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엔 온통 울긋불긋 단장으로 어지럽고 ‘기쁘다 구주 오셨네’ 노래가 정신이 혼란할 정도로 시끄럽습니다.
12월 내내 우리 집은 아이들이 십대가 된 후 근 이십년을 골목에서 유일하게 어두운 집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내가 기독교인이라면 도저히 크리스마스를 기쁘게 맞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해이던가 나는 교회학생회에게 “왜 크리스마스가 기쁜 가” 하는 질문을 한 일이 있습니다.
대답은 한결 같이 고전적이고 모범적이었지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어 이 땅에 탄생하신 날이기 때문이다.”
그렇습니까?
매우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나는 크리스마스 때마다 십자가 사건을 떠올리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이 기쁨이 아니라 몹시 고통스럽고 비통함을 느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히 시작과 끝을 연결해봅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신데 인간으로 태어나서 십자가의 참혹한 고통을 당하시며 죽었다.”
왜?
그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죄가 하느님으로 하여금 사람이 되어 이 땅에 태어나시게 했고 또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을 당하시며 죽게 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그 태어난 일을 우리가 기뻐하고 축하할 수 있단 말인가요?
기독교도는 우리가 하느님의 피조물임을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삶을 시작하며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창조주인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내가 아이들을 길러보니까 이렇습디다.
아이들이 물정 모를 때는 무슨 짓을 하든 바라보는 것 자체가 마냥 기쁘고 귀여워요.
그런데 아이들이 차츰 자라서 제 몫을 감당하게 되면서는 스스로 하여야 할 일의 기준이 주어져요.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할 때에는 짜증이 나고 역겨워지거나 화가 나기도 하지요.
지적인 면에서건 의식적인 면에서건 윤리 도덕적인 면에서건 사회적인 면에서건 성장에 따른 기준이 매겨지며 그 기준을 밑돌지 않는 삶을 살아줄 때 부모로서 기쁘고 대견하게 보이더라는 말씀입니다.
내 아들 녀석이 학교에 들어간 후 얼마 안 되어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공부시간에 고무줄을 튕겨 선생님의 뒤통수를 맞추었답니다.
그래서 벌을 좀 세워야 겠다는 겁니다.
이 녀석이 얼마나 못되게 구나 싶어 학교엘 갔지요.
교실에 들어서니 녀석은 시무룩한 표정으로 구석자리에 서서 벌을 서고 있습디다.
“아빠가 오셨으니 이제 그만 자리에 돌아가도 좋다.”
선생님의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녀석의 얼굴이 환해집니다.
“거봐, 내 아빠가 오니까 벌 안서잖아!”
의기 앙앙해져서 아이들에게 팔을 내 두르며 깡쭝깡쭝 뛰어 자리에 돌아가는 녀석의 발랄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고 선생님도 나도 껄껄 웃었지요.
그 아이가 고등학교 다닐 적 어느 날 한 밤중에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사고가 있어 경찰서에 잡아두고 있으니 와서 데려가라는 전갈이었습니다.
깜짝 놀라서 달려갔지요.
그 녀석이 다른 친구들과 어울려서 동네 물탱크 철탑을 올라가다가 순찰에게 잡혔다는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의 모험심리에서 그랬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우선 밤중에 공공시설물을 무단 침범한 행위, 안전을 위협한 행위 등이 범죄라는 사실을 인식할 만큼 자란 아이들이기에 처벌할 수도 있지만 미성년자이니까 부모가 와서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잘 보호하겠다는 각서를 쓰면 그냥 풀어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경찰서장이 아이에게 이렇게 주의를 줍디다.
“이 녀석, 네 아버지가 너 때문에 이렇게 한 밤중에 경찰서에 나와서 죄인처럼 각서를 쓰고 했으니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냐?
또 그렇게 아버지를 부끄럽게 하겠니?”
그런데 만약에 이 녀석이 “그것 봐, 내 아버지가 오니깐 벌 안 받고 그냥 풀려나잖아”하고 자랑하고 다닌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류는 이제 더 이상 어리광을 부려서는 안될 만큼 성장했지 않습니까?
기독교는 우리의 삶의 목표가 창조주인 하느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고백하면서도 그 하느님께 영광을 드린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 끌어내려 십자가의 고통을 안겨드린 것이니 지각이 있는 크리스천이라면 크리스마스가 즐거워할 수 있는 날입니까?
크리스마스는 크리스천들이 즐거워해야 할 날이 아니라, 본분을 다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본분을 회피하고 파괴했기 때문에 부득불 하느님이 치욕을 감수하고 이 세상에 내려오실 수밖에 없었음을 상기시키 는, 부끄럽고 통탄스럽게 자신을 반성해야 하는 날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