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by staire |
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기독교인들이 많아서 제목만 보고 흥분하고 광분할 사람들이 상당할꺼라 예상되지만, 진실은 밝혀져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예수'의 13살때부터 29살까지 'The Lost Years of Jesus', 즉 '성경'에 나와있지 않은 부분에 대해 인도로 가서 불교를 공부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서 검색을 해보았다. 역시 인터넷이 좋긴 좋아 -_-ㅋ
http://reluctant-messenger.com/issa.htm 에서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러시아인인 Nicolas Notovitch라는 사람이 1891년 출판한 "The Unknown Life of Christ"라는 책에 나와있는 것이다. 그의 발견은 니콜라스가 아프가니스탄, 인도 그리고 티벳을 여행하는 도중 Himis 불교가 창시된 근처인 Ladak의 도시인 Leh에 갔을때 우연히 사고로 다리를 다치고 그곳에 예정보다 오래머물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그때 "The Life of St. Issa" 즉 '성 이사의 생애'라는 고대 기록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고 이것의 티벳 번역서를 찾아내 200여가지 구절을 기록하였고 돌아와서는 책으로 출판한 것이다.
이 기록의 존재 진위 여부를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Swami Abhedananda라는 사람이 Himis Gonpad에 방문해서 노토비치의 기록과 같은 224구절을 출판한 자신의 여행기에 적어놓았으며 1925년에는 또다른 러시아인인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Nicholas Roerich가 Himis에서 노토비치와 Swami의 기록과 같은 문서를 발견하고 자신의 여행일지에 이사의 일생에대해 기록하였으므로 허위라는 말은 하지말기를 바란다.
간략히 이사전의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다음의 링크에서 찾은 내용으로 쪽 운영자의 생각(객관적이지 않고 상당히 기독교인으로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발언이다)은 읽어봤자라고 생각된다. 어짜피 이 글 뒷편에 자세한 내용이 쓰여질 것이다.
http://biblenara.org/q&a/Q443.htm
* 인도 오릿사주의 왕족인 라반나는 이스라엘의 제례에 참석하러 왔다가 이사의 총명함을 보고 예수에게 인도의 수학을 주선해 준다. 그리고 라반나의 권유로 이사는 이스라엘을 떠나서 인도 쟈간나스의 한 절에 들어가 4년간 수행을 하며, 베다 경전과 마니 법전을 공부한다.
* 수행을 마친 후 이사는 의술을 배우기 위해 당시 인도에서 명성이 가장 높은 '우도카라'라는 의사의 제자로 입문한다. 이사는 의술을 배우면서 유대의 [시편]과 [아베스타]경전을 읽고 석가모니의 가르침도 익히게 된다.
* 당시 이사는 평등사상에 심취했는데, 인도에서는 이러한 이사의 사상이 그들의 신분제도인 <카스트>에 위협을 준다고 해서 이사를 정죄하게 된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이사는 '라마나스'의 도움으로 인도에서 네팔로 피신하게 되고, 그곳에서 '비자빠찌'라는 성자와 대화를 나누게 된다.
* 네팔을 떠난 이사는 티벳으로 가서, 당시 요동 최고의 성자인 '멘구스테'를 만나 티벳에 비장되어 있는 수많은 경전을 섭렵한다. 24세에 수학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던 이사는 페르시아에 들려서 자신이 태어날 때 찾아온 마기교 승려 '홀', '룬', '메루'라는 3인의 동방박사와 재회한다.
* 집에 돌아온 이사는 다시 아테네로 건너가서 [아포로]라고 하는 성자와 대화를 나누며, 헬라의 정신세계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 25세가 된 이사는 이집트로 건너가서 형제단이라는 성자들의 모임에 입회하여 활동하였고, 이 곳에서 최고의 칭호인 그리스도라는 법명을 받게된다. 30세가 된 예수는 비로소 고향으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한다.
위에서 '예수'로 나온 부분은 '이사'로 고쳐서 보길 바란다. 아무튼 이사가 활동했던 시기는 '성경'에서의 '예수'의 활동시기와 겹친다. 둘다 나사렛 사람이다. 하지만 이 둘은 서로에 대해서는 몰랐다는 것이 관점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이것으로만 끝내면 기독교인들은 뻔하다. 저것은 조작된 허위의 기록이라거나 다른 사람이라고 할 것이다. 그렇다면 다음 내용에 대해선 뭐라고 답변할 수 있을런지 기대된다.
Apollonius에 관한 내용이다. http://www.apollonius.net/ 에서 여러가지 글들을 읽을 수 있다.
Apollonius of Tyana는 또한 '예수'나 이사와 같은 시기의 사람이었으며 출생지도 같고 이사와 같이 인도, 티벳등을 돌아다니며 공부를 하고 돌아와 설교를 하고 기적을 보였던 인물이다. 하지만 이 셋 모두 서로에 대해서 몰랐다. 따라서 이 셋 중 둘은 거짓이거나 셋 모두 동일 인물이어야 말이 맞겠지. ( http://www.apollonius.net/issa.html 참조)
하지만 여기서 진정한 '기독교' 역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기독교'는 325 A.D 즉 약1680년전에 로마의 다신교 성직자에의해 니케아 회의에서 창시되고 유포되었다. 이 회의는 자신의 가까운 친척들과 아내까지도 암살시킨 로마 황제 콘스탄틴가 사회를 보았다.
곧 콘스탄틴은 로마의 종교로 명시했고 이후에 교회측에서는 교회의 불분명한 독단성을 수용못해 거부했던 5천만이 넘는 죄없는 사람들을 "이교도"라며 죽였던 것이다. 여기에는 현재 '기독교'에서 '신부'라 불리는 이들에 의해 "마녀"라고 산채로 화형당한 3백만이 넘는 여성들을 포함한다.
이러한 이들이 "신약"이라 일컷는 문서에서 가르침뿐 아닌 나사렛 출신인의 일생과 이름마저도 로마교회의 일시적 권력을 위한 독단과 야망을 채우기 위해 교묘히 바꿨을 수 있지 않겠는가?
분명 콘스탄튼의 심복으로 다신교 성직자로 후에 니케아 교회 신분가된 이가 황제에게 맞춰서 나사렛 출신의 실존 인물을 "Jesus Christ"로 변경하지 않았을까?
Apollonious of Tyana라는 사람이 존재했었다. 나사렛 출신으로 4 B.C (= 3 BCE)에 태어난 그 시대의 가장 훌륭했던 사람으로 철학자이며 사회 지도자겸 윤리 선생, 종교 개혁자이며 치료사였으며 로마 제국의 끝에서 끝까지 가는 곳마다 노예로부터 황제에게까지 모두에게서 명예로움을 칭송받았던 이다. 그의 탄생과 활동시기는 거의 같다. 그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완벽한 인간의 훌륭한 표본이었다. 로마 제국의 여러 곳에서 그의 명예를 칭송하려는 사원이 17여곳이 넘게 세워졌었다.
하지만 그는 로마 왕좌에 올랐던 최악의 폭군인 네로와 Domitian을 무시하였고, Domitan이 모든 철학자들을 도시에서 사형선고를 하고 추방한 직후 로마로 자신이 직접 들어갔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넣어졌으나 훌륭한 달변으로 자신을 보호했다.
2세기가 지나고 콘스탄틴이 왕좌에 올랐다. 이전 로마 황제들은 그의 혁명적이고 평등주의적 활동에 불만이 많았으며 콘스탄틴은 특히 그의 피타고라스적 가르침(채식주의, 금주, 금욕)을 싫어했다. 콘스탄틴은 육식과 와인 그리고 밤의 향락-_-을 즐겼기 때문이다. 따라서 Apollonious가 주축이되는 종교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종교는 인도로부터 가져온 Chrishna 교의와 불교에 기반한 종교이며 Essenian "Kristosism"의 이름을 가진 것이었다. 콘스탄틴은 이러한 이유로 Manichaeans(Manichaeism : 마니교, 3세기경 창시된 페르시아의 종교)로 알려진 이 종교(Apiollonius의 Essenian) 추종자들의 후손들을 그의 군대를 이용해 제거했버렸다.
Apollonius of Tyana가 첫 1세기의 대표적인 세계적인 지도자(recognized world teacher of the First Century)라는 진실이 2천년가까이 은폐되었고, 첫 3세기 동안 니케아 회의에 의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Apollonius외의 다른 메시아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은 알려지지 않았고 누구에 의해서도 언급되지 않았었다.
그리스도인 폭도들에의해 389 CE에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책과 사본들에 불을낸 것보다 더 큰 문화적 손실은 발생한 적이 없다. 이는 Apollonius of Tyana에관한 모든 기록을 없애기 위함이었다. 따라서 그의 존재에 관해선 영원히 잊혀지는듯 했다. 325 A.D.에 니케아 회의에서 만들어진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알려지지 않은 Jesus로 교체되면서 말이다. 하지만 도서관의 문서 중 가장 기독교에게는 두려운 것 중의 하나인 "The Life of Apollonius of Tyana"는 살아남았다. 이 책은 전기작가인 Philostratus에 의해 쓰여졌다. 이 책은 몰래 가까운 동방으로 안전을 위해 운반되었고 1천년넘게 아랍인들에 의해 보호되어 왔다.
4세기정도 전에 이 책은 처음으로 유럽으로 들여왔으나 라틴에서 영문으로 번역된 첫 완역판이 출판된 것은 1801년에야 가능하였다. 이 책에는 '예수'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고 한다.
( http://www.apollonius.net/foreword.html 참조 )
'예수'의 주가?가 한참 올라가고 있었을 당시에 쓰여진 '영웅전'이나 그 당시의 여러 문서들에서는 '예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었다는 것은 무얼 뜻하는 것일까 한번 잘 생각해보길 바란다. '예수'에 대한 언급은 콘스탄틴 로마황제에의해 기독교가 국교 (국교라지만 강제였던)로 선포된 직후라는 것이다. 정말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게나 제자들뿐 아니라 가는 곳마다 칭송되던 '예수'가 로마국교로 기독교가 지정되기 이전의 기록들에선 전혀 언급된걸 볼 수 없다니?
콘스탄틴 황제는 뱃속이 검은 사람이었고 권력을 탐하였던 사람일 뿐이다. 종교가 무엇이던지간에 자신의 권력이 세진다면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말해도 모르겠는가? '예수'라는 인물은 가공의 인물이다.
마태복음(Mathew) 1장과 누가복음(Luke) 3장을 보라. 거기엔 '예수'의 족보가 나온다. 하지만 잘 세어보라. 세어보면 마태복음엔 다윗(David)의 (26?)27대손, 누가복음에서는 (42?)43대손으로 나온다. 이런 일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
마지막으로 http://www.apollonius.net/bernard2e.html 에는 Apollonius와 Jesus의 닮은 점에 대해 거론하고 있다.
뭐 지금 흥분하고 그래서 막 쓰느라고 뭐 말이 이상할지 모르겠지만 요지는 전달되리라고 본다. '예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제목과 같은 요지를 가진다고 간단 명료하게 말할 수 있다. 에헴~ 아 기분 좋다. 기분 좋으니 흥분했네. 이렇게 되면 이것만으로도 최소한 신약은 거짓이라는 것이고 그러면 '기독교' 자체가 거짓 종교라는 뜻이니까. '예수'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이런 '성경'에도 없는 말로 거의 협박식으로 '교회'에 나가게 하려는 사람들 즐~ 그런 협박안했어도 모든 '기독교'인들 즐~ 난 내 식 대로 거짓없는데서 지낼란다. 그러니 모두 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