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무신론자의 믿음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2. 무신론자의 믿음

※※※ 0 2,354 2003.06.11 13:09

"무신론자들은 종교적 사람들과 어떻게 다른가?"

그들은 신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전부다.

무신론자들은 헤비 메틀을 들을 수―심지어 거꾸로―도 있고, 가사를 알면서도 베르디의 진혼곡(鎭魂曲)을 선호할 수도 있다. 그들은 하와이 셔츠를 입을 수도 있고, 몽땅 검정색으로 차려 입을지도 모르고, 심지어 주황색 가사(袈娑)를 걸칠 수도 있다. (많은 불교도들은 어떤 종류의 신에 대한 믿음도 없다.) 어떤 무신론자들은 성경을 가지고 다니기까지 한다―물론 반박을 위해서다!

당신이 누구이든지 간에 깨닫지도 못한 채로 여러 무신론자들을 만났을 가능성이 있다. 무신론자들은 대개 행동과 외양에서 별다르지 않다.

 

"별다르지 않다고?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종교적 사람들보다 덜 도덕적이지 않느냐?"

그것은 경우와 상황에 달렸다. 만약 당신이 도덕성을 신에 대한 복종으로 정의한다면 물론 무신론자는 어떤 신도 따르지 않기 때문에 덜 도덕적이다. 그러나 보통 도덕성에 관해 말할 때 사람들은 사회 내에서 용인되는(`옳은') 행동과 용인되지 못하는(`그른') 행동에 관해 말하는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최대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들과 협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은 대부분의 무신론자로 하여금 순수히 자기 보존의 목적으로라도 `반사회적'이거나 `부도덕적'인 행위를 못하도록 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단순히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공유하려는 자연스런 성향을 느끼기 때문에 `도덕적'이고 `동정적'으로 행동한다. 그런데 왜 그들이 타인에게 일어난 일을 염려하느냐고? 자신들도 모른다. 그저 그런 것이다.

`부도덕하게' 행동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무신론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당연히 있다. 그러나 `부도덕하게' 행동한 뒤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종교적 신념을 이용하려는 사람들도 똑같이 많다. 에를 들자면:

"여기 전적으로 받아들여야 마땅할, 신뢰할 수 있는 말씀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헌데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믿고 영생(永生)을 얻으려는 자들을 위한 본보기로서, 그 분의 한없는 인내를 나 안에서... 보여주시는 은총을 받았다. 이제 영원하고, 불멸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왕이신 유일한 하나님께 경모(敬慕)와 영광이 영원히 언제까지나 있기를."

위의 인용문은 위스컨신주 밀워키시의 악명높은 식인(食人) 연쇄 살인범 제프리 다머(Jeffrey Dahmer)에 의해 1992년 2월 17일 법정에서 행한 진술에서 가져 온 것이다. [역주: 위의 인용문 자체만으로 그것을 정확하게 이해하기는 좀 어렵지만, 자신과 같이 잔인하고 죄많은 인간까지 구원할 정도로 예수의 인내심이 강하다는 뜻으로 한 말 같다.] 무신론자인 살인마가 있으면 종교적 살인마도 있는 것 같다. 그러면 보다 평범한 도덕에 관해서는 어떨까?

로우퍼 기구(Roper Organization)가 행한 조사에 따르면 `거듭난(born again)' 경험 이후 행동이 퇴보했음이 발견되었다. `거듭나기' 이전에는 응답자의 단지 4%만이 음주 운전을 했다고 말한 반면, 개종 후에는 12%가 그랬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개종 이전에는 5%가, 개종 이후에는 9%가 불법적인 약물을 사용했다. 구원 이전에는 2%가 부정한 성관계를 했다고 시인했다; 구원 이후에는 5%였다.

[`오늘의 자유사고(Freethought Today)', 1991년 9월호, 12쪽]

따라서, 아무리 잘 봐줘도 종교가 도덕적 행동에 있어서 독점을 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여겨진다.

물론 매우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기와 20대 초반에 기독교 신앙으로 (그리고 기독교 신앙으로부터) 전향을 한다. 이 시기는 사람들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성적(性的)으로 활발해지는 때이기도 하다. 위의 숫자들은 단지 기독교 신앙이 도덕적 행동에 별 영향이 없거나 부도덕한 행동의 전면적인 감소를 일으키기에는 영향력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뿐일 수도 있다[역주: 겸손한 태도다. 이 조사의 결과가 반대로 나왔을 때 기독교도들이 보였을 자세를 상상해 보면...].

 

"무신론자 도덕 체계같은 것도 있나?"

당신이 "무신론자를 위한 도덕같은 것이 있는가?"를 의미한다면 위에서 설명된 것처럼 대답은 `그렇다'이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도덕에 대해 적어도 종교적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것만큼은 강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역주: 무신론자들의 도덕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에 있다].

만약 당신이 "무신론은 어떤 특징적인 도덕률(道德律)을 가지고 있는가?"를 뜻했다면 대답은 `아니다'이다. 무신론 그 자체는 어떤 사람이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관해 별로 시사(示唆)하는 바가 없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다른 이유에서이기는 하나 유신론자들과 동일한 `도덕 규칙들'을 많이 따른다. 무신론자들은 도덕이란 것을 어떤 초자연적 존재가 명한 규칙들의 집합으로서가 아니라 세상이 돌아가`야 한다'고 느끼는 방식에 따라 인간이 만든 어떤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무신론자는 그저 신을 거부하는 유신론자가 아니냐?" [역주: 여기서의 `거부(拒否)'는 가치 중립적인 표현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떼를 쓰는 아이와 같은 태도'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

<종교로부터의 자유 재단>에 의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한 무신론자들의 90% 이상이 종교가 자신들에게는 듣지를 않았기에 무신론자가 되었음이 밝혀졌다. 그들은 종교적 믿음들이 자신이 주변을 관찰한 바와 근본적으로 모순된다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무지(無知)나 거부로 인한 불신자가 아니다; 그들은 선택을 통한 불신자이다. 그들의 절대 다수는 하나 이상의 종교를 때로는 매우 심도 있게 공부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들은 종교적 믿음의 각하(却下)라는, 조심성 있고 숙고(熟考)한 후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물론 이 결정은 개인 성격의 불가피한 결과일 수도 있다. 타고나기를 회의적인 사람에게 흔히 무신론이라는 선택은 이치가 닿는 유일한 것이며, 따라서 그 사람이 정직하게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이다.

`거부하다'는 단어는 `어떤 것이 참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뜻으로 사용될 수 있다. 무신론자는 그런 의미에서만 신의 존재를 거부한다. 그들은 증거를 일부러 무시하면서 `거부를 해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들은 반드시 신의 부재를 자신 있게 단언(斷言)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을 논의한다는 것이야말로 확실히 그것이 존재한다는 암묵적(暗默的)인 인정이 아니냐?"

천만에.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마다 산타 클로스에 대해 얘기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굴뚝을 타고 내려와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을 준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팬터지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오르크[역주: 상상 속의 바다 괴물]와 고블린[역주: 악귀(惡鬼)]으로부터 타이탄[역주: 거인족]과 미노타우르스[역주: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우두인신(牛頭人身)의 괴물]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괴상한 생물들에 대해 논의한다. 그것들도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신론자들은 신을 믿고 싶어하지 않느냐?"

무신론자는 아무도 자신을 감시하지 않는 듯이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아무리 `대형(大兄)'이라는 존재의 마음씨가 좋다고 할지라도 감시당하고 싶은 마음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떤 무신론자들은 신을 믿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그런데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냐? 어떤 것이 사실이기를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은 그것을 믿어야 하느냐? 그런 접근 방식의 위험들은 명백하다. 무신론자들은 흔히 어떤 것을 믿고 싶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결론 내린다; 그 믿음을 위한 증거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무신론자들은 당연히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를 보지 못한다―그들은 그러기를 자신들의 영혼에서 내켜하지 않는다!"[역주: 유신론자들의 가장 전통적이면서 또한 역겨운 오만스런 발언들 중 하나이다. 어떻게 이런 말을 논리적 토론에서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말을 할 바에는 애시당초 토론을 시작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현재도 여전히 가장 애용되는 것들 중 하나이다.]

대부분은 아닐지라도 많은 무신론자들은 이전에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앞에서 설명되었다시피 절대 다수는 신이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심각하게 숙고해 보았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신에게 이르기 위하여 기도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물론 어떤 무신론자들은 열린 마음이 부족하다; 그러나 모든 무신론자들이 편견(偏見)을 가지고 있으며 성실치 못하다고 억측하는 일은 무례하고 편협하다. "신은 당연히 존재하며 당신이 제대로 보지 않을 뿐이다"와 같은 비평은 오만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만약 당신이 무신론자들과의 철학적 토론에 참여하기를 바란다면, 의심되는 것이라도 그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하여 그들이 신을 간구(懇求)했다고 말할 때 그들이 진지했음을 가정하는 것이 분명히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들이 기본적으로 진실을 말하고 있다고 믿으려 하지 않는다면 토론은 쓸데 없다.

 

"무신론자에게는 전 인생이 완전히 무의미하지 않느냐?"

많은 무신론자들이 의미 있는 인생을 산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컨대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결정하고 그 목표들을 추구한다. 그들은 영생을 기원함으로써가 아니라 계속 살아갈 타인들에게 하나의 영향을 줌으로써 자신들의 인생을 가치있게 만들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무신론자는 역사에 자취를 남기기를 희망하여 자신의 생을 정치 개혁에 바칠 수도 있다.

우연한 결과에서 `의미'나 `목적'을 찾으려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경향이다. 그러나 `인생'이 `의미'를 가지는 어떤 것인지는 전혀 분명치 않다.

달리 말하면, 질문처럼 보인다고 해서 그 모든 것이 실제로 질문할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무신론자들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라고 묻는 것은 "한 잔 커피의 의미는 무엇일까?"라고 묻는 것 만큼이나 어리석다고 믿는다. 그들은 인생이 어떠한 목적이나 의미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저 있을 뿐이라고 믿는다.

또한 인간의 존재에 `의미'를 주기 위해 일종의 초자연적인 외적 힘이 필요하다면, 이것은 분명히 어떤 가상적 신의 존재도 의미가 없게 만들지 않겠는가? [역주: 외적 존재인 신만이 인간의 존재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뿐이라면, 그 신의 존재에는 무엇이 의미를 부여하겠느냐는 반박이다.]

 

"그러면 무신론자들은 어려울 때 어떻게 위안을 찾느냐?" [역주: 신기할 정도로 유신론자들의 말은 비슷비슷하고 되풀이되는 경향이 있다―사실 그것은 어설픈 무신론자들에게도 마찬가지이긴 하다. 1996년도라고 기억되는데, 키즈 전자 게시판의 `개신교' 혹은 `자유 표현' 보드에서 어떤 개신교도가 이런 내용의 말―어쩌면 표현은 거꾸로였는지 모르겠다. 예컨대 "무신론자들은 기쁨을 도대체 누구와 함께 할 수 있겠는가!"와 같은―을 하여 여러 사람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위안을 얻는 방법은 많이 있다:

  •     
  • 가족과 친구들     
  • 애완 동물들     
  • 음식과 술     
  • 음악, 텔레비젼, 문학, 예술, 그리고 오락     
  • 스포츠 혹은 운동     
  • 명상(暝想)     
  • 정신 요법     
  • 약물     

이것은 어려움에 대처하기에는 다소 공허하고 허약한 방법처럼 들릴 지도 모르겠으나, 그러면 또 어쨌단 말이냐? 어떤 것들이 위안을 주기에 사람들이 그것을 믿어야만 하느냐? 아니면 현실이 아무리 가혹하다고 할 지라도 그것을 직면해야만 하느냐? [역주: 사실 이 마지막 반문은 무신론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유신론자들이 무신론자들에게 물어야 마땅한 것이다. 무신론자들이 보기에, 존재하지 않을 성 싶은 신에게 의지함으로써 현실을 회피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유신론자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러한 힐난성 질문에 대해 유신론자들이 방어용으로 쓸 만한 반문이다. 이 반문은 어느 입장에서 보더라도 정당성을 가진다. 그러나 무신론자와 유신론자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가혹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려서 위안을 구하는 그 대상을 유신론자는 `숭배하고', 무신론자는 `숭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단지 그것을 즐기거나 그것으로부터 위안을 얻을 뿐이지 신앙의 대상이 아니다.]

결국 그것은 당사자의 결정이다. 대부분의 무신론자들은 단지 그것이 편안하게 느끼게 해준다고 해서 그렇지 않았으면 믿지 않았을 것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들은 위안보다 진실을 우선시 하며,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때로 자신들을 불행하다고 느끼게 한다면 그것은 단지 불운(不運)일 따름이다. 진실은 종종 상처를 주는 것이다.

 

"무신론자들은 갑자기 자신들이 틀렸음이 밝혀질까 봐 걱정하지 않느냐?"

짤막한 대답은 "아니, 당신은 그러냐?"이다.

많은 무신론자들은 여러 해 동안 무신론자였다. 그들은 신의 존재에 대한 많은 논증과 상상된 증거들에 마주쳤지만, 그 모든 것들이 가치 없고 결정적이지 못함을 발견했다.

수 천년 동안의 종교적 믿음은 신의 존재에 대한 좋은 증명 하나 만들어 내지 못했다. 따라서, 무신론자들은 가까운 장래에 자신들이 틀렸다고 증명될 것 같지 않다고 느끼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에 관한 걱정은 끊고 있다.

 

"그렇다면 왜 유신론자는 자신들의 믿음에 의문을 제기해야 하느냐? 동일한 논법이 적용되지 않느냐?"

아니다. 왜냐하면 의문이 제기되는 믿음들이 같은 종류가 아니기 때문이다. 약 무신론은 회의적인, 취해야 될 `기본 입장'이다; 그것은 아무 것도 단언하지 않는다. 강 무신론은 소극적 믿음이다[역주: 왜 강 무신론이 소극적 믿음인지는 앞에서 토론이 되었다. 증명의 과학성 때문에 무신론이 보다 조심스러운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유신론은 매우 강한 적극적 믿음이다.

때로는 무신론자들도 유신론자들이 끼칠 수 있는 매우 실제적 해악(害惡)―단순히 신자들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이들에게―때문에 그들이 스스로의 믿음에 대해 의심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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