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by staire

'예수신화 만든 유대인 범인을 잡다'-특별기고 (펌)

동의보감 4 5,820 2006.09.28 19:32
[교리] '예수신화 만든 유대인 범인을 잡다'-특별기고
번호 : 10   글쓴이 : gottama
조회 : 162   스크랩 : 0   날짜 : 2006.09.13 14:37
'예수신화 만든 유대인 범인을 잡다!'
    -옮긴이:잿빛추억-
    10장 예수신화
  download.php?grpid=13yPT&fldid=H7ZF&dataid=10&fileid=3&regdt=20060913143716&disk=16&grpcode=AdConversion&dncnt=N&.jpg

내가 가장 선호하는 종교의 정의는 ‘신화의 오역’ 이라는 것이다.
영적인 상징에는 마땅히 역사적 준거가 있다고 생각할 때 어김없이 오역이 이루어진다.
-조지프 캠벨-
 
피타고라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이집트의 미스테리아를 그리스로 들여왔을 때,
그들은 단지 오시리스 신앙을 제시하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오시리스 미스테리아에는 BC 5세기의 아테네인들에게 너무나 이단적으로 보인 여러 교리가
담겨 있었다. 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교리가 특히 그랬다.
그래서 단순히 외래의 미신을 들여왔다는 비난과 박해를 피하기 위해, 피타고라스 학파는
그리스의 작은신 디오니소스를 오시리스의 그리스 버전으로 탈바꿈시켰다.
(소크라테스도 이단적인 주장을 하다 독배를 들고 죽었다는 점을 상기하라.)
 
이런 식으로 그리스인들은 그들 땅에서 자생한 신앙인 것처럼 이집트의 미스테리아를 도입했다.
다른 모든 지중해 문화권에서도 이런 식으로 미스테리아를 받아들였다.
그들 역시 토착의 신격을 탈바꿈시켜서, 이집트 신과 같이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으로 만들었다.
 
예수신화를 만든 유대인 종교신화작가(作家)는 "테라페우테"파
고대 미스테리아를 도입하고자 했던 테라페우테와 같은 유대인 피타고라스 학파 공동체도
5세기 앞서서 피타고라스 학파가 맞닥뜨린 것과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미스테리아를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려면 오시리스-디오니소스를
유대인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토착의 신화적 인물이 필요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는 여러 남신이나 여신이 없었다.
오직 유일신 여호와 숭배만을 강요받았기 때문이다.
여호와는 하나One라는 플라톤의 최고신이나 제우스 신과 동일시될 수 있었지만, 이교도의
신들처럼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신화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신화적 이야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다.
주변 문화와 달리 유대인들은 작은 신격을 숭배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시리스-디오니소스로
탈바꿈시킬 수 있는 유대인의 신화적 인물은 오직 하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메시아가 그것이다.
 
메시아Messiah라는 헤브라이어 낱말은 ‘기름 부음을 받음(혹은 받은 자)’ 이라는 뜻인데,
그리스어로는 ‘크리스토스Christos’ 이다.
이 말은 원래 왕이나 제사장을 가리킬 때 쓰인 말이었다.
그들은 의식을 거행할 때 기름 부음을 받았던 것이다.
구약에서는 군림하고 있는 왕을 가리킬 때 빈번하게 사용되었다.
그 후 유대인들이 정복당한 민족이 되었을 때, 압제자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도래할
미래의 구원자---위대한 다윗 왕의 혈통을 지닌 왕으로 군림하며 과거와 같은 다윗의 영광
상태를 회복시키기 위해 도래할 구원자---를 상징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BC 63년에 로마가 유대 지방을 점령한 후, 유대인들의 상황은 점점 더 절망적이 되었다.
그들을 박해하는 강대한 제국을 깨뜨릴 수 있는 것은 오직 야훼밖에 없는 것 같았고, 따라서
그들의 수천년에 이은 피지배는 결국 완전한 절망으로 이어져 메시아는 세상의 종말을 알리기
위해 도래할 초자연적인 인물로 새롭게 변모하기에 이른다.
 
예수 미스테리아의 구성을 살펴보면, 유대인 미스테리아의 창작자는 죽었다가 부활한 미스테리아
신인과 유대인의 메시아를 종합하는 것 밖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복음서 최초 원안자들에게는 예수가 메시아라고 기록 하는 수 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메시아는 반드시 다윗의 혈통을 이어받아야 하는데, 예수가 그러했다고 복음서에 기록된 것이다.
 
예수신화 창작자는 베드로의 입을 통해 유대적 디오니소스 메시아라고 부르게 한다
(마가복음8:29).
그는 여호수아(그리스어로 이에소우스)라고 명명되었는데, 그건 메시아가 갖?될 것으로 미리
정해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이름이었다
(요세푸스가 기록한 여러 메시아들도 또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여호수아와
자신을 동일시했다는 점을 상기하라 : 저자주).
하지만 사실상 ‘메시아 예수’는 죽었다가 부활한 ‘신인 예수’라는 전혀 다른 인물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기 위한 얇은 베일에 지나지 않는다.
 
첫번째 작업은 예수신인의 탄생 이야기를 어떻게든 다윗과 연결시키는 중요한 첫번째 작업이다.
마가자료에는 없는 어설픈 족보가 급하게 누가,마태복음에 끼워 넣어진 것을 보면  그 점이 특히
분명해진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제시하는 족보는 요셉이 다윗의 혈통이라는 것을 보여
주려 부단히도 노력한 흔적이다.
하지만 두 복음서의 족보를 족보로 인정하는 유대교 학자나 역사학자는  단 한사람도 없다.
아예 거론하는 것 자체를 꺼릴만큼 족보 축에도 낄 수 없는 정도다.
거의 억지에 가까운 엉터리 급조작 족보인 탓에 도리어 복음서 족보 자체가 예수가 전혀 요셉의
아들이 아니라고 말해버린다.
다만 야훼나 제우스의 아들인 것이다.
 
마태와 누가의 족보를 연구한 신학적 결론은 이미 나와 있다.
족보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다(극단적 근본 복음주의자들은 제외).
그토록 수많은 주석가들이 두 복음서 안의 그런 기이한 모순을 간과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태와 누가는 자기가 한말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그것이 후대에 덧붙인 것이고 잘못 편집된 결과라 할지라도, 그러한 모순이 아무런 의도 없이
복음서 안에 계속 남아 있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예수신화 작가들이 후세의 예리한 이성을 짐작이나 했다면 분명 복음서 안에 수많은 억지
포션을 절대 삽입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미스테리아 명제에 의하면 이런 이상한 수수께끼를 해결할 수 있다.
우리의 명제에 의하면 복음서 작가들은 스스로 설정한 모순을 잘 알고 있었다.
그들은 또 자신들의 기록이 비밀 가르침을 암호화한 신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가 유대인의 메시아이며, 다윗의 아들이라고 말하는 족보를 제시하면서,
동시에 ‘들을 귀 있는 자’ 에게는 예수가 사실상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이며 야훼나 제우스와
동정녀 어머니 마리아나 세레네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제우스와 동정녀 셀레네 사이의 구세주 탄생신화나 그 전의 원본 신화 오시리스 구세주
탄생에 맞추기 위해서는 야훼의 아들이라는 도식이 필요하다.
이 정도의 신화 구비요건은 초등생도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누가와 마태가 제시한 족보는 전적으로 서로 다르다.
그 이유는 그 족보가 문학적 허구이며, 실제로는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신화 작가 구룹도 이 점을 분명히 알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중요한 것은 메시아라는 매개자를 통해 유대인들이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신화 속에
암호화된 비밀 가르침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려말의 80년 몽골 지배나 일제36년의 피지배 기간 동안 얼마나 엄청난 그들의 신화나
 동화 풍속,문화.. 등이 우리 민족 뼈속까지 침투해 들어왔는지를 상기하라! 
 우리 민족의 뼈속까지 몽골과 왜의 문화가 지금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유대인들은 수천년간 피지배 위치에 있었다.)
 
이점에 대해서 오리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설명한 대로 ‘이야기 구성상의 모순, 불합리하고 불가능한 상황’은 모두가 고의로 그렇게 꾸며진
것이다. 그것은 독자로 하여금 너무 오래 저차원적인, 문자 그대로의 해석에 매달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일 이야기가 철두철미하게 우아하고 일관성이 있다는 게 명백하면, 우리는 명백한
의미 이상의 어떤 의미가 <성서>에 함축되어 있다고 믿지 않게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솝의 우화가 우화적이지 않고 정확하게 현실적이라면 전혀 가치도 의미도 없게 될 것이다.)
예수 신화가 다소 어눌하고 엉터리가 아니라 논리적,이성적으로 정확하다면 아무도 그것을 종교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다. 고대나 현대나 어리석은 종교적 인간 습성은 변함이 없다.
 
‘어떤 함정’과 ‘장벽과 불가능성’을<성서> 안에 함께 엮어 놓은 것은 독자가 ‘문자에 얽매여서 더욱
신성한 의미를 터득하지 못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문자에 얽매이면 결국 예수신화는 분쟁을 촉발하고 현실과 유리되고 사회에서 동떨어진 배타적
전투적, 자기 헌납적 집단을 형성하면서 정도에 따라 모두 정신분열증에 빠지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식으로 예수 이야기는 메시아에 대한 유대인의 기대에 최대한 부응하는 최적의 처방이다. 
예수신화는 [팔레스틴 블레셋을 포함한 거대 종족 속의 히브리인→이집트→앗시라아→힛타이트→
바빌로니아→페르시아→알렉산더→시리아→로마.......등]에 의한 수천년간의 지긋지긋한  
피지배에서 완전히 절망해버린 유대인들의 절규에 답한 유일한 해답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비교해 보라!
 일제 36년의 우리 민족의 고통과 절망을 
 유대인들의 수천년 피지배에서 오는 고통과를...)
download.php?grpid=13yPT&amp;fldid=H7ZF&amp;dataid=10&amp;fileid=5&amp;regdt=20060913143716&amp;disk=25&amp;grpcode=AdConversion&amp;dncnt=N&amp;.jpgdownload.php?grpid=13yPT&amp;fldid=H7ZF&amp;dataid=10&amp;fileid=4&amp;regdt=20060913143716&amp;disk=9&amp;grpcode=AdConversion&amp;dncnt=N&amp;.jpgdownload.php?grpid=13yPT&amp;fldid=H7ZF&amp;dataid=10&amp;fileid=6&amp;regdt=20060913143716&amp;disk=27&amp;grpcode=AdConversion&amp;dncnt=N&amp;.jpgdownload.php?grpid=13yPT&amp;fldid=H7ZF&amp;dataid=10&amp;fileid=1&amp;regdt=20060913143716&amp;disk=6&amp;grpcode=AdConversion&amp;dncnt=N&amp;.jpgdownload.php?grpid=13yPT&amp;fldid=H7ZF&amp;dataid=10&amp;fileid=2&amp;regdt=20060913143716&amp;disk=2&amp;grpcode=AdConversion&amp;dncnt=N&amp;.jpg
완벽히 절망해버린 민족에게 신화는 유일한 희망이 된다.
(우리 한민족도 절망할 때 늘 신화를 꺼내들었다는 점을 상기하라.)
예수신화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었던 유대인들의 역사적 상황과 맞아 떨어진 것은
당시에 편만하고 편만했던 
[이집트 오시리스 부활 신화+그리스 철학.신화+페르시아의 강력한 조로아스터 부활신화+
비단길로 도입된 획기적인 불교 컨텐츠+초기 알렉산더 정복 후의 인도와의 교류에 의한
불교.인도사상+로마.시리아.중동.유럽 일대의 일체 신화적 분위기=예수신화]라는
행운의 시기를 만난 예수신화 작가들이다.

undefined
undefined그러면서 동시에 메시아가 예수의 참된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을 명백히 한다.
마태복음(22:41-46)에서 예수는 바리새인들에게 '메시아(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고 묻는다.
바리새인들은 다윗의 자손이라고 대답한다.
그러자 예수가 말한다.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는데, 어찌 그리스도가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그러자 ‘한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도 없었다’.
(예수신화 작가가 이 문학적으로 대화를 삽입한 이유는 희랍문명을 받아들인 개혁적
 디아스포라 개혁.자유주의 유대인들이 바리파파등 근본주의 유대인들의 주장이 구태의연하다는
 것을 예수신인을 빌어 간접 논박하려는 것이다.)

또 예컨대 근본주의 유대인의 메시아는 적의 수중에서 유대 지방을 해방시키고 다윗의 계보를
다시 세우기 위해 도래하고 로마압제에서 해방시킬 전사형의 정복왕이어야 했던 반면 디아스포라
개혁주의 유대인들의 메시아는 오시리스-디오니소스적인 희랍형 구세주이어야만 했다.
디아스포라 개혁주의 유대인들은 근본주의 유대파에게 배신자로 낙인찍혔고 소외되어 살 방도는
오직 동화된 헬라문화와 유대교를 결합하는 길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개혁주의 유대인들에게 매우 절박한 것이었다. 

그러나 재판정에서 예수는 분명하게 선언한다.
 
"내 왕국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만일 내 왕국이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다면,
 내 종(추종자)들이 맞서 싸워서 내가 유대인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했을 것이다.
 내 왕국은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다."
  (요한복음18:36-37)
  
전형적인 희랍 로고스 철학을 기반으로 씌여진 요한복음 저자의 주장은 매우 간단하다.
유대인이 원하는 영토회복의 다윗왕 부활이 아닌 희랍철학적인 광폭 구세주 메시아를 원한다는
두계파의 갈등을 고스라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마가복음 8장에서 베드로가 예수를 메시아라고 믿는다고 말하자, 예수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다만 사람의 아들은 죽어서 부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예언한다.
유대인 메시아가 그런 식으로 죽을 수는 없기 때문에 베드로는 예수를 꾸짖는다
(개역 <성서>에는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했다’고 다소 부드럽게 번역되어 있지만,
영문 <성서>에서는 ‘베드로가 예수를 한쪽으로 데려가’ 크게 ‘꾸짖는다<rebuke>’ 라는
다음 구절에서 예수가 베드로를 ‘꾸짖는다’고 할 때와 똑같은 동사가 쓰였다는 점에 주목하라
:옮긴이 주)
 
베드로의 꾸짖음에 대해 예수는 역으로 베드로를 사탄이라고 일컬으며 꾸짖는다!
베드로는 승리자 메시아로서의 구원자라는 유대인의 사고에서, 희생양 신인으로서의 구원자
(영토회복의 군주에서 희생양 구세주라는 개념은 디오니소스나 아폴로등 전적으로 희랍신화의
사상이다.)
라는 이교도의 사고로 전환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비난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전통적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유대의 모든 적을 무찌르고 승리를 거둘 것으로 기대된 메시아가
범죄자처럼 처형당해 죽을 수도 있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었다.
사실 구약 신명기(21:23)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다.’
 
메시아는 그렇게 저주 받은 자일 수 없었다.
유대교에서는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 죽음으로써 구원을 하는 자가 메시아라고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일제로 부터 조선을 독립은 안 시켜주고 사람 마음만 구원해 주는 신화적
 김구선생이라면 누가 반기겠는가?)
그것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역할이다.
 
따라서 자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할 때, 예수는 군사적 승리를 거두어 유대 민족을 해방시켜야 할
상하이 임시정부의 광복군적 사명을 띤 유대인 메시아가 아니라, 영적 승리를 거두어 신비한
자유를 얻는 미스테리아의 신인인 것으로 드러난다.
로마와의 전쟁은 기나마 조금 남고 뿔뿔이 흩어진 히브리 민족의 영구한 멸종을 초래할 뿐이니
전쟁을 통한 민족 해방은 포기하고 이대로 살면서 희랍문명을 수용하자는 개혁파 유대인들의
절규다.이런 개혁파 유대인들의 주장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성서는 이방인 할례와 구원 혜택 가능
건으로 예루살렘 유대인들과 디아스포라간의 논쟁을 벌이는 사도행전을 들 수 있다. 
 
예수가 불명예스럽게 처형되고, 압제자에게 명백히 군사적 승리를 거두지 못한다는 것을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는 어렵고 두려운 것이었다.
그런 어려움을 해소시키기 위해 예수는 다시 돌아올 거라고 주장하는 자로 그려진다. 
이번에는 이스라엘 영토회복은 못하지만 오시리스나 디오니소스, 조로아스터처럼 부활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볼 만 하다는 편리한 논리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죽음과 부활을 완수한 후 예수는 속히 재림할 거라고 약속한다.
적을 쳐부수고 승리를 거둠으로써 유대인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download.php?grpid=13yPT&amp;fldid=H7ZF&amp;dataid=10&amp;fileid=7&amp;regdt=20060913143716&amp;disk=26&amp;grpcode=AdConversion&amp;dncnt=N&amp;.gif
[이 게시물은 반기련님에 의해 2006-09-29 23:47:52 자유 게시판에서 이동 됨]

Author

Lv.1 동의보감  실버
200 (2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회색영혼 2006.09.29 00:48
멋진 글이네요. 스크랩합니다. 일거에 찐뜩 찐득한 잔먼지를 씻어내는 듯.
Apokalyptein 2006.10.27 21:47
지배당하기 싫다고 만든게 예수로구만ㅡㅡㅋ
Apokalyptein 2006.10.27 21:48
그래서 이스라엘이 주변나라들 뿌시고 다니는건가요ㅡㅡ???

(이스라엘도 프리메이슨에 관계가 많든데.....)
외계인 2008.05.30 13:49
도대체 지나라 신화나 역사도 제대로 모르는 것들이 남의 나라 남의 민족신화에 열광하는것들의 뇌를 한번 열어서 연구 해 봐야 한다. 개독교들에게 묻고 싶다. 조선왕조실록을 한장이라도 읽어 봤는지, 고려왕조실록은? 그런책이 있는지는 아느냐? 이순신장군에대해선, 세종대왕에대해선, 퇴계선생대해선, 김구선생에대해선 얼마나 아느냐? 한마디로 무개념, 무뇌아, 맹박표 친일, 친미 마니아들이지! ㅌㅌㅌ
도대체 이스라엘이 어디냐? 그 나라 조상들이 우리한테 해 준게 뭔데? 제발 정신들좀 차리고 공부 좀 제대로 해라. 바보 멍청이들아!!!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98 [충격적인 예수의 어록(기독교 경전내용)] 가로수 2011.03.07 3461
97 섬득한 신의 행동 댓글+8 가로수 2007.08.08 4795
96 12월 25일 예수탄생일이 아닌데 왜 지켜야 되는가? 댓글+20 버드랑자 2006.12.23 7227
95 무능한 아버지를 위한 변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6) 신생왕 2006.12.15 3561
94 왕이 태어나면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5) 댓글+2 신생왕 2006.12.11 3629
93 소음에 묻혀버린 크리스마스 메시지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4) 신생왕 2006.12.09 3142
92 크리스마스는 노는 날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3) 신생왕 2006.12.07 3119
91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날인가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2) 신생왕 2006.12.05 2793
90 아버지는 왜 그렇게 무능해? (크리스마스, 그 계절병에 몸살을 앓는 벗들을 위해 1) 댓글+1 신생왕 2006.12.05 3264
열람중 '예수신화 만든 유대인 범인을 잡다'-특별기고 (펌) 댓글+4 동의보감 2006.09.28 5821
88 여기까지의 (펌글)은 다음 '개종'카페에 게시된 글입니다 동의보감 2006.09.28 3033
87 십자가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십자가 사건 특별전-제2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3673
86 십자가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십자가 사건 특별전-제1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3678
85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공생애 신화 특별전-제3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3514
84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공생애 신화 특별전-제2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3327
83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공생애 신화 특별전-제1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3891
82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탄생신화 특별전-제02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3197
81 [세계최초]예수+디오니소스 탄생신화 특별전-제01회 - 펌 동의보감 2006.09.28 4341
80 <안내>시리즈 전부 48시간 게시후 해당 게시판이동함 ravencrow 2006.09.28 2719
79 예수탄생과 동방박사 록도 2006.07.09 4851
Category
반응형 구글광고 등
State
  • 현재 접속자 34 명
  • 오늘 방문자 277 명
  • 어제 방문자 624 명
  • 최대 방문자 1,317 명
  • 전체 방문자 229,487 명
  • 전체 게시물 15,120 개
  • 전체 댓글수 38,528 개
  • 전체 회원수 1,527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