쿰란은 팔레스타인계 엣세네에 의하여 처음으로 수도원으로 사용되어 졌는데, 그들은 기원전 2세기경에 에루살렘으로 부터 축출된 신세였다. 기원전 31년에 그들에게 큰 변화가 오는데 그것은 유대 골짜기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던 지진이 그들의 주거 시설을 몽땅 쓰러 버린 것이다.
이들은 이런 지진의 피해를 하나님이 그들의 부정한 것을 알고 그들의 주거 건물들을 쓰려버렀다고 믿었다.그래서 그 들은 모든 재산을 버리고 황폐된 채로 20년을 살았다. 그러다가 전화위복으로 그들은 다시 에루살렘으로 돌아가 헤롯과 협조를 재다짐하고 예루살렘으로 받아드려진다.
기원전 21년 약간 전에 헤롯은 전 신전을 다시 건축할 것을 공고한다.
이것을 들은 엣세네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창세로 부터 3920년 기원전 21년이야 말로
그들의 꿈인 다윗가의 부흥이 시작되는 해로 생각한다. 하나님이 예언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써 헤롯을 인도하신 것으로 안다.
그래서 그들은 신전건축에 대한 계획을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계시하여 주신대로 세우고 그들의 생각을 첨가하여 헤롯을 만날 때마다 서서럼 없이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니 하나님의 뜻이 받아 드려져야 한다는 것을 주장했다.
그러나 헤롯의 관점은 그것과는 달랐다.
엣세네 사제들의 뜻을 따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낮스런 짓이며,
너무 보수적인 것이라하여 단호히 거절했다.
이것이 엣세네 사람들에게는 큰 재난이 되었다.
그들의 오랜 꿈인 예루살렘에서의 다윗왕가 부흥의 꿈도 깨어지고, .예언도 헛소리가 되기 때문이였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꿈과 예언을 실천하기 위하여 헤롯을 벗어나와,이스라엘 해외교민인 디아포라스중 그들을 따르는 자에게 현재의 헤롯은 천년왕국의 진정한 왕이 아니며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친다.왕이나 앞으로의 황제는 옛 다윗 왕족의 혈통 중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의 할아버지, 헤롯 밑에서 분봉왕 노릇을 하던 야곱-헬리를 다윗이라고 칭한다. 헬리는 이제 헤롯의 부하도 아니요 정신적으로 절대적 권한을 가진 자로 등장한다.
따라서 헬리의 아들 요셉은 세자가 되고 , 이세자가 아들을 가지면 새로운 다윗왕가의 계승자가 되는 것이다.
기원전 7년에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서 예수가 태어났는데, 그가 조금만한 마을의 목수 아들로 태어났다는 그의 외부적인 설명과 실질적인 사실과는 아주 거리가 먼이야기이다. 요셉은 엣세네 마을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계를 위하여 목수 일을 한 적이 있지만 역시 다윗왕가의 세자위치에 있었다.
요셉은 아버지 헬리의 세자로서 천년왕국의 미래의 왕으로서 꿈을 키우며,그의 아들이 다윗왕가의 부흥을 이룰것을 바라고 있엇다.
헤롯은 아홉명의 처를 두었고 사랑하는 처의 소생인 자기 아들마저도 자기자리를 넘어다 볼까봐
목을 치는 그러한 폭군이였다.
이러한 현실에 처한 헤롯은 다윗가의 씨를 말리려고 든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구세주인 목자가 태어났는데 왜 헤롯과 온 이스라엘이 소동이 났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위와 같은 배경을 이해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믿음을 떠나 역사 속에서 예수를 찾으면 그는 왕손일 뿐이지 그외의 어떤 존재도 아니다.
헤롯과 예수가 속해 있던 엣세네 무리들과의 관계를 이해하면 그에 대한 재평가가 가능해 진다.
그는 세손으로 태어났다가 각색된 구세주가 된다.
그러나 그의 인간적인 면은 누구도 바꿀 수 없었다.
구세주 이기를 바라는 것은 뜬 구름보고 방향잡는 일이다.
요셉의 아들 예수는 그 자신의 일생에 큰 영향을 미칠 만큼의 애매모호한 출생 에비소드를 가지고 태어난다
[이 게시물은 꽹과리님에 의해 2004-08-29 12:49:59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아기를 죽였다거나 인구조사를 했다는 등의 이야기는 신약이나 그해설서 외는 없고,
프라비우스 조세퍼스의 유대고전과 사해문서을 인용한 한연구자의 연구 내용을보면
기원전 5년 9월에 헤롯을 피해 에집트 땅인 쿰란에 있던 요셉이,헤롯이 70세가 되어 성서적으로
활동시기가 끝났으므로, 피난처에서 나왔다한다. 적의에 찬 헤롯이 예수를 포함한 요셉 일가를 추적해 죽이려고
했던 것이지 ,아기예수만이 그의 대상이 아니였다.예수는 구유에서 난것도 아니고,동방박사의 예방도 없었다.
오히려 불미스러운 출생 문제로 인정 받지 못한 세상 모르는 그저 아이에 불과했다.아기 예수의 추적 문제는 헤롯과 예수가의 관계를 꼬투리로 신격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프라비우스 조세퍼스의 유대고전과 사해문서을 인용한 한연구자의 연구 내용을보면
기원전 5년 9월에 헤롯을 피해 에집트 땅인 쿰란에 있던 요셉이,헤롯이 70세가 되어 성서적으로
활동시기가 끝났으므로, 피난처에서 나왔다한다. 적의에 찬 헤롯이 예수를 포함한 요셉 일가를 추적해 죽이려고
했던 것이지 ,아기예수만이 그의 대상이 아니였다.예수는 구유에서 난것도 아니고,동방박사의 예방도 없었다.
오히려 불미스러운 출생 문제로 인정 받지 못한 세상 모르는 그저 아이에 불과했다.아기 예수의 추적 문제는 헤롯과 예수가의 관계를 꼬투리로 신격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또한 각자 고향에 돌아가 인구 계수를 했다는 사실도 없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