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유교도, 불교도, 이슬람도, 그밖의 수많은 종교들도,
심지어는 종교 아닌 다른 가치관들도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말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by sta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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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생일은 12월 25일이 아니다 !
광복군
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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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6.16 13:39
성경의 모순 :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
‘예수는 언제 태어났는가?’ 설마 이 질문에 대해 서기 0년 12월 25일이라는 순진무구한 답변을 하실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우선, 서기(Anno Domini, A.D.)라는 방식의 연도 표기법을 만들 때에는 0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예수는 서기 1년에 태어난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아니, 예수가 그 때 태어난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에, 그 때가 서기 1년으로 정해졌다는 게 옳습니다.
문제는 이후에 밝혀진 고고학적 증거에 따라(이것은 개신교도분들도 모두 인정하는 것이므로 참고문헌을 찾는 수고는 생략하겠습니다) 헤로데가 죽은 것이 기원전 4년으로 밝혀졌다는 것입니다. ‘마태오에 의한 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헤로데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게다가 헤로데는 별을 보고 동방으로부터 찾아와서 예수를 경배하려고 예루살렘으로 떠났던 3인의 동방박사들이 돌아올 시기를 한참 넘겨서까지 인내하다 베들레헴의 아기들을 도륙할 것을 명했다고 기록이 되어져 있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으로부터 적어도 1-2년 후에야 죽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신구교 공히 그렇습니다)는 예수가 기원전 6-4년 사이에 태어났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결론은 ‘마태오에 의한 복음’을 기준으로 내려진 것입니다.
문제는 이제 시작됩니다. 다른 복음에서도 역시 예수의 탄생 날짜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루가에 의한 복음’입니다. 그 복음의 저자는 예수가 ‘퀴리노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와서 로마 황제의 명령에 따라 인구조사를 행했을 때’ 태어났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역시 발달된 고고학적 증거에 따라 그 시기를 산출할 수 있었습니다.
퀴리노의 라틴어 이름은 Quirinius로서, 그는 헤로데의 아들 아르켈라오가 실권해서 망명한 뒤 로마 황제에 의해 유대 지방을 편입한 시리아에 파견된 사람입니다(요셉푸스, 유대 고대사, 18.1.2). 그의 임무는 세금을 걷기 위해 인적 자원과 자산을 평가하는 일이었고, 또한 아르켈라오의 궁전을 팔라는 시저(로마 황제)의 명을 받기도 했습니다(ibid. 17.13.5).
아르켈라오가 실권해서 망명한 것은 10년의 통치 이후였는데(ibid. 17.13.2ff), 그는 헤로데가 죽은 이후가 되어서야 유대 지방을 통치하게 되었습니다(후자의 사실은 마태오 2:22의 내용으로도 확인 가능함). 따라서 ‘루가에 의한 복음’은 예수가 헤로데의 사후, 10년이 지난 다음에 태어났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로부터 우리는 ‘마태오에 의한 복음’에 전해지는 예수의 출생 연도와 ‘루가에 의한 복음’에 전해지는 예수의 출생 연도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은 비교적 초기의 기독교도들조차도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지를 모르고 있었음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몰랐다면, 왜 몰랐겠습니까? 그것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사실이 아닌 종교 소설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마태오에 의한 복음’에 나오는 예수 탄생과 얽힌 이야기들뿐만이 아니라 ‘루가에 의한 복음’에 나오는 이야기들도 역시 종교 소설로 봐야 할만한 특징들을 철저히 소유하고 있습니다.
12월 25일이라는 생일날에 대해서는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날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이 아닙니다. 원래 그 날은 로마인들이 농신제를 지내던 날로서 옛 태양력 달력에서 동지에 해당하는 날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이 날을 기려 7일 동안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종의 ‘카니발’을 지냈습니다(그 말을 여기에서 사용하는 것은 물론 맞지 않습니다만, 그런 정도의 성대한 잔치를 벌였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던 그 날이 태양신 미트라의 전래와 함께 미트라신의 생일로서 축하되었습니다. 성대한 축제일을 신의 생일로 갖게 된 미트라교가 매우 유리한 입장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에 막 태동되기 시작한 기독교가 위협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4세기 중반, 이교신의 생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로 차용하게 됩니다. 당시 성행하던 미트라교에서의 개종을 쉽게 하려는 속셈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12월 25일은 그 이후로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로서 기독교 세계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이를 요약하면, 예수가 몇 년에 태어났는지에 대한 근거 자료는 서로 모순되는 진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원전 6-4년이라고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 서기 6년(헤로데 사후 10년 후)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태어난 날짜에 대한 근거는 아예 전무합니다. 어떻게 ‘신의 아들’이 태어났는데 그 추종자들이 그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을까요? 혹은 왜 같은 사람의 추종자들이 서로 다른 연대를 주장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에 대한 해답은, ‘마태오에 의한 복음’을 쓴 작가와 ‘루가에 의한 복음’을 쓴 작가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로의 작품에 대한 지식 없이 각자의 소설을 썼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입니다. 혹은 ‘마태오에 의한 복음’에 첨삭한 사람과 ‘루가에 의한 복음’에 첨삭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항은, ‘마태오에 의한 복음’이나 ‘루가에 의한 복음’이 당시 유행하던 많은 ‘위경’들 속에서 선택된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토마에 의한 복음’ 등 많은 종교 소설들이 ‘가짜’로서 버려지고 오로지 네 편의 ‘복음’들만이 ‘진짜’로 판가름이 났는데, 그것을 판가름한 것이 예수가 죽었다고 주장되는 시기로부터 몇 백 년이 흐른 뒤여서 아무도 진위를 판가름할 수 있는 지식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거기에도 요즘과 같은 ‘기준’이 적용되었을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쪽이 ‘옳다’고 하면 ‘정경’, ‘그르다’고 하면 ‘위경’으로 말입니다. 참으로 편리한 기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의 결론은 따라서, 이렇습니다. 예수가 언제 태어났는가에 대해 성서는 서로 모순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성서 기록 중 적어도 하나가 ‘사실이 아닌 것을 적은 것’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것들이 역사적 기록이 아닌 소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의 (그리고 대부분의 인본주의자들의) 견해입니다. (펌)
[이 게시물은 꽹과리님에 의해 2004-08-29 16:22:37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