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7:24 – 26 에 단상 (by 잠수함)

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by staire

마태 7:24 – 26 에 단상 (by 잠수함)

오디세이 0 4,496 2002.08.08 15:35

마태 7:24 ? 26 에 단상
 
 
 작성일: 2002/01/08
작성자: 잠수함
 
 
스스로 세 아이의 아버지이며, “목회자”라고 밝힌 “하나님의 자녀”라는 아이디를 쓰는 사람이 덧글에 달은 글입니다.어디서 교회 설교문하나 베껴서 옮겨 왔군요.. 한심도 하시지..

심심풀이 땅콩삼아서...이 설교문의 메인 인용문에 대한 짧은 생각을 기술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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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 7:24 - 26)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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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은 마태복음의 유명한 예수의 <산상수훈> 부분 중에 마지막 부분에 해당된다.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라는 유명한 구절로 시작되는 7장은 “비판”이란 주제와 관련 있는 내용이 실려 있는 장이다.
7장 서두 부분은 “비판”의 태도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으로 시작되나, 위의 글에서 보듯이 7장의 후반부로 가면서 내용이 변한다.그리고, 복음서의 많은 부분이 그렇듯 7장 역시 “예수”는 종말에 대해 시사하고 있다. 7장 22 ? 23절을 보자. 내가 읽기 편한 표준새번역을 좋아하는 관계로 표준새번역으로 보자.(^^)


(7장 22절 ? 23절)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말하기를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할 것이다.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라."


보시다시피, “그 날에”/“그 때에” 라는 구절이 보인다. 어느 날, 어느 때인가?? 바로 복음서 뿐만 아니라 신약 전체를 통해 강조되고 있는 사상인 종말의 시기이다.1356번 “몰러”님이 올린 글 <십자가(보혈)의 의미와 역사적 관점에서의 고찰> 안에 마침 종말에 관한 적절한 부분이 있다.

- 내가 진정으로 너희(율법학자와 바리새파 사람)에게 말한다. 이 일의 책임은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마태23:36)
- 여기에 서 있는 사람들(제자들) 가운데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있다.(누가9:27)
-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끝나기 전 이 모든 일이 다 일어날 것이다.(마가13:30, 누가21:32)
- 지금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우리의 구원이 가까워졌습니다.(로마서13:11)
- 여러분께서도 오래 참고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야고보서5:8)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베드로전서4:7)
- 자녀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분이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지금 적그리스도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요한1서2:18)

이상에서와 같이 복음서 뿐 아니라 그후의 신약은 “곧 다가올 종말”에 대한 주장을 강하게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이런 종말에 대한 신약시대 기독교인들의 공포와 두려움과 강박관념은 신약의 마지막인 요한계시록에서 절정을 이루고 있다.

이런 흔적을 우리는 “에세네파” 에서 가장 극명하게 볼 수 있다.
에세네파는 신비주의와 금욕 생활을 내세워 유대 율법서를 지키고자 했다. 이들은 재산과 예배, 독서와 식사를 모두 함께 하는 공동체 생활을 강조했으며, 대부분이 남자인 신도들은 결혼도 하지 않고 오로지 세상의 종말에 대비해 하나님을 믿고 기도했으며, 윤리와 종교적 순수성을 중시하는 엄격한 삶을 살았다.이들은 최후 심판의 날이 오면 빛의 아들들이 어둠의 아들들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고 믿었다.

그리고, 기원전후를 즈음하여 가장 큰 유대교 분파였던 바리새파 역시, 메시아사상, 종말론 등을 신봉하였다. 기원후 1세기를 즈음하여 각지로 퍼져나가던 초기 기독교 역시 이러한 종말론에서 상당부분 그 부양력을 얻으며 확산되고 있었다.곧 세상이 이제 끝날 것이며, 그 혼돈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신의 분노를 피하기 위한 인간들의 욕망은 초기 기독교를 이끈 커다란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그 종말의 중심에 서 있는 “예수”
그 예수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그러나, 그 예수가 죽은지 2000년이 흘렀지만, 종말은 오지 않았다. 그러면, 예수는 희대의 사기꾼이 되는 것인가?? 그러나, 현실은 그러하지 않았다.이미 “예수”란 상징물은 이런 사기를 무시하기에 좋을 정도로 서구 세계를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예수”를 버리느니, 그를 합리화시키기로 한 것이다. 다양한 방법으로 종말은 연기되고 재해석되기 시작한 것이다.피의 격전을 통해 예수는 삼위일체의 한 위를 가지도록 격상되었고,손에 닿을정도의 가까운 시기였던 종말은 “알 수 없음”으로 바뀌어 버렸다.

그러나, 그는 2000년전 강력하게 외쳤던 것이다. 종말이 가까이 왔노라고. 준비하라고.

예수는 종말이 오길 바랬던 이상론자, 신비주의자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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