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哲學 神學 科學에서의 無神論 論爭 4.(펌)

무성 0 2,111 2012.10.04 15:21
哲學 神學 科學에서의 無神論 論爭 4.

4. 전통적(傳統的)인 철학에 도전(挑戰)하다.

Sartre는 자기의 무신론을 해명하고 신의 죽음을 강조하기 위해, 무신론적인 실존철학을 가지고서 여태까지의 철학 전체를 비판한다. Sartre에 따르자면 여태까지의 철학의 원칙은 [본질이 실존을 앞선다](Die Essenz<=Wesen> geht der Existenz voraus.)는 것이다. 따라서 실존 즉 인간은 초개인적인 법칙에 예속되어 있으며, 일차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은 본질이고, 본질이 현실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Sartre가 이렇게 이해한 전통적인 철학은 플라톤주의적인 철학이며, 이런 철학에 대한 찬. 반 양론은 Platon(프라톤) 당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전통적인 철학을 이렇게 이해한 Sartre는 [본질-실존-관계](Essenz-Existenz- verh ltnis)를 과감히 뒤집어엎음으로써, 여태까지의 형이상학을 극복하려 한다. 그래서 그는 [실존이 본질을 앞서고, 실존이 본질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외친다. 즉 과거에는 [인간이란 정해져 있는 것으로 되어가는 자]라고 말해졌지만, Sartre에게 있어서는 [인간이란 되어가고 있는 자요,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로 된다.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이다. 주체와 객체의 뒤바뀜이다. 이런 인간이해가 Sartre철학의 핵심이요, 출발점이다. 우리 인간들은 어떤 정해져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되어가는 바의 것(본질),이다. [그 어떠한 개념에 의해 규정될 수 있기 이전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이다. 인간이란 그저 자기가 구상한 그대로의 존재다. 인간이란 어떤 것으로 자기를 만들어나가는 자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사실 우리 인간은 자기가 구상하고 노력한 바에 따라 발전해나가는 경우도 매우 자주 있다. 아무리 이런 것이 자유라고 해도, 인간은 자기에게 미리 주어져 잇는 환경이나 조건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Sartre에 따르면, 인간이란 타인에 의해 규정되고 형성되어가는 자가 아니라 스스로를 만들어나가는 자다. 우리는 [인간이란 자기 이외에 입법자가 없는 그런 자] 라고 알고 있다. 즉 인간에게 규칙을 부여하는 자는 자기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자유롭고, 인간은 자유다.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咀呪)받았다] Sartre에 있어서의 인간은 이렇게 절대적으로 자유이며, 완전한 자율(自律)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기 혼자서, 자기 자신과 자기의 본질을 창조해 나가는 자다. 그런데 인간의 자유를 방해하는 자가 있다. Sartre는 이 자유의 방해자를 신이라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며, 일종의 무(無)요, 여러 사물들 중의 한 가지 사물이요, 여러 대상들 중의 한 가지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는 명제(命題)를 정립(定立)한다. 그리고 Sartre는 이런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두 가지의 기본사상을 내세운다.

첫째, <신이 존재한다면, 인간은 자기의 본질을 신으로부터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은 자기 안에 감춰져 잇는 본질, 즉 신의 생각과 의지, 일정한 목표, 완전히 정해져 있는 가치 등등을 실현시켜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인간은 이러한 의무에 억눌려 선택할 가능성과, 따라서 자유를 잃어버리고 만다. 다시 말해 인간은 신의 법률을 따르도록 강요당한다. 그래서 신의 실존은 인간을 남(他者, 곧 신)의 의지에 따라 춤추어야 할 꼭두각시로 전락시켜 버리고 만다. 그래서 Sartre는 <인간은 자유롭고, 자기 자신의 창조자이고, 모든 가치들의 창조자이기 때문에, 신은 존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Sartre의 무신론의 근거가 뚜렷이 나타난다. 인간이 자유롭기 위해서는 신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Sartre는 무신론을 주장하는 두 번째 이유를 [남을 위해 있는 존재](Sein f r Andere)에서 이끌어낸다. Sartre는 인간의 의식(Bewu tswin)을 분석하면서, 존재를 [그 스스로 있는 것](Ansichsein)과 [스스로를 위해서 있는 것](F rsichsein)24)으로 구별한다. 이것을 좀더 자세히 실펴 보기로 하자. 의식이 [어떤 것]을 생각하는 한, 의식은 [객관적인 것](대상이 되는 것)을 생각한다. 이 객관적인 존재가 [스스로 있는 것]인데, 물질적이고 확실하고 확고하고 밖으로 드러나 있는(현상되어 있는) 그런 존재를 뜻한다. 또 Sartre에 따르자면, 의식구조는 이 <스스로 있는 것>과 나란히 하나의 다른 존재영역을 열어준다. 그것은 <존재에 관한 물음을 제기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반성하는 의식과 반성 이전의 의식이다.> 그리고 이 <존재에 관한> 물음은 (존재를)부정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정의 근거는 무(無)이다. 이 무는 순순히 긍정적인 <그 스스로 있는 것>에서 생겨날 수 없다. 그래서 물음을 제기하고 부정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만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은 그것을 통해 무(無)가 세상에 오게 되는 그런 존재다]. 인간은 <그 스스로 있는 것>을 없애는 데서 자기 스스로에게로 되돌아오게 된다. 인간이 <그 스스로 있는 것>을 없애버리지 않는 한, 즉 인간이 <그 스스로 있는 것> 을 인정해 주는 한, 인간 자신이 <그 스스로 있는 것>의 한 조각이며, 따라서 자기 자신을 소외시켜 버리고 만다.

이렇게 <그 스스로 있는 것>을 없애버림으로써 인간은 <자기 스스로를 위하게> 된다. 이렇게 <그 스스로 있는 것>을 없애버리는 것이, 자기 자신을 기획(企劃)할 수 있는 인간의 자유의 근거로 된다. 여기서 Sartre에게 있어서의 <그 스스로 있는 것>이란 일반적으로 이해되고 있는 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Sartre는 인간이 <스스로를 위할 수 있기> 위해서는, 즉 자유를 우리기 위해서는 신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존재자는 자기의 굴레를 없애버리는 그런 존재자다.]

5.이웃이 자유를 빼앗는다.

Sartre에게 있어서의 <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 존재>는 위태롭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다. 인간학에서 말하고 잇는 바와 같이, 인간이란 본래 <(무엇이) 결여(缺如)되어 있는 존재>(Mangel Wesen)다. 그래서 < 그 스스로를 위해서 있는 존재>인 인간에게는 자기 이외의 남, 즉 <이웃>이 필요하다. 물질적인 존재들의 스스로 안에 묶여 잇는(결합되어 잇는) 것과는 반대로, 실존으로서의 인간은 남들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Sartre는 그 이유를 남(이웃)이란 실존이 자기 자신의 존재를 위해 필요로 하는 그런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남을 필요로 하는 데서 자연히 남들과 관계를 맺게 되고, 남에게 의존하게 되고, 자기의 실존을 남들에게서 받아들이게 된다. 그렇게 되는 더세 인간은 자유를 제약받거나 빼앗기고, 남의 객체(대상)로도 되고, 따라서 스스로를 소외하게 된다. 즉 실존으로서의 인간은 남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남들과 더불어 삶으로써 자기의 자유를 빼앗기고 만다는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자유를 빼앗기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나는 남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보일까?> 하고 고민한다. 나의 자의식(自意識)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 하는 것에 따라 정해진다. 나의 지평에 남들이 나타나는 데서(등장하는 데서), 나는 나의 기획에 따라 존재하고 있는 나의 세계가 남들의 기획에 끼어들기 위해 나에게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런 것을 깨달은 인간은 남들을 더불어 살아갈 동반자가 아니라 투쟁의 대상으로 살게 된다. 그래서 Sartre가 도달한 결론은 [남들은 반드시 객체(客體/對象)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Sartre는 더 나아가 [남들은 지옥(地獄)일 뿐이다], [원죄(原罪)란 남들이 있는 세계에 내가 나타나는 것이다]고 하며, 남들을 철저하게 적대시(敵對視)하고 있다. 또 Sartre는 만약에 신(神)이 존재(存在)한다면, 그 신은 <남들의 총체(總體)>(der Inberiff des Anderen)일 거라고도 한다. 내가 나름대로 남들을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것과는 반대로, 신은 절대로 대상으로 삼을 수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은 전능(全能)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은 대상으로 될 수 없는 주체(主體)일 뿐이라고 한다. Sartre에 따르자면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내가 신의 대상으로 될 뿐이며, <신은 그저 지옥일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도 Sartre가 신을 없애거나 죽여야 할 이유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신이 인간을 감금(監禁)해 놓고 자유를 빼앗는 감옥(監獄)이요 지옥(地獄)이니 지옥을 쳐부수겠다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만 같다. 그러나 남으로서의 이웃과 신을 부정하는 것은 사회를 부정하는 일이다. 인간은 <결여(缺如)되어 있는 존재(存在)>이기 때문에, 이 부족함을 보충해 줄 남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이웃을 자유를 빼앗아가는 적대자(敵對者)를 보고 부인한다면 인간은 어떻게 완전에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이런 생각이 Sartre철학의 커다란 잘못이다.

6. 우리가 태어난 것도 부조리(不條理)요, 죽는 것도 부조리다?

Sartre가 신의 실존을 부인하는 두 번째 증명은 <신의 개념>이 모순(矛盾)을 내포(內包)하고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Sartre에 따르자면 인간은 <스스로 만든 존재>를 없애버릴 때, 즉 자기가 <무>일 때에만 존재한다. 인간은 존재의 이런 결함, 즉 우연 속에 내동댕이쳐져 잇는 것을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또 존재의 동일성 즉 <스스로 있는 것>과 <스스로를 위해서 있는 것>을 동시에 추구하려고 한다. [<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 것>은 <그 스스로 있는 존재>가 결여되어 있는 그런 존재다. 그리고 <그 스스로 있는 존재>는 <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 존재>가 결여되어 있는 존재다.] 그런데 이 두 가지를 종합하려는 노력은 큰 잘못이다. 왜냐하면 <그 스스로 있는 존재>에서는 인간으로서의 인간이 없어져 버리고, <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 존재>에서는 인간이 <무>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스스로 있는 존재>와 <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 존재>는 동일하게 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노력은 실패로 돌아가며, 인간은 절망을 하도록 저주받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인간의 모든 활동이 다 같이 큰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모든 활동이 좌절(挫折)되도록 저주(咀呪)받았다는 것을 동시에 발견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기의 결함(缺陷)을 벗어나려고 시도하는 데서 즉 동시에 <스스로 있는 자>와 <스스로를 위해서 있는 자>로 되려고 노력하는 데서 실현시키려고 하는 바의 것은, 결함이 있는 신이라는 개념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신]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스스로 있는 자>와 <스스로를 위해 있는 자>라는 이상(理想)을 나타내는 것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 이런 이상의 배후(背後)에는 신으로 되려는 인간의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Sartre에 따르자면 이러한 소망 속에 인간존재의 전체적인 부조리(不條理)가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러한 열정 속에서 스스로를 없애버리기 때문이다. 인간이 그렇게 하는 목적은 [존재의 바탕을 세움과 동시에 <그 스스로>를 구성하기 위해서다. 이 <그 스스로>는 그 자신의 바탕을 가진 것으로서 우연에서 벗어나고, 종교가 신이라고 일컬르는 <스스로가 원인인 존재>(Ens dausa sui)다. 이렇게 해서 이 열정은 그리스도의 열정을 되돌려 놓은 것으로 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인간으로서는 멸망(滅亡)함으로써, 신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의 개념은 모순(矛盾)에 차 있다. 우리는 괜히 우리를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은 일종의 필요 없는 열정이다.]36) [우리가 태어나는 것이 부조리다. 우리가 죽는다는 것도 부조리다.]37) 여기서 우리는 뜻하지 않게 Sartre의 비관주의(悲觀主義)를 발견할 수 있다.

<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 것>과 <그 스스로 있는 것>의 완전한 동일성은 개념으로 성립될 수도 없고 절대적인 본질이란 그저 생각으로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신의 개념은 불합리(不合理/不條理)하고 그 자체 안에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신은 <그 스스로 있는 존재요 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 존재>로서 자기 스스로와 완전히 일치해야 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으로부터 완전히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앞에서 간단히 본 바와 같이 이 두 가지는 동일하게 될 수가 없고, 우리 인간이 그렇게 하려다가 절망만 하고 만다. 여기에 인간의 한계가 있다. <그 스스로 있는 것>과 <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 것>이 일치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둘을 억지로 일치시켜 놓은 것이 從來의 神의 槪念이니, Sartre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신의 개념은 모순일 수밖에 없다.

7. 자유만이 책임을 지게 할 수 있다.

Sartre가 이렇게 신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한편에서는 그의 무신론을 [그의 사고의 한 측면]이라고만 보고, [그의 저술의 핵심]이라고 절대로 보지 않는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는 그의 철학적(哲學的)인 주저(主著)를 바로 [자연적(自然的)인 반 신학(反神學](naturliche Antitheologie)라고 해석한다.

그러나 신이라는 가정(假定/ Hypothese)을 정직(正直)하게 부정하는 것은, Sartre에 있어서는 휴머니즘의 근본적인 접근이다. Sartre가 신을 부정하는 목표는 첫째로는 <신이 되고저 하는 착각(錯覺)>에서 인간을 구원해 내는 것이고, 둘째로는 <신의 실존을 들먹임으로써 총체적인 자유에 참여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자기의 의미를 규정하는 데 참여하는 것에서도 벗어나려고 하는> 인간의 경향을 백일(白日)하에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다. 즉 인간은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핑계로, 자유에 참여하지 않고, 자기의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자기의 의미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이렇게 하게 해주는 자유에서 도망치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인간중심주의>인 휴머니즘이 설 곳이 없어지고 만다. 따라서 이렇게 신을 부정하는 목표는 인간을 부정직한 상태에서 해방시키는 것이다. 즉 인간은 자기의 현재의 상처를 미리 받아들이고, 자기가 하나의 <그 스스로 있으며-그 스스로를 위해 있는-존재>로 될 수 없는 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에야 자기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또 신을 이렇게 부정하는 것은 동시에, 인간은 계속해서 모든 규정들에서 벗어져 나와 스스로를 선택하고, 의미와 가치를 하늘에서 찾아내려고 생각하지 않을 때에만 자기의 본질을 실현시킬 수 있다는 반성이기도 하다.

누누히 말해온 바와 같이, Sartre는 신과 이 신을 믿는 종교가 없어져야 인간이 스스로 결정하는 자유를 스스로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자유를 행사할 때, 그 행위는 도덕적인 가치를 지니게 된다. 즉 인간은 자유롭게 행위 했을 때만이 자기의 행위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인간은 신이나 자기 이외의 그 어떤 자를 구실(口實)로 내세우더라도 자기에 대한 책임을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실존철학에서 <책임>을 내세우는 것도 바로 그 행위가 자유에 따른 행위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Sartre에 따르자면 인간의 기획(계획)은 <자기 자신>을 해방시키고,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책임 있게> 실현시켜 나가는 것이다.

이렇게 철저한 Sartre의 무신론을 여태까지의 그 어떤 무신론보다 원숙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고들 한다. 그 이유는 그의 무신론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특징들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로, Sartre는 반종교적인 정서가 깃들어 잇지 않은 그런 무신론을 주장한다. 그의 주장에는 논쟁을 불러 일으킬만한 어조(語調)는 없다. 사실 신을 부정하기는 하되 현실적인 종교비판은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사실은 그의 어린 시절의 가정 분위기 때문일는지 모른다. 둘째로, Sartre는 계속해서 변질(變質)해온 이데올로기와 같은 그런 무신론은 반대한다. 무신론의 가장 큰 폐해(弊害)는 바로 그것이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이 있는데 다른 무신론과 같이 신의 실존은 반대하면서도 이데올로기화하지 않은 것이 Sartre무신론의 가장 큰 특징이다. [실존주의자는 될 수 있는 대로 노력을 적게 들이고 신을 제거하고자 하는 일정한 유형의 세속적인 도덕에는 단연코 반대한다]. 그는 이렇게 통속적이고 깊이 없는 무신론에는 반대한다. 그리고 또 그는 [무신론은 일종(一種)의 잔인(殘忍)하고 지리(支離)한 모험이다. 나는 무신론을 끝 가는 데까지 다뤄 보았다고 생각한다] 고도 말하고 있다. 그가 여기서 무신론을 <잔인하다>고 한 것은 정치 이데올로기화된 무신론을 가리킬 것이다. 이런 무신론을 알고 있던 Sartre는 정치의 도구로 전락한, 이데올로기화된 무신론을 반대한 것은 당연(當然)한 귀결(歸結)이다. 왜냐하면 이런 무신론은 인간에게 해방(解放)이 아니라 속박(束縛)만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신의 속박에서 풀려나 스스로의 자유, 즉 자율에 따른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는 것을 자기 철학(哲學)의 이상(理想)으로 삼고 있던 Sartre는 경직화(硬直化)된 이데올로기가 신보다 더 잔인하고 인간의 자기형성(自己形成)에 더 해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Sartre가 거듭해서 주장하고 있는 바와 같이, 신이 없어야 자유로워지고, 자유로이 행한 행동이 진정(眞正)한 인간의 행동이며 이렇게 행해진 행동에만 책임(責任)이 따른다. 일반적으론 시인(是認)되고 있듯이 자유에 따르지 않은 행동, 즉 강요된 행위에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신을 없애고 자유가 된 인간은, 바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서 <신의 죽음>=<인간의 자유>=<행위주체인 인간의 책임>이라는 등식이 성립된다.

8. Sartre의 투쟁목표는 <무상(無常)>이었다.

우리는 여태까지 Sartre의 무신론의 핵심(核心)을 개략적(槪略的)으로 살펴봤다. Sartre의 무신론에 대한 해석은 대충 네 가지가 있는데, 이 해석들의 성격이 분명치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런 논란에 끼어들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간단히 이 네 가지의 해석들을 무비판적(無批判的)으로 요약해 보기로만 한다. 예컨대,42) G. Marcel(마르셀)이 Sartre를 [체계적으로 신을 모독(冒瀆)한 자]라거나 [청소년을 부패(腐敗)시킨 자]라고 한 것은 지나치게 조급하게, 따라서 지나치게 빨리 내린 결론이고, H. Dumery(두메리)가 스스로 모순에 빠져 있는 Sartre의 신개념은, 획일적(劃一的). 가치론적(價値論的). 이원론적(二元論的)인 신개념(神槪念)에는 들어맞으나 三位一體인 신에게는 들어맞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논의해볼 필요는 충분히 있고, F. Jeanson(진슨)이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Sartre의 휴머니즘을 그리스도교 휴머니즘을 완성한 것이라고 칭찬하는 일도 Sartre의 기본적인 의향(意向)에 들어맞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Sartre에 관한 비난과 칭찬은 엇갈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섣불리 어느 한쪽을 지지하거나 거부할 수만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우리는 독자적으로, 위에서 논의해온 내용에 따라 Sartre의 무신론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판을 해보기로 한다.

(1)우리가 Sartre에게 물어보고 싶은 첫 번째 질문은 <인간을 절대적인 자율에로 해방시켜 주기 위해 신을 없애버리려는 목표를 지니고 있는 그의 존재론이 그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즉 일종의 휴머니즘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Sartre의 이러한 존재론, 즉 철학은 본질적으로 인간학으로 좁혀져 버리고, 휴머니즘을 절대화(絶對化)해 버린다. 그러나 우리가 보기에는 Sartre의 철학적인 분석(分析)은 신뿐만 아니라 그 어떤 휴머니즘도 불가능(不可能)하게 해버리는 것 같다.

왜냐하면 Sartre에 따르자면 인간의 본질의 바탕은 <무(無)>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무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사실(事實)이다. 인간은 애초부터 불가피(不可避)하게 우연(偶然)히 내맡겨져 있다. <그 스스로를 위해서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은 <없애버리는>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내용 없는 의식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은 가능한 것에 대한 기획(企劃)을 통해 구성(構成)되어 있으나, 그 기획 자체 안에는 자기가 포함되어 있질 않다. 인간은 오로지 <그 자신 밖에 있는 존재> 안에 실존하고 있다. 인간의 존재는 언제나 유동적(流動的)이다. 왜냐하면 인간의 존재는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재는 <무>다.45) 어떻게 그런 존재론이 [휴머니즘]을 창설(創設)할 수 있겠는가?

또 자유를 한계(限界)도 제약(制約)도 없는 절대적(絶對的)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도 인간을 모든 관계에서 고립(孤立)시켜 버린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Sartre는 이웃마저 자유를 빼앗는 자라고 규정하고 배척(排斥)하고 있다. 이렇게 고립된 인간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으로 전락(顚落)하고 만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궁극적(窮極的)인 의미와 삶의 근거(根據)를 찾아낼 수 없어, 낙담(落膽)하여 완전히 자기 자신에게로 틀어박히고 만다. 존재는 <무>다. 인간은 절대적으로 의미가 없는 그런 세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Sartre의 이런 존재론의 결과인 그의 인간학과 자유론은 제절로 모든 존재가 궁극적. 필연적(必然的)으로 아무런 뜻도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Sartre에 따르자면,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신의 실존이 인간의 자유를 없애버린다. 이 말을 구체적으로 Sartre의 존재론(存在論)에 적용해 보면, 신의 실존은 의미가 없는 자유를 부정하게 되리라는 것을 뜻한다.

이런 여러 가지 비관적인 비판에도 불구하고, Sartre는 자기의 휴머니즘을 철저한 낙관주의(樂觀主義)라고 이해하고, 이것에 대한 모든 비판적(批判的)인 해석(解釋)에 날카롭게 대항(對抗)한다.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인간을 어떻게 만들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우리들이 만들어낸 것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것이다. 이런 계속적인 자기창조, 즉 절대적으로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고와 행위로 발전하는 것이 이런 낙관주의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Sartre는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들로 하여금 <고쳐 생각하게> (Umdenken) 하려고 강요(强要)하려 하며, 또 우리들에게 신을 부정하는 것을 반드시 비관(悲觀)주의나 쾌락(快樂)주의나 허무(虛無)주의나 유물론(唯物論)과 연결지우는 여러 사고는 이제부터 버려야 한다고 말하려 한다.

이렇게 해서 Sartre의 휴머니즘은 일종의 역설(逆說/Paradox)에 빠져 들게 된다. 우선 그는 인간을 일종의 쓸모없는 정열로 보고, 태어나는 것을 부조리라고 보고, 반드시 죽어야만 하는 것도 부조리한 것으로 본다. 그 다음에 그는 자기의 행동철학(行動哲學)을 <자기 자신으로 해방되어 가는 인간>이 의미를 실현시켜 나가는 낙관적(樂觀的)인 학설(學說)이라고 보고 있다.

(2)Sartre의 존재론은 실존(주관), <그 스스로를 위해서 있는 것>과 본질(객관, 그 스스로 있는 것), 즉 실제적인 실존행위와 본질을 낡은 형이상학에 따라 온당치 못하게 구별 짓는 데서 생겨난 것이다. 과거의 존재론에 따르자면, 현존재(인간)에게 알 맞는 본질의 바탕이 되는 것과 우선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없다. 그래서 앞뒤를 규정하는 관계는 현존재(現存在)가 본질을 전제(前提)로 하고 있다. Sartre가 이런 형이상학을 극복하는 방법은, 이런 관계를 뒤집어엎는 것이다. 즉 실존을 본질의 바탕으로 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이 존재할 수 없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과거의 형이상학에서는 본질로서의 신이 먼저 존재하고, 이 본질에 따라 실존이 생겨나고 규정되었으나, Sartre의 철학에서는 실존이 먼저 있으니 본질로서의 신이 필요 없고, 따라서 신이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Sartre는 실존(그 스스로를 위해서 있는 것)과 본질(그 스스로 있는 것)이라는 근본적인 도식(圖式)을 뒤집어엎었다는 데에만 머물러 있다. 이렇게 뒤집어엎는 일은 전제(前提)나 거듭해서 스스로를 파괴(破壞)할 뿐이다. Sartre는 본래적(本來的)인 존재문제는 제기(提起)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존재의 밑바탕에는 언제나 본질과 실존의 구별이 가려 있기 때문이다.

Sartre의 신개념(神槪念)에 대한 비판(批判)이 노리고 있는 것은 주관(主觀)과 객관(客觀)을 분리(分離)하는 데서 생겨난 형이상학적인 신개념(神槪念)이며, 이런 일은 이미 중요한 철학자들이 다 해왔던 일이다. 이렇게 해서 Sartre는 신을 비판할 때 Descartes(데칼트)와 Leibniz(라이프니치)의 신개념과 관련을 갖게 된다. 즉 그의 무신론은 유신론적인 신개념으로 되돌아간다. 합리론적인 유신론은 신을 저세상에 있는 <최고의 존재>(summun ens)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신은 질서를 보호하는 자로 되고, 기술적. 기계적인 창조자로 된다. 만약에 우리들이 Sartre처럼 신을 <보다 높은 곳에 있는 수공업자(匠人)>나 탐욕스럽게 자기의 보물을 지키고 있는 경찰의 감시자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은 모든 자유와 위신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 Sartre의 [신]은 인간의 폭(幅)을 좁히고, 인간을 위협하는 인색(吝嗇)하고, 샘 많은 그런 신이다. 그래서 그의 무신론은 실제로는 하나의 우상(偶像/Idola)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즉 온당하게 이해된 신이 아니라, 곡해(曲解)되어 이지러진 우상을 신이라고 잘못 받아들였던 것이다. Sartre는 잘못된 종교교육을 통해 자기의 신개념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자서전적(自敍傳的)인 저서(著書) [말들]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述懷)하고 있다.

[나는 종교를 미리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종교가 구원(救援)이기 때문에 나는 종교를 희망하고 있었다. 만약 사람들이 나에게 종교를 거절했더라면 나는 내 스스로 종교를 발명해냈을 것이다. 사람들은 나에게 종교를 거절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앙 안에서 자라난 나는 전능(全能)하신 분이 나를 당신의 자랑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내가 믿으려 했던 것 이상(以上)의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뒤에 사람들이 나에게 가져다 준, 사회적인 능력을 갖춘 신 안에서 나의 영혼이 바라던 그런 신을 알아내지 못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세계의 창조자였으나, 사람들은 나에게 <최고의 우두머리>를 가져다주었다. 이 두 가지가 일치(一致)를 이루고 있었으나, 나는 그런 것을 몰랐다. 나는 내키지도 않으면서 바리샤인들의 우상을 떠받들었다. 그리고 공인된 여러 가지 가르침들이 신앙을 찾으려는 나의 즐거움을 내게서 빼앗아 가버리고 말았다.]51) / 현대철학에 있어서의 신의 문제 끝. / 註 ; 자료문헌은 생략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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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신(神)의 견해(見解)에 대한 논의(論議) 모음.
AP=연합 / 호킹 “과학이 신을 불필요하게 만들 것”
2010-09-08 11:36

영국의 이론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최근 저서를 통해 ‘신이 우주를 창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해 해묵은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킨 데 이어 ‘과학이 신을 불필요하게(unnecessary) 만들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호킹 박사는 7일 미국 ABC 뉴스에 출연해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간이 입증할 수는 없다”며 “하지만 과학은 신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호킹 박사는 이어 “창조주를 찾을 필요 없이 물리학의 법칙들이 우주를 설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호킹 박사는 미국의 물리학자 겸 베스트셀러 작가인 리어나드 믈로디노프와의 공저로 이번 주 출간될 ‘위대한 설계’(Grand Design)를 통해 우주가 창조주의 뜻이 아니라 무(無)의 상태에서 탄생했다고 밝혀 격렬한 논쟁을 촉발한 바 있다. 호킹 박사는 왜 많은 사람들이 신을 필요로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들이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어떤 것이 있으며, 고립되지 않고 더욱 큰 전체의 일부라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어떤 것을 생각하려고 한다.”며 “열망하지만 결국은 성취 불가능한 윤리적 질서나 생활방식의 근거(authority)로 신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호킹 박사가 신과 관련해 항상 이 같은 입장을 밝힌 것은 아니다. 지난 88년 발행돼 수백 만 권이 팔린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에서는 “우리가 하나의 완전한 이론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인간 이성의 궁극적 승리가 될 것이다. 그때를 위해서 우리는 신의 정신(mind)을 알아야만 한다.”고 지적한 바 있기 때문이다.
호킹이 그 ‘완전한 이론’을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92년 우리 태양계와는 다른 한 행성을 선회하는 별의 발견 등 그 후의 연구와 관찰을 통해 우주의 창조에 신은 필요하지 않다는 믿음으로 옮겨간 셈이다.
호킹은 또 이날 ABC 뉴스에 “궁극적으로 우리가 만물의 법칙(Theory of Everything)과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를 알아낸다면 이는 오랜 시간에 걸친 많은 사람들의 협력에 따른 결과가 될 것”이라고 말해 자신이 주장한 바가 입증되려면 길고 긴 어려운 작업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호킹은 자신을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정신’으로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누가 위대한 인물들이었는지는 단지 시간이 흐른 뒤에나 알 수 있을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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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박사 "우주는 神의 창조물 아니다"
/ 호킹 박사 발언으로 불붙은 '무신론' .

"중력의 법칙으로 빅뱅 발생 우주탄생 과학적 설명 가능"
한국일보 채지은 기자 cje@hk.co.kr1

세계적 천체물리학자인 영국의 스티븐 호킹 박사가 자신의 새 책에서 무신론을 주장함으로써 촉발된 '신의 존재'를 둘러싼 논쟁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종교계가 한 목소리로 호킹 박사의 무신론을 반박하고 나서자 과학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한 무신론자들이 잇달아 호킹 박사 옹호발언을 하는 양상으로 논쟁은 진행 중이다. 크게 보아 종교계와 과학계가 인간의 숙명과도 같은 질문을 놓고 서로 철회하기 어려운 주장들로 맞서 있는 것이다. 승부가 날 것 같지 않은 논쟁이지만 신을 믿지 않더라도 '종교적'일 수밖에 없는 인간은 이 같은 질문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청사진에 설계도를 그려 넣고 우주를 작동하게 하는 데 반드시 신의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다."
세계적인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9일 출간될 새 책 <위대한 설계(Grand Design)>에서 신의 존재 없이 우주가 탄생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창조론과 진화론' 논쟁이 불붙었다. 호킹은 "빅뱅(우주를 창조한 대폭발)이 신의 개입으로 이뤄졌다기보다는 중력의 법칙 의해 발생한 것이라며, 우주는 무(無)로부터 스스로 창조됐다"고 설명했다. 호킹은 과거 베스트셀러 <시간의 역사>에서 "만약 우리가 완전한 이론을 발견하게 된다면 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기 때문에 신작에서 갑자기 입장을 선회한 듯 보인다. 하지만 이번 저서는 그를 포함 수많은 물리학자들이 꿈꿔 온 ‘대통일이론(단일 원리로 우주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수립이 좀더 다가왔다는 자신감의 선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19세기 초 프랑스 물리학자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는 ‘신이라는 가설은 필요치 않다’고 선언했다. 상대성이론을 창시한 알버트 아인슈타인도 1954년 한 철학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게 신이란 단어는 인간의 약점을 드러내는 표현의 산물에 불과하다’고 적었다. 이들은 만물의 정확한 위치와 상태를 안다면 그 이치를 풀 수 있는 법칙도 반드시 존재한다고 믿었고, 이런 연유로 우주의 원리를 자의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아인슈타인은 이를 ‘우주와 관련해 가장 불가해한 부분은 우주가 완전히 이해 가능하게 구성돼 있다는 점이다’라는 명언으로 요약했다. 호킹의 주장 역시 이런 과학적 전통의 연장선에 있다.
새 책에서 호킹이 '신이 없다'며 내세운 근거는 태양계가 우주의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1992년 태양계와 흡사한 행성시스템들이 발견되면서 지구가 인간을 위해 설계됐다는 기독교식 천지창조론의 근거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만일 신의 의도대로 우주가 창조됐다면 인간이 살기 적합한 환경을 조성한 태양계와 유사한 태양계가 수백 개나 우주에 존재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빅뱅이 중력의 법칙에 의한 필연적 결과이듯 인간과 지구는 신이 창조한 유일하고 독특한 세계가 아니라 중력 등 몇 가지 물리적 법칙이 미묘하게 어우러져 만들어낸 우연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결국 혼돈으로부터 우주가 저절로 만들어 질 수 없다는 뉴턴의 믿음도 무너졌다고 호킹은 말한다. 호킹에 따르면 수많은 우주들은 저마다 주어진 물리적 법칙의 균형 속에서 무한하게 다양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인간은 이렇듯 다양한 조건 중 극히 예외적인 환경 속에서 진화한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환경을 이해하고 설명하기 위해 인간은 ‘창조주’라는 개념을 고안해 냈다. 오래 전 에스키모들이 일식과 월식은 커다란 늑대가 해와 달을 물어뜯어 발생한다고 믿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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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래스, 호킹에 답하다]
유신론자들 “호킹 무신론 과학적 허점” 지구촌 ‘유·무신’ 논쟁 속으로
/ 서울신문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우주는 신이 창조하지 않았다.”는 스티븐 호킹 박사의 이 한마디에 지구촌이 시끌벅적해졌다. 또다시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라는 풀리지 않는 논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호킹 박사가 새롭게 꺼내 든 무신론은 전 유럽 언론 뿐 아니라 미국, 한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세계 대부분의 언론이 비중 있게 보도했다. 유신론자들은 당장 호킹 박사가 전문 분야가 아닌 분야에 대해 근거 없는 성급한 판단을 내렸다면서 그의 ‘월권’ 행위를 비난하고 나섰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수학자이면서 채플목사인 존 레넉스 교수는 3일(현지시간) 일간 데일리메일에 기고한 글을 통해 “과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에도 호킹의 주장은 명백히 틀렸다.”면서 “호킹은 신 없이는 우주에 대해 결코 설명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신이 아니라 중력의 법칙에 의한 빅뱅으로 우주가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대해 “제트기의 엔진은 물리적 법칙에 따라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를 맨 처음 개발할 때에는 개발자의 창의적인 능력이 필요하다.”고 예를 들면서 우주가 중력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중력의 법칙은 누가 고안했는지를 밝혀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세인트매리대의 신학교수인 로버트 배런 목사는 “호킹 박사가 물리 이론을 설명한다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지만, 종교와 철학에 대한 그의 지식은 대학 신입생 수준에 불과하다.”고 그의 주장을 깎아 내렸다. 그는 또 “중력이 있기 때문에 우주는 무에서 유를 창출했다.”는 주장에는 이미 중력의 법칙이라는 조건이 있기 때문에 완전히 없는(nothing) 상태가 아니며, 과학적으로도 매우 큰 허점이라고 말했다.

호킹의 무신론 논쟁은 종교계를 넘어 정치 문제로 비화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인구의 90%가 로마가톨릭교를 믿는 남아메리카 대륙의 콜롬비아에서는 호킹의 발언을 국민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 외교적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로 지정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콜롬비아 리포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알레한드로 오도네즈 감찰관은 “호킹은 신의 존재를 악의적으로 왜곡했고, 콜롬비아 국민의 신앙을 모욕했다.”면서 정부에 그를 외교 기피인물로 지정할 것을 건의했다. 일반인들의 반응도 뜨겁다. 영국 런던의 대학생 티머시 캠벨은 “신은 과연 존재하는가 하는 질문은 모든 이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라며 “호킹의 이론을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그가 학계에서 최고라고 인정받는 인물인 만큼 충분한 근거가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독실한 성공회 신도라고 자신을 밝힌 주부 앨리스 포그는 “이전에 리처드 도킨스의 책을 읽어 봤는데, 뭔가 논리를 짜 맞춘 느낌을 받았다.”면서 “호킹의 저서가 출간되면 그에 대한 합당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판단을 미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호킹의 주장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온라인 사이트를 열어 설문조사를 시작했다. 3일 오후 현재 호킹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답변이 86.8%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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