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 神學 科學에서의 無神論 論爭 2.(펌)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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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15:10
哲學 神學 科學에서의 無神論 論爭 2.
아리스토파네스(기원적 약448-280년)은 특유의 풍자적인 양식을 이용하여 희극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신전들이여! 신전들이여! 분명히 너희들은 신들을 믿지 않을 것이다. 너희들의 논증은 무엇인가? 너희들의 증명은 어디에 있는가? 소피스트기원전 5세기 소피스트들은 그리스의 전통적 관념에 관한 질문을 하였다. 케오스의 프로디쿠스는 "신들처럼 존중을 받는 것이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프로타고라스는 그의 책 서문에 "신들을 존경함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존재하지 않는지 말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멜로스의 디아고라스(기원전 5세기)는 역사에 등장하는 최초의 '무신론자'로 알려져 있다.
에피쿠로스의 철학이 일어난 고대시대의 몰락무신론에 대한 개념은 고대 유대인들에게도 알려졌는데, 성경 복음서의 저자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인식되었다. 성경의 시편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포함되어있다.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 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중세시대중세 이슬람에서는 학자들이 무신론의 관점을 인지하였으며 비록 그들이 실질적으로 무신론자라고 볼 수 없었지만, 종종 무 신앙자들을 공격하였다. 개개인이 무신론으로 비난을 받을 때, 그들은 보통 무신론 지지자들 보다는 이교도의 관점으로 비추어졌다. 한 주목할 만한 현상은 9세기 학자 이븐 알-라완디가 무하메드가 포함된 종교적 예언에 대한 개념을 비판하며, 그 종교적 도그마는 받아들여질 수 없으며 거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서의 종교에 대한 비판들은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였던 아부 아브르 알-라지 (865-925)와 시인 알-마아리로 이어진다. 유럽의 중세 시대의 무신론 표현에 대해 깔끔히 알려진 바가 없다. 13세기 후반에 써진 아이슬란드 사가 흐라픈켈의 유명무실한 등장인물이 "나는 신에 대한 신앙이 어리석다고 생각해."라고 발언한다. 그의 프레이르 신전이 불탄 이 후 그는 스스로 다른 제물을 바치지 않을 것을 맹세하며, 이 처지를 사가에서는 '무신론적'이라고 표현하였다. 야곱 그림은 그의 '튜튼 신화'에서 다음과 같이 진술하였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고대 북구 신화가 가끔 그들의 신앙에 대해 의심과 완전한 혐오감을 갖고 자기 자신의 체력과 선행에 의지하게 되는 사람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전파된 유럽에서는, 특히 종교 재판이 활동하던 국가에서 이단자들이 박해받았다. 하지만 토마스 아퀴나스의 다섯 가지 신 존재 증명(Quinquae viae)과 캔터베리의 안셀름이 쓴 존재론적 논증은 신의 존재에 대한 질문의 타당성을 인정한 사례이다. 주로 당시에는 정적을 공격하기 위한 수단으로 상대방을 무신론자로 비난하였다. 교황 보니파스 8세는 그의 죽음 이후 그의 정적들로 부터 무신론자라 비난받았는데, 그가 교회의 종교적 최고 지위를 강요하였었기 때문이었다. 르네상스시대를 거치면서 종교 비판에 대한 출판물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무신론적 내용을 포함한 것은 아니었다.
무신론(athéisme)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영어 단어 'Atheist'는 적어도 1566년에 나타났다. 무신론에 대한 개념은 계몽주의 시대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16세기와 17세기를 거치면서 '무신론'이란 단어는 모욕적인 비속어로 분류되었다. 당대에는 자유사상가로 추측되는 익명으로 작성된 《테오프라스누스 레디비부스》라는 무신론 개요서가 널리 퍼져있었다. 당시 유럽에서 무신론자임을 공공연히 밝히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었는데, 프랑스 인본주의자 에티엔 돌레는 1546년 목이 졸린 후 화형을 당했으며, 이탈리아 자연주의자 줄리오 체사레 바니니 또한 1619년 화형 당했다. 1689년 무신론자였던 폴란드 귀족인 카지미에시 위슈친스키는 바르샤바에서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에 처해졌다. 비슷한 예로 1766년 프랑스에서도 귀족 장프랑스와 드 라 바가 참수형을 당한 후 불에 태워졌으며 시신이 훼손되었다. 중요한 계몽주의 사상가 중의 하나이자 《백과전서》의 저자인 드니 디드로 또한 그의 저서 《맹인 서간》을 근거로 무신론자라고 고발되었다. 결국 그는 투옥되었으며 그의 저서들은 금서로 지정되고 불에 태워졌다. 영국의 유물론 철학자인 토마스 홉스도 마찬가지로 무신론자라는 죄목으로 고발되었으나 자신이 무신론자임을 부정하였다. 그보다 먼저 영국의 극작가이자 시인인 크리스토퍼 말로 역시 그의 집에서 예수의 신성을 부정하는 글이 발견되어 무신론자라는 이유로 고발되었다. 그가 자신에 대한 변호를 다 마치기 전에 결국 암살당했다.
계몽시대(理性의 祝祭, 노트르담, 1793년) 1770년대 무신론은 여전히 대부분의 기독교 국가에서 불순한 사상이라는 이유로 금지되었으나 점점 공개적인 지위로 발전되어갔다. 앙리 디트리히 돌바크는 1770년 그의 저서 《자연의 체계》를 통하여 고전시대이래 최초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고 무신론자임을 고백하였다. 앙리 디트리히 돌바크는 드니 디드로와 장자크 루소, 데이비드 흄, 아담 스미스와 벤자민 프랭클린을 포함한 당대 파리 지식인층의 명사였다. 무신론 사상 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는 익명으로 출간되었으며 당국에 발견되면 즉시 불에 태워졌다. 이성숭배는 자크 헤베르와 피에르 쇼메테에 의하여 프랑스 혁명 중 무신론에 바탕을 두어 고안되었다. 이는 이신론자였던 막시밀리앙 로베스피에르가 제창한 최고 존재 숭배에 의하며 중단되었다. 두 숭배주의는 프랑스 혁명 중 일어난 비기독교 운동의 결과물이다. 이성숭배(理性崇拜)는 1·3차 혁명과 9월 학살이 있던 1792년과 1794년 사이에 발전하여 몇몇의 프랑스 교회들이 이성주의 신전으로 개조되었다. 이 교회들은 1793년부터 산발적(散發的)으로 폐쇄(閉鎖)되기 시작하여 1793년 11월 24일 가톨릭 예배가 금지되면서 모두 폐쇄되었다. 1782년 리버풀의 의사인 메튜 터너가 쓴 저서 《프리스틀리 박사 편지에 대한 철학적 무 신앙 답장》은 영국 최초의 무신론 선언서이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몇몇 서부 유럽 국가에서 무신론이 정치 속에서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19세기의 합리주의와 자유사상의 운동을 타고 급속도로 퍼져나갔다. 계몽주의 시대인 1792년 태어난 낭만주의 시인인 퍼시 비시 셸리는 자신이 수필한 《무신론의 필요성》이란 책자를 익명으로 출간하여 1911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퇴학당하였다. 이 책자는 영어로 작성된 최초의 무신론 출간물이다. 독일에서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가 쓴 《기독교의 본질》이란 책을 통하여 무신론이 유입되었다. 그는 카를 마르크스와 막스 슈티르너,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프리드리히 니체와 같은 19세기 독일 무신론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자유사상가인 찰스 브래들로는 여러 차레 영국 국회에 당선되었음에도 성서에 대한 선서를 거부하여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브래들로가 4번이나 재선되자 마침내 국회의장이 그를 입회하도록 허가하였다. 그는 최초의 무신론자 국회의원이 되었으며 성서 선서 법을 개정하였다.
19세기 이후 현대에 들어서는 정치 경제학자인 카를 마르크스는 그의 저서 《헤겔 법철학의 비판을 위하여, 서설/1884.》에서 '종교적 비참은 현실적 비참의 표현이자 현실적 비참에 대한 항의이다. 종교는 곤궁한 피조물의 한숨이며, 무정한 세계의 감정이고, 또 정신 없는 상태의 정신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라고 주장하였다. 마르크스는 현실과 사회에서 유례된 고통으로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게 된다고 믿었다. 그는 종교를 환상적 행복이라 규정하고 사람들이 내세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사회의 부조리를 고쳐나가 진실된 행복을 추구해야한다고 제안하였다. 같은 저서에서 마르크스는 '인간이 종교를 만들지, 종교가 인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19세기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발언으로 잘 알려진 명사이다. 그러나 이 발언은 니체가 직접 한 발언이 아니라 그의 작품 속 인물들 사이의 대화에서 나온 문장이다. 니체는 기독교적 유신론이 한 신앙 체제로서 서구 세계의 도덕적 근원이었으나 현대 사상의 결과 즉 허무주의의 부상과 기독교적 가치의 하락으로 붕괴되고 거부되었다고 논증하였다. 니체는 굳은 무신론자로서 허무주의와 인본주의의 부작용을 걱정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초인 중심의 사회였다.
신 무신론
신(新) 무신론은 "종교는 쉽게 용인되어서는 안 되며, 종교가 그 영향을 끼치는 곳에서는 반드시 반박되고, 비판되고, 합리적인 논쟁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주창하는 일련의 21세기 무신론자 작가들의 운동에 붙여진 이름이다.(기존 무 종교적 전통을 포괄하며, 이전에는 전통적으로 반 신론이라고 불렸다) 신무신론과 관련된 일련의 인기 있는 책들이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최근의 과학적 진보는 종교, 미신, 종교적 광신에 대하여 기존의 세속주의자들이 하던 것보다 더 불친절해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출처 필요] 이 운동은 일반적으로 리처드 도킨스, 대니얼 C. 데닛, 샘 해리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빅터 J. 스텐저 등의 사람들과 연관되는 것으로 여겨진다.[출처 필요] 위 작가들의 베스트셀러들은 주로 2004년에서 2007년 사이에 출판되었으며, 이것이 신 무신론에 관한 논쟁에 있어 대부분의 기초를 형성했다.
신 무신론은 2004년에 출간된 샘 해리스의 베스트셀러 “종교의 종말”이 시작이었다. 샘 해리스는 9·11 테러를 보고 직접적인 저술 동기를 얻었으며, 이 책에서 그는 이슬람교, 기독교, 유대교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다. 2006년 그는 ‘기독교 국가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서 또 한 번 기독교를 비판했으며, 같은 해 리처드 도킨스는 BBC 다큐멘터리 모든 ‘악의 근원’ 방영과 더불어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 목록에 51주 동안 이름을 올린 책 만들어진 신을 출판했다. 다른 이정표적 간행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주문을 깨다(2006, 데니얼 C. 데닛), 물리학의 세계에 신의 공간은 없다(2007, 빅터 J. 스텐저), 신은 위대하지 않다(2007, 크리스토퍼 히친스), Atheist Manifesto: The Case Against Christianity, Judaism, and Islam(2007, Michel Onfray), 신은 없다(2008, 댄 바커). 2007년 이루어진 토론회에서, 도킨스의 웹사이트는 묵시록의 네 명의 저승사자를 암시하기 위해 리처드 도킨스, 샘 해리스, 데니얼 데닛,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을 "네 명의 저승사자"라고 호칭하고 있다. 2010년 올라온 칼럼 왜 나는 신무신론을 믿지 않는가에서, 톰 플린은 소위 "신무신론"이라는 것이 새롭지도 않을 뿐더러 어떤 운동조차 아니며, 신무신론에서 새로운 것이라고는 오직 무신론에 대해 다룬 출간물이 유명 출판사에서 간행되고, 그것이 수백만의 사람들에게 읽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왔다는 사실뿐이라고 주장했다.
신 무신론자들은 주로 과학적 관점에서 글을 쓴다. 과학이 "신" 개념과는 무관하거나 혹은 신 개념을 다루는 데는 적절치 못하다고 본 이전의 작가들과는 달리, 도킨스는 반대로 "신 가설"은 과학적 가설이며[6], 물리적 우주에 영향을 끼치고, 다른 가설들과 똑같이 검증되고 반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빅터 스텐저 같은 신 무신론자는 아브라함의 신과 같은 인격적 신은 과학의 표준 방식으로 검증될 수 있는 과학적 가설이라고 제언한다. 도킨스와 스텐저 둘 다 가설이 어떠한 검증을 거쳐도 실패한다고 결론내리면서[7], 자연주의로도 가장 멀리 떨어진 은하수부터 생명의 기원, 종, 심지어는 두뇌 활동과 의식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우주에서 관찰할 수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계속해서 어디에도 현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신이나 초자연을 끼어 넣을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많은 신무신론자들은 감추어진 신 논증을 이용해, 증거가 예상될 수 있는 상황에서 "증거의 부재는 부재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우주와 생명이 신이나 초자연적 존재에 의해 설계되었다기보다는 그저 자연적으로 발생한 것처럼 생겼다고 결론짓는다.
신 무신론자들은 (처녀 잉태나 내세와 같은) 종교적, 초자연적 주장들은 자연세계에 대한 과학적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를테면 예수에게 부모가 있는가 하는 문제 같은 것은 "가치"나 "도덕"의 문제가 아닌 과학적 질문거리라고 본다. 신 무신론자들은 과학이 이제 모든─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일부의─초자연적 주장을 조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요 클리닉이나 듀크 대학교 같은 기관들은 중보기도의 치료 효과에 대한 경험주의적 근거를 찾기 위한 시도를 했다. 현재까지, 이와 같은 과학적 검증을 위한 실험들은 중보 기도가 실제로 효과를 나타낸다는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다.
빅터 스텐저는 그의 책 “물리학의 세계에 신의 공간은 없다.” 에서, 전지(全知)하고 전선(全善)하고 전능(全能)한 특성을 가진 소위 3전(三全) 신은, 논리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비슷하게 신의 다양한 속성을 거론하며 펼치는 신 부재 논증은 Michael Martin과 Ricki Monnier의 ‘The Impossibility of God.’ 이나 Theodore M. Drange의 기사 "Incompatible-Properties Arguments" 에서 찾을 수 있다. NOMA(嫌惡主義 또는 惡疾)에 대한 관점(觀點)과 영향(影響)은 신 무신론자와 무종교인은 그들을 향한 편견(偏見)과 마주칠 수 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교의 연구에 따르면 신자들은 무신론자를 근본주의자(根本主義者) 만큼이나 불신한다. 연구는 또한 무신론자들이 더 낮은 고용 전망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계시(啓示)의 불일치(不一致) 논증(論證).
계시의 불일치 논증은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종교들의 또는 한 종교 사이에서의 계시들이 서로 불일치하거나 충돌(衝突)하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지 않다는 논증이다. 종교의 고위 성직자(聖職者)와 같이 특정인물이 계시를 선별적(選別的)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상 모든 계시들이 동등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이 논증은 무신론자들에 의해 사람의 개입 없이는 신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사실에 사용된다. 가령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신의 아들로 믿지만, 유대교에서는 그렇지 않다. 반면 이슬람교에서는 예수가 신의 아들은 아니지만 거룩한 예언자라고 믿는다.
신의 존재
신(神)의 존재(存在)와 신의 부존재에 대한 주장은 철학자, 신학자, 과학자 등 매우 많은 사람들이 제기해 왔다. 신의 존재 여부는 철학과 대중문화(大衆文化) 모두에서 활발한 논쟁거리이다. 또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 그 존재를 알 수 없다는 불가지론의 입장이 있다.
신의 존재를 증명.
1. 자연신학적 증명 - 이 세계가 아름답고 또한 합리적이며 완전한 질서를 지니고 있는 이상, 이 세계를 창조했던 현명한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
2. 우주론적 증명 - 자연계의 인과관계(因果關係)를 거쳐 계속하여 원인을 규명해 나간다면 최초의 제1원인으로서의 신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3. 존재론적(본체론적) 증명 - 인간은 불완전하고 상호간에 관련이 있으므로 완전무결(完全無缺)하다고 생각되는 것, 즉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
4. 목적론적 증명 - 자연이 어디까지나 목적에 적응(適應)한 질서(秩序)를 지니고 있는 이상, 자연 전체의 설계자로서의 신이 존재해야만 한다.
5. 도덕적 증명 - 우리에게 그 실행을 강력히 요구하는 도덕 법칙의 원천으로서 신을 생각할 수 있다.
6. 미학적 증명 - 미(美)가 진리가 될 수 있으며 미를 통하여 신(神)의 존재(存在)를 증명(證明)하는 방법이다.
7. 믿음의 유추(類推) -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때 성령의 역사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믿게 되는 방식이다.
신의 존재에 대한 증명을 부정 신(否定神)의 존재에 대한 증명이 많다는 것은 그 어느 것도 성공적인 증명이 아니었다는 것을 반증(反證)한다. 이 증명들은 모두 궁극적(窮極的)인 설명을 보류(保留)하고 있어 완전한 증명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1.자연신학적 증명 질서를 지니는 것이 더 현명한 존재의 창조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면 그 현명한 신은 더 현명한 존재에 의해서 창조되었어야 한다. 그 존재를 초월 신(超越神)이라고 하자. 그러면 그 초월신은 그보다 더 현명한 초월-초월신이 창조했어야 하고 이러한 초월신의 연쇄(連鎖)는 무한(無限)히 이어져야 한다.
2.우주론적(宇宙論的) 증명(證明)도 마찬가지이다. 제1원인이 더 앞선 원인을 갖지 않는다고 단정(斷定)할 근거(根據)가 없다. 다만 그 원인을 추적(追跡)하기를 포기하는 것일 뿐이다.
3.나머지 아래의 증명들은 인간의 입장에서, 또는 특정 종교의 입장에서 주관적인 희망사항을 말하는 것에 불과하며 전혀 증명이라고 볼 수 없다. 불가지론신의 존재에 대한 진위(眞僞)는 알려져 있지 않거나 알 수 없다는 관점(觀點)이다.
자유의지 논증.
자유의지(自由意志) 논증(論證; 자유의지의 역설 또는 신학적 결정론)은 전지(全知)적인 신과 자유의지가 양립(兩立)할 수 없다는 논증이다. 이 논증은 사람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지 또는 신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한 모순(矛盾)에 초점(焦點)을 맞춘다.
반신론(antitheism).
반 신론(antitheism)은 반유신론이라고도 하며, 신이 있다는 생각에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주장이다. 어원Anti-와 theism의 합성어이다. 무신론과의 차이는 반 신론은 무신론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신론이 “신이 없다고 여기는 것”인에 비해, 반 신론은 “신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 고 주장하는 것”이다. 여러 종교에서 말하는 신의 모습을 지적하며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 고 주장하며, 신이 있어서 발생하는 필연적인 모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는 블레즈 파스칼이 주장한 기독교 변증론(辨證論)이다.
‘신이 있을 경우 신이 없을 경우에 신을 믿을 경우는 천국에 이득이 없고, 신을 믿지 않을 경우는 지옥에 이득이 없다. 그러므로 결론은 신을 믿는 것이 신을 믿지 않는 것보다 이득이다.’ 라는 파스칼의 내기의 한계는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한다. 파스칼의 내기는 경우(境遇)의 수를 언급(言及)하며 각 상황에 따른 득실(得失)을 말하는 것일 뿐, 신이 존재한다는 명확(明確)한 증거(證據)를 제시(提示)하는 것은 아니다. 고(故)로 파스칼의 내기는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 파스칼의 내기는 신을 믿는 사람이 자신을 합리화(合理化)하는 수단(手段)에 지나지 않는다. 신의 속성(屬性)을 하나로 단정하고 있다.
파스칼의 내기에서는 '자신을 믿는 자를 천국에 보내는 신' 만을 가정(假定)하고 있다. 흔히 신을 인간의 시선(視線)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고 한다. 즉, 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신이 자신을 믿는 자를 천국에 보낸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자신을 믿는 자를 천국에 보내는 신'을 가정한다면, 동시에 '자신을 믿는 자를 지옥에 보내는 신'과 '자신을 믿든 말든 관여하지 않는 신' 등을 함께 가정해야한다. '자신을 믿는 자를 천국에 보내는 신' 만을 가정하는 것은, 상황을 유리하게 보고자 하는 생각일 뿐이다. 신이 있을 확률을 제시하지 못한다. 신이 있다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므로, 당연히 신이 있을 확률 역시 제시할 수 없다. 고로 파스칼의 내기에 따르는 것이 합리적(合理的)인 선택(選擇)일 수도 있지만, 지극히 미약(微弱)한 가능성(可能性)에 매달리는 행위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믿는 자를 지옥에 보내는 신'을 함께 가정한다면, 신을 믿는 것이 그렇게 유리(有利)한 것도 아니라는 상황(狀況)이 되어버린다. 신앙(信仰)을 수단화(手段化)한다. 신이 있고 신이 인간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내세(來世)의 행복을 위해서 신을 따르는 것이 된다. 신은, 특히 기독교의 신은 단지 자신을 믿는다는 이유로 천국에 보내주지는 않는다. 천국에 가기 위해 신을 믿는다 하더라도, 신이 천국에 보내줄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신이 없을 경우 단순히 이득이 없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십일조를 요구하지 않는 종파도 있지만, 요구하는 종파도 있다. 요구하지 않는 종파라 하더라도 각종 헌금을 요구한다. 기독교 이외에도 여러 종교집단에서 현세와 내세에서의 행복을 보장한다며 금전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신을 믿음으로 인해 금전적인 손해를 보는 것이다. 종교집회에 참여하는 등으로 인해 시간의 손해를 보게 되기도 한다. 병에 걸렸을 때 병원에서의 치료를 받지 않고 기도만을 하거나, 교리에 따라 수혈을 하지 않도록 하여 자식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경우는 신을 믿을 경우 발생하는 손해를 보여주는 강렬한 예시다. 이렇게 신을 믿는 사람들이 손해를 볼 때, 신을 믿지 않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틈새의 신(God of the gaps)
틈새의 신(God of the gaps)은 현대의 과학기술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 즉 틈새에 신이 존재한다고 하는 견해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과학이 아직 충분한 설명을 할 수 없는 문제를 신에 의한 것이라고 가정하는 경향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틈새의 신이라는 단어는 과학이 자연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영역(領域)이 늘어나면서, 종교적인 설명이 서서히 후퇴(後退)하는 현상(現象)을 나타내는 것으로도 사용된다. 태양, 달, 별, 번개 등의 자연현상이 이전에는 신이 만들고 통제하는 영역에 속하는 것이라는 방식(方式)으로 종교적으로 설명되었다. 하지만 천문학, 기상학, 지질학, 우주론, 생물학 등의 영역에서의 관측과 그에 의한 과학적 설명이 가능해지면서, 자연현상에 대한 초자연적인 설명은 점차적으로 사라졌다. 이 말을 처음 사용된 것은 19세기의 전도사인 헨리 드러먼드의 틈새는 “The Ascent of Man(1894년)”에서였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을 틈새는 신에 의해 채워질 것이다.(’gaps which they will fill up with God.)’라고 표현하면서 기독교도들을 훈계하며, 모든 자연현상은 내재적인 신의 업적이라고 여기는 것을 권했다. “이것은 진화하는 신이며, 오래된 신학에서의 신처럼 때때로 기적을 보여주는 신보다 훨씬 고상(高尙)하다.”
20세기에 디트리히 본회퍼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나치에 의해 수감되어있을 때 쓴 편지에 비슷한 말이 있다. 이 편지가 훗날 공개되었다. 본회퍼는 “…우리의 인식의 불완전함 때문에 신을 틈새를 메우는데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인가? 지식의 경계가 점점 넓어지면(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있을 것이지만) 신은 거기에 밀려 지속적으로 후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지의 것이 아니라 알려진 것 중에서 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라고 썼다.
이론화학자 찰스 코울슨은 1955년에 자신의 저서인 “Science and Christian Belief”에서 이러한 말을 사용하여 관심을 모았다. 그는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채울 “틈새의 신”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틈새는 근본적으로 좁혀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리처드 H. 뷰브는 1971년의 저서와 1978년의 논문에서 이 말을 사용했다. 특히 “Man Come Of Age: Bonhoeffer’s Response To The God-Of-The-Gaps(1971)”에서 이 개념을 상세히 검토했다. 그는 과학의 발전이 가차 없이 틈새의 신의 위치를 좁히는 것이 현대 신앙의 위기의 원인 중 하나라고 했다. 인류의 자연에 대한 이해가 깊어짐에 따라 그때까지 종교나 신의 영역으로 간주되던 부분이 점점 좁아졌다. 그는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틈새의 신에 대한 조문(弔問)의 종(從)이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틈새의 신은 성경의 신과는 다른 것이라고 말한다. 즉, 그는 신의 존재를 논증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지식의 틈새에 신이 존재한다는 인식의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틈새의 신’ 논법은 무지(無知)에의 호소(呼訴)의 일종으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신의 존재의 증거로 사용하는 논증이다.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형식으로 환원(還元)된다.
자연계의 현상을 이해하려고 할 때, 설명할 수 없는 틈이 존재한다. 따라서 그 원인은 초자연적인 것이다. 예를 들면, 생명과학분야에서 지금도 존재하는 틈새를 신의 존재의 증거로 삼는 예로, “현대 과학은 생명의 기원을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은 신이 개입한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 있다. 지적 설계의 신봉자들은 이러한 논증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틈새의 신’ 논법에 대해 신학자들은 신을 과학에 의해 설명되지 않고 남겨진 부분으로 추방(追放)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즉, 과학적 지식이 증가함에 따라 신의 영역은 줄어든다. 틈새의 신이라는 견해는 신을 왜소화(矮小化)하여 신의 활동을 틈새로 제한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또한 그 전제로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건은 신과 무관하다는 생각, 다시 말하자면, 신이 직접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경우에 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점도 지적되고 있다. 또한 신이 세상을 만든 것이라면 과학은 그 원리를 해명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전제가 있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다.
오컴의 면도날.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또는 Ockham's Razor)은 흔히 '경제성(經濟性)의 원리' (Principle of economy)라고도 한다. 14세기 영국의 논리학자이며 프란체스코회 수사(修士/修使)였던 오컴의 윌리엄 (William of Ockham)의 이름에서 따왔다. 원문은 라틴어로 된 오컴의 저서(著書)에 등장하는 말이다.
1. 필요(必要)하지 않은 경우에까지 많은 것을 가정(假定)하면 안 된다.(Pluralitas non est ponenda sine neccesitate.)
2. 보다 적은 수의 논리로 설명이 가능한 경우, 많은 수(數)의 논리(論理)를 세우지 말라.(Frustra fit per plura quod potest fieri per pauciora.)"
간단하게 오컴의 면도날을 설명하자면, 어떤 현상을 설명할 때 불필요한 가정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말로 번역하자면,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두 개의 주장이 있다면, 간단한 쪽을 선택하라'는 뜻이다. 여기서 면도날은 필요하지 않은 가설(假說)을 잘라내 버린다는 비유로, 필연성(必然性)이 없는 개념을 배제(排除)하려 한 "사고(思考) 절약(節約)의 원리(原理)"(Principle of Parsimony)라고도 불리는 이 명제(命題)는 현대에도 과학 이론을 구성하는 기본적(基本的) 지침(指針)으로 지지(支持)받고 있다.
예를 들어, 새까맣게 그을린 나무가 있다고 가정하자. 이는 나무가 벼락에 맞았기 때문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어떤 장치를 이용해서 나무가 완전히 잿더미로 변하지 않도록 적절히 그을린 다음 자신이 그을렸다는 흔적을 완전히 없앤 것일 수도 있다. 이 상황을 판단할 다른 증거가 없는 경우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해 본다면, 나무가 그을린 것은 벼락에 맞았기 때문이라고 추론(推論)하는 것이 옳다. 왜냐하면, 나무가 벼락에 맞아서 그을린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더 적은 수의 가정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중세의 철학자들과 신학자들의 복잡하고 광범위한 논쟁 속에서, 오컴은 1324년의 어느 날 무의미한 진술(陳述)들을 토론(討論)에서 배제(排除)시켜야겠다고 결심(決心)을 한다. 그는 지나친 논리(論理)의 비약(飛躍)이나 불필요(不必要)한 전제(前提)를 진술에서 잘라내는 면도날을 토론에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오컴은 "쓸데없는 다수를 가정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를 좀 더 알아듣기 쉽게 바꾸면 "무언가를 다양한 방법으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중에서 가장 적은 수의 가정을 사용하여 설명해야 한다."고 표현할 수 있다. 더 짧게 말하면, 설명은 간단할수록 좋다. 오컴의 면도날은 다음과 같이 일종(一種)의 계율(戒律)처럼 말해지기도 한다. "가정은 가능한 적어야 하며, 피할 수만 있다면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이는 논리학에서의 "추론(推論)의 건전성(健全性)" 개념과도 비슷한 면이 있다. 논리학에서는 추론이 타당한 것으로 밝혀지면 추론의 건전성을 검사하는데, 타당한 추론이라면 결론이 정당화(正當化)될 수 있는 정도는 그 추론에서 가장 정당하지 못한 전제가 정당화되는 정도를 넘지 못한다. 따라서 논리의 형식상으로는 타당(妥當)한 논증(論證)이라고 해도, 논증에 가정이 많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그 논증이 건전하지 못한 논증이 될 가능성도 높아지는 것이고, 이를 바꿔 말하면 가능한 한 가정이 적게 포함된 논증일수록 더욱더 건전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컴의 면도날은 단순히 "여러 가지 가설이 세워지게 된다면 그 중 하나를 고를 때 사용하는 일종의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오컴의 면도날로 어느 가설을 선택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가설이 옳다고 볼 수는 없다. 거꾸로도 마찬가지로, 어느 가설을 오컴의 면도날로 "잘라내" 버렸다 하더라도 그 가설이 틀렸다고 할 수 없다. 오컴의 면도날은 진위(眞僞)를 가르는 잣대가 아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봐도, 오컴의 면도날로 배제한 쓸데없이 복잡한 가설들은 후에 잘못된 것이 명백해진 예가 많다. 예를 들어 천동설(天動說)의 주전원(主轉圓; epicycle)은 초기의 지동설(地動說)보다 관측(觀測) 면에서 보기 쉽고 행성(行星)의 궤도(軌道)를 예측(豫測)할 수 있었으나, 계산이 너무 복잡해지자 보다 간단히 예측을 제시하는 지동설이 거론(擧論)되었다. 이 탓에 오컴의 면도날은 진위 판단에 관해 유효성(有效性)을 가진다고 오해(誤解)받기 쉽다.
전능(全能)의 역설(逆說).
전능의 역설은 전능하다고 여겨지는 존재(이하 전능자)에 논리를 적용할 때 발생하는 철학의 역설 중 하나다. 기본적인 문제는 전능자는 자신의 전능함을 제한하여 전능하지 않은 존재가 될 수 있는가?다. 자신의 전능함을 없앨 수 없다면, 그 전능자는 불가능한 일이 있는 것이 되므로 전능자가 아니게 된다. 반면에 자신의 전능함을 없앨 수 있다면, 그것을 실행하는 순간 전능자가 없어져버린다.
일부 철학자들은 이 역설을 전능자가 없다는 증거로 삼았다. 다른 철학자들은 이 역설이 전능하다는 개념(이하 전능성(全能性)에 대한 오해(誤解) 내지(乃至)는 오용(誤用)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철학자 중에서는 “어떠한 존재는 전능(全能)하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하나의 상태로만 존재할 수 있다.”고 가정하는데서 오는 가짜 역설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종종 이 역설은 아브라함계 종교의 신을 가지고 설명되지만, 전능자를 그것으로 제한할 필요는 없다. 중세 이후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이 역설을 사용했다. 고전적인 예로는 ‘전능자가 너무 무거워서 누구도 들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는가? 라는 것이 알려져 있다. 그러한 바위를 만들 수 없다면 전능하지 않게 되고, 만들 수 있을 경우, 전능자가 그 돌을 들어 올릴 수 없기 때문에 역시 전능하지 않게 된다. 이 표현에는 약간의 결함(缺陷)이 있지만, 유명하기 때문에 이 역설이 분석되어온 다양한 방법을 묘사하는데 편하다.
전능의 역설을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서는 전능성에 대한 정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전능의 정의는 문화와 종교에 따라 다르고, 철학자에 따라서도 다르다. 일반적인 정의는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으로는 역부족(力不足)이다. 예를 들어, 전능성을 어떠한 논리의 뼈대에 속박(束縛)되지 않고 움직일 수 있다는 것으로 정의(定義)된다면, 이 역설은 성립될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한 근현대의 노력은 의미론적인 연구, 즉 전능성 자체를 유의미(有意味)하게 기술(記述)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포함한다. 그러나 처음부터 전능자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정의하면, 이 글에 좌우되지 않고 그 돌을 들어 올릴 수 없는 것도 하나의 능력이 된다.
전능의 역설에 대해 토론할 때 전능성에는 몇 가지 의미가 있다. 호프만에 의하면 그것은 어떠한 상황도 일으킬 수 있는 힘이다. 그러나 그 상황에 포함되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 된다. 데카르트를 비롯한 철학자들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사건을 일으키는 능력도 포함했다. 예를 들어, 유한(有限)한 우주의 중심에서 입방체(立方體)가 형태를 잃거나, 일반적인 수 체계에서 1과 2가 동등(同等)하거나 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전능자가 형태가 없는 입방체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할 경우 전능자가 논리법칙에 속박되지 않는 것을 증명할 수 있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같은 철학자는 전능자가 전능하기 위해서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전능자는 논리적으로 가능한 모든 일을 하는 힘을 가진다. 이러한 두 가지 개념에서 전능성의 한계가 다르므로, 전능의 역설을 풀고자 할 경우 양자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능성을 특정(特定)한 존재(存在)에 적용(適用)할 경우, 몇 가지 다른 방법이 있다. 본질적(本質的)으로 전능(essentially omnipotent)한 존재로 할 것인가, 우발적(偶發的)으로 전능(accidentally omnipotent)한 존재로 할 것인가? 다. 전자는 항상 전능한데 비해, 후자는 일시적으로 전능성을 띠었다가 그 뒤에는 전능하지 않게 된다. 전능의 역설은 둘 사이의 차이가 적용된다. 통상적(通常的)으로 전능의 역설(逆說)은 전능자가 자신이 들어 올릴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표현된다. 이 물음은 다음과 같이 분석할 수 있다.
1. 전능자는 자신이 들어 올릴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거나 없거나 둘 중 하나다.
2. 만약 그 존재가 자신이 들어 올릴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있다면, 그 존재는 전능하지 않다.
3. 만약 그 존재가 자신이 들어 올릴 수 없는 바위를 만들 수 없다면, 그 존재는 전능하지 않다.
이것은 또 다른 고전적(古典的)인 역설인 저항(抵抗)할 수 없는 능력의 역설을 반영(反影)한다. 그 역설은 저항할 수 없는 능력과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이 만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하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만약 저항할 수 없는 힘이 있다면 애초에 진정한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절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면, 진정한 저항할 수 없는 힘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전능의 역설은 또 다른 비슷한 철학적인 역설인 할아버지의 역설과 관련되어있다. 전능성에 대한 일상적(日常的)인 정의(定義) 속에는 종종 시간여행 능력이 포함되어있다.
다음과 같은 요청에 의해 역설을 해소(解消)하자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1. 그 존재는 만들어진 시점에서는 들어 올릴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다.
2. 하지만 그 존재는 전능하기 때문에, 나중에 언제든지 들어 올릴 수 있을 정도로 돌을 가볍게 할 수 있다. 그래서 그 존재를 전능하다고 하는 것은 여전히 합리적이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자신도 무게를 바꿀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는가 하는 반박이 있을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상황이 전능자의 요건으로 요구될 경우, 전능자의 자유의지를 제한한다는 주장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