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예수의 부활과 그 이후 행적들에 관해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by staire

[잡담] 예수의 부활과 그 이후 행적들에 관해

오디세이 0 3,582 2003.04.21 22:29

어제 4월 20일이 2003년의 부활절이었습니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부활절 교회 예배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

예수의 탄생이 고대의 동지절 축일을 도입하여 설정된 것과 마찬가지로, 저 밑의 글  <33번 부활절의 기원(by 인류애)>에서 이미 언급되었다시피 부활절 역시 예수의 부활시기를 정확히 알아서 정한 것이 아니고, 기독교가 로마에 도입되어 성립되면서, 기존에 있었던 축일(祝日) 혹은 제일(際日)에다가 기독교적 색채를 덧입혀 활용된 절기입니다.

예수의 탄생은 이미 전의 많은 글에서 언급되었다시피 태어난 때가 이미 복음서내에서 서로 엇갈리고 있으며, 어느 것을 선택하던지 정확한 시기를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서만으로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한 시기 역시 정확하게 추정할 길이 없습니다.

다시 말해, 예수의 생몰연대와 시기를 우리는 복음서에서 추정할 마땅한 근거로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필요에 의해 고대의 절기가 기독교에 유입되면서, 그리고, 그것이 하나의 관습화, 전통화되면서 크리스마스와 4월 3번째 주일을 부활절로 수용하고 있지만.... 그리고, 이런 사실을 교회에서 가르쳐 주지도 가르칠 만한 이유도 없겠지요...

여하튼, 앞부분의 쓸데없는 예식과 무척 긴 찬양대의 찬양이 끝난후 목사의 설교가 이어졌습니다.

인용한 바이블의 구절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부분인 28장 16절-20절이었습니다.

<표준새번역>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예수께서 다가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아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 구절만 따로 띄워놓고 보면, 이해하기 힘드니 28장에 전체를 조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예수가 죽은 후, 막달라 마리아라는 예수의 신봉자 혹은 정부와 그 밖의 마리아(^^)가 무덤으로 갔더니,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가 살아났으니 어서 빨리 이 소식을 제자들에게 전하고, 예수는 갈릴리로 갔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여편네들이 기뻐서 제자들에게 가다가 보니, 예수가 뿅하고 나타나서 여편테들한테 갈릴리로 갈 것이라고 다시 한번 중복하여 이야기합니다.

한편, 이 이야기를 군인들한테 전해들은 유대의 제사장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갔다고 전해라" 라고 군인들에게 돈을 주고 이야기할 것을 종용하여 이런 연유로 유대사람들에게는 예수의 부활이 이렇게 퍼져있다고 마태복음의 저자는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나서, 갈릴리에서 11명의 제자들이 예수를 만나고, 저 위에 인용한 구절이 이어집니다. 

복음서의 예수의 부활구절은 모두 실려있습니다만... 매우 아쉽게도 예수가 부활했다는 주장만 있지, 부활과 이후의 세밀한 정황을 묘사한 구절들은 모두 다르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무덤에서의 장면은 마태와 비슷하지만, 유대 제사장들의 장면은 없고, 11명의 제자들이 예수를 만나 예수가 제자들에게 말한 구절은 전혀 다르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함을 받을 것이다. 믿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표적들이 따를 터인데, 곧 그들은 내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으며, 새 방언으로 말하며, 손으로 뱀을 집어 들며, 독약을 마실지라도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며,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으면 나을 것이다."

누가복음을 볼까요?

막달라 마리아와 여타 마리아가 무덤으로 찾아오는 장면은 같습니다만, 난데없이 베드로가 무덤을 확인하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마태와 마가에서는 "갈릴리"로 가라는 천사의 말이 언급됩니다만, 누가에서는 빠져있습니다. 그리고,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2명의 제자만이 예수를 만납니다. 처음에는 몰라보다가 나중에 알아보고, 예수의 상처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두명의 제자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곧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으시고, 사흘째 되는 날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실 것이며, 그의 이름으로 죄를 사함받게 하는 회개가 모든 민족에게 전파될 것이다  하였다. 너희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일의 증인이다. 보아라,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낸다. 그러므로 너희는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입을 때까지, 이 성에 머물러 있어라."

요한복음은 예수의 부활과 그 이후의 장면이 2장에 걸쳐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만, 또 다르게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여자들과 베드로가 무덤이 빈 것을 확인한 후에, 울고 있는 여자에게 천사와 예수가 거의 동시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제자들 모두에게 예수가 나타나고, "도마"가 예수의 상처를 확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또 뒤에 앞의 3가지 복음서에는 없는 설화가 여러가지 삽입됩니다. 주로 베드로와 예수의 대화로 엮여 있습니다.

4가지 복음서에 공통적인 요소는 두 여자(막달라 마리아, 마리아)가 무덤을 찾아가는 장면과 천사가 등장하는 요소 뿐입니다. 아쉽게도 이야기의 순서나 배치, 예수의 부활 이후의 언행과 행적은 모두 다릅니다. 같은 것을 본 사람들이 서로 다르게 이야기하고, 저술되었다라고 간단히 치부해 버리면 속은 편하겠지만...

가장 세밀하고, 줄줄이 여러가지 에피소드를 우겨넣은 요한복음은 뒷전으로 빼겠습니다. 소위 공관복음으라는 마태,마가,누가 3복음서와는 너무나 그 장면과 진술이 달라 그냥 보기에도 구질구질하게 이야기를 늘이고, 만들어 넣었다는 티가 너무 나니까요...

마가가 가장 먼저 작성되었다고 알려져 있고, 실제로 예수의 부활과 이후의 장면에 대해 가장 간략하게 작성되었습니다. 마태는 마가의 이 이야기에다가 유대 제사장들의 에피소드를 더 삽입하였고, 누가는 무덤에서의 부활장면은 비슷하게 묘사하다가, 좀 더 드라마틱하게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가 두 제자와 만나는 에피소드로 길게 늘이면서 극적 효과를 더했습니다.

목사가 인용한 마태의 구절은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모두 모아놓고, 이야기하였지만 이런 장면은 마가와 일치할 뿐이라는 것이지요. 누가에서는 엠마오의 장면에서 끝나버립니다.

그리고,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만나 이야기한 예수의 마지막 설교도 단 한구절... 마가 "너희는 온 세상에 나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여라" 와 마태의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만 좀 비슷하게 이야기 하고 있고, 마가에서는 뜬금없이 믿는 사람들은 뱀을 만지고, 독약을 먹어도 괜찮을 거라는 둥 이상한 소리를 해댑니다.

같은 장면을 여러 사람이 다르게 기술했다?? 예수의 제자들이 비록 무식한 하류 계층의 인물들로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그들의 위대한 선생이자, 신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한 이야기를 이렇게 서로 다르게 들었을까요?

어찌되었건 마가의 부활과 이후의 장면이 처음 작성되었다고 보면, 이후 마태의 저자들이 이 장면을 다르게 각색하여 저술했으며, 누가는 또 다르게 좀 더 드라마틱하게, 요한은 완전히 다르게 각색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주목할 것은 마태의 추가된 구절일 것입니다. 유대의 제사장들에 대한 에피소드인데, 실제로 유대지역에서 예수라는 인물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가 수십년 후에 퍼지가 시작하자, 이를 두고 분분하게 유대지역에서 말이 많았고, 예수의 시체를 몰래 빼내었다라는 루머가 상당히 떠돌았다고 보여집니다. 마태의 저자는 막 생성되기 시작한 신도들에게 이를 변호하고자 이 장면을 삽입하였다고 판단됩니다.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았는데...

결론적으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예수의 부활" 그 자체일 것입니다. 이미 여러 글에서 언급되었다 시피 "부활"이라는 주제, 죽었다가 살아나는 "신-왕" 이라는 주제는 전혀 생소한 개념이 아닙니다. 이집트의 오시리스 신화, 그리스의 디오니소스, 수메르 두무지, 시리아의 아티스, 아도니스 등 고대로 부터 죽고 살아나는 신과 그에 관한 수많은 전설이 퍼져 있었으며, 또한 관련된 수많은 제례가 이미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부활의 제례와 의식에 대한 참여를 통해 사람들은 새롭게 정화되는 영성을 부여받기를 원하였지요.
(이에 대한 자세한 의식과 내용을 보고자 한다면, 제임스 프레이저의 &lt;황금가지&gt;나, 죠셉 켐벨의 &lt;신의 가면&gt;시리즈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예수의 부활 이전의 이러한 신화적 전통과 예수의 부활이 다른 것이라면, 예수의 부활사건은 이러한 신화적 밑바탕 위에서 새롭게, 다른 방향으로 각색된 것이라는 것이지요...바로, 구약의 많은 이야기들이 그러하듯이 "신화"를 "역사화"시켰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엄청난 히트를 쳤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이렇게 "역사화" 된 예수의 부활을 다시 "신화"로 되돌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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