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와 먹사의 대화(펌)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유마와 먹사의 대화(펌)

인드라 5 3,102 2004.05.10 12:43
제목 : 유마와 수자타의 대화(11);외삼촌과의 대화:믿음이란..
글쓴이 : yuma
조회 : 34
날짜 : 2001/10/26/17:20
(오리지널:http://yuma.cafe24.com 글쓴이:유마.게시일:2001/ 07/14 11:05:26| 조회 : 77 )


10여년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유마는 큰 누나 댁을 찾았다. 유마의 큰 누나는 미인이시고 복잡하지 않으며 겉으로는 차가운 듯하나 속으로는 하염없이 따뜻하고 어려운 이를 만나면 집에 있는 것을 아낌없이 가져다 주어서라도 위로하는 착한 분이시다.
외삼촌 되시는 목사님이 마침 와 계셨다.
감리교의 목사님이신 외삼촌은 언제나 소년 같으시고 음악을 좋아하며 조카들과는 왕래를 자주 하시며 늘 자상하신다. 유마는 어렸을 때에 혼자, 의사이셨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와 많이 살았다. 두 분은 새벽5시면 어김 없이 일어나 단 두 분이 서만 기독교 방송의 채널에 맞추어 새벽예배를 보셨다.아마 이것은 유마만이 알고 있는 일일 것이다.어린나이의 유마는 일어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부자리 속에서 두 분의 찬송가 소리와 기도 소리를 죄다 듣곤 했다. 그 두 분이 끔찍이도 아끼셨던 분,바로 나의 외삼촌 목사님이시다.
유 마: 외삼촌,안녕하세요? 한동안 문안 드리지도 못했었군요.

외삼촌: 잘 있었니 유마야. 너 듣자 허니 요즘 불교를 가까이 한다고 그러더구만.

유 마: ….. ^^


외삼촌: 그래. 다른 종교도 알아 두는 것은 나쁘진 않지.하지만 진짜로 불교에 빠진 것은 아니지?

유 마: …. ㅠ.ㅠ.

외삼촌: 이 세상에 구원은 예수님 한 분을 통해서만 이루어 지는 것을 의심하면 안 된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신 말씀 기억하지? 이 말이 실없는 말이었다면 2000년 동안 우리 보다 더 똑똑하고 훌륭한 천재 수재 철학가 과학자들이 그렇게 한결 같이 예수님을 믿어오진 않았을 것이야. 그 사람들이 다 멍청이라서 이때까지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 믿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 않겠냐? 주님을 잘 믿어야 한다.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그렇게 믿으시다가 하늘 나라로 가신 것을 다 알잖아? 너와 내가 나중에 다 그 천국 문에서 만나야 하지 않겠니?

유 마: 천국이란 어떤 곳이죠?

외삼촌: (어이 없다는 듯..) 그것도 아직 모르니? 천국이 어떤 곳인지?

유 마: 예. 모두들 나에게 예수 믿고 천국을 가라고 하여 믿었지만 아무도 나에게 천국이란 어디에 있는 어떤 곳인지 말해 준 사람은 없었어요. 그래선 전 아직까지 천국이 어디 있는 어떤 곳인지 모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마다 천국천국 하는 걸 보면 분명 다들 천국이 어디 있는 어떤 곳인 지를 다 아는 것 같은 데 말해 주는 사람은 없군요.외삼촌께서 마침 저에게 천국 문을 말씀 하시니 천국이 어디 있는 어떤 곳인지 아시면 가르쳐 주세요.

외삼촌: 천국이란 주님의 나라 라는 걸 몰라 서 하는 말이냐?

유 마: 예,정말 저는 모릅니다.천국이라고 듣기만 했을 뿐 본적도 없고 짐작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의 나라란 어디에 있는 어떤 곳입니까?

외삼촌: 유마야,네 믿음이 정말 큰일이구나!
천국,즉, 주님이 계신 곳은 온갖 영광 중의 영광으로 가득 찬 나라이고 하늘의 태양들 조차도 그 영광의 빛에는 어두움일 뿐이며, 천사들의 찬미와 예배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육체로는 못 가는 곳이고 주님이 허락한 영혼만이 드나 드는 곳이다. 이 영혼은 보고서 믿는 것이 아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믿음에 더하여지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말미암아 저 영광의 아버지계신 곳,그 곳이 바로 천국이다. 생각이나 이해나 이치를 따져서 가는 곳이 아니다. 이치를 따진다면 학문적 지식으로도 천국을 못 갈 것도 없는데,아무리 학문적 지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을 안 믿으면 다 쓸모 없는 지식에 불과하다.

유 마: 그러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던 것이 예수님이 오시므로 다 무의미 해져 버렸다면 예수님은 무엇 하러 오셨다는 말입니까? 세상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라 마치 세상을 더 바싹 구속(拘束)하러 온 것처럼 보입니다.
단순히 자기 하나를 믿게 하게 하기 위하여 믿으면 천국,믿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낸다고 하는 것은 마치 인류를 사랑하여 자기 몸까지 십자가에 박혀가며 애를 썼건만 그럼에도 믿지를 아니하니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린 것만 억울 하다고 여기셔서 그 보상을 구하느라고 분노에 찬 원망 갚음으로 보입니다.

설령 생각 만큼 그렇게 자비하신 분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기를 믿지 않으면 천당에 못 간다고 하는 것으로 그쳐야지 왜 안 믿으면 지옥으로 보낸다고 한다는 겁니까? 확실히 요즘 기독교인들의 그런 세계관 내지는 구원관을 보면 예수님이 오셔서 전 보다 더 훈훈해진 것이 아니라 더 혹독해졌습니다.

또한 분명 (예수 오기 )그 전까지는 예수를 안 믿어도 비교적 괜찮았던 것이 예수가 오고 나서부터는 절대적으로 이제부터는 믿지 않으면 안 통한다고 한다면 예수 없이 살다간 전의 사람들이 오히려 더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거야 말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사고 방식하고 다를 게 무엇입니까? 나 아니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해악적이고 위험한 생각인지는 역사가 증명해주는 것으로 , 그런 사람이 만일 주변에 있다면 모두들 오히려 그 사람을 피하려 안달인데 왜 꼭 한 사람 예수에게만은 예외라는 것입니까?

외삼촌: 허,,너 이 녀석 이제 보니 단단히 빠졌구나.

유 마: 빠진 것은 내가 아니라 삼촌이십니다.내가 빠졌는지 삼촌이 빠졌는지는 우리 두 사람 밖에 주장할 사람이 따로 없습니다.즉,판단 할 잣대가 없다는 말입니다. 저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그런 태도가 몹시 거슬립니다. 그들은 자기만 잘 믿으면 되지 땅끝까지 전파하라는 주님의 지상과제를 들먹이며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대하여 지옥 간다고 협박해대는 등,스스로 가치 판단을 다 하면서 다른 사람이 자기가 믿는 기독교에 대하여 반론을 전개 하면 “당신은 그런 인간의 판단때문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다”고 거듭 판단 해 버리고는 사탄의 역사라고 까지 합니다. 우스운 일입니다. 자기가 주장 하는 것에는 자기만이 증인이 될 뿐인데도 내가 자기의 증인이 되어 주지 않는다고 성을 내는 격입니다. 말이 안됩니다.

만일 예수 믿는 무리들이 그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며 비타협적일 뿐만 아니라 재판관적인 신앙관에 변화가 있지 아니 하다면 인간사회에 알맞지 않은 반사회성으로 인하여 중세시대의 일인 독재 내지는 전제정치의 말로와 같이 몰락하고 말 것입니다. 저처럼 어리석은 무식쟁이도 이렇게 예견 되는 것을 어찌 지혜자들이라 자칭하는 예수 믿는 이들은 모른단 말입니까?

외삼촌:유마야, 천국은 믿음으로 가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단 말이냐?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니냐? 이것은 우리 기독교의 대 명제이다.

(유마는 이에 대하여 더 이상 논쟁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 되었다. 그래서,,)

유 마: 그러면 외삼촌은 제게 말씀 해 보세요.외삼촌께서는 천국을 가십니까? 아니 정확히는 천국을 갈 것이라고 믿습니까?

외삼촌: (웃으면서..) 난 내 믿음에 추호도 의심함이 없다.

유 마: 그러면 지금 당장에 가보십시오.그러면 내가 믿겠습니다.

외삼촌: 아니 이 녀석이 우기기는…아직 하나님이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천국엘 지금 당장에 가보이단 말이냐?

유 마: 아니 왜요?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면서요?

외삼촌: 믿음으로 가지만 그 때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니 내가 왈가왈부 할일이 아니다.
유 마: 그러면 꼭 믿음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은 아니군요,하나님이 불러야만 한다는 다른 전제 조건이 있는 것이군요.

외삼촌: 그거야 피조물로서는 따질 일이 아니지 않느냐?
믿음은 말하자면 준비작업 같은 것이다. 신부가 결혼을 하는데 미리 준비하지 않고서 어떻게 신랑을 맞이 한단 말이냐? 그것과 같이 우리 피조물들은 하나님이 부르심에 응하기 위하여 미리 준비하는 것 뿐이란다,그것이 바로 믿음 아니겠느냐? 그래서 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이 지금 바로 부르시면 당장에 나는 천국 갈 수 있다고.

유 마: 좋습니다 외삼촌, 믿음으로 천국엘 간다거나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그렇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외삼촌 제게 말씀 해 보세요.믿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믿음으로 천국에 간다 하니 그 믿음에 신통이 있는 것 같아서 하는 말씀입니다.

외삼촌: 이 믿음을 어떻게 꺼내어 보인다는 말이냐? 나 보고 배라도 갈라 보이라는 말이냐? 믿음은 예수를 살아계신 주님으로 받아들여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면 그것이 믿음이다.

유 마: 그러면 외삼촌은 그 믿음이 있습니까?

외삼촌: 그걸 말이라고 하느냐 지금? 내가 믿음이 없다면 어찌 목사가 되어 남들더러 믿으라 말라 할 수 있겠느냐? 당연히 내가 믿음이 있으므로 너에게도 믿음을 가져 구원을 받으라고 하는 거지. 그건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아는 일이요 믿음 있는 사람만이 가지는 권능이며 떳떳함이다.
유 마: 예. 잘 알겠습니다.

그러면 외삼촌 그 믿음이라는 것이 하루 24시간 항상 합니까?
외삼촌: ??? 그게 무슨 말이냐?

유 마: 믿음이 하루 24시간 꼬박 살아 있느냐 여쭙는 것입니다.
외삼촌: (웃으시며) 그거야 이를 말이냐, 아침부터 밤까지 난 믿음에 일어나고 믿음에 잔다.

유 마: (덩달아 웃으면서,,) 다행이십니다…믿음에 일어나시고 믿음에 잔다고 하셨지만 자고 나면 어떠한가요?
혹시.. 잠 잘 때에도 있나요 그 믿음이란 것이?

외삼촌: 잠 잘 때에도 있다.

유 마: 분명 잠 잘 때에도 있습니까?

외삼촌: 분명 잠 잘 때에도 믿음이 있다.

유 마: 그러면 잠 잘 때에 꿈을 안 꾸시나요?

외삼촌: 꿈을 꾸지.

유 마: ^^
삼촌, 꿈을 꾸실 때에 믿음은 어디에 가나요?

외삼촌: 이 녀석아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느냐? 잠 자고 꿈 꾸는 것은 하나의 생리작용이지 생리작용에다 대고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억지가 어디 있어?

유 마: 그러나,상당히 중요하고 심각한 일입니다 외삼촌, 왜냐하면 천국에 가느냐 못 가느냐 하는 지상 최대의 일이니까요.제가 무슨 할 일이 없어 목사님이신 삼촌 앞에서 희롱하는 말을 하겠습니까? 외삼촌께서 믿음으로야 만이 구원에 이른다 천국에 간다 하니 이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일이 사람에게 어디 있겠습니까?

외삼촌,남자 끼리니 드리는 말씀이지만 저는 잠 잘 때에 여자와 간음 하는 꿈을 심심찮게 꾼답니다. 삼촌께서는 한번도 그런 꿈이나 뭐 다른 개꿈이라도 꾸지 않으셨다면 몰라도 만일 꾸셨다면 그 순간에 믿음은 어디에 보관하십니까?

외삼촌:…..!!

유 마: 저는 지금 외삼촌께서 믿음으로 구원함에 이른다 하시길래 그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여쭌 것입니다. 하루는 24시간입니다. 믿음이 만일 이 24시간에서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불완전한 것일 겁니다. 이상이 있다 함은 바로 믿음이 생겼다거나 없어 졌다거나,믿음이 증가 되었다거나 감소 되었다거나,믿음이 더러움에 물들었다거나 깨끗함을 찾았다거나 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면 그 전에는 생기지 않았다는 뜻이니 생기지 않았을 때에는 예수 이전시대요 생겼을 때에는 예수 이후 시대입니다. 예수가 없었을 때에는 믿음의 여부가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 예수 이후에 들어 와서는 무시무시하게 예수 믿으면 천당 안 믿으면 지옥으로 돌변하였고 믿는 자와 안 믿는 자의 두 편으로 나뉘어 그 때문에 지난 2000년 동안 이 세상은 지금 바로 이 순간까지 갖가지 전쟁과 반목으로 시달려야 했음은 역사가 아는 일입니다. 이는 전적으로 그것을 주장 하는 쪽의 책임입니다.

외삼촌, 믿음이 생겨 난 후에만 ,즉 예수 이후에만 이 세상은 비로소 가치 있고 제대로 된 세상이라고 본다면 ,그 이전의 수십억 수백억 년의 삶들은 무의미 하였다는 말이니 이것은 하나님의 창조의 뜻을 무의미하다고 거슬리는 말입니다.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습니다.어찌 귀신이 같은 귀신 무리를 대적 할 리가 있겠느냐고 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비유이십니다. 어찌 하나님의 아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창조 사업을 비판하게 되는 편에 서 있을 수 있겠습니까?

또한 변명하되, 예수가 그러한 예수 전의 역사를 무의미하게,즉,성서적으로 말하자면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완전하게 함이었다 한다면, 이것은 그 때까지(2000년 전까지도) 하나님의 창조가 불완전 하게 되었었다는 말이니 이는 하나님의 창조의 완벽성에 도전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예수 이후의 시대로부터 무려 2000년 이 흘렀지만 아직도 완전해 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곳곳 마다 탄식소리는 오히려 줄어 들지 않습니다. 이 둘 다 어느 것에 의하여도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설명 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말씀입니다.

또 변명하기를,그것은 사람들이 타락으로 인한 까닭에 하나님이 구원 하려 하심 이었다 한다면 타락과 구원이 잘못과 시인을 말합니다.잘못이라면 하나님이 이 세상을 그렇게 되도록(타락하도록) 만든 것이요 시인이라면 하나님이 자기 잘못을 인정하여 구원을 펼친다 함이니 이것 또한 하나님의 전지 전능에 모욕을 주는 경우입니다.

그 어떤 설명으로도 믿음이 생겨 났다고 한다면 이러한 모순을 돌파 하지는 못합니다. 모순을 돌파 하지 못하면 그것은 유리에 금이 간 것과 같이 유지되지 못하는 아슬아슬한 것일 겁니다.믿음이 없어 졌다면 더욱 말 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이 24시간 중에서 잠도 자고 밥도 먹고 똥도 싸고 아내와 동침도 하고 등등 소비 되어야 할 시간이 여기 저기 많은데 그 중에서 깨어 있을 때에는 믿음이 온전하다가 잠을 자거나 아내와 동침을 하거나 똥을 싸거나 밥을 먹을 때에는 믿음이 온데 간데 없어져 버린다면 이는 믿음이 없어진 시간에 자기를 두는 것이니 이 때에 만일 이 사람이 죽으면 믿음이 없을 때에 죽어 버렸으므로 무엇으로 구원의 천국에 갈 것입니까? 반드시 믿음으로야 만이 천국에 간다고 하는 이 조건의 성취 없이 천국을 간다고 하는 꼴이니 이것은 믿음을 주장 하는 자기 논리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만일 변명을 하기를, 비록 잠 잘 때에는( 또는 아내와 동침을 하느라 헉헉 댈 때에는,또는 밥 먹느라 맛에 빠져 있을 때에는,또는 똥 싸느라 분주 했을 때에는 )믿음이 사라졌었지만, 그 때까지 그 사람이 믿었던 것이 있으므로 그것으로 그 사람은 구원 받아 천국에 간다고 한다면 이는 과거의 것으로 현재를 구원 한다고 하는 것이니,그렇다면 어렸을 때에는 믿음이 있었다가 어른 이 되어서는 믿음이 없는 사람도 똑 같이 구원을 받는 다고 하는 것인데, 그러면 왜 예수 믿다가 불교 믿는 사람은 구원이 없다고 합니까?

구원은 지금 바로 이 순간의 일인데 지금의 일을 과거의 일을 가지고 논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이는 마치 어제 내가 극장표를 미리 사뒀는데 그 표를 집에다 두고는 오늘 내가 극장에 가서 들어가기를 청한다면 극장주인이 들어가기를 허락 하겠습니까? 그는 지금 당장 자기가 들어가고자 하는 그 때에 극장표를 보여야만 할 것입니다. 또한 어제의 물로 오늘의 불을 끄려고 하는 것과 같으니 이것이 가하다 하겠습니까? 주님은 천국 문 앞에서 내게 엄격히 요구 할 것입니다. 믿음을 보여라고. 그런데 거기다가 “오,주님,내가 마침 잠을 자다가 목숨이 마쳐서 오게 되었는데(또는 아름다운 아내와 동침하다가 오게 되었는데,또는 맛있는 밥을 먹다가 오게 되었는데,또는 똥을 누다가 갑자기 오게 되었는데 또는 심장마비로 죽느라고) 정신이 없어서 미처 믿음을 챙기지 못했습니다.하지만 제가 이미 주님을 믿어 둔게 상당히 있으니 가서 가져 오도록 허락 하여 주십시오” 한다면 과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가져 올 자가 있겠습니까?

믿음은 과거의 것이 아닙니다,그것은 가져 올 수 없습니다. 믿음은 미래의 것도 아닙니다,그것은 댕겨 올 수도 없습니다. 믿음은 바로 이곳 여기 현재의 그것입니다.내가 목숨을 마치는 바로 그 한 순간까지도 면면히 믿음이 끊임없이 이어져 있지 못하다면 있었다 없었다 하는 믿음으로는 정말이지 행운을 빌어야 할 것입니다. 즉,내가 마침 제대로 믿음을 갖추고 있을 때에(잠 자지도 않을 때에,아내와 동침 하지 않을 때에, 밥 먹지 않을 때에, 똥 싸지도 않을 때에,또는 심장마비로 정신이 아득 아득 하지 않을 때에) 주님이 부르시면 다행이겠지만 아니면 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믿음이 증가 되었다고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믿음이 증가 되었다는 것은 그 전에는 믿음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모자랐다는 말이니 그렇다면 지금의 증가도 더 증가함에 비하여는 모자라다는 말입니다.누가 있어 "소자야,네 믿음이 만족 할 만 하도다!” 하고 소리 내어 증명해 줄 수 있답니까? 증가함에도 이러한 흠이 있는데 항차 감소함이겠습니까? 믿음이 깨끗하여 졌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전에는 믿음이 더러워 졌었다는 말이니 믿음이 이와 같이 증감하거나 깨끗하고 더럽다고 하거나 생기고 없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이 흠이 있는 것입니다.

외삼촌: 잠자고 먹고 싸는 것은 생리 현상이다. 거기다 대고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하는 것은 기침하고 있을 때에 물을 마시라는 것하고 다를 게 무어냐? 그런 억지로 논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유 마: 기침하고 있을 때에 물을 마시라고 한다면 그것은 억지입니다. 그러나,그렇게 비유 하심은 맞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침과 물 마심이 둘 다 생리 작용이어서 물 마심을 믿음에 비유 한다면 믿음도 생리 작용에 불과 할 뿐이니까요.설마 하니 외삼촌께선 믿음을 하나의 생리 작용으로 파악 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외삼촌: 그러면 네가 공부하는 불교에는 잠 잘 때에도 동침하고 밥 먹고 똥 쌀 때에도 붙잡고 있다 더냐? 다 똑 같은 사람들이 하는 일인데 너희 불교에서는 옳다 하고 기독교의 믿음에는 그르다 하면 될 말이냐?

유 마: 예,, 삼촌, 불교에서는 그런 믿음을 쓸모없는 믿음이라 하여 설령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 하여도 불구자처럼 봅니다.

외삼촌: 그럼 불교에서는 어떤 믿음을 가진단 말이냐? 거기 사람들은 잠도 안자고 밥도 안 먹고 동침도 안 하고 똥도 안 싼단 말이냐?

유 마: 잠을 오직 잠만 잘 뿐 꿈을 꾸지 않으며,꿈도 없는 곳에서는 밝은 믿음이 항상 깨어있을 때와 다르지 않습니다. 하물며 (동침은 제외:목사님들처럼 여자를 거느리지 않으므로),다른 깨어 있을 때이겠습니까?

외삼촌: 그 곳 사람들은 어떤 사람이기에 왜 그렇다는 말이냐?

유 마: 수행자들이기에 그렇습니다.

외삼촌: 우리 기독교인들도 수행자들이다 .왜 너희 불교만 수행자라 할 수 있겠느냐? 우리도 금식을 하며 밤을 새우며 기도하고 끊임없이 예배 드린다. 무엇이 다르단 말이냐?

유 마: 말은 같이 쓰이나 내용은 같이 쓰지 않습니다.

외삼촌: 내용이 어떻게 다르냐?

유 마: 스승의 다르므로 가르침이 다르고 가르침이 다르므로 가는 길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므로 이르는 곳이 다릅니다.

외삼촌: 말해봐라.

유 마: 부처님이 스승이시니 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바로 하늘의 신들에게까지 스승이십니다.

외삼촌: 신들에게 까지 스승이라면 하나님까지 붙여 하는 말이냐?

유 마: 물론입니다 외삼촌.

중략------------------불교교리적이야기라서 중략함

외삼촌 : (웃으시면서..)허허.. 이 놈이 목사인 나를 아주 설교하려 하네!

유 마: 외삼촌, 제가 이해 하고 있는 바에 따라 말씀 드리고 있는 것 뿐이니 설교란 가당치가 않습니다. 믿음에 대하여 말씀 드리다 보니 여기 까지 온 것입니다. 외삼촌,이 궁극의 것은 외삼촌께서 알고 계시는 그런 믿음이라는 바람막이용 마음상태만으로는 도저히 이를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외삼촌이 아까 말씀 하신 믿음은 그저 하나의 육체의 정신 작용에 불과한 것입니다. 육체의 정신 작용은 육체의 조건에 따라 그에 맞추어 변하기 때문에 육체가 만일 피곤하면 정신도 따라서 피곤하여 잠이 들고,육체가 만일 바쁘면 정신도 따라서 바쁘기 때문에 정신이 없고,육체가 만일 욕탐에 놓이면 정신도 따라서 욕탐을 맛보기 때문에 각각의 일에 생리작용 또는 본능이니 어쩔 수 없다 하는 말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 작용을 교회에 가거나 기도하는데 쓰면 그때에 그것을 믿음이라고 칭하는 것인데 이것은 도적을 아들로 잘 못 알고 반기는 것이어서 나중에 반드시 반역할 것입니다.

외삼촌,외삼촌이 말씀하시는 (기독교의)천국이 어떤 곳인지는 몰라도,영혼(성령)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신 또는 하나님이 어떤 것인지는 몰라도 결코 흔들리고 움직이며 변하여 사라지는 것을 일컬어 하는 말들은 아닐 것입니다.변하여 사라지지 않는 것을 믿으면 믿음까지도 변하여 사라지지않아야 마땅합니다.

강물 위를 흘러가는 배에 자기 몸을 묶으면 배가 움직이면 자기도 움직이는 것이라 이것을 묶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왜냐하면 묵는다고 하는 것은 움직이지 않으리라 믿고 묶는 것인데 오히려 배가 움직이는 것에 따라 묶인 것도 움직인다면 언젠가는 폭포에 다다라서 아래로 떨어 지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이,또는 하나님이 있다면 그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어야 거기에 자기를 묶는 믿음이 따라서 변하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외삼촌도 잘 알다시피 구약의 하나님 성품을 보십시오. 온통 일반 사람과 다름이 없습니다. 자기 뜻에 안 맞으면 침략하고 강탈하고 살과 뼈를 도려내는 등 ,분노.진노에 나아가 저주까지 하기를 마다하지 않고,뜻에 맞으면 칭찬 하고 세세에 복을 준다고 달래고,이렇게 사사건건 사람의 감정과 똑 같은 성정을 가진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분노한다면 분노 하지 않은 것에서 변한 것이고, 기뻐 한다면 분노 함에서 변하여 그리 되는 것인데,이것은 하나님 성품이 우리와 꼭 같이 들쭉날쭉하여 항상 됨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항상 됨이 없다면 그것은 변하는 가운데 놓여져 있는 물건이고 변하는 것은 의지할 만한 물건이 아닙니다.

원인인 하나님의 성품이 이러한 까닭에 우리가 아까 살펴 본 바와 같이 (예수) 믿는 사람 중에는 잠을 잘 때에도 밥을 먹을 때에도 똥을 쌀 때에도 동침을 할 때에도 성을 낼 때에도 돌 뿌리에 걸려 넘어 질 때에도 욕 먹을 때에도 누가 와서 뺨을 후려 칠 때에도 심장이 마비되어 숨이 까닥까닥 넘어 갈 때에도 반듯하고 한결 같이 처음의 그 믿음을 중간과 나중까지 변치 않고 사라지지 않게 또렷하게 가질 수 있는 사람이 단 한 사람인들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잠을 잘 때에는 꿈을 꾸느라 믿음이 온데 간데 없고,밥을 먹을 때에는 맛을 느끼느라 믿음이 숨어 버리고 똥을 쌀 때에는 바빠서 정신이 없고,동침을 할 때에는 애욕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리느라 믿음이 찾아 볼 수 없고,돌 뿌리에 넘어 질 때에는 놀라는 바람에 믿음이 달아나 버리고,욕을 먹고 뺨 대기를 맞을 때에는 성을 내는 열기에 믿음이 촛농처럼 흘러내린다면 정신이 이렇게 살아 있을 때에도 그러한데 항차 죽음의 마왕이 온몸의 구멍을 다 막아 버릴 때에는 오죽 할 것입니까? 보나마나 입니다.

더군다나 죽을 때엔 거의가 심장이 멈추어서 죽는 데 심장마비로 죽을 때의 그 사람의 혹독한 고통이 어떠 한지는 우리가 보아서 다 아는 일입니다.
육체의 번잡함에 따라 정신이 아득 아득 한데 믿음인들 온전 하겠습니까? 이것은 다 변하여 사라지는 육체의 정신작용에 자기의 믿음을 위치 시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肉丹心(육단심)이라 합니다. 이것은 마치 눈으로 파란 색을 보다가 고개를 돌려 빨간색을 보는 것과 같아서 불리우기는 파란 것이다 빨간 것이다 하고 달리 불리 우지만 보는 작용은 똑 같아 고개만 돌린 것에 불과한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눈으로 보고 정신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만일 눈이 감기거나 정신이 딴데 가 있으면 보아도 본 것이 아니요, 들어도 들은 것이 아닌 셈입니다. 여기에다가 자기의 믿음을 묵어 놓으면서 천하에다가 자랑을 하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이겠습니까?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믿음이라 하여 너도 나도 주고 받습니다.위로 교황이나 원로 목사로부터 아래로는 영아세례 받는 아이까지 이렇게 서로서로 믿음을 주고 받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교황이나 원로 목사들에게 전해준 그 선조 되는 교황이나 목사님들이 또 그런 믿음을 전해 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전해 받은 것만을 전해 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이제껏 기독교에 있으면서 신,구교를 막론하고 육단심 말고는 믿음을 아는 자를 보지도 듣지도 못했습니다.따라서 2000년 동안의 그 많은 믿는 사람들이 어디를 갔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외삼촌: !

유 마: 외삼촌,저는 거들먹거리느라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하찮은 천국을 간다고 할지라도 믿음은 바로 알아야 나중에 우리가 자신에게 속는 일을 면할 수 있습니다.
오고 가고 앉고 눕고 움직이고 머물 때마다 믿음이 따라서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고 앉기도 하고 눕기도 한다면 그 움직이는, 한결 같지 않은,새어 나감이 있는,남음이 있는 믿음으로는 어리석은 사람들 앞에서나 호령할 뿐이지,죽음의 마왕 앞에서는 어림도 없으며,비록 오나 가나 앉으나 누우나 믿음이 제법 한결 같이 또렷하다 하여도 깨어 있을 때의 일이요 막상 잠을 자버리고 나면 잠 하나도 똑 바로 자지 못하고 온갖 꿈을 꿔대는 그 믿음으로는 죽음의 마왕 앞에서는 역시 허우적 댈 것이 뻔한 노릇이고,비록 꿈을 꿀 때에도 믿음이 또렷하여 밝게 밝게 빛난다 하더라도 꿈도 없는 깊은 잠에 빠져 믿음이 온데 간데 없이 잊어 버리는 믿음으로는 죽음의 마왕 앞에서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 갈 뿐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럼에도 불구하고 늘 자족하여 나는 믿음이 있으니 너도 믿음을 가져 구원 받아라 하는 것을 보면 실로 가엾다 못해 연민의 정을 느낍니다. 목사님들이라 하여도 그 뜻은 비록 양을 지키는 스승이라 하지만 전해 받은 것이나 전해 주는 것이나 하나 같이 그 육단심의 믿음을 두고 말할 뿐이니 천박한 목동에 불과 할 뿐, 장차 죽음을 앞둔 제가 어찌 믿고 의지 하겠습니까? 이야 말로 눈 봉사에게 내 손을 맡겨 이끌게 하는 꼴이니 생각만 하여도 무섭습니다.

제가 기독교의 그 믿음이라는 것을 썩은 사과처럼 버린 까닭입니다.
기독교에는 스승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없기 때문에 가르침이 없고 가르침이 없기 때문에 모자란 것을 가지고 완전하다고 우겨대기만 할뿐 아무도 길을 가보지 않은 사람들입니다.그렇지 않습니까 삼촌, 누가 이 길을 가 보아서 흔들리지 않고 흘러 가지 않고 새어나가지 않고 남음이 없는 그 경지를 터득 하였겠습니까?

이것은 이것을 가르친 하나님의 경지가 바로 그 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라 자칭하는 신이 자기가 이르른 그 경지를 가지고 사람들에게 권유 하였으니 마땅히 하나님의 경지가 이것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하나님을 믿는 무리들의 관계는 진흙과 도자기의 관계일 뿐입니다, 진흙의 양이 도자기의 크기를 결정 하는 것입니다.진흙이 많으면 도자기도 커질 것이요,진흙이 작으면 도자기도 따라서 작아 질 것입니다.

외삼촌: ……!!!

(외삼촌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고 마침 누나가 커피 잔을 내오는 핑계에 기대어 유마는 더 이상 외삼촌을 곤경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대화를 중단하였다.그런데 큰누나가 커피를 내 주고 돌아 서면 하는 말….)

큰누나: 너 아무리 그래 봐야 하나님이 살아 있어서 소용없어!
유 마: ㅋㅋㅋ ! 쩝….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4-08-05 09:26:03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Author

Lv.1 인드라  최고관리자
400 (40%)

등록된 서명이 없습니다.

Comments

하나님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닌데.. 죽고 사는건 생물한테나 가능한것
그리고 하나님은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는동시에 모든것을 사랑한다.
하지만 인간들은 모든현상에 하나님을 들먹이니..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것이 하나님이다. 분자하나하나..모든것
대서양 2004.05.11 11:06
압박이 있었지만 숨도 안쉬고 읽었습니다
좋은 공부가 됐네요....
어벌큰놈 2004.05.10 13:24
유마 똘망똘망하네요...
인드라 2004.05.10 13:09
저도 퍼온것이라 잘모르겠음...ㅋㅋㅋ 알아서 하세요.
원작자도 기쁘하시겠지요...^^
어벌컨놈 2004.05.10 13:07
이거 내 블로그에 퍼가서 편집해도 되지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306 개독의 핑계 댓글+4 인드라 2004.05.19 3589
305 니체의명언 댓글+2 재야인사 2004.05.19 3086
304 Atheism, 무신론 (無神論) 오브르 2004.05.18 2861
303 세례명을 이름으로 쓰는 불쌍한 아이들. 댓글+4 목사킬러 2004.05.17 3649
302 대표적인 3대 기술의 예시 ravencrow 2004.05.17 2835
301 개독님들아~ 잘~~~읽어보고 가능하다면 제대로된 비판한번 해보시지요~ 댓글+7 돌머리안티기독교맨 2004.05.16 3193
300 지옥이 조아 댓글+4 김재성 2004.05.15 3217
299 정치판을 연상케하는 기독의 성서모순에 대한 반론 댓글+1 김호일 2004.05.14 3097
298 개독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진정한 세계관(우주관) ※※ 2004.05.14 2699
297 하나님은 하나가 아니다 어메나라 2004.05.13 2604
296 불알이니 자지니 그런건 쌍스럽나? 댓글+8 쥐뿔! 2004.05.13 3292
295 이원재 교수님께 댓글+9 진달래 2004.04.13 3302
열람중 유마와 먹사의 대화(펌) 댓글+5 인드라 2004.05.10 3103
293 기독교인은 바울의 죄를 용서할 수 있을까 어벌 2004.05.10 3079
292 생활속에서 실천하는 안티(덤바위) 댓글+4 인드라 2004.05.10 3130
291 옹기쟁이님께... 댓글+10 뭐야1 2004.05.09 7517
290 선을 행하는데는 종교구별이 없다. 댓글+2 복지사 2004.05.08 3521
289 기독교는 <사랑>이 필요해.. 어벌 2004.05.08 3107
288 어버이날 특집 - 두 아버지 댓글+2 !쥐뿔! 2004.05.08 3487
287 믿음의 거룩함, 사랑의 거룩함. 어메나라 2004.05.08 2968
Category
State
  • 현재 접속자 139 명
  • 오늘 방문자 3,775 명
  • 어제 방문자 5,734 명
  • 최대 방문자 5,825 명
  • 전체 방문자 1,616,482 명
  • 전체 게시물 14,416 개
  • 전체 댓글수 38,042 개
  • 전체 회원수 1,668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