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결하게 설명될 수 없는 논리에 대하여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간결하게 설명될 수 없는 논리에 대하여

안티포르츄나 0 2,526 2003.09.03 22:54
간결하게 설명될 수 없는 논리에 대하여


1


나는 강의를 듣는 것을 좋아했었다.
기나긴 학부과정,학위과정을 지나는 동안
유난스레 강의실이나 강당에 나서서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좋아하는
교수나 조교들의 연설과 강의를 찾아 다녔다.


누구나 공통적인 느낌이겠지만..


교수들이 자신이 할 강의내용이 분명할 경우
강의시간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그들의 조크와 행동, 칠판의 글들이
좋은 통일성을 이루고 있으며, 약간 설명하기 난해한 부분으로 들어서서도,
수업이 약간 루즈해지는 순간조차도 분명한 줄거리는 있다.
그러한 논점을 내가 동의하지 않더라도 분명한 하나의 입장과 사상을 들었기 때문에
가슴 뿌듯하다.  ^^;; 그런날은 남은 강의 다 땡땡이를 쳐도 전혀 부족함이 없다.

반면에
교수가 별로 준비하지 않았다거나...논점이 정확하지 않을 경우
수업은 유난스레 사족이 많이 달리고..군더더기가 많아지고..
논점에서 벗어나는 각종 질문들이 쏟아지고..수업은 오리무중으로 빠진다.
교수가 하는 말은 작은 먼지조각으로 잘개 깨어져서 공기속으로
의미없이 흩어져 버린다. 우리는 창밖을 보며 미로속에 빠진
수업에 흥미를 잃고 시계를 쳐다보게 된다.
교수는 흐트러진 수업을 정리하기 위해
"현상학적 철학의 모토는 이렇듯 사실 그 자체에로 나아가고자 하는 운동입니다."
별 고민없는 명제같지 않는 결론을 하나 던지고서
총총히 나가버린다. 멍~
아무리 많은 말을 들어도...그게 무슨 말인지 무슨 말이였었는지 기억이 잘 안난다.
그런 날은 남은 시간을 도서관에서 밤새워 공부하지 않으면 등록금이 아깝다.


2


동기들이나 선배 또는 후배들과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는 다반사다.
서로 다른 생각을 상대방에게 설명하고 그 설명들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예를 들고
객관적인 공감을 얻기위한 논리를 펼친다. 이것도 매우 좋아했었었다.(과거형)

그 사이에 보면 유독 말을 이해하기가 힘든 친구가 있다.
뭔가 대단히 열심을 보이면서 말을 하기 때문에 나도 매우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듣는데...결국 이해를 못하고 만다.

이런..내가 이해력이나 판단력이 부족한가..하고 그 사람을 붙잡고
저녁까지 사주며 다시 설명을 부탁해 본다. 그래도 모르겠다.

제길 ㅡ.ㅡ;;;


3


나는 글을 쓰는 계기가 될 때마다 또는 글을 읽을 때마다
글의 간결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간결하지 않은 문장을 사용하거나 간결하지 않은 말을 쓰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에 대해 별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본다.

이런 사람들이
일단 문장을 하나 써놓든가..무슨 말을 하고보면
이런저런 점이 좀 부족한 듯 보여서
여기에 추가로 뭔가를 더 써넣는다든지 아니면 말을 약간 모호하게 사용해서
듣는 사람이 알아서 논점을 파악해 주기를 바란다.
나중에 자신이 다시 생각해 보았을 때 잘못 사용한 부분이 있으면
그 부분에 대해 약간 수정된 뉘앙스를 추가로 설명해주든지.
아예 생각이 바뀌었다는 것을 내색하지 않고
원래 그런 의도로 말한 것인양 구체적으로 설명을 추가로 해준다.


말이 간결하지 않는 것은

아직 어느정도의 체계있는 사고가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나는 성경본문가운데 "성경의 진리를 복잡하게 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가 있다는 것이
상당히 기뻤다. 성경의 진리가 모든 사람에게 이해될 수 있는 진리라면
분명 그 말을 쉽게 설명이 되고 간결하게 전달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4


생각이 정확하지 않은 사람들의 특징은 역시 말이 장황하다.

예를 들면

"성경은 부자되지 말라고 한적은 없을 겁니다. 성경은 그 의미를 중요시 하니까요. 하나님 앞에
 합당한 부자는 없을까요..있을 겁니다. 시험을 통과한 욥을 부자가 되었잖습니까. 하나님이
 욥을 부자를 만든 것 아닙니까. 그럼 부자가 다 좋냐..그건 아닐 겁니다. 성경에 보면 가난하게도
 마시고 부하게도 마시고 하라는 구절이 있지요..그런데 왜 재산의 반을 숨긴 아나니아와 삽비라
 는 그 자리에서 쳐죽였을까요..부자라는 게 잘못이 아니라 숨겼다는 거짓말을 해서가 아닐까요
 거짓말은 나쁘죠..아뭏든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니 우리가 빈궁하게 사는 것은 하나님
 의 마음은 아닐 겁니다. 성경은 자신의 재산을 다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도 있고 십분의 일을 드리
 라는 말도 있고 마음에 원하는 만큼 내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여러분 성령의 인도를 받으십시요...."


이런 말은 말은 많이 했지만

부자가 되기 힘쓰라는 말인지
재산을 다 아끼지 말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내 놓으라든지
자신의 그릇대로 하라는 말인지

도무지 논점이 없이 그저 장황하기만 하다
물론 좋은 말도 많이 들어있고 틀린 명제들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말의 전체적인 구성에서 논점이 없다."



논점이 부족한 이유는

1.그 자체에 "논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 한계"일 수 있다.
이 것은 마치 정리되지 않는 잡다한 생각이 머리속에 가득차 있어서
그것이 아무런 통일성이 없이 뒤죽박죽 되어 있기 때문에
이사람이 보면 이렇게
저사람이 보면 저렇게
읽는 사람마다, 또는 그 말을 듣는 사람마다
다른 각도 다른 관점에서 멋대로 해석해도
얼마든지 이해했다고 "주장하는"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2.논리가 존재하지만 "그 논리 자체가 거짓일 경우"가 또한 그렇다.
다시 말해서 사기치다 걸린 논리 같은 것이다.
전혀 객관적인 공감을 얻을 수 없는 억지 논리인것이다.
자신을 변호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삼는 논리이다.
듣는 사람이 노력해도 들을 수 없는 비논리의 허망한 말일 경우에 그렇다.
사상에서의 사기를 치는 자들의 특징은
"객관적 사실들을 제멋대로 조작해내고 그 제멋대로의 논리에 권위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인정하지 않을 생각을 멋대로 말하고서는
듣는 사람이 이해하지 않을 시에 다시 멋대로 상대방을 모욕하거나 무시한다.
그것은 상대방에게 무시를 받기 전에 미리 무시를 해서
너나 나나 똑같다는 진흙구덩이 속으로 끌어들이려는 자세다
이 두사람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객관적 공감위에 있는 주장과 객관적 공감없는 주장
분별은 매우 어렵다.


5


나는 요즘 기독교인이 말이 많아지고 간결하지 않다는 것을 통해서
한국교회의 타락을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은 지금 설명이 매우 많이 필요한 짓꺼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찾아다니며 자신을 변호하고 신문에 반대기사를 쓰고 사람을 동원해서 데모를 하고
인터넷에 글을 계속 올리고..사람들이 혹시나 오해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어떻하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해하도록 생땀을 흘리고 있다.

게시판에 글을 쓰는 기독교변호인들의 글은 언제나 만족스럽지 않다.
지킬 수 없는 것을 지키려니..제 스스로 부끄러운 꼴을 보이고 있는 모습이다.



안티들의 글은 점점 간결하고 정확하게 지적하는 능력이 커지고 있으며
기독교인의 글은 장황하고 모호하고 에매한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나는 글을 읽으며 얼굴이 벌게지는 기독교인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주섬주섬 글을 쓰고 있지만...그럴 수 밖에 없는 입장에 서있는 그들이
가끔 불쌍하다.


이미 한국의 교회는 기울고 있다.
대단한 내부적 정화운동과 각성운동이 일어나지 않는한
그리고 지금까지 손으로 하늘이나 가리는 그런 단순한 기독교 운동이 아니라
한국목회자 모두가 자신의 재산을 다 내놓고 청렴결백을 선언하는 그 정도의
확실한 환골탈퇴의 운동이 아니면


한국교회는 없어져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에필로그


오늘 노인네 둘을 모시고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시원한 길 가에 자리를 펴고 도시락을 먹었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는 중에
나의 과거 자취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그동안은 아껴두셨던 말을 아버님이 꺼내 놓으셨다.

교회가 너무 많지않아 교회 바로 옆에 교회가 또 있는 거 장사속처럼 보여....
왜 성직자마다 돈문제,자식문제,여자문제가 그리 많아..
지하철에서 왜 그렇게 싫다는 사람을 괴롭혀..
교회 안이 왜 그렇게 극장처럼 웅장하게 지어놓지..목사지문인식 엘리베이터는 어떻게 생각해

아버님이 나에게 던진 질문은 간결했으나
그 누구도 이것에 대한 변호는 성경적으로 간결하게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시원한 그늘 아래에 누워서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는 구름에 가려 있었는데 그래도 눈이 부셔서 눈을 크게 뜰 수는 없었다.

진리가 있다면 아무리 방해가 심해도
그 자체가 눈부시기 때문에 숨겨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은 아무리 발악을 해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온갖 장황한 논리는 추한 꼴을 더욱 알리는 것일 뿐이다.
* 오디세이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09-05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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