哲學 神學 科學에서의 無神論 論爭 1.(펌)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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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15:03
哲學 神學 科學에서의 無神論 論爭 - 위키 백과사전에서 정리.
무신론(無神論).
고대 그리스어: ἄθεος(atheos)는 큰 의미에서 신의 존재에 대한 신앙을 부정하거나, 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사상이다. 무신론은 신을 비롯한 모든 영적(靈的)인 존재(存在)를 부정(否定)하는 것을 골자(骨子)로 한다. 무신론은 보통 일신교(一神敎)를 포함한 적어도 하나 이상의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신론(有神論)의 반대개념(反對槪念)이다. 서양에서 무신론(無神論)을 뜻하는 단어 ‘Atheism’은 “신이 없는”을 의미하는 고대 그리스어 ἄθεος에서 유래(由來)하였다. 18세기 들어 전 세계로 퍼진 자유사상(自由思想)과 회의주의(懷疑主義) 그리고 증가(增加)하는 종교 범죄(犯罪)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스스로 무신론자임을 자처하는 사람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 세계 인구의 약 2.3%가 무신론자, 11.9%가 불가지론자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특히 일본에서 64%에서 80%에 달하는 인구가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 무교자(無敎者)라고 응(應)하였고, 독일의 잡지 슈피겔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 독일인 중 45%만이 신의 존재를 믿고 있다고 답했으며, 4분의 1만이 기독교를 믿는다고 조사되었다. 유럽 연합에서 무신론자의 수는 스웨덴 (85%)과 덴마크 (80%), 노르웨이 (60%), 핀란드 (60%) 등의 나라에서 높게 나타난 반면, 몰타와 폴란드, 루마니아, 키프로스 등지에서는 유신론자(有神論者)의 비율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였다. 대한민국에서는 약 30%에서 52%가 무신론자이거나 불가지론자라고 대답하였다.
무신론자들은 경험주의적(經驗主義的) 실증(實證)이 부족(不足)한 초자연주의(超自然主義)에 대한 회의주의(懷疑主義)를 가지는 경향(傾向)이 있다. 보편적인 이론적 해석으로 악(惡)의 문제(問題), 계시(啓示)의 불일치(不一致) 논증(論證) 그리고 무 신앙(無信仰) 논증 등을 통하여 그 어떤 신(神)이나 귀신(鬼神)도 믿지 않는다. 그 외의 무신론 논증들은 철학에서부터 사회학, 역사학까지 다양하다. 어떤 무신론자들은 인본주의(人本主義)나 이성주의(理性主義), 자연주의(自然主義)와 같은 세속주의적(世俗主義的)인 경향이 있기도 하지만, 무신론자들은 어떤 공통된 특정이념(特定理念)이나 행동양식(行動樣式)을 신봉(信奉)하지 않는다. 무신론은 대부분 비종교적이고 세속 주의적이나, 신을 믿지 않는 종교인 자이나교나 불교와 같이 일종의 종교적 믿음의 형태로 발견되는 경우도 있다. 힌두교도 무신론을 일정 부분 포함 하지만 무신론적 종교라고 보기는 힘들다.
무신론의 어원(語源).
3세기 초 문헌 파피루스 46의 에베소서에 등장한 고대 그리스 단어 αθεοι (atheoi). 주로 "신이 없는 (자)"란 의미로 해석된다. 초기 고대 그리스에는 탈격 a(ἀ-)와 신을 뜻하는 단어 θεός가 합쳐져 '신이 없는'이란 의미의 부사 ἄθεος(아테오스)가 존재했다. 이는 불경(不敬)하거나 신앙심이 없는 행동을 비난(非難)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나 기원전(紀元前) 5 세기경부터 신중(愼重)하고 활동적인 무신론적 의미, 즉 '신을 거부(拒否)함' 또는 '신과의 관계를 단절(斷絶)함'이란 의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ἀσεβής(아세베스)는 한 지역의 신을 거부하거나 다른 신을 믿는 사람들, '배교자(背敎者)'를 뜻한다. 현대에는 고대 단어 atheos를 때때로 '무신론의~'로 해석하기도 한다. 추상명사인 ἀθεότης(아테오테스) 또한 '무신론'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키케로는 그 그리스 언어를 라틴어 atheos로 번역하였다. 이 단어는 초기 기독교인과 고대 그리스 종교인(宗敎人) 간(間)의 토론에서 자주 등장하였는데, 서로를 헐뜯고 경멸(輕蔑)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由來)하여 라틴어와 프랑스어(athée)를 거친 단어 atheist(무신론자)는 "신의 존재를 불신하거나 거부하는 자" 라는 의미이다. 영어 atheism은 문헌 최초로 1566년에 등장하며, 1571년에 다시 등장한다. 영어 단어 Atheist는 최소 1577년 초기 부터 '불경(不敬)한 자(者)'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atehism이란 단어는 프랑스어 athéisme에서 파생(派生)되었으며 영문학에서는 1586년부터 나타난다. 약 1534년의 초기 문학에서는 atheonism이란 단어가 사용되기도 했다. 무신론과 관계된 '이신론자(理神論者)'를 뜻하는 단어인 deist는 1621년이 되서야 등장(登場)하며, '유신론자'를 의미하는 theist는 1662년 이후 문헌(文獻)에서 발견된다. '이신론' deism은 1675년에, '유신론' theism은 1678년에 최초로 사용되었다. 당시에 이신론자와 유신론자라는 단어는 이미 현대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유신론'은 '이신론'과 대조(對照)되는 단어였다.
카렌 암스트롱에 따르면, 16, 17세기의 국가들에서 '무신론자'라는 단어는 여전히 논쟁(論爭)의 대상이었으며, 그 누구도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불리길 원하지 않았다. 17세기 중반에도 여전히 무신론이라는 단어는 '신을 믿지 않는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추측된다. 당시에는 무신론에 현재의 '신'과 같은 개념이 성립되지 않았다. 무신론이란 단어가 최초로 일신교의 유일신을 거부하는 의미로 스스로 자인(自認)하는 데에 사용된 것은 18세기 후반(後半) 유럽에서이다. 20세기의 세계화와 함께 무신론은 세상의 모든 신적(神的) 존재를 거부한다는 의미로 확장(擴張)되었다. 그럼에도 여전(如前)히 서구 사회에서의 '무신론'은 종종 유일신의 존재를 거부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몇몇 무신론자들은 무신론이라는 단어에 회의적(懷疑的)이기도 하다. 샘 해리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사실, '무신론'이란 단어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그 누구도 스스로 '무 점성술자(無占星術者)'나 '무 연금술자(無鍊金術者)'라고 스스로 정의하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엘비스의 죽음이나 외계인이 농부나 가축을 성추행(性醜行)하기 위해. 온 은하(銀河)를 가로질러 왔다는 주장을 믿지 않는 사람을 위한 단어들은 없다. '무신론'이란 단어는 합리적인 사람들을 정당하지 않는 종교적 믿음의 지지자(支持者)들로 만들려는 잡음(雜音)에 지나지 않는다.
정의(定義)와 분류(分類).
본 도표(도표 생략)는 약한 무신론과 강한 무신론, 암시적(暗示的) 무신론과 명시적(明示的) 무신론 사이의 관계를 보여준다. 무신론을 어떻게 정의하고 분류할 것인지는 서로 일치하기 쉽지 않다. 초자연적 실체를 어떻게 적용해야할지, 신의 배제(排除)를 어떻게 의식(意識)해야 하는지에 대한 많은 논쟁이 있다. 다른 형태의 무신론들을 수많은 분류(分類)로 구분(區分)하려는 시도(試圖)가 있어왔다.
범위 ; 무신론에 대한 정의가 일치하지 않으며 모호(模糊)한 것은 '영적존재(靈的 存在)‘와 '신'과 같은 단어의 의미를 일치(一致)시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수많은 신앙체계(信仰體系)속의 신적(神的) 존재(存在)에 대한 믿음은 서로 다른 이념에 대한 믿음을 무신론으로 치부(置簿)하였다. 가령 고대 로마 사람들은 자신들의 다신교(多神敎)를 믿지 않는 기독교인들을 무신론자라고 비난하였다. 20세기 들어서야 이러한 관점은 유신론이 다른 신앙들을 포함하기 시작하면서 차츰 사라졌다. 원론적(原論的)으로 무신론은 모든 신적 존재와 영적 존재, 초자연적(超自然的) 존재, 초월적(超越的) 존재를 부정(否定)하는 것이다.
암시적(暗示的) 무신론과 명시적(明示的) 무신론; 무신론의 정의는 무신론자들의 신앙에 대한 고려사항(考慮事項)의 정도에 따라 바뀐다. 무신론은 종종 단순히 신적 존재나 믿음을 부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정의된다. 이러한 광범위(廣範圍)한 정의는, 갓난아이나 신학(神學)에 노출(露出)된 적이 없는 다른 사람들을 포함한다. 1772년 계몽주의 사상가 폴 앙리 디트리히 돌바크는 그의 저서에서 "모든 어린이들은 무신론자로 태어나며, 그들은 신에 대한 개념이 없다."라고 하였다. 1979년 자유의지론(自由意志論) 사상가인 조지 해밀턴 스미스 또한 비슷한 발언(發言)을 하였는데, "유신론에 노출된 적이 없는 사람은 무신론자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어린이들과 아직 유신론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이 부류에 포함한다. 이 아이들이 신을 믿지 않는다는 사실은 스스로 무신론자로서의 자격이 있다."라고 시사(示唆)하였다. 스미스는 처음으로 개인 스스로 신적 존재 부정을 의식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유신론을 알지 못하여 신을 믿지 않는 것을 '암시적 무신론'이라고 불렀다. '명시적 무신론'은 스스로 유신론을 이해하고 신적 존재를 부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니스트 네이글은 스미스의 무신론에 대한 정의를 반박(反駁)하였는데, 그는 명시적 무신론만을 진정한 무신론으로 인정(認定)하였다.
적극적(積極的) 무신론과 소극적(消極的) 무신론; 안토니 플루 나 마이클 마틴과 같은 철학자들은 적극적(强한) 무신론이란 명시적으로 신적 존재를 부정하는 것으로, 소극적인(弱한) 무신론은 모든 비 유신론적(非有神論的)인 형태를 포함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분류 작업에 따르면 모든 비유신론적인 사람은 적극적 혹은 소극적 무신론으로 나뉜다. '강한 무신론'과 '약한 무신론'의 단어들은 1813년부터 철학적 문학과 가톨릭 변증론(辨證論)에 등장했던 '적극적 무신론'과 '소극적 무신론' 단어에 비하여 최근에 유래(由來)되었다. 이 무신론의 경계(境界)에 따르면, 불가지론자들은 소극적 무신론자로 분류된다. 마이클 마틴은, 예를 들어, 무신론이 유신론보다 더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하거나 유신론과 무신론을 동등하게 취급하는 불가지론자들을 소극적 무신론자라고 주장하였다. 때때로 무신론이 지식의 비 한계성(非限界性)을 지지하거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대해 무신론이 유신론만큼이나 맹신(盲信)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냐는 지적(指摘)이 있다. 보통 무신론자들은 이 논쟁에 대해, 증명되지 않은 신앙적 명제(命題)들이 다른 모든 명제들만큼 더 비 신앙적이다. 는 것과 신의 존재에 대한 불확실성(不確實性)이 두 가능성(可能性)을 동등한 명제로 의미하지는 않다는 것을 이용하여 반박한다.
철학; 18세기의 대표적 무신론 지지자인 폴 앙리 디트리히 돌바크는 "인간의 불행(不幸)의 원천(源泉)은 자연에 대한 무시(無視)에 있다. 비틀어진 내면(內面)에서 편견(偏見)의 결과로 짜여진, 유아기 때 굳어져버린 눈먼 의견을 적시기 위해 달라붙는 불굴(不屈)의 의지(意志)는 거듭되는 오류(誤謬)를 선고(宣告)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짓의 노예(奴隸)가 되는 것을 예방(豫防)한다." 가장 널리 퍼진 무신론적 근거는 현실적 무신론과 이론적 무신론으로 구분된다.
현실적 무신론; 이 부분의 본문은 무 관심론(無 觀心論)입니다. 현실적 혹은 실용적 무신론은 신이 존재와 관련 없이 개별적(個別的)인 생명(生命)을 자연현상(自然現象)으로 설명하려는 무 관심론으로도 알려져 있다. 신의 존재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논증에 신의 존재가 필요하지도 않다. 현실적인 무신론은 과학계의 결론들과 함께 방법론적 자연주의 형식을 가진다. 현실적 무신론은 다음과 같은 형식을 포함할 수 있다.
종교적 동기(動機)의 부재(不在). 즉 신은 도덕적 행동이나 종교적 행동을 비롯한 모든 행동의 동기를 부여하지 않는다. 지식 추구와 현실적인 행동으로 말미암아 발생하는 신과 종교상 문제의 적극적인 배제(排除), 종교와 신적 존재들의 문제에 그 어떤 흥미도 보이지 않는 무관심(無關心), 혹은 신적(神的) 존재의 개념(槪念)에 대한 무지(無知)를 말한다.
이론적 무신론; 존재론적(存在論的) 논증(論證) 중 비 인지주의(非認知主義)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론적 무신론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논증을 명쾌(明快)하게 받아들이며, 지적설계(知的設計) 논증이나 파스칼의 내기와 같은 신의 존재를 위한 논증에 대응(對應)한다. 이론적 무신론은 주로 존재론, 더 엄밀(嚴密)하기는 물리주의(物理主義)에 해당한다.
인식론적 논증; 비 인지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인식론적(認識論的) 무신론자들은 사람들이 신이나 신의 존재를 알아낼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식론적 무신론의 기초는 다양한 형태의 불가지론(不可知論)이다. 내재론(內在論)에 의하면 신은 인간의 정신(精神)과 의지(意志)를 포함한 세상(우주)과 불가분(不可分)한 존재이다. 불가지론의 형태에 따르면 관점(觀點)의 한계(限界)는 신의 존재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영향을 주는 모든 사물(事物)을 방해(妨害)한다. 칸트와 계몽시대의 합리적인 불가지론은 인간의 합리성으로 추론(推論)된 지식만을 수용(受用)하였다. 이러한 무신론의 형태는 이론적으로 신이 인식 불가능하며 그로인해 신의 존재를 알 수 없다고 간주(看做)한다. 데이비드 흄의 사상에 기반(基盤)한 회의론(懷疑論)은 개인이 신의 존재를 확인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절대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받아들였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지론을 무신론으로 포함하는 것은 논쟁의 대상이다. 불가지론도 세상을 인식하는 독립된 개념으로 여겨진다.
무신론의 다른 논증들은 무 관심론이나 실증주의를 포함하여 인식론이나 존재론으로 분류될 수도 있다. 신학적 비 인지주의(非認知主義)는 신의 존재에 대한 진술(陳述)이 인식적(認識(的)으로 무의미하다고 간주(看做)한다. 이러한 여러 갈래의 주장을 과연 무신론이나 불가지론 둘 중 하나로 정확히 구별될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철학자 앨프리드 에이어와 시어도어 드레인지는 신의 존재를 '가설(假設)'로서 수용한 두 입장의 구분을 거부하였다. 대신에 그들은 비 인지주의라는 독립된 분류를 제안(提案)했다.
형이상학적 논증; 일원론(一元論), 물리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한 작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이상학적 무신론은 형이상학적 일원론을 고수(固守)하는 모든 학설을 포함한다. 형이상학적 무신론은 다음의 각각(各各)에 해당할 것이다.
1) 절대적 : 신의 존재에 대한 명시적 거부는 유물론적인 일원론(고대와 현대를 비롯한 모든 유물론적인 경향)과 관련됐다.
2) 상대적: 절대적 존재를 수용했더라도 모든 철학에서의 신의 존재에 대한 암시적 거부는, 인격적(人格的)인 신(神)의 속성(屬性)이 포함(包含)되지 않은 절대적 존재를 받아들인다. 상대적(相對的) 무신론(無神論)은 이상주의적(理想主義的) 일원론(一元論; 범신론, 萬有內在神論, 이신론)과 관련되어 있다."
에피쿠로스는 최초로 악의 문제를 해설한 철학자이다. 데이비드 흄은 그의 저서에서 에피크로스의 논증을 인용하였다. "신이 악을 막으려는 의지가 있지만 불가능하다면? 신은 무력(武力)하다. 신이 악을 막는 것이 가능함에도 의지가 없다면? 신은 악의적(惡意的)이다. 신이 악을 막을 수도 있고 의지도 있다면?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신이 악을 막을 수도 없고 의지도 없다면? 그럼 왜 여전히 그를 신이라 불러야 하는가?"
논리적 논증; 논리적 무신론은 기독교의 인격적인 신과 같은 여러 신의 개념에 기반을 둔다. 가령 무신론자들은 완벽성(完璧性), 창조자격(創造資格), 불변성(不變性), 전지(全知), 전능(全能), 전선(全善), 편재(偏在), 초월성(超越性), 인간성(人間性), 비물질적(非物質的), 정의(正義), 자비(慈悲) 등 양립(兩立)할 수 없는 특성들을 근거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연역적(演繹的)인 논증을 제시(提示)한다. 변신론적(辯神論的)인 무신론자들은 그들의 경험으로 일반적인 신의 특성과 신학자들의 신 사이에 조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전지, 전능, 전선한 신은 악과 고통이 존재하는 세상과 양립(兩立)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비슷한 논증이 불교의 창시자인 싯다르타 고타마(부처)에 기인(起因)한다.
종교 비판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와 지그문트 프로이드와 같은 철학자들은 신과 종교적 믿음은 정신적, 감정적인 욕구와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인간의 발명품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많은 불교 신자들의 관점과 유사하다. 포이어바흐의 영향을 받은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신앙과 종교는 노동자 계층을 억압하기 위한 사회 장치라고 여겼다. 미하일 바쿠닌은 "신의 존재에 대한 개념은 인간의 존재 이유와 정의에 대한 포기(抛棄)를 내포(內包)한다. 이는 가장 결정적인 인간의 자유에 대한 부정이며, 이론과 현실적으로 인류를 노예로 만드는 필연적인 결말(結末)이다"고 말했다. 그는 볼테르의 유명한 경구(警句)인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신을 발명해야한다"를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신을 폐(廢)해야 한다."고 뒤집어 인용하였다.
대안(代案); 인류학, 인본주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가치론 또는 건설적인 무신론은 가령 인류애와 같은 '더 절대적인 것'을 위해 신의 존재를 거부한다. 이러한 형태의 무신론은 인류애를 윤리와 삶의 가치의 원천(源泉)으로 여기며, 신에게 의존(依存)하지 않고 도덕적 문제를 해결하게 한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는 해방(解放)과 성숙(成熟), 제한(制限)받지 않는 행복의 교훈을 전달하기 위하여 동일한 주장을 펼쳤다. 무신론자들의 주장과는 반대로 무신론에 대한 흔한 비판 중 하나는 신의 존재를 거부가 도덕적 타락을 가져온다거나 삶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다고 하는 것이다. 블레즈 파스칼이 그의 저서에서 이러한 비판들과 같은 관점으로 접근하였다.
무신론적 실존주의; 프랑스의 철학자인 장 폴 사르트르는 신의 존재 부정에 덜 흥미를 보이는 대신 무신론적 실존주의의 대표자를 자처(自處)하였다. 사르트르는 그의 무신론적 사상의 귀결(歸結)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적어도 한 존재는 스스로 어떤 개념으로든 정의를 내릴 수 있기도 전에 존재하는, 본질에 앞선 존재일 것이다. 이 존재는 바로 사람이다." 이 무신론의 현실적인 결론을 사르트르는 '연역적인 규칙' 혹은 인간의 행동을 지배하기 위해 적용될 수 있는 절대적 가치는 없으며, 그것은 인간들을 스스로 자신이 한 모든 것을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고안하도록 만든다. 라는 의미로 묘사(描寫)하였다.
학자 리아논 골드소프는 사르트르의 몇 구절을 "가장 완고한 회의론자의 상상력과 감성(感性)에게 여전히 자양분(滋養分)이 되어주는 고대 신앙들로의 기독교적 무신론의 침투(浸透)"라고 시사(示唆)했다. 스티븐 프리스트는 사르트르의 시각(視覺)을 "무신론적 형이상학"으로 묘사하였다. 사르트르 번역가인 헤이즐 반즈는 "사르트르가 거부한 신은 우주의 기원으로 추정할 수 있는 알려지지 않은 X와 같은 어떤 애매(曖昧)한 힘이 아니라 선(善)에 대한 인간(人間)의 탐구(探究)를 상징화(象徵化)한 발상(發想) 혹은 신화(神話)이다. 이는 구체적으로 말하면 스콜라 철학의 신이거나 적어도 어떤 독특하고 전능하고 절대적이며 창조주인 신의 개념이다."라고 사르테에 대하여 저술(著述)하였다.
인구 통계; "나는 영혼이나 신 또는 그러한 존재를 믿지 않는다."라고 답변한 유럽 국가 국민들의 비율(2005년) 전 세계 무신론자들의 수를 정확히 통계(統計)를 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무신론'은 명확히 정의내리기 어려운 특징이 존재하며, 가령 힌두교의 무신론자들은 힌두교 신자와 순수 무신론자에 동시에 해당하므로 구분하기 쉽지 않은 것과 같이, '무신론'과 '무교', '무신교(無神敎)' 차이점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2005년 출판된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의하면, 전 세계 인구 중 11.9%가 무교자이며 약 2.3%가 무신론자라고 한다. 이 통계는 불교와 같이 무신론적 종교를 포함하지 않은 수치(數値)이다.
2006년 11월과 12월 파이낸셜 타임즈에서 미국과 다섯 유럽 국가들을 상대로 무신론자에 대한 설문조사를 하였다. 미국이 가장 낮은 6%의 무신론자 비율을 보였고 유럽 국가들에서는 이탈리아(7%), 스페인(11%), 영국(17%), 독일(20%), 프랑스(32%)순으로 높아졌다. 유럽 연합의 유사한 공식 조사에 따르면 유럽 연합 국가 전체 국민들 중 18%가 신을 믿지 않는다고 나타났다. 조사 내의 다른 연구 결과들에 의하면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 무교자들의 비율이 낮은 국가로는 폴란드와 루마니아, 키프러스가, 높은 국가로는 스웨덴(85%)과 덴마크(80%), 노르웨이(72%), 핀란드(60%)순으로 나타났다. 오스트레일리아 연방 통계국 또한 비슷한 조사를 하였는데, 19%가 무신론자가 포함된 무교자라고 응답하였다. 일본에서는 64%에서 65%의 일본인들이 무신론자, 불가지론자, 무교자이다. 대한민국에서의 조사에서 응답자 중 30%에서 52%가 무교자, 무신론자 또는 불가지론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 세계 무신론자와 불가지론자의 비율; 유럽 연합의 설문 조사 결과는 또한 유럽 시민들 중 고학력자일수록 무신론자가 많아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연구 결과들 또한 학력과 무신론자 비율에 관한 비례적(比例的) 상관관계(相關關係)를 나타낸다. 과학 논문 잡지 네이처는 1998년 설문조사를 인용하여 미국의 국립과학아카데미 회원 중 인격적인 신이나 사후세계(死後世界)를 믿는다고 응답(應答)한 사람은 7.0%에 불과(不過)했다고 발표하였다. 반면, 일반 미국 국민들 중 인격적 신을 믿는다는 사람은 85%에 달했다. 같은 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프랑크 설로웨이와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교의 마이클 셔머는 논문을 통해 미국내 '적법한' 성인(박사학위 소지자 12%, 대학교 졸업자 62% 표본)중 64%가 신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을 발표하였으며, 학력과 무신론 여부에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혀내었다. 신앙심과 지적 능력 사이의 반비례적 상관관계는 1927년부터 2002년까지 39건의 연구를 통하여 밝혀졌다. 이러한 결과들은 1958년 옥스퍼드 대학교의 마이클 아가일교수의 통계적 메타 분석을 통하여 널리 받아들여졌다. 그는 미국 내 학교 및 대학교 학생들의 지적능력과 신앙과의 반비례적 상관관계에 대한 7건의 연구를 분석하여 사실임을 명백하게 밝혀내었다. 그러나 종교적 관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정환경이나 사회적 지위와 같은 다른 요인들을 함께 고려하지는 않았다.
무신론과 종교 그리고 도덕성.(신앙과 사회 행동과의 관계) 사회학자 필 주커맨은 세속주의와 무신앙(無信仰)에 관련된 기존의 사회 과학 연구 결과들을 분석하여 건전한 사회 활동이 명백하게 무교적(無敎的) 성향(性向)과 관련되어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무신론에 대한 그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무신론자나 세속적인 사람은 종교적인 사람들에 비해 덜 민족·인종·자기중심·권위주의적인 경향이 있으며 더 개방적이며 편견이 적다. 무신론자 비율이 높은 미국의 주들에서는 살인률(殺人率)이 미국 전체의 평균보다 낮다. 반면에 대부분의 종교적인 주들에서는 살인율이 평균보다 높다.
무신론과 무교(巫敎); 불교는 조물주가 없는 이유로 주로 무신론적 종교로 분류된다. 스스로를 무신론자로 인식하는 사람들은 주로 무교적 성향을 띤다. 그러나 주요 종교의 몇몇 분파 또한 교리를 통하여 인격적이거나 창조력을 지닌 신의 존재를 배재한다. 근래에는 무신론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유대인이나 무신론적인 기독교인과 같은 공공연한 무신론자 신자들을 몇몇 종교들이 사역(使役)하기도 한다. 긍정적 무신론은 특정 신에 대한 명확한 신앙을 포함하지 않지만, 모든 영적 존재에 대한 불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몇몇 무신론자들은 도덕적 보편주의나 인본주의의 범위 안에 존재하며, 모든 인류와 도덕적 허무주의에 일관적으로 적용되는 영적 존재를 믿기도 한다.
종교와 윤리;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결정하도록 돕는 것이 ‘신(神)의 역할(役割)’이라면 이는 불필요하거나 자의적(恣意的)인 것이라는 플라톤의 딜레마가 철학적 공리(公利)이기는 하지만 인간의 도덕성이 신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주장이나 도덕성은 현명한 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은 정치적, 철학적 논쟁의 집요(執拗)한 주제(主題)가 되었다. '살인은 잘못된 것이다.'와 같은 도덕적 관행이 신이 내려준 법규로 여겨진다는 관점에 대해 많은 무신론자들은 해당 주장이 유추(類推)의 오류(誤謬)라고 지적한다. 또한 도덕적 관행(慣行)은 실제 다른 세속세계의 법과 마찬가지로 그 법규를 만든 인격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 관련 문헌자료 생략
무신론의 역사 ;
무신론(Atheism)이라는 단어는 16세기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하였으나, 그 사상적 기반은 기록상 베다 시대와 서양의 고전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무신론이라는 단어는 16세기에 '신이 없음'을 의미하는 지닌 고대 그리스어 ἄθεος에서 기원하였다. 적극적인 무신론은 최소 18세기 후반에 시작되었으며 무신론 사상과 무신론자들의 정치력이 강화됨에 따라 역사의 폭이 넓어졌다. 아마도 신이 없을 것이라는 자연적인 명제는 유신론만큼이나 오래된 논리이다. 철학적인 무신론자들은 이미 기원전 6세기에서 5세기 사이부터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등장하였다.
윌 듀런트는 아프리카의 피그미 부족에서 그 어떤 숭배의식도 찾아볼 수 없었으며, 그들이 그 어떤 영적 존재나 신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피그미 부족은 특별한 제사 의례없이 죽은 자를 그들의 물건과 함께 매장하는 장례식을 하였으며, 여행자나 외부인에 대한 그 어떠한 단순한 미신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또한 베다 시대의 스리랑카에서는 신의 존재 가능성만 공인되었기 때문에 성직자나 예배 의식이 존재하지 않았다.
유럽의 고대 시대에 유신론은 도시 국가나 로마 제국의 신성한 의무로 여겨지는 기본적인 믿음이었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숭배하는 신(들)을 믿지 않는 시민은 중죄로서 무신론자로 고발되었다. 정치적인 이유로 아테네의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399년 단지 초경험적인 내심의 소리, 즉 다이몬의 소리를 경청하라는 주장을 대가로 '무신론자'라는 혐의로 고소되어 사형을 당했다. 로마의 기독교인들도 역시 당시 로마의 종교를 믿지 않는 무신론자로 취급되어 박해를 받았다. 당시의 무신론이 가지는 의미는 이교도나 무 신앙자이였으며, 정적(政敵)으로 제거(除去)하려는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서구 문명의 철학은 기원전 6세기 그리스에서 시작하였다. 역사에 등장하는 첫 철학자들은 무신론자가 아니었으나, 신화 대신 자연현상을 통해 세계를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가령 그들은 번개를 바람의 충돌과 구름의 분열로 인하여, 지진은 지구의 급격한 온도차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 추측했다. 초기 철학자들은 전통적인 종교의 관념을 자주 비판하였다. 제노파네스(기원전 6세기)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만약 소와 말이 손을 가지고 있다면, 말은 말처럼 생긴 신을 그릴 것이요, 소는 소처럼 생긴 신을 그릴 것" 라고 주장하였다. 다른 철학자이자 천문학자인 아닉사고라스(기원전 5세기)는 태양을 가리키며 "펠로폰네소스보다 훨씬 큰 불덩어리"라고 말했으나, 불경죄로 아테네에서 추방되었다. 최초의 완전한 유물론철학은 원자론주의자인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투스(기원전 5세기)로부터 파생하였다. 그들은 이 세계의 형태와 발전을 무한한 우주 속 원자의 움직임으로 설명하려고 시도하였다. 에우리피데스(기원전 480-406년)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군가 저 위에 신은 있는가 물었다. 신은 없다; 없다, 신은 없다, 바보처럼 굴지 말라. 옛날의 거짓 우화를 앞세워 너를 기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