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 神學 科學에서의 無神論 論爭 3.(펌)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哲學 神學 科學에서의 無神論 論爭 3.(펌)

무성 0 5,316 2012.10.04 15:19
哲學 神學 科學에서의 無神論 論爭 3.

악(惡)의 문제.

종교 철학과 신학에서, 악의 문제(Problem of evil)는 전적(全的)으로 선(善)하며, 전능(全能)하고, 전지(全知)한 신이 존재한다면 악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이다 (참고: 유신론). 어떤 철학자들은 이러한 신과 악은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문맥 하(文脈下)에 "악의 문제"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려는 시도들이 과거로부터 있었으며 이 시도들은 변신론(辯神論; Theodicy,) 또는 신정론(神正論)의 주요 관심사(關心事)였다. 악의 문제에 대해 제시된 여러 해답들 중에는 다음과 같은 주장들이 있다:

참된 자유 의지는 악이 가능하지 않다면 존재할 수 없다.
인간은 신을 이해할 수 없다.
고통은 영적 성장을 위한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다.
악은 세계의 실락(失樂)에 따른 부산물(副産物) 또는 결과물(結果物)이다.

세속윤리학(Secular ethics)과 같은 다른 철학 분야와 진화윤리학(Evolutionary ethics)과 같은 과학 분야에도 "악"과 "문제"에 대한 많은 논의가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이해하는 바와 같이, "악의 문제"는 주로 신학적(神學的) 맥락(脈絡)에서 논의(論議)된다.

러셀의 찻주전자.

러셀의 찻주전자 또는 우주의 찻주전자는 버트런드 러셀이 기독교와 불가지론을 비판하기 위해 사용한 유추(類推)이다. 러셀의 찻주전자는 〈신은 존재하는가?〉라는 글의 일부에서 등장하는 것이다. 이 글은 1952년 ‘Illustrated지’에서 청탁한 것이지만 출판하지는 않았다.

‘만일 내가 지구와 화성(火星) 사이에 도자기 찻주전자 하나가 타원(橢圓) 궤도(軌道)로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고 주장하고 이 찻주전자는 너무나 작아서 가장 좋은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다고 덧붙인다면 아무도 내 주장을 반증(反證)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내 주장을 반박(反駁)할 수 없기에, 내가 이를 의심하는 것은 인간의 이성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억측(臆測)이라고 주장한다면, 모두들 당연히 내가 헛소리 하는 것이라 여길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 찻주전자가 존재한다는 것이 고대의 책에도 나오고 일요일마다 신성(神聖)한 진리로 가르치고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주입(注入)한다면, 이 존재의 믿기를 망설이는 것은 기행(奇行)의 표식(標式)이 되고 이를 의심하는 자들은 현대의 정신과 의사나 옛날의 이단(異端) 재판관의 관심 대상이 될 것이다.’

국가 무신론주의.

국가 무신론주의란 무신론의 관점에서 모든 종교 활동을 부정하는 종교정책을 말한다.
공산국가들의 무신론정책 역사상 국가정책으로 무신론주의를 국가이념으로 선포한 곳은 엔베르 호자 정권 하의 알바니아뿐이나, 많은 공산주의 국가들이 엔베르 호자가 취했던 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종교에 대한 부정, 종교기관 및 지도자, 신도 및 관습에 대한 부정 또는 탄압행위를 취했다. 레닌이 "신을 말하는 자들은 어리석다." 라고 말하면서 무신론을 주장한 바 있으며, 소련은 러시아 제국(帝國)에서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러시아 정교회(正敎會)의 특권을 박탈하고 정교회 신부와 주교들을 처형(處刑)하여 기독교를 탄압(彈壓)했다. 하지만 현존(現存)하는 사회주의 국가들에서는 국가무신론주의 정책이 없으며,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되 국가에서 통제하는 실용적인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국가무신론주의와 구분되는 주의국가(主義國家) 무신론주의는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는 것을 금하거나, 종교권력을 제한하는 반 교권주의 또는 세속주의와는 구별되어야 한다. 또한 이슬람 국가들에게서 나타나는 국가내의 다수 종교가 소수 종교를 탄압하는 종교 탄압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국가 무신론은 모든 종류의 신의 존재 및 믿음을 부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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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신론(無神論; atheism) / 출전;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요즘 신(神) 혹은 영적 존재에 대한 형이상학적 믿음을 비판하고 부정하는 입장.

신의 실재(實在)를 단언(斷言)하고 그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는 유신론(有神論)과 반대된다. 무신론은 불가지론(不可知論)과는 구별되어야 한다. 불가지론은 신의 존재 여부에 관한 질문을 답변되지 않았거나 답변될 수 없다고 보고 그런 질문을 유보(留保)시키는 반면, 무신론은 신의 부재(不在)를 기정사실(旣定事實)로 보기 때문이다.

무신론은 그동안 서구사상에 주기적(週期的)으로 나타났다. 플라톤은 Nomoi(법률)에서 무신론에 대해 반대 논증을 펼쳤고, 반면에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는 유물론의 입장에서 찬성론을 전개했다. 19세기에는 카를 마르크스 등의 유물론에 무신론이 나타나 유심론(唯心論)이라는 형이상학적 입장과 대립했다. 근대의 무신론은 유물론과 여러 가지로 다른 형태를 취하고 있다. 18세기에는, 영국 경험론과 르네 데카르트의 기계론적(機械論的) 우주관(宇宙觀)을 결합시킨 프랑스의 백과전서파(百科全書派) 가운데서 무신론이 등장했고, 16세기에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도덕과 종교로부터 정치의 독립을 주장함으로써 정치 분야의 무신론에 기여했다. 데이비드 흄은 저서 '자연 종교에 관한 대화(Dialogues Concerning Natural Religion)(1779)' 에서 칸트와 마찬가지로 신의 존재를 전통적인 방법으로 증명하는 데 대해 반대의견을 폈다. 그러나 흄도 칸트도 무신론자는 아니었다. 다만 그들은 인간의 이성을 감각경험으로만 국한(局限)시킴으로써 자연신학(自然神學)을 잘라버리고 신의 존재를 순수한 신앙의 문제로 남겨두었다. 요약하자면, 무신론은 방대(尨大)한 철학체계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19세기의 중요한 무신론자 가운데 한 사람인 루트비히 포이어바흐(1804~72)는 신을 인간 이상(理想)의 투사(投射)라고 주장했다. 그는 신에 대한 부정(否定)을, 인간의 자유에 대한 긍정(肯定)과 연결(連結)시켜 생각했다. 신이 단지 인간의 투사로 드러날 때, 인간은 자유롭게 되고 자기실현(自己實現)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마르크스는 종교란 사회·경제 구조를 반영하며 인간을 그의 노동생산품으로부터 소외시킴으로써 참된 자아로부터도 소외시키지만, 종교적인 것은 인간적인 것으로 변형(變形)될 수 있다는 포이어바흐의 논제를 수용해 종교를 "압박(壓迫)받는 피조물(被造物)의 한숨, 냉혹(冷酷)한 세상의 심장(心臟), 혼(魂)이 없는 상태의 영혼(靈魂)"이라고 정의하고 종교(宗敎)의 폐지(廢止)를 추구(追究)했다.

마르크스가 사회경제이론으로 표현한 무신론을 주장하고 있는 동안 불가지론자(不可知論者)인 찰스 다윈(1809~82)은 유대 그리스도교의 창조주(創造主)인 하느님의 개념에 이의(異議)를 제기(提起)하는 과학적인 자연사(自然史) 이론(理論)을 전개(展開)했다. 지크문트 프로이트(1856~1939)는 다윈주의의 주제를 이용해서 종교를 '원시 유목민(遊牧民)'의 관점에서 논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신에 대한 믿음이란 무력(無力)한 사람이 위로(慰勞)하는 아버지 상(像)을 자연에 투사(投射)하는 어린아이 같은 상태로 퇴행(退行)하는 것이다. 현대 무신론의 3번째 계열은 실존주의자(實存主義者)이다.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는 '신의 죽음'과 그에 따른 모든 전통가치(傳統價値)의 상실(喪失)을 선포(宣布)했다. 그는 유일하게 지지받을 수 있는 인간의 반응(反應)은 허무주의적(虛無主義的) 반응, 즉 신이 없음이며, 삶의 목적과 의미에 관한 문제에는 답이 없다고 주장했다. 니체에 따르면, 신의 죽음은 인간을 자유롭게 하고 자신(自身)을 완성(完成)하며 그 본질(本質)을 발견(發見)하게 한다는 것이다. 20세기에 장 폴 사르트르, 알베르 카뮈 등이 인간이란 우주에 홀로 있으며 자신의 가치기준(價値基準)을 자유로이 결정(決定)하는 존재(存在)라는 주제(主題)를 계속 주장(主張)했다. 사르트르는 인간의 자유는 신의 부정을 필요로 하는데, 이는 신의 존재가 자유로운 윤리적(倫理的) 선택(選擇)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창출(創出)하려는 인간의 자유를 위협(威脅)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논리실증주의(論理實證主義/logical positivism)로 알려진 철학운동도 역시 현대 무신론의 주요(主要) 대변자(代辯者)이다. 이 입장은 신의 존재 혹은 부재에 관한 명제(命題)는 허튼 소리이거나 무의미(無意味)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경험론적(經驗論的) 인식론(認識論)의 형태는 흄, 헉슬리, 존 스튜어트 밀 등과 같이 유의미(有意味)한 지식은 경험과 관찰을 통해서만 획득(獲得)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사상에 뿌리를 두고 있다. A. J. 에어 같은 실증주의자는 〈언어·진리·논리 Language, Truth, Logic〉(1936)에서 무신론은 유신론 및 불가지론(不可知論)과 더불어 거짓된 입장(立場)에 불과(不過)한데, 이는 검증(檢證)될 수 없는 신(神)에 관한 말은 모두가 무의미(無意味)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증주의자들은 신은 반증(反證)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무신론자(無神論者)가 아니나 '신'이라는 개념(槪念) 자체(自體)를 논(論)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점에서는 무신론자이다. 20세기 중반 파울 틸리히, 카를 바르트, 루돌프 불트만 같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무신론의 도전(挑戰)에 대응(對應)해,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신이 파괴(破壞)됨으로써, ‘살아 있는 신’은 절대 신앙(絶代信仰)을 통해서 만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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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에 있어서의 신의 문제.
-자유라는 이름으로 신을 부정하는 Sartre.
강성위(한국외대 교수, 철학)

전통적. 역사적으로 신의 문제를 다뤄 온 학문은 의당 ‘신에 관한 말을 하는 학문’으로서의 신학(神學)이다. 철학(哲學)에서는 원래 ‘초경험적(超經驗的). 절대적(絶對的)인 우주(宇宙)의 근거(根據)’를 밝히려는 형이상학(形而上學)마저도 신을 직접적인 연구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왜냐하면 만약에 철학이 신을 연구한다면, 그런 철학은 이미 철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근세 이전까지만 해도 철학은 기껏해서 [신학(神學)의 하녀(下女)]로서, 신학을 연구하는 데 쓰여지는 한 가지의 보조과학(補助科學) 또는 방법론(方法論)에 지나지 않았다. 신의 존재, 능력 및 성질을 해명(解明)하고, 사람들을 신에 대한 믿음(신앙)으로 이끌어가는 데만 전념(專念)하고 있는 학문으로는 신학이 있는데, 어떻게 철학이 이 문제들에 끼어들 수 있었겠는가? 물론 철학자들 중에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애쓴 사람들이 있기는 했으나(예, Descartes, Kant), 대개 신학 또는 신앙의 편에 서서 신의 존재를 옹호(擁護)하려는 입장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이 다룬 문제들은 철학에서 보다 신학 또는 종교학 등에서 더 크고 소중(所重)하게 다뤄지고 있다.

신의 문제를 독점(獨占)하고 있던 신학도 근세 이후에는 철학의 도전(挑戰)을 받게 된다. 즉 경험과학의 발전과 18세기의 프랑스 계몽주의 및 19세기의 독일의 통속철학(通俗哲學) 등이 신학의 핵심적(核心的)인 대상(對象)인 [신(神)의 존재(存在)]를 부인하는 무신론(無神論)을 주장하면서, 신은 많은 철학자들의 관심을 끌어, 중요한 연구과제로 되기에 이르렀다. 이런 철학들은 신의 존재를 긍정(肯定)하고 해명(解明)하려고 노력하는 신학과는 반대로, 신의 존재를 부정(否定)하려고 애쓰는 것, 즉 무신론을 주장하는 것이 그 특색이다.

이런 무신론을 주장하는 여러 철학사조들을 계열별로 나눠 간단히 살펴보면, 대충 다음과 같다.
1)[나는 신(神)을 부인(否認)한다. 이 말은 나에게 있어서는, 인간을 부인하는 것을 부인한다는 뜻이다]1)라고 한 L. Feuerbach(포이엘바하 또는 포이어바흐)와 이것을 이어 받은 K. Marx(칼 막스) 등의 소위 휴머니즘적인 무신론,

2)[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Nietzsche(니체)와 Sartre(샤르트르) 등의 실존주의적인 무신론,

3)언어 분석적으로 [신(Gott)]이라는 말에는 내용이 없다고 하는 실증주의(實證主義)와 신실증주의의 회의론적(懷疑論的)인 무신론,

4)1960-70년대에 미국에서 생겨나 유럽에도 영향을 미친 [신이 죽은 뒤의 신학]임을 표방(標榜)하는 [신은-죽었다-신학](영. God-is-dead theology, 독. Gott-ist-tot-Theologie.)

5)실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신을 옹호(擁護)하려는 Dostojewski와 Camus의 [무신론의 반석(盤石)] 등등이 신의 존재를 다루되, 부정하려는 철학사조들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즉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 이 여러 철학들의 공통적인 특징이다.

이런 여러 무신론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Feuerbach에서 시작되는 맑스주의적인 무신론과 [신은 죽었다]고 외치는 Nietzsche의 무신론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다른 논문에서 다루기 때문에 거기에 맡겨 놓고, 또 3)과 4) 및 5)의 무신론을 한꺼번에 다 다루기에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이 중에서 현대인들에게 가장 생생(生生)하고 큰 영향을 미친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 Sartre의 신에 대한 태도만을 다루기로 한다.

1. Sartre의 무신론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인간이란 원래 물음을 제기하는 존재다. 그래서 과거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은 어디에 있는가? 신은 살아 있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고, 신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이런 물음에 앞서서 [신은 죽었다]는 Nietzsche의 말에 현혹(眩惑)되어, [신은 죽었다]는 고정관념(固定觀念)에 가로 잡혀 있는 것 같다. 1967년 취리히 공항의 비행기 탑승탑(搭乘塔)에서 내린 Sartre는 기자들에게 스스럼없이 [여러분, 신은 죽었습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2) 그리고 독일의 주간지 Spiegel지 1967년도 2월 마지막 호는 [독일 국민들의 세 사람 중 한 사람에게는 신은 죽었다]고 보도하고 있다.3)

이와 같이 오늘날의 세상에는 무신론이 팽배(澎湃)해 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여러 가지 역사적인 배경들이 깔려 잇다. 오늘날의 무신론자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철학사조는 무신론적(無神論的)인 실존주의(實存主義)요, 이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자들 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는 프랑스의 Sartre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마찬가지로, 실존철학에는 소위 유신론적(有神論的)인 실존주의(實存主義)와 무신론적인 실존주의가 있다. 그런데 유신론적인 실존철학은 종교생활에 젖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져 별로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무신론적인 실존철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에게 큰 충격(衝激)을 안겨 주고, 나름대로 설득력(說得力)이 있었기에 50년대 후반부터 크게 논란되고, 찬. 반 양론(兩論)을 불러 일으켰다. Sartre는 Nietzsche의 무신론적 실존철학을 이어받아 나름대로 발전시킨 사람이다. 이제 그의 신에 대한 태도와 생각을 살펴보기로 한다. 그가 무신론자로 되는 데에는 다음과 같은 여러 이유들이 있다.

2. 외조부(外祖父)의 무관심(無關心)이 신앙(信仰)을 버리게 했다.

Sartre가 무신론자로 발전하게 된 데에는 가정교육의 영향이 매우 컸다. 그의 어머니는 그를 [가톨릭정신]으로 교육하려 했으나, 외조부4)는 세속주의자로서 <교의종교(敎義宗敎)>를 경멸했다.5) 그래서 Sartre는 어머니와 외조부 사이의 갈등 속에서 성장했으며, 마침내 우리 세기 최대의 무신론자로 되었다. 그가 무신론자로 된 데에는 외조부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그는 자전적인 저작 [말들](Die Writer)에서, 자기는 교의에 대한 갈등 때문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무관심 때문에 신앙을 갖지 않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실패(失敗)한 부르심(召命)이었다. 나에게는 하느님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하느님을 주었다. 나는 내가 하느님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 채 하느님을 받아들였다. 하느님은 내 마음 안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내 안에 얼마 동안(식물처럼) 살아 있다가 죽어버렸다. 오늘날 사람들이 신에 관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나는 지난날에 예쁜 여자를 만났던 늙은 바람둥이처럼 재미있어 하며, 아무런 후회도 없이 다음과 같이 말한다. <50년 전이라면 아무런 후회도 없이, 아무런 잘못도 없이, 또 우리를 갈라놓은 우연도 없이, 우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은 우리 사이에 아무 일도 없어요.]

이 고백과 같이 Sartre는 어렸을 때는 신을 요청하고 있었으나, 늙어서는 신을 추억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뒤에 와서 그는 [전능하신 분]에 관해서는 생각하려 했으나, [새로이 신을 불러들이려는 유혹은 느끼지 않게 되었다]고도 보고하고 있다. Sartre는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전능하신 분에 대한 생각은 뒤에 가서도 버리지 않는다. 여기서 그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에게도 하느님은 필요했고, 사람들은 그에게 하느님을 주었다. 그러나 가정에서 외조부가 종교교육을 무관심하게 방치해두었기 때문에, Sartre에게 심어졌던 하느님의 씨앗은 말라 죽고 말았던 것이다. 즉 그가 고백하고 있는 바와 같이 외조부의 무관심이 그를 <신을 죽이는 자>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런 사실은 어릴 때의 교육이 한 인간의 일생을 좌우한다는 사실을 잘 증명해 주고 있다.

3. 인간(人間)은 자유(自由)다.

Sartre가 신을 부정하는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인간에 대한 이해다. 원래 실존철학은 [실존](Existenz)을 중심개념으로 삼는 철학이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실존이란 곧 [총체적(總體的)인 인간], 다시 말해 결단과 책임 속에서 자유로이 자기의 삶을 계획해 나가는, 자기 자신에게만 의존하고 있는 그런 인간이다.7) 따라서 Sartre에게 있어서의 인간은 철저하게 자유로운 존재이며, 이런 자유로운 존재는 미리부터 있으며, 인간을 규정하는 [그 스스로 있는 것](An-sich-Sein)8)에 의해 주어져 있지 않은, 즉 가능성도 없고, 만남도 없고, 교통(Kommunication)도 없이 [자기 스스로 안에 꽉 닫혀 있는 존재]9)에 의해 주어져 있지 않은 그런 존재다.10)

Sartre에 따르자면 인간이란 자유인 한에 있어서 인간이고, [그 스스로](An-sich) 안에 갇혀 있기를 거부한다. 인간은 [그 스스로](An-sich)11)를 없애버리는 자다. 인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긍정하면서도, 자기를 자유라고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Sartre는 이와 같이 <인간은 자유다>11-1)(Der Mensch ist Freiheit)라고 정의한다. 이런 생각은 그의 유명한 [실존(實存)이 본질(本質)을 앞선다](Die Existenz geht der Essenz voraus)는 명제에 바탕하고 있다. 이 명제는 [인간이 우선 실존하고, 자기 스스로와 만나고, 세상에 나타나고, 그런 뒤에야 스스로를 정의(규정)한다]는 뜻이다. 즉 종전(從前)의 철학들에서처럼 인간에 대한 보편적인 본질이 미리 있고, 이것에 따라 인간이 만들어진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먼저 있고, 삶을 통해 인간의 본질이 형성되어 간다는 뜻이다.12)

Sartre에 의하면 [인간이란 계속해서 이어져 내려오는 과정 속에 있다. 그리고 인간은 스스로가 창조한 그대로일 것이다. 인간이란 자기가 그것으로 만든 것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13) 실존이 본질을 앞서기 때문에, 미리 정해져 있는 인간의 본성(本性)이라는 것도 없고, 미리 정해져 잇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인간은 스스로(스스로의 본질)를 만들어 나가는 자요, [되어가는 자]다. 그래서 Sartre를 비롯한 여러 철학자들은 [인간은 자유롭다, 인간은 자유다]라고 외치는 것이다. 이 자유가 없이는 인간이 스스로를 형성해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Sartre에 따르자면, 인간은 이렇게 원래부터 자유인데, 이러한 인간의 자유를 빼앗은 자가 바로 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 자유를 되찾기 위해서는 <하느님이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하느님이 죽어야 자유가 인간에게 되돌려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Sartre에게 있어서는 인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신은 죽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고, 이렇게 신을 <죽였기> 때문에 <신은 죽었다>고 외치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무신론 또는 살신론(殺神論)이 성립된다.

이러한 무신론이 Sartre의 실존주의의 바탕이다. [실존주의는 모든 결론들을 일련의 무신론적인 태도에서 이끌어내려고 하는 노력 이외의 아무 것도 아니다.] 이러한 Sartre의 사상은 러시아의 문호 Dostjewski(토스토에프스키)에도 바탕하고 있다. Dostjewski는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허용될 것이다]라고 했는데, 이것이 바로 무신론적인 실존주의의 출발점이다. 실제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 왜냐하면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신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못할 짓이 없게 된다. 그러나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유로워지겠지만, 의지할 곳이 없어지고 만다. 왜냐하면 인간은 자기 안에서도 또 밖에서도 자기가 매달릴 가능성을 찾아낼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로우나 <끈이 떨어진>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

여기에서 <인간에게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말, 즉 인간이 <못할 짓이 없게 된다.>는 말은 윤리적으로도 큰 뜻을 지니게 된다. 신이 죽으면 인간은 자유로 되지만, 끈 떨어진 연처럼 방향을 잡지 못하고, 못할 짓이 없어지게 되어, 도덕적(道德的)으로 규제(規制)할 수 없게 된다. 오늘날의 도덕적인 방황(彷徨)도 사실은 이런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일찍이 Kant는 <요청적(要請的)인 종교>, 즉 건전한 사회를 위해서는 하느님이 요청된다고 했던 것이다. 여기서 실존주의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의 한계가 드러난다. 이런 맥락에서 Voltaire도 <만약에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을 발명해 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Sartre는 이와 반대로 <만약에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신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Sartre의 주장은 전통적인 철학에 대한 도전이요, 전통적인 신에 관한 생각을 뒤엎은 것이다.

Voltaire(볼테르)의 위와 같은 주장은 Kant(칸트)의 생각과 맥(脈)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러나 Sartre는 <신을 없애버려야 할> 대상, 즉 <죽여야 할>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인간이 자유이기 위해 신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을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삼고 있기 때문에 Sartre의 사상은 무신론이 아니라, <살신론>이라 할 수 있다. 신을 죽인 인간은 자유로워지겠지만, 두려울 것이 있겠는가? 오늘날의 윤리적인 혼돈은 바로 이러한 신을 죽인 자유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Sartre의 실존철학의 기본개념은 인간생활의 모든 영역(領域)에 있어서의 자유이고, 기본적인 문제는 남들의 명령(命令)에 의해 인간이 소외(疏外)되는 문제와, 스스로가 명령을 내림으로써 인간이 자기를 해방시키는 방법을 묻는 것 등이다.18) 여기서 우리는, 신을 인간을 속박(束縛)하고, 인간에게 명령을 내려, 인간의 자유를 빼앗는 자로만 이해하고 있는 Sartre의 신에 대한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Sartre가 배웠었고, 죽여야 한다고 주장한 그리스도교의 신이야말로 인간을 <해방시킨> 구세주이며, 실제로 그 어떤 위대한 인간보다 더 많은 자유를 직접적으로 인간에게 주었고, 종교적인 죄악에서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속박에서 해방시켜준 분이다. Sartre가 주장하는 인간의 자유도 옳고 필요한 것이나, 이것이 절대적일 수는 없다. Sartre가 주장하는 그런 자유가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이지? 오히려 이런 자유는 인간을 동물적인 상태로 전락시켜 버리는 것이나 아닐른지 하는 염려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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