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의 예수: Josh McDowell에 대한 답변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by staire

역사 속의 예수: Josh McDowell에 대한 답변

엑스 0 4,132 2002.08.14 17:22
역사 속의 예수: Josh McDowell에 대한 답변
Gordon Stein, Ph.D.
이민수 옮김
http://my.netian.com/~azazel/


컴퓨터 산업의 오랜 격언인 “가베지 인, 가베지 아웃”은 다른 분야들에도 역시 적용 가능하다. 그것이 Josh McDowell의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라는 책의 “예수-역사 속의 인물”이라는 장만큼 그 말이 잘 적용되는 곳을 찾기도 힘이 들 것이다.

McDowell은 자신의 자료들을 나열하는데 주의를 기울였고, 그 점에 대해서는 감사를 표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목록은 양날의 검이다. 우리는 그가 책 전반에 걸쳐 거의 오로지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에서 출판된 책들만을 사용했음을 볼 수 있다. IVCF에 의해 출판되지 않은 책들이나 논문들을 쓴, 수 많은 성서 권위자들로부터도 인용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할 수 있었을 것이나, 그렇게 하지는 않았는데 그것은 그것들(비-IVCF 작가들)이 그의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다. 그 이유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수에 관한 (그리고 그 책에 있는 대부분의 다른 사항들도 역시 그러하지만, 그것들은 다른 사람들의 몫으로 하겠다) McDowell의 관점들 중 대부분은 현대 학자들에 의해 지지받지 못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McDowell이 즐겨 사용하는 또 다른 계책은 “이렇고 저런 사람이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라고 말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렇고 저런 사람은 또 다른 근본주의 작가임이 밝혀진다. 이것은 권위자로부터 오래된 논거를 얻는 방법인데, 이 경우에는 인용되는 것에 전혀 권위가 없다. 이것은 약한 “증거”이다. McDowell이 이러한 인용 체계를 어떻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지만, 우리가 조사하고자 하는 것의 사실들과 진실을 무시하는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다. Evidence의 84쪽에서, 그는 “그렇다면, 그 역사가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우선,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신약 문헌들이 그분의 정확한 초상을 제공하는 것으로 믿음직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초상이 희망에 근거한 생각이나, 철학적 추측, 혹은 문학적 책략에 의해 합리화되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인용문은 John Warwick Montgomery의 History and Christianity에서 따온 것이다. 사실, 위에 제시된 인용문 전체에는 단 하나의 사실 진술도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러한 사실은 Montgomery가 그렇게 이야기했다는 사실이 그것을 그렇게 만든다는 듯이 행동하기만 하는 McDowell에게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관점들 중 가장 뻔뻔스러운 것은 (그리고 증거와 관련된 McDowell의 기본적인 부정직의 좋은 예는) 그가 예수에 관해 인용한 요셉푸스를 다루는 방식이다. McDowell은 그 인용문이 “열띤 논쟁”을 겪는다고는 말하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는 절대 이야기하지 않고, 또한 그 인용문을 믿을만한 것으로 취급해 버린다. “열띤 논쟁”이 의미하는 것은 (비록 나라면 다르게 이야기했겠지만) 1800년대 초반이래로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이 이 인용문이 요셉푸스에 의한 것이 아니라, 후기 기독교도가 그의 작품에 첨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것은 위조이고, 학자들에게서 거부당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저작물들 속 어디에서건 진리를 거의 존중하지 않는 McDowell로서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요셉푸스의 이 특정 구절의 신뢰도에 대한 가장 철저한 검증은 1838년 Nathaniel Lardner에 의해 행해졌다. Lardner의 발견들은 Jewish Testimonies라고 하는 그의 작품에서 제시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책 6권으로 된 전집이었다. 우리는 요셉푸스에 대한 Lardner의 비평을 다소 자세하게 점검할 것인데, 이는 그것이 신약 그 자체의 외부에서 이루어진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에 대한 가장 중요한 단일 언급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이것이 근본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좋아하지 않는 증거를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좋은 예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요셉푸스 구절에 대한 Lardner의 작품은 그 구절에 대한 자세한 분석으로는 처음일 뿐이었다. 많은 다른 학자들도 Lardner 이래로 그것에 관해 썼고, 그래서 McDowell은 그들이 발견한 것들에 대해 무지했을 수 있다고는 볼 수 없다. 사실, McDowell이 사용한 바로 그 구절(“열띤 논쟁”)은 그가 최소한, 많은 학자들이 그 구절이 저자에 의해 쓰인 진품임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는 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구절 전체를 보기로 하자(Antiquities XVIII, Ch. 3, sec. 3).

“그 당시에, 예수라는 현명한 사람이 살았는데, 그를 사람이라 부르는 것이 합당한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그는 수 많은 경이로운 일들을 행기 때문이다. 그는 진리를 기쁨으로 받아들이는 인간들의 스승이었다. 그의 주변에는 많은 유대인들과 많은 이방인들이 추종자로 모여들었다. 그는 그리스도였다. 그리고 우리 가운데 있던 주동자들의 선동에 넘어간 빌라도가 그를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 이전에 그에게 애정을 느꼈던 사람들은 그를 신봉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사흘 뒤에 다시 살아서 그들에게 나타났고, 이것을 포함하여 그와 관련된 수 많은 다른 경이적인 일들에 대해 신성한 예언이 이미 예견한 바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딴 기독교인들의 집단은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Lardner의 번역)
왜 우리가 이 구절이 위작이라고 의심하는 것일까? 우선, 비록 교부들이 기독교를 지지하는 구절들을 인용하는 것을 상당히 즐겨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이러한 초기 교부들이 요셉푸스의 작품들에 상당히 친숙했음에도 불구하고, 사 세기에 유세비우스가 기독교를 방어하기 위해 이 구절을 인용하기 전에는 그 어느 누구도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유세비우스가 교회의 발전을 위한 거짓말을 기꺼이 받아들일만 하다고 말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 그는 아마도 의심받고 있는 이 구절을 요셉푸스의 작품들에 삽입한 사람일 것이다. 유명한 초기 기독교 변론자인 오리겐은 요셉푸스의 다른 구절들을 인용하기까지 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우리의 구절을 인용하지 않고 넘어갔다. 오리겐은 서기 220년 무렵에 Contra Celsus라는 책을 썼다.

둘째로, 그 구절은 유대인들에게 닥친 재앙에 관한 이야기들의 모음들 가운데에 나온다. 이것은 재앙이 아닐 것이다. 셋째, 그 구절은 정통 유대교 신자인 요셉푸스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였다고 말하게 하는 것이다. 그가 했으리라고 전혀 상상이 가지 않는 진술인 것이다. 전체 구절은 마치 기독교도가 쓴 것처럼 읽혀진다. 요셉푸스는 기독교 종교를 가리켜 ‘진리’라고 하기까지 했다. 그가 그런 말을 했을 리는 거의 없을 것이다. 요셉푸스는 다른 “예언자들”의 수많은 기적들을 보고했지만, 예수의 것이라는 기적들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것도 역시, 요셉푸스가 진짜 쓴 구절들과 비교하면 말이 안 된다. 인용문의 마지막 구절은 기독교도들을 언급하며 “. . . 오늘날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예수가 죽은 지 한참 후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반면에 요셉푸스는 서기 90년 무렵에 Antiquities를 섰다.

이 구절에 대한 이 모든 부정적인 증거들, McDowell이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증거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는 예수의 역사성에 대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 구절을 사용한다. 그러한 진행은 부정직한 것이고 쓸데없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짓에 의해 속을 유일한 사람들은 무지한 사람들뿐이다. 학자들은 이런 부정직에 질릴 뿐이고 이러한 “증거”는 무시해버린다.

예수를 언급한 것으로 추정되는, 따라서 그가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증거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고대 역사가는 Tacitus이다. Cornelius Tacitus는 서기 117년 이후에 Annals를 썼다. 정확한 저작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예수의 십자가형이 있었다고 주장되는 시기로부터 최소한 70년이 흐른 후였음은 알고 있다. Tacitus의 작품들 어디에서도 예수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Book XV, 44장에 “Christus”라는 말이 한 번 언급되는데, 다음과 같다.

“네로는 희생양을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았고, 이미 자신들의 범죄들로 인해 사람들의 증오를 받고 있던 사람들의 집단에 가장 혹독한 고문을 가했다. 이것은 기독교도라고 알려진 종파였다. 그들의 설립자, Christus라는 사람은 Tiberius가 다스릴 때 본시오 빌라도 총독에 의해 사형에 처해진 바 있다. 이는 잠시 동안 그 흉물스러운 미신을 막았으나, 다시 퍼져 나와, 본래 발생한 유대아 전역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로마 그 자체로까지 유포되어서, 모든 유형의 악행과 불결함을 저장하고 축적하는 근거지로 삼았다. 기독교도임을 고백하는 사람들은 즉시 체포되었고, 그들의 증언에 의해 엄청난 떼의 사람들이 유죄가 확정되었는데, 방화 혐의로만이 아니라 전체 인류에 대한 증오 때문이었다.” (D.R. Dudley의 번역)
위의 글이 쓰여진 방식으로부터, Tacitus가 기독교의 기원에 대해 직접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음을 주장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단지 일반적으로 믿어지던 이야기, 즉 기독교의 설립자, Christus라는 사람이 Tiberius 치하에서 사형에 처해졌다는 이야기를 반복했을 뿐임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이 진짜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해결되어야만 할 심각한 어려움들이 여러 개 있다. 네로가 기독교를 처형하기나 했는지에 대한 다른 역사적 증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당시에는 로마에 기독교도들의 집단이 있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대략 서기 60년 정도). 사실, “기독교”라는 용어도 1세기에는 흔하게 사용되지 않았다. 우리는 네로가 자신의 도시에 있는 다양한 종교들에 무관심했으며, 또한, 스스로 로마에 불을 놓지도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거의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희생양으로 삼을 집단이 필요하지도 않았을 것임을 알고 있다. Tacitus는 예수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않고 있고, 마치 독자들이 본시오 빌라도라는 이름을 알고 있을 것이라는 듯이 글을 썼는데, 이 두 가지는 Tacitus가 공식 기록들로부터 글을 쓰거나 비-기독교 청중들을 위해 쓴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이며, 이 두 가지는 만일 그 구절이 진짜라면 그가 반대로 했어야 할 일들이다.

어쩌면 이 구절의 권위에 가장 찬물을 끼얹는 사실은 이것의 한마디 한마디가 Sulpicius Severus(서기 403년에 죽음)의 Chronicle에 거의 똑같이 나온다는 사실이며, 거기에서 그것은 분명히 거짓인 이야기들과 혼합되어져 있다. 이와 함께, Sulpicius가 이 구절을 Tacitus의 것으로부터 베꼈을 가능성도 매우 적은데, 왜냐하면 그와 동시대 인물들 중 그 어느 누구도 그 구절을 언급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그것이 그 당시 Tacitus의 원고에 들어있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훨씬 가능성이 있는 일은, 따라서, Chronicle의 유일한 현존 원고를 갖고 일하던 암흑시대의 필사자들이 Sulpicius에게서 그 구절을 따서 자신들이 베끼고 있던 Tacitus의 원고에 추가했으리라는 것이다.

McDowell이 Suetonius의 “Chrestus”에 대한 짧은 언급을 선전하려 한 것은 그보다도 더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 우선, 그 어떤 학자라도 최소한 자신이 글을 쓰고 있는 대상이 되는 인물의 이름만큼은 제대로 표기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McDowell은 “Seutonius”라고 잘못 표기했다. 그리고 그는 “Chrestus”가 “Christus의 또 다른 표기 방법”이라는 용서받을 수 없는 부정직한 주장을 폈다. 이는 옳지 않다. “Chrestus”는 그리스어에서 “훌륭한 사람”을 의미하는 반면, “Christus”는 “메시아”를 의미한다. 사실, Chrestus는 고대 로마에서 흔하지 않은 이름은 아니었다. 예수가 유대인들을 선동하며 로마에 있지는 않았을 것임을 인정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이 예수가 아닌 다른 누군가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임을 거의 확신할 수 있다. 이것이 포함된, Suetonius로부터의 완전한 관련 인용문이 다음과 같음을 언급해야만 하겠다. “유대인들이 Chrestus라는 사람의 선동 하에 지속적인 분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로마에서 축출했다.” “그”는 Claudius이다. 방금 언급한 대로, McDowell조차도 예수가 이 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전해지는 서기 55년에 로마에 있었다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어째서 유대인들이 예수의 지휘 하에 있었는지도 이해하기 어렵다. 이는 이 구절이 나자렛 예수를 언급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상당히 강력한 증거이며, 따라서 예수가 살았던 적이 있었는가에 대한 우리의 토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Suetonius에 예수에 대한 언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예수가 역사적 인물로서 존재했다는 데에 대한 “부정적” 증거 목록에 추가할 수 있다. Suetonius의 문헌은 Life of the Caesars이다(Claudius 25:4).

유대의 탈무드에 있는 예수에 대한 언급 문제로 넘어가자. 여기에서 McDowell의 학식 박약이 다시 한 번 고통스러울 정도로 분명해진다. 사실, 올바른 정보가 너무나도 쉽게 얻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가 그것을 제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의도적으로 오인하게 하기 위함이 아닌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 강한 유혹을 다시 한 번 받게 된다. 우리는 우선 현존하는 탈무드가 예수에 대해 거의 아무런 언급도 담고 있지 않음을 설명해야만 할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유는, 중세 동안 유대인들을 너무나 많이 처형했고, 그래서 많은 유대인들은 당시 탈무드에 예수에 대한 수 많은 불리한 언급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로 인해 기독교들의 추가적인 분노의 대상이 되지 않을지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언급들은 수 년에 걸쳐 탈무드가 다시 필사되는 동안 조금씩, 동의 하에 제거되었다. 하지만, 예수에 대한 이런 언급들의 대부분은 우리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는데, 학자들에 의해 고대의 탈무드로부터 수집되었고, 여러 번 재출판되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McDowell은 이 모든 것들을 모르는 것이 더 없이 행복할 것이다. 탈무드의 후기 필사본들에서 제거된, 예수와 관련된 내용들을 보면, 그가 사생아이며, 이집트에서 마법 주문을 배웠거나 그렇지 않다면, 성전에서 하느님의 이름이 지닌 비밀을 훔쳐서 마법이나 기적을 일으키는데 써먹은 마법사라고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의 아버지는 Pantera라는 이름의 군인이라고 주장되기도 한다. 어쨌든, 권위자들은 이 탈무드 사료의 대부분이 서기 200년에서 500년 사이에 유래되었음과 기독교의 강력해지는 세력에 대항하기 위한 유대인들의 시도를 반영하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정확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기울이지 않은 것이고, 실제로,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었는지를 가리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 McDowell은 당연히 이것들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며, “Baraila에 있는 언급들은 엄청난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라는 말을 하면서 시작되는 말들, 즉 “그리고 ...라는 것은 전설이다”를 빼먹은 채 인용한 것도 역시 오류(혹은 의도적 현혹)이다. 이는 탈무드의 필사자가 기독교도들에 의해 전해지고 있던 것을 단순히 보고한 것이었음을 의미한다(그리고 이것도 서기 300년 정도이다). 그 구절은 예수가 어떻게 돌에 맞았으며, 마법을 행한 죄로 교수형을 당했는지를 묘사하는 것이다. 신약의 설명과는 조금도 비슷하게 들리지 않는다.

McDowell은 다시 Tertullian의 작품들에서 발견한 “증거”를 논의하며 오해를 유도한다. 그가 말하지 않은 것은 Tertullian이 자신의 정보(Tiberius가 예수에 대한 본시오 빌라도로부터의 보고를 받았을 것이라는)를 Justin에게서 얻었으며, Justin은 그러한 보고가 존재했었을 것이라 추측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후에, (약 5세기 무렵) 누군가가 예수에 관해 로마로 보낸 빌라도의 말인 것을 가장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실제 보고서를 위조했다. McDowell은, 정직하고자 하는 몇 안 되는 시도들 중 하나로서, “어떤 역사가들이” 이 구절의 역사성에 대한 거의 모든 의혹을 “짓밟았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했다.

플리니 2세(Pliny Secundus, Pliny the Younger)로부터 인용된 “증거”도 예수가 역사적이었는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미덥지 않은 가치를 가진다. 그 작품(서기 112년 무렵에 쓰여졌다)은 기독교도들이 “그리스도에게 신에게 하듯이 찬송을 한다”고 진술한다. 물론, 그런 일은 있었을 수 있지만, 그 사실이 어떻게 예수의 역사성을 반영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는 물론 내가 자문을 구한 다른 권위자들도 이해하지 못하고 혼동에 빠지게 되었다. 70년 이후의 신자들이 마치 그리스도가 신이었던 것처럼 행동한다는 사실은 예수가 지상에 존재했던 실제 인물이었는지 여부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는 것이 없다. 예수는 그리스도(메시아)와 똑같은 사상이지 않으며, 사람들이 무엇인가가 진실이라고 믿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진실이라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Justin Martyr에 대한 구절에서, McDowell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빌라도가 Tiberius에게 보낸 보고서가 있었을 것이라고 Justin이 추측했을 뿐이라는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5세기에, 누군가 그러한 보고서를 위조했는데, McDowell은 그것을 매우 기뻐하며 인용한다. 이런 것들은 전부 McDowell이 바보임을 증명하는 것이지, 예수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그 어느 누구도 빌라도의 보고서와 같은 것이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해 내지 못했다. 그 보고서도 없는데, 그보다도 훨씬 나중에 위조된 것으로부터 인용을 하는 것은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Thallus의 증언(이라고 생각되는 것, 왜냐하면 문제의 그 작품은 이제 유실되어져 버렸으므로)도 역사성 문제에 대해 전혀 가치가 없다. 남아 있는 부분에서, Julius Africanus는 서기 221년 이전 시기에 Thallus가, 십자가형이 있었던 시간에 지구를 뒤덮었다는 암흑이 예수의 죽음 때문이었다고 썼다고 진술한다. 그는 단지 당시 기독교도들이 믿고 있는 바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로서는 예수가 십자가형에 처해졌다고 하는 시간에 정말로 일식이 일어나기나 했는지에 대한 증거도 전혀 없다.

우리로서는 Mara Bar-Serapion의 편지를 인용한 조각들의 연대를 측정할 방법이 없다. 그것은 예수나 그리스도를 언급한 것도 아니고, 단지 당시의 유대인들이 (그 당시가 언제인지는 확실치 않다) 자신들의 “현명한 왕”을 죽였다고 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로서는 이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고, 그것은 McDowell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도 역사적 예수에 대한 증거로는 무가치하다. 이와 유사한 이유에서, 2세기에 쓰여진, Lucian의 빈정대는 언급도, 그가 당시의 기독교도들이 (상당한 수가 있었다) 자신들의 종파의 기초가 된 인물로서 팔레시타인에서 십자가형을 받은 사람이 있었다고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될 뿐, 아무런 가치도 없다. 역사적 증거로 사용되기에는 너무 늦게 쓰이기도 했고, Lucian이 그렇게 제시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McDowell의 “증거” 중 마지막 조각을 마지막을 위해 남겨 놓았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가장 우스꽝스러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로 예수의 역사적 존재에 대한 증거가 “브리타니카 백과사전 최신판에서 예수라는 바로 이 사람을 묘사하기 위해 20,000 단어를 사용했다. 그의 묘사는 아리스토텔레스, 키케로, 알렉산더, 줄리어스 시저, 부처, 공자, 마호메트 혹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에게 주어진 공간보다 더 많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이 축어적으로 다시 쓴, 이 구절에 있는 전체 인용문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만일 브리타니카가 어떤 주제에 대해, 우리가 역사적임을 알고 있는 다른 사람에 대해 하는 것보다 더 긴 내용을 썼다면, 더 긴 내용이 있는 쪽은 바로 그 긴 내용만큼 더욱 더 역사적이라는 것인 듯싶다. McDowell에게는 용과 유니콘, 마녀 등에 대한 브리타니카의 내용을 비교를 위해 일러주고 싶다. 짧게 말하자면, 브리타니카에 있는 내용의 길이는 어떤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편집자의 감정을 반영할 뿐이지, 그 주제가 역사적 인물인지 아닌지를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확실히 기독교도들의 역할과 예수에 대한 전설들은 역사적으로 중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예수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McDowell이 제우스에 관한 내용도 참조해 보고 제우스에 대한 내용이 브리타니카에 있기 때문에 역사적이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확인시켜 주는지 보기를 권하고 싶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었음을 보이기 위한 McDowell의 시도들이 볼품없이 실패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예수가 역사적 인물이 절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그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단정적인 결론에 이르기에는 너무나 엄청나게 부적절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이러한 증거 부족이 예수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매우 떨어뜨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McDowell의 책들과 같은 것들은 학자로서의 McDowell은 존재하지 않으며, 진리에 대한 새빨간 거짓말쟁이로는 매우 큰 존재라는 것을 매우 그럴듯하게 보여주고 있다.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모두 고려하면, 역사적 인물로서의 예수의 존재에 대한 사례를 입증하는 것은 다소 요원해질 것이다. 1) 신약을 제외하면 그 어떤 당대의 자료에도 예수의 존재에 대한 증명된, 진정한 언급이 존재하지 않는다(신약도 따지고 보면 당대의 자료가 아니다. 예수가 죽었다고 하는 시기로부터 30에서 70년 후에 쓰여졌기 때문이다). 2) 예수의 어머니가 났다고 하는 나자렛이라는 고을이, 그가 그 곳에서 살았다고 전해지는 시기에 존재하기나 했는지에 대한 증거도 전혀 없다. 3) 예수의 존재는 기독교의 기원이나 성장을 설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힌두의 신들이 실재인가?). 4) 신약의 설명들은 복음서들을 보기 전에는 예수에 대한 진짜 “전기”를 제공해주지 않는다. 초기에 바울이 쓴 서간문들은 그가 신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을 뿐이다. 5) 예수의 재판과 죽음에 대한 성서의 설명은 논리적으로 자기 모순적이고 법적으로 불가능하다. 예수는 그가 한 일들로 인해 로마든 유대의 것이든 법에 의해 처형되었을 리가 없다. 그가 한 일들을 뭐라고 부르든, 그것은 그 어느 쪽 체계에서도 죽을죄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누군가가 메시아의 죽음에 대한 구약의 예언들을, 법적으로는 전혀 이야기가 되지 않는 시나리오를 짜냄으로써 실현시키려 시도했던 것처럼 보인다.


--------------------------------------------------------------------------------

참고문헌

Drews, Arthur. The Christ Myth. Chicago: The Open Court Publishing Co, [1910].

Drews, Arthur. Witnesses to the Historicity of Jesus. Chicago: Open Court, n.d. [c 1912].

Guignebert, Charles. Jesus. New York: University Books, 1956.

Lardner, Nathaniel. Jewish Testimonies. The Works, volume 6. London: W. Bell, 1838.

McDowell, Josh. Evidence that Demands a Verdict. San Bernadino, CA: Campus Crusade for Christ, 1972.

Stein, Gordon. An Anthology of Atheism and Rationalism. Buffalo, NY: Prometheus

Wells, G.A. Did Jesus Exist? London: Elek/Pemberton Books, 1975.

Wells, G.A. The Jesus of the Early Christians. London: Pemberton Books, 1971.


--------------------------------------------------------------------------------

Comment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98 [충격적인 예수의 어록(기독교 경전내용)] 댓글+11 가로수 2011.03.07 9723
97 섬득한 신의 행동 댓글+10 가로수 2007.08.08 10116
96 12월 25일 예수탄생일이 아닌데 왜 지켜야 되는가? 댓글+27 버드랑자 2006.12.23 21026
95 무능한 아버지를 위한 변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6) 신생왕 2006.12.15 5976
94 왕이 태어나면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5) 댓글+2 신생왕 2006.12.11 6490
93 소음에 묻혀버린 크리스마스 메시지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4) 신생왕 2006.12.09 5378
92 크리스마스는 노는 날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3) 신생왕 2006.12.07 5279
91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날인가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2) 신생왕 2006.12.05 4906
90 아버지는 왜 그렇게 무능해?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1) 댓글+1 신생왕 2006.12.05 5575
89 '예수신화 만든 유대인 범인을 잡다'-특별기고 (펌) 댓글+4 동의보감 2006.09.28 9463
88 여기까지의 (펌글)은 다음 '개종'카페에 게시된 글입니다 동의보감 2006.09.28 5053
87 십자가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십자가 사건 특별전-제2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5855
86 십자가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십자가 사건 특별전-제1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6408
85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공생애 신화 특별전-제3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6044
84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공생애 신화 특별전-제2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5906
83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공생애 신화 특별전-제1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6473
82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탄생신화 특별전-제02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5160
81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탄생신화 특별전-제01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6414
80 <안내>시리즈 전부 48시간 게시후 해당 게시판이동함 ravencrow 2006.09.28 4490
79 예수탄생과 동방박사 록도 2006.07.09 7493
Category
글이 없습니다.
글이 없습니다.
State
  • 현재 접속자 205 명
  • 오늘 방문자 4,440 명
  • 어제 방문자 6,870 명
  • 최대 방문자 7,815 명
  • 전체 방문자 1,770,181 명
  • 전체 게시물 14,418 개
  • 전체 댓글수 38,023 개
  • 전체 회원수 1,676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