 호령소리, 그 발소리, 그저 감격할 수밖에 없읍니다.
  "일요일인데도 평소처럼 하시고 계시는가 보죠?"
  "그렇습니다. 군대에서는 일요일이라는 관념이 머릿속에 들어있지 않지요. 그래서, '월월화수목금금'이라는 말도 여기에서 나온 겁니다."
  훈련생의 일부는 운동장으로 쓰일 도로를 수선하거나, 다른 부대는 바로 곁에 있는 냇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읍니다. 그 나머지 부대는 실내에서 다림질을 하든지, 각각 자기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내가 시냇가에 갔다 올 테니까 엄만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훈련받는 걸 보고 있던 승일이는, 이렇게 말하고는 냇가를 향해 뛰기 시작했읍니다.
  "아드님이 굉장히 건강하군요."
  하라다 교관도 승일이의 뒷모습을 좇고 있었던 겁니다. 매미가 산 속에 있는 나무 위에서 울고 있읍니다.
  "대단히 무례한 질문입니다만, 저어, 평일의 일정은 어떻게 짜여져 있읍니까?"
  "평일에 말입니까? 평일에는 교련(敎鍊) 외에 학과목도 배웁니다. 학교 공부와 똑같이 수신(修身), 국어, 역사, 지리, 이런 것들이지요……"
  "오후에는 학과 공부이지만, 저녁때에는 대개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학과 공부가 끝나면, 아침·정오에 청소했던 델 또 청소하지만, 청소가 끝나면, 이번에는 손질과 세면을 하고 저녁식사를 합니다.  저녁식사 후에는 목욕하고 자습을 합니다.  자습이 끝나면 밤점호를 합니다. 그러고나서 묵도를 하고 반성을 합니다만, 이 묵도와 반성은 하루의 훈련생활을 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하루의 훈련생활에 감사하는 마음과 고향에 계신 부모님의 안온을 기원하는 걸 배우게 하는 겁니다."
  얼마나 근사한 인생공부일까를 생각하고 있을 때,
  "엄마! 이쪽으로 와봐"하는 승일이의 목소리가 메아리쳐 옵니다.
  "아드님이 부르네요."
  저는 하라다 교관에게 오늘 하루 동안 안내해 주시느라고 애써주신 점들에 대해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승일이가 있는 곳으로 갔읍니다.
  승일이는 빨래하고 있는 훈련생과 벌써 굉장히 친해진 듯, 물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빨래를 하고 있읍니다. 시냇물은 맑은 데다가, 푸르고 아름다운 하늘이 반사되어서 더욱 깨끗합니다.
  "승일아, 이제 그만 돌아갈까?"
  승일이가 언제까지고 놀 기분이어서 저는 이렇게 재촉했습니다. 그래도 승일이는 훈련생들과 헤어지기가 서운한 듯한 얼굴로 마지못해 수건으로 손을 닦고 있읍니다.
  "안녕."
  "안녕."
  승일이와 저는 그들의 전송하는 소리를 뒤로 하면서, 올 때와 마찬가지로 논길로 나왔읍니다.  해는 벌써 서쪽으로 기울어지려 하고 있읍니다.
  "엄마, 해가 빨갛게 되었네."
  "그럼, 해가 지니까 그렇게 되는 거야."
  들국화가 노을에 물들어 빨갛지도 않고 보랏빛도 아닌, 묘한 빛을 띠어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엄마, 저건 무슨 꽃이야?"
  "어디 어느 게? 저건 들국화란다."
  "참 예쁘지?"
  "그래."
  언젠가 당신과 함께 둘이서 이렇게 논길을 걷고 있었던 때였읍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들국화가 굉장히 많이 피어 있어 당신께선 그 꽃 한 송이를 꺾어 주시면서, "작고 가련한 꽃이지. 꼭 너 같아……"하셨읍니다.  당신께선 모든 걸 잊으셨겠지요.
  "엄마, 이 꽃 꺾어가지고 갈까?"
  승일이는 논두렁으로 다가가 들국화를 꺾습니다.
  "승일아, 꺾어가지고 가면 금방 죽을 테니까 그만둬라."
  저는 추억을 되새기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뿌리째 뽑아가지고 가서 창 밑에다 심으면 오래 살 거야, 그지?"
  "그래도 못써. 들국화는 서리가 내리면 시들어버리는 슬픈 꽃이란다."
  "그래도 한번 시들어버리면 내년 이맘때 또 피지 않아."
  "그건 그래도."
  "그럼, 괜찮지?"
  승일이는 기어코 들국화 몇 뿌리를 뜯었읍니다. 들국화는 뽑혀서도 의연히 빨갛지도 않고 보랏빛도 아닌 묘한 색채를 빛내면서 아름답습니다.
  "엄마, 내가 전쟁에 나가 싸우다 죽어도 이 꽃을 보고 울지 않지?"
  "엄만, 이젠 울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니?"
  "만약 에 울고 싶어지면 어떻게 해?"
  "글쎄다, 울고 싶어지면 승일이가 해줬던 말을 생각해 내고 울지 않도록 노력할께."
  바람이 불어와 들국화가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제 잠자리는 날고 있지 않지만, 매미는 여전히 울고 있읍니다.
  이제 저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승일이를 키우듯이 승일이를 위해 들국화를 아름다운 꽃, 강인한 꽃으로 가꾸기로 했읍니다.  그게 제게 하셨던 당신의 행위에 대한 복수가 될테니까요, 그럼 안녕히.

『국민문학』1942년 11월호, 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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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개떡 2005.03.18 18:03
작품 속의 비현실적 엄마, 아그 인물.. 저런 모습으로 사는 사람들이 정말 존재했을까요 ...
사람의 체취는 안 나고 종잇장 위의 연필 장난....첨부터 끝까지 얄팍한 작위성...게다가 쓴 목적까지 개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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