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하 기독교인들의 친일행각 |
창씨개명하여 일본국민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목회자로서 내선일체ㆍ창씨개명운동 벌인 김종대
김종대(金鍾大, 1909~ )
전라북도 전주 출생. 선교사의 추천으로 전주 신흥학교를 졸업하고 전북 무주청년회의 총무로 활약하였다. 집사ㆍ전도사를 거쳐 30세 때인 1939년부터 목사로 일하면서 전북노회장을 비롯하여 총회 서기, 총회 초대총무 등을 지냈다. 목회자로서 내선일체ㆍ황민화ㆍ창씨개명운동에 앞장섰다.
해방 후에는 국회의원에 입후보하기도 했으며 사회사업전국연합회 부회장, 기독공보사 사장 등을 역임하고, 서울장로회 신학교 이사장과 서울신학교 교장을 지냈다.
다음은 장로회보 1941년 5월 28일, 6월 4일, 6월 18일자에 실린 「조선기독교의 진로」라는 글을 요약한 것이다.
조선기독교의 진로
국가라 함은 무엇인가? 국가라 함은 일정한 국토에서 거생(居生)하는 민족이 동일한 헌법하에서 주권의 통치하에 이룬 사회라 할 것이면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萬世一系)의 천황폐하께옵서 어(御) 통치 하시옵시는 국가라 할 것이다. 국민은 국법을 순종할 의무가 있으며 동시에 그 안에서 국민은 자유할 것이다. 종교인도 국민인 동시에 절대적으로 국법에 순종하여야 할 것이다. 현하 시국에 종교도 국가운동의 일익으로 활동하여야 할 것이다. 이 시국하에 종교가 얼마나 중대성을 띠고 있는가 보라. 쇼와 13년(1938) 중의원에서 아라키(荒木) 문부대신이 한 말을 빌려 말한다면 "종교가 국민정신의 진작(振作), 국민사상의 계도에 중대한 관계가 있다 함은 두말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특히 현하 비상시국에 처하여는 인심의 감화, 사회풍교상 심대한 영향을 주는 종교의 건전할 발달이 간요(肝要)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단체에 대한 국가의 보호감독이 그 적정(適正)을 얻음과 동시에 타면 종의 교화운동에 편익을 많게 한다 함은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중의원 속기록 16호 310항)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동시에 유태명(名) 사울을 버리고 로마명인 바울로 개명하였다. 그가 동시에 로마 영토 내에서 전도운동을 하려함에 개명의 필요를 느꼈던 까닭이다. 그와 같이 우리 반도인 등도 미나미 총독각하에 의하여 창씨개명하게 되어 당당히 일본국민의 갖춘 명을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그리스도를 위하여 민족주의도 버리자! 우리의 과거생활도 버리자! 창씨는 우리의 나아갈 길을 얻어준 것이다.
당시 로마는 발칸 반도ㆍ소아시아ㆍ팔레스타나 전부ㆍ아프리카 북부, 다시 말하면 지중해안 전지를 점유하였던 까닭에 이에 통치키 위하여 교통이 사통오달(四通五達)되어 수륙으로 극히 편리하였으니, 바울이 교통기관에서 복음운동을 하였으니 금일 우리들도 제국에 귀한 교통망에서 동으로 서로 다닐 수 있지 않은가? 누가 전도자가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복음 전함이 없으리라고 반대하겠는가? 우리가 밟고 다니는 길이 뉘 길인가? 대일본제국의 길이 아닌가? 이 속에서 기거하면서 살지 않는다고 하면 모르거니와 그 안에서 기생(起生)하는 이상에는 감심복종(感心服從) 협력함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경성에서 동경, 신경(新京), 북경(北京)의 차표를 살 수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앞으로 대일본제국을 신뢰하고 그 교통에서 선한 운동을 하자! 일본적 기독교로 동아신질서 건설에 공헌이 크리라고 믿는 것이다.
당시에 용어 중 관화(官話)는 로마어, 문화어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인은 아람어를 사용케 되었었다.
히브리인인 바울은 전도 전용어로 헬라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신약성경을 아람어로 기록치 않았고 헬라어로 기록하였으니 그들이 기독을 위하여 버리기 극난(極難)인 유태주의와 히브리사상, 그 말을 고집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적은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로 가장 잘된 일이라고 필요조차 없는 것입니다. 특히 현하 비상시국에 처하여는 인심의 감화, 사회풍교상 심대한 영향을 주는 종교의 건전할 발달이 간요(肝要)타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교단체에 대한 국가의 보호감독이 그 적정(適正)을 얻음과 동시에 타면 종의 교화운동에 편익을 많게 한다 함은 가장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바입니다."(중의원 속기록 16호 310항)
바울은 로마시민권을 가진 동시에 유태명(名) 사울을 버리고 로마명인 바울로 개명하였다. 그가 동시에 로마 영토 내에서 전도운동을 하려함에 개명의 필요를 느꼈던 까닭이다. 그와 같이 우리 반도인 등도 미나미 총독각하에 의하여 창씨개명하게 되어 당당히 일본국민의 갖춘 명을 가지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그리스도를 위하여 민족주의도 버리자! 우리의 과거생활도 버리자! 창씨는 우리의 나아갈 길을 얻어준 것이다.
당시 로마는 발칸 반도ㆍ소아시아ㆍ팔레스타나 전부ㆍ아프리카 북부, 다시 말하면 지중해안 전지를 점유하였던 까닭에 이에 통치키 위하여 교통이 사통오달(四通五達)되어 수륙으로 극히 편리하였으니, 바울이 교통기관에서 복음운동을 하였으니 금일 우리들도 제국에 귀한 교통망에서 동으로 서로 다닐 수 있지 않은가? 누가 전도자가 비행기 타고 다니면서 복음 전함이 없으리라고 반대하겠는가? 우리가 밟고 다니는 길이 뉘 길인가? 대일본제국의 길이 아닌가? 이 속에서 기거하면서 살지 않는다고 하면 모르거니와 그 안에서 기생(起生)하는 이상에는 감심복종(感心服從) 협력함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경성에서 동경, 신경(新京), 북경(北京)의 차표를 살 수 있지 않은가?
우리들은 앞으로 대일본제국을 신뢰하고 그 교통에서 선한 운동을 하자! 일본적 기독교로 동아신질서 건설에 공헌이 크리라고 믿는 것이다.
당시에 용어 중 관화(官話)는 로마어, 문화어는 헬라어이고, 히브리인은 아람어를 사용케 되었었다.
히브리인인 바울은 전도 전용어로 헬라어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신약성경을 아람어로 기록치 않았고 헬라어로 기록하였으니 그들이 기독을 위하여 버리기 극난(極難)인 유태주의와 히브리사상, 그 말을 고집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적은 눈으로 보면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는지 모르겠으나 오늘날 우리가 아는 대로 가장 잘된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금일 우리들도 국어(일본어) 사용을 절대 필요한 일인 줄 안다. 국어만 하면 내선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만주ㆍ지나ㆍ남양 어디를 가든지 활동에 조금이라도 난사(難事)가 없는 줄 아는 것이다. 지나에서도 중학교에서 일본어 교과서를 일학년부터 가르치게 되었다. 국어는 동양 공용어가 되었다. 우리들은 이제 국어를 선히 학습ㆍ활용하여 이를 통하여 제국 신민임을 나타내는 동시에 복음운동에 큰 기회로 활용함이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그리스도 앞에 내 모든 것을 바치고 그리스도를 위함이란 과거의 구각(舊殼)을 내버리고 다만 그 성지(聖旨)만 따라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국어로 동양 공용어가 되게 하심은 하느님의 섭리로 알고 동양 기독교 운동에 인간이 얻을 수 없는 최대의 은사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끝으로 바라는 바는, 이제 기록함이 조선기독교에 조그마한 도움이 된다면 행(幸)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 총회에서 일을 실천키 위하여 많은 수고들을 하시는 줄 아는 바이며 지난해 12월의 장로회 신도대회와 지난번 4월의 여신도대회 등은 가장 의의 깊은 회합들이다. 앞으로 국가적 사업에 협조하며 나아가 일선에서 선한 일을 하기를 바라마지 않으며 근로보국대(勤勞報國隊)가 부여(扶餘)도 갈 것이다.
내지 교회에서는 전도망을 만주ㆍ지나ㆍ남양까지 펴고 있으며 만주에는 기독교 이민촌까지 할빈 근방에 두어 마태촌이라 명하고 현재 제1선발대가 이민되었고 제2이민대를 보내려고 훈련중이다. 조선기독교에서는 무엇을 하는가? 아직 내부적 정리기에 있는 줄 아나 속히 옛 옷을 벗고 일어서서 일본적 기독교로 확립, 힘써 전도보국ㆍ종교보국에 성(誠)을 다하기를 바라는 바이다.
일본정신과 기독교가 합치됨을 국민 앞에 뚜렷이 보여주자!
하느님의 은사가 국가와 교회에 있길 바라린 이만 그치련다.
-> 너무 글 잘 쓰셨다 ㅋㅋ...이것이 진정한 기독교의 면모다! 똑똑히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