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박 행동과 종교 행위

강박 행동과 종교 행위

오브르 1 3,744 2004.10.29 01:13

강박 행동과 종교 행위


요약: 오브르(2004. 3. 22.)


일러두기: Freud, Sigmund, 프로이트 전집 13: 종교의 기원, 재판, 이윤기 옮김, 서울: 열린책들, 2004., pp. 7∼21을 요약했음. 주는 { } 안에 넣었다.


 나는 환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른바 강박적인 행동이라는 것과, 종교인들의 신심(信心)에 표정을 부여하는 수단으로서의 과민한 집착과 종교 의식이 유사한 데 충격을 받은 사람이지만 그런 사람이 나뿐만인 것은 아니다. 이런 종류의 강박적인 행위에 〈의례(儀禮)〉라는 술어가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신경증적 의례는 특정 일상 활동에 대한 사소한 조정 행위로 이루어진다.……사소한 무엇을 보태거나, 제한하거나, 각색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늘 같은 식으로 이루어지기도 하고, 방식은 일정하되 양상은 다양하게 이루어지기도 한다.……환자들에게 문제되는 것은, 환자들은 이런 일상적인 일을 포기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환자들은 이런 의례에 태만할 경우 불안해서 견디지 못한다.……의례적인 행동은 일련의 불문율을 따르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가령 수면 의례의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신경증 환자라면, 의자는 침대 옆 특정 장소에 놓여 있어야 하고, 옷은 특정한 방식에 따라 그 위에 정리되어 있어야 하며, 이불은 특정 부분이 시트 밑으로 접혀 들어가 있어야 하고, 시트는 부드러워야 하며, 베개는 이러저러한 식으로 놓여 있어야 하고 환자 자신의 몸은 정확하게 미리 정해진 위치에 놓여야 하는 것이다. 환자는 이런 상태가 되어야 잠들 수 있다.……환자가 이런 행위에 특별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불안을 느낄 경우 이런 의례적 행위에는 〈신성한 행위〉라는 낙인이 찍힌다. 대개의 경우 중증 환자는 이런 행위를 방해받는 것을 참지 못하고, 이런 행위를 하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금제(禁制)와 의지 상실abulias이 신경 장애의 내용물을 구성하기도 한다. 특정한 행위가 환자에게 완전하게 금지되고, 다른 환자들에게도 이 환자에게 규정된 의례적 행위에 준해야 할 경우, 이런 금제와 의기저상도 실제로 강박적 행위 역할을 하기도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이 강박과 금제(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것과 어떤 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것)는 처음 환자의 독자적인 활동을 통해서 나타났다가도 오랫동안 그 환자의 사회적인 역할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많은 환자들은 이런 장애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일상생활이라는 사회적 의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감추고 사는 데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신경증적 의례 행위와 종교 의례의 신성한 행위 사이의 공통점을 지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이 양자에서 공통되는 것은 이 행위에 태만할 경우 불안에 휩싸인다는 점, 다른 행위와는 완벽하게 분리된다는 점(틈입이 철저한 금제가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고 세부 사항에 이르기까지 지극히 세심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차이를 지적하는 일 또한 어렵지 않다. 그 차이 중 몇 가지는 비교 자체가 신성 모독으로 느껴질 정도로 두드러진다. 정형화한 제의의 성격(기도, 동쪽 향하기〔東方定位〕 등)에 견주어 (신경증적) 의례 행위의 개인적 변이성(變異性)이 현저하게 크다는 점, 종교 의례는 공적이고 사회적인 데 견주어 신경증적 의례 행위는 그 성격이 지극히 사적이라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도 종교 의례의 일거수일투족은 의미심장하고 상징적 의미로 가득차 있는 데 견주어 신경증적 의례 행위는 하찮고 어리석어 보인다는 점이다.……연구 조사를 통하여 밝혀진 바에 따르면 강박 행위는 그 하나하나가 완벽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고, 개인의 중대한 관심사를 반영하며 여전히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경험과 감정에 집중된 사고를 표현한다.


 나의 논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겠다.


 a) 내가 관찰해 온 한 소녀는, 세수가 끝난 뒤에는 반드시 대야를 몇 차례씩 헹구는 강박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러한 의례적 행위의 의미는 〈재계(齋戒)가 끝나기까지는 더러운 물을 버리지 말라〉는 다분히 격언적 속담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그 소녀의 이러한 행위는……언니에게, 더 나은 사람을 만나기 전에는 비록 불만스럽더라고 현재의 남편과 이혼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b) 남편과 별거하고 있던 한 여자 환자도 강박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이 환자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음식 중에서 가장 좋은 부분은 남기고는 했다.……환자가 이러한 증상을 보인 것은 남편에게 부부 관계의 지속을 거절당한 날부터였다. 바로 이날부터 이 환자는, 가장 좋은 것은 늘 거절하게 된 것이다.


 강박 행위가 병이냐 아니냐 하는 것은, 강박에 복종하는 당사자가 아무리 하찮은 것이든 그 의미를 알고 하느냐 모르고 하느냐에 달려 있다.……강박 행위는 〈무의식적〉 동기와 〈무의식적〉 사고를 반영한다는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평범한 신앙인들 역시 그 의미를 모른 채 대체로 의례적인 행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사제들이나 과학적인 연구 조사자들은 의례의 의미―대개는 상징적인―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모든 신앙인들에게는, 종교적인 관습을 행동으로 드러내게 하는 동기는 알려져 있지 않거나, 그들의 의식 속에서 생각한 것보다 훨씬 의미심장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보통이다.


 ……우리는 강박과 금제의 고통을 받는 환자들은, 죄의식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도 일종의 죄의식 같은 것에 사로잡힌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할 수 있다.


 강박 신경증의 죄의식과 아주 흡사한 것이 바로, 진심으로 자기네들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종교인들의 확신이다. 종교인들의(기도, 주문 등과 같은) 일상생활과 특수한 비일상적 행사를 지배하는 경건한 의식도 방어 혹은 방어 수단과 같은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강박 신경증에 이르게 하는 억압의 과정은 부분적으로는 성공할 가능성을 지니되, 그 성공 또한 점증하는 실패의 위기를 맞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말하자면, 기왕에 생긴 본능의 압력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심적 노력이 지속적으로 요구되는, 끊임없는 갈등 관계로 파악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의례적 행위와 강박적 행위는, 일부는 유혹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또 일부는 예견되는 불안에 대한 방어 수단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유혹에 대한 방어 수단은 곧 부적당하게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때 유혹을 발생시키는 상황과 거리를 두려는 목적으로 금제가 활동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되면 금제가 강박적 행동의 자리를 차지한다. 이때의 금제는 히스테리성 발작의 예봉으로부터의 자기 방어 기제인 공포증 노릇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때 의례는 다시 한 번, 아직은 절대적인 금제에 속하지 않은 것들을 허용하는 상황의 총화를 표상한다. 절대적인 금제에 편입되지 않은 것들을 허용하는 상황은 교회에서 벌어지는 결혼식과 흡사하다. 신도들에게 교회의 결혼식은 자칫 죄악이 될 수 있는 성적 쾌락을 용인하는 절차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떠한 사물에 유난히 애착을 보이는 유사한 행위가 그렇듯이, 강박 신경증이 지니는 그 밖의 특징은 그 드러남(강박 행위를 비롯한 그 증상)이 마음속의 적대하는 세력 간에 절충적 상황을 조성한다는 점이다. 적대하는 마음 속의 두 세력은 원래는 막아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쾌락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재현해 낸다. 이 세력은 억압된 본능에 봉사하는가 하면, 본능을 억압하는 주체에 봉사하기도 한다. 신경증이 발전해 감에 따라 원래는 방어에 주력하던 일련의 행위가, 유아기에는 본능의 표현을 가능케 하던, 금지된 행위에 접근해 가는 것이다.


 ……종교의 형성 과정도 억압, 다시 말해서 특정한 본능적 충동을 단념하는 것에 그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계속되는 유혹에 뒤따르는 죄의식, 신의 징벌에 대한 공포 형태의 불안은 신경증의 경우보다는 종교의 영역에서 훨씬 더 우리에게 낯익다.……죄악으로의 완전한 타락은 신경증 환자보다는 종교적으로 경건한 사람들에게 훨씬 일반적인 현상인데, 바로 이러한 현상이 이른바 참회라고 하는 새로운 종교 활동의 형태를 만들어 낸다. 강박 신경증 환자들에게도 여기에 상응하는 증상이 있다.


 ……꿈의 구조 속에서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6) 『꿈의 해석』(프로이트 전집 4, 열린책들) 참고―원주} 심리적 〈전위Verschiebung〉의 매커니즘이 강박 신경증의 정신 작용을 지배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이 임상적 상황의 주목할 만한 특징을 이해할 수 없다. 위에서 예로 든 강박적 행위의 몇몇 사례에 주목하면, 강박적 행위의 상징성과 그 세부적인 시행은 바로 이 전위 작용을 통하여 드러난다는 것은 분명해진다.……종교 분야에도 심적 가치의 유사한 전위 경향이 같은 방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말하자면 사소한 종교 관습의 사소한 의례들이 본질적인 것이 되면서 그 기초를 이루는 사고 체계를 옆으로 밀어내어 버리는 것이다. 종교가 복고적인 개혁의 대상이 되고, 끊임없이 최초의 가치 균형을 회복하려고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강박적 행위가 신경증적 징후로 드러내는 절충의 특징은 종교 관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특징이기도 하다. 그러나, 종교가 금지하는 행위들―억압되어 있는 본능의 표현―이 얼마나 자주 종교라는 허울 좋은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는지 상기해 보면 신경증이 어떤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유사성과 상사성에 주목한다면 강박 신경증을 종교의 병리학적 내용물로 파악하고, 신경증을 개인의 종교성으로, 종교를 보편적인 강박 신경증으로 파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이 양자에서 가장 중요한 유사성은 인간의 내부에 깃들어 있는 타고난 본능 발현의 체념이다.……신경증의 경우 이 본능은 성적인 것에서 오는 것인 데 견주어, 종교의 경우 이기적인 데서 솟아오른 것이라는 것이다.


 타고난 본능을 발현시키면 자아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나, 이 본능의 체념은 인류 문화 발전의 바탕 중 하나다. 이 본능 억압의 일부는 종교에서 비롯된 것이다. 종교는 개인에게 본능적인 쾌락을 신에게 바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앙갚음을 하리라〉인 것이다. 고대 종교의 발전 과정을 눈여겨본 사람들은 인류가 〈부정한 것〉으로 알고 체념했던 많은 것들을 신들에게 되돌리고 바로 그 신의 이름으로 자행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인류는 부정한 것, 사회적으로 해로운 본능을 신들에게 되돌림으로써 이를 본능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에서 인류의 모든 속성이, 그 속성에서 비롯된 악행까지도 고대 신들의 묘사에 무자비하게 동원되었다는 것은 우연이 아닌 것이다. 이러한 사실과, 신들이 본을 보였는데도 불구하고 인류에게는 부정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사실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 것이다.



[이 게시물은 (ㅡ.ㅡ)님에 의해 2005-03-22 03:58:02 자유게시판(으)로 부터 복사됨]

Comments

monomino 2004.10.29 02:18
광신과 맹신은 신앙이 아니다...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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