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적 사고, 또는 천동설(天動說)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백인적 사고, 또는 천동설(天動說)

眞如 0 2,417 2004.03.30 23:55
백인적 사고, 또는 천동설(天動說) - 프레시안에 실렸던 김명훈님의 글입니다.
지금 헐리우드 영화 하나에 흥분하고 계시는 기독교인님들께서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 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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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천동설(天動說)이 여전히 받들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청소년의 8할 이상이 아프가니스탄·이라크·이스라엘을 세계지도에서 찾지 못하는 이 나라의 국민들에게는 세상만사가 자기중심으로 움직인다. 남의 간섭을 받기 싫다거나 내 멋대로 살고 싶다는 단순한 개인주의의 차원을 뛰어넘어, 세상의 주인공인 나의 뜻대로 주변 사람들까지 움직여 주기를 바란다. 아니 요구한다. 세상을 대하는 이러한 태도는, 타인들은 ‘보조역’에 지나지 않으므로 나의 뜻이 관철되기 위해 불특정 다수의 타인들이 희생되어도 무방하다는, 개개인의 의식 속에 자리 잡고 있는 굳건한 유아독존적 사고의 발현이다. 이는 국제사회에서 지금 패권주의의 길을 가고 있는 이 나라의 국가적 기치와 맥을 같이한다.

더 세분하여 들여다보면, 미국의 자기중심적 문화의 핵심에는 백인 중심의 세계관이 있다. 그 세계관에 의하면 백인사회 안에 들어있지 않은 것들은 중요하지 않으며, 관심을 둘 가치가 없다. 타국과 타 인종은 미국의 백인세계를 중심으로 공전(公轉)하는 위성이나 행성 쯤으로 여겨진다. 헐리우드는 이러한 백인 중심의 세계관을 전 세계 사람들의 의식 속에 심어주는 거대한 공장이며, 그 덕분에 백인 중심의 세계관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하다.

톰 샤디악 감독의 영화 ‘브루스 올마이티(Bruce Almightyㆍ2003)'는 아마도 헐리우드 영화 중에서 백인적 유아독존을 가장 단순 명쾌하게 표현한 영화인 듯싶다. 인간이 신(神)이 된다는 설정만큼 그 인간의 본질을 한눈에 보여줄 수 있는 설정을 상상하기가 힘들다. 이 영화에서는 며칠 동안 신 노릇을 하게 되는 한 인간의 장난에 그야말로 지구 전체가 들썩거리고, 아무런 잘못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난데없이 피해를 본다.

졸지에 신이 되어버린 브루스 놀런(짐 캐리)이 보여주는 모습은, 전능하지만 이기적이고 변덕스럽고 근시안적인 망나니의 모습이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조합이다. 짐 캐리가 보여주는 안면근육 연기가 재미있고 웃기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고 웃기기 때문에 더 두렵다는 것이다. 필적할 상대가 없는 강자는 세상을 어지럽혀 놓고도 나중에 가볍게 뉘우치면 그만인가. 자기밖에 모르는 자의 횡포는 그의 넘치는 개인기와 매력을 참작하여 대충 용서되는 것인가. 최소한 ‘브루스 올마이티’ 같은 헐리우드 영화가 암시하는 백인적 세계관의 근사 값은 이렇다.

방송기자 브루스 놀런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불만에 가득 차 있다.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이 죄다 불만스럽고, 신은 자신에게 너무도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린다. “하나님, 왜 나를 미워하십니까(God, why do you hate me?)”라고 정면 도전하면서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해댄다. 브루스는 이윽고 이를 가련하거나 또는 괘씸하게 생각하여 그를 호출한 신(모건 프리먼)에게 불려가 영문도 모르고 ‘면접’을 본 후, 무척 개방적인 신으로부터 신의 능력을 부여 받는다. 신이 되기 이전에 철저한 자기도취에 빠져있던 브루스는, 신의 능력과 함께 그의 임무를 떠맡고 나서도 지극히 자기중심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일관한다.

(여담: 모건 프리맨은 ‘딥 임팩트’(1998)에서 대통령 역을 맡은 데 이어 이 영화에서 신의 역을 맡게 됨으로써, 두 역 모두 조연이긴 했지만 이제 헐리우드에서 미국 대통령과 신의 역을 한번씩 맡아본 유일한 배우가 됐다. 개인적으로는 흐뭇한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흑인이 대통령이 되거나 하나님의 ‘인종’이 흑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모두 실제 사회에서는 용납이 될 수 없는 현실을 생각할 때, 미국사회의 토크니즘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낀다.)

우선 브루스가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불만, 아니 분노를 품게 되는 이유들을 보자. 그 이유들은 웬만한 사람이면 부러워할 방송기자의 직업을 가졌건만, 더 욕심이 나는 앵커 자리를 회사에서 안 준다, 출근시간에 차가 막힌다, 개가 집안에서 오줌을 갈긴다, 자신이 응원하는 아이스하키팀이 해마다 우승을 못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다. 달리 불만을 가질 이유가 없음직한 동거녀(제니퍼 애니스턴)와 함께 근사한 베란다까지 있는 집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그는 불현듯 자기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인간이라는 확신에 도달하여 이를 박박 갈기 시작한다. 이쯤이면 이 정도의 이유들로 자신의 삶에 대한 증오를 느낄 수 있는 중산층 백인들이 부러워지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정작 신이 되어 브루스가 행하는 ‘기적’들은 이런 사람에게 전지전능의 능력을 부여한 신의 정신상태를 의심케 한다. 자신이 몰고 다니는 차부터 세상에서 가장 비싼 차(50만 달러짜리 Saleen S7)로 둔갑시키고, 지나가는 여자의 치마나 들춰 올리고, 히스패닉계의 뒷골목 불량배에게 엽기적으로 보복하고, 동거녀의 가슴을 더 크게 만들고, 그녀와의 하룻밤 분위기를 고조시키기 위해 달을 끌어당겨서 베란다에 붙들어 매둔다. 달을 끌어당긴 것이 이상 해류를 일으켜 일본에서 난리가 났다는 뉴스는 한차례의 웃음거리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신이 이 인간을 간택한 기준은 무엇인가. 짐 캐리를 단순히 무대 위에 풀어놓은 원맨쇼가 아니라면, 유독 그가 신의 눈에 띄어 신의 능력이 주어질 인간으로 선택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의 불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것이었나. 하늘을 향해 삿대질 하는 인간이 그 한 사람뿐이었나. 버팔로시의 흑인 인구가 37%(2000년)인데 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백인 주인공의 배부른 타령을 능가하는 불평거리를 가진 흑인이 한 명도 없었단 말인가.

가령 주인공이 에디 머피였다면 어땠을까. 그도 이제 헐리우드의 배부른 스타이긴 하지만, 그가 브루스 역을 맡았다면 소재를 접근하는 방식에 많은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동거녀를 포함해 많은 요소들이 바뀌고, 웃겨주긴 하면서도 백인 중심의 사회의 병폐와 위선을 응시하는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그가 행하는 첫 기적은 자신의 피부색깔을 흰색으로 바꾸는 것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그러나 영화는 문제의식이나 당위성에는 관심이 없다. 백인 주인공이 가져다주는 보편성은 문제의식을 배제하는 효과를 갖는가 보다. 무궁무진한 실존적 명제들을 풀어놓을 수 있는 소재이건만, 코미디의 미명하에 인간사의 모든 고민을 생략해 버린다.

브루스가 실컷 난장판을 벌여 놓은 다음, 영화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도 평온하게 수습된다. 자기밖에 모르는 주인공의 응석을 다 받아주고 나서는, 뒤늦게 결말에서 우주의 섭리 따위에 대한 교훈을 남기려 한다. 이는 헐리우드의 자기중심적 시각에 감화된 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럴듯한 교훈일 수도 있다. “기적을 보고 싶나 자네? 자신의 삶이 기적이 되도록 하게.(You wanna see a miracle, son? Be the miracle.)” 그러나 이것은 도덕책에서 나오는 하품 나오는 모범답안에 지나지 않는다. 그래서 위선적이다. 이런 지극히 규범적이고 교화적인 레슨을 말해주기 위해 천문의 질서를 파괴하고 운석을 떨어뜨리고 폭동이 일어나도록 만들었던가.

이 영화에서 우리는 만든 이들이 의도하지 않은 메타포를 발견한다. 본의 아니게, 영화는 미국의 백인들의 보편적 의식구조와 세계관을 아주 명료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그 세계관과 의식구조는 이렇게 요약된다.

“인종문제나 빈부격차 같은 사회악이란 없다. (최소한 백인의 욕구충족에 우선하는 사회악은 없다.) 나의 본능과 욕구부터 만족시켜야 한다. 뒷골목의 불량배들은 대부분 히스패닉 출신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백인에 손에 희생당한 피해자들은 가능한 한 정체를 알 수 없는 불특정 다수로 처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그리고 신은 백인의 편이다. 백인이 설령 자기 힘을 악용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 할지라도 신은 이를 따뜻하게 감싸준다.”

이것은 풍자가 아니라, 영화가 무의식중에 말해주는 백인적 사고의 실체이다.

헐리우드는 미국 주류의 정서를 대변하고, 그 주류는 당연히 백인들이다. 여기까지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만, 그래도 숙제로 남는 것은 백인들의 이야기가 그 주류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에게도 보편성을 띤다는 것이다. 백인들의 러브스토리는 나의 러브스토리 같지만, 흑인끼리의 러브스토리는 왠지 남의 이야기 같다. 그 원인을 따질 필요가 있다. 그런데 백인들이 이룩해낸 보편성은 그들의 문화에 대한 비판을 비굴하게 만든다. 결코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가치관에 대해 마땅히 거부감을 가져야 함에도, 그 가치관에 동화된 혹자들은 무엇이 문제냐고 묻는다. 이것이 헐리우드가 이제껏 퍼뜨려온 백인중심 천동설의 위력이다. 백인의 의식구조에 대한 이해, 그리고 더 중요하게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의 정리가 없이 미국을 이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김명훈/재미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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