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용] 예수 & 로마 (2)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by staire

[인용] 예수 & 로마 (2)

오디세이 0 4,460 2003.01.13 17:02

이름  작은이
제목  [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Christian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 강 민 형)
날 짜 (Date): 1996년01월05일(금) 21시54분11초 KST
제 목(Title): 호머심슨님의 성경의 오류 - 가이사의 것..

성경에 오류는 없습니다. 오류는 그것을 찾으려고 애쓰는 자에게만 보일 뿐입니다.

동감입니다. 성경에 오류가 없다는 `콩껍질을 쓰고 있는 한 오류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건 그렇고 딴 얘기나 좀 해볼까요. 저는 성경에 오류가 있느니 없느니 하는 것보다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는 예수의 발언, 호머심슨님께서 인용하신 그 구절에 더 흥미가 있습니다.

도대체 그 말은 세금을 내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내지 말라는 얘긴가요? 기독교회측의 설명은 예수의 발언만큼이나 애매합니다. 예를 들어 `오픈 성경의 주석을 참조하면 이렇더군요.

"황제의 형상이 새겨진 동전은 황제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인간은 (창세기 1:27)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황제에게는 그가 만든 동전만 돌려주면 되지만 하나님께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을 드려야 하는 것이다. (마가 12:30)"
어찌됐든 황제에게는 세금을 내야 한다는 뜻이군요. 예수의 발언이 고작 이런 의미라면 질문한 바리새인들 또한 그 의미를 알아듣지 못했을 리 없지요. 어째서 그들은 예수의 대답에 대해 `심히 기이하게 여겼을까요?

먼저 이러한 질문의 배경을 살펴봅시다. 예수 당시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직접 바친 것은 유대와 사마리아 지방입니다. 이 지역의 통치자인 아켈라오스는 AD 6년에 일찌감치 실각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는 로마의 직할구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가 살던 갈릴리는 다릅니다. 예수 당시까지 아켈라오스의 동생인 안티파스가 징세권을 쥐고 있었습니다. 이곳 주민들을 쥐어짜던 인두세는 안티파스에게 내는 것보다 신전세가 더 큰 부담이었습니다. 게다가 신전세보다도 더 큰 부담은 신전에 대한 갖가지 헌납물이었지요. 십일조 등 사소한(?) 것들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신전에 대한 조세 부담은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구약서의 율법대로 거두었다면 하층민들은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였지요. (따라서 이 당시 이미 세세한 율법은 사문화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만...) 결론적으로, 예수가 활동하던 갈릴리 지방에서는 로마 제국에 내는 세금보다도 신전세에 대해 민중들의 적개심이 집중되었습니다. 황제에게 내는 세금? 그것은 호머심슨님 말씀대로 교리 문제의 올가미에 불과했지요.

이 이론에는 한 가지 반론이 있습니다(사족이지만). 예수보다 약 반세기 전에 활동한 `갈릴리의 유다가 "하느님 이외의, 죽지 않으면 안 되는 인간을 지배자로 받아들여 로마에 세금을 내는 것은 치욕이다"라고 외치며 반로마 봉기를 일으켰다는 점을 들어 갈릴리의 정서도 유대나 사마리아와 같이 로마에 대한 징세 저항을 강하게 시도했다는 주장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갈릴리의 유다라는 명칭은 유다가 갈릴리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나자렛 예수, `이스가리웃의 유다라는 식으로 출신지를 붙여 칭하는 이름은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갈릴리의 유다가 갈릴리에서 활동했다면 `갈릴리의 유다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신약학의 기초에 속하는 것이며 저의 글에서 이러한 자질구레한 점까지 밝혀 쓰는 일은 드뭅니다만 연전에 이런 식의 짜증스러운 반론에 시달린 기억이 있어 여기에 굳이 밝힙니다. 허술한 `역사 지식을 대충 짜맞추어 빈약한 반론을 하지 마시기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다시 본래의 줄거리로 돌아와서 - 예수 당시의 갈릴리 민중들을 괴롭히던 것은 로마가 아니라 신전의 착취였습니다. 그런데 이 한가한 바리새인은 로마에 대한 세금을 문제삼고 있습니다. 당연히 예수는 심사가 뒤틀립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세금을 내는 데에 쓰는 동전을 가져와 보시오."
누군가가 로마의 데나리온 화폐를 가져왔겠지요. 거기에는 황제 티베리우스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이것은 이방인의 `우상이 새겨져 있으므로 신전에는 바칠 수 없습니다. 신전에 내려면 신전 경내에서 환전상에게 비싼 수수료를 뜯기며 옛날 화폐로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로마 황제의 것이 아닌가? 황제의 것이라면 황제에게나 바치시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서 긁어가고 있으니 말이야..." (마가 12:13 - 12:17)
예수의 통렬한 야유에는 가시가 돋쳐 있습니다. 섣불리 질문한 자는 착취자의 입장으로 굴러떨어져 더 이상 반론을 펴지 못합니다.

통탄할 일은 이 통쾌한 예수의 야유를 교회 측에서는 2000년간이나 `정치와 종교의 분리라는 정도의 의미로 탈색시키고 말았다는 점입니다. 정치는 정치가에게 맡기고 일체의 반체제 운동에는 가담하지 말라는 비열한 발언으로 폄하하고 있는 거죠. 착취의 선두에 서서 권력자의 개 노릇을 한 기독교 교회사의 뿌리는 이처럼 깊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는 반로마 운동을 현세적이라 하여 백안시하며 먼 피안에만 눈을 돌리고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민중신학이 그리는 예수상이 예수의 총체적 아이덴티티를 덮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 장면에서는 민중 신학적인 해석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라는 피맺힌 예수의 외침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등록일 : 2003-01-13 [15:42] | 조회 : 12 | 추천 : 0 | 다운 : 0 | MSIE 6.0(Windows 98 |
 
 
※ 네티즌 의견 보기
 
[오필승] - 로마의 총독들
아켈라오의 해임 이후 로마의 총독은 아그립바 1세가 왕으로 통치하던 시기를 제외하고 유대를 다스렸다. 디베리야 황제는 총독을 자주 바꾸지 않았다. 아픈 사람의 상처에 앉아 피를 빨아먹는 파리는 점차 그것에 만족을 하지만, 만일 이 파리를 쫓아내면 새로운 파리떼가 몰려들어 더 극성을 부리게 된다는 것이 황제의 이유였다. 총독의 착취가 얼마나 심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설명인 셈이다.

- 유대의 대 반란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로마가 부과한 과중한 세금은 백성들로 하여금 가혹한 이방 통치에 대한 증오심을 불러일으켰다. 더군다나 팔레스타인 내에 이방인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그들은 유대인보다 더 많은 권익을 누리게 된다. 하스몬 왕조 말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메시야 사상은 절정에 이르러 이방인의 압제에서 유대를 구하고 메시야가 통치하는 왕국을 고대하는 이들이 늘어나게 된다.

**********************

로마의 수탈도 대단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로마란 국가 자체가 로마란 당대의 최대소비성향의 도시국가를 유지하기 위해 식민지 제국들로부터 계속적인 침탈로 연명하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시 우리의 일제시대를 비교한다면....
친일,부일에 가담한 지주나 상공인계층의 수탈을 우리 민중들도 경험하였습니다. 그보다 더한 일제의 수탈을 역시 경험하였고.... 독립운동 역시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우선으로 하여 진행되었고.... 해방시기를 둘러싼 국제역학과 해방전후의 혼란했던 양상 등으로 인해 그 후 왜곡되고, 뒤틀려져 버린 우리역사에 대해선 언급을 하지 않겠습니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도... 예수가, 저 밑에 신부님이 말씀하셨던 현실 인식의 토대위에서, 로마에 대한 공격보다는 바리새파에 대한 공격을 우선시했다는 것은 예수의 긍정적인 면을 부각시키고자 한 과대평가라는 생각입니다.
복음서 속에서 예수의 재판과 관련된 장면에서 보이듯... 악의 축 바리새파, 어쩔 수 없이 예수의 죽음을 선고한 로마...
예수의 언행이나, 복음서의 편집의도 자체에 상당한 정치적 고려가 포함되었던지.... 혹은....
카톨릭으로 성립되는 과정 속에서... 재편집되었던지.....
(01월13일)

[오필승] 예수를 한점 흠없는 인간애의 화신으로 생각한다면....위와 같은 생각이 예수에 대한 신성모독이건, 어쨌건 모독으로 생각되겠지만...
그냥, 보통의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예수 역시 충분히 생각하고, 고려할 수 있었던, 나름대로 그 시대의 상황적 한계 안에서 그가 선택할 수 있었던 옵션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01월13일)

[작은이] 그나마도 돈 걷어내는 데 쓰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 (01월13일)

 
 

* 오디세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01-13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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