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희망에서 - by 칼세이건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과학과 희망에서 - by 칼세이건

※※※ 0 2,968 2004.08.26 11:36
과학은 완전한 지식을 주는 도구와는 거리가 멀다. 과학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선의 도구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과학은 민주주의와 비슷하다. 과학 스스로는 인간 행위의 방향들을 지시할 수 없지만, 비교되고 있는 행위의 방향으로부터 비롯될 가능성 있는 귀결들에 대해서는 확실히 설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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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 성공한 이유 중의 하나는 오류 수정의 기제가 과학 그 자체에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이들은 과학을 지나치게 넒은 의미로 생각한다고 하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우리가 자기 비판을 하거나 우리의 생각을 외부의 세상에 적용해서 검증할 때 우리는 이미 과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 대해 관대하고 무비판적일 때, 희망과 사실을 혼동할 때, 우리는 사이비 과학과 미신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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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의 위대한 계명 가운데 하나는 '권위에 의해 지탱되는 논변을 신뢰하지 마라'이다(과학자들은 영장류이며 그리하여 계통상 지배적인 위치를 부여 받았을 테지만 이 계명을 언제나 따르지는 않는다). 권위자에 의한 논변들 가운데 너무나 많은 것들이 너무 고통스럽게도 잘못으로 밝혀졌다. 권위자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해야 한다. 이러한 과학의 독립성, 즉 종전까지 지혜로 존중받던 것을 때로는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는 특성은 자기 비평을 덜한 주장, 또는 확실하다고 참칭하는 주장을 위험한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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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종교들이 예언을 통해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하는지 생각해보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을 지탱하거나 버티기 위해서 대단히 모호하고 불충분하더라도 그러한 예언에 의지하는지 생각해보라. 하지만 과학만큼 정확하고 신뢰할 만한 예언을 하는 종교가 있었는가? 미래의 사전을 예견하는 데 과학에 비견할 만한 예언력, 즉 회의주의자들의 검토를 거쳐 반복적으로 증명된 정확한 능력- 을 갈망하지 않는 종교는, 이 행성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만들어낸 다른 어떤 제도도 이에 근접하지 못한다.

이것은 과학의 제단을 숭배하는 것인가? 이것은 기존의 신앙과 다를 바 없는 또 다른 임의적 신앙으로 대치하는 것인가? 내 생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과학의 성공은 직접적으로 관찰된다는 것이 내가 과학을 지지하는 이유이다. 다른 어떤 것이 과학보다 더 효과적이라면, 나는 과학이 아니라 그것을 지지할 것이다. 과학은 그 자신을 철학적 비판으로부터 단절시키는가? 과학이 자신을 독점적인 '진리'의 소유자라고 정의하는가? 1,000년 후에 있을 일식의 경우를 다시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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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과학이 그렇게 성공적인 것은 자체적인 오류 수정 기제에 일부 이유가 있다. 과학에서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란 없다. 아무리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라도 상관 없다. 과학에는 신성불가침의 진리 같은 것은 없다. 모든 아이디어를 회의적인 태도로 가장 엄격하게 검사함과 동시에 모든 아이디어를 향해 활짝 열려 있는 과학의 개방성이 옥석을 가려준다. 우리가 얼마나 영리하든, 얼마나 위엄이 있든 또는 얼마나 사랑스럽든 과학은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는다. 우리는 단호하고 전문적 비판을 마주하여 자신의 사례를 증명해 내야 한다. 다양성과 논쟁은 가치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각자 의견 - 내용 있고 깊이 있는 - 을 주장하도록 고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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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과학을 거만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오랫동안 유지된 믿음들에 배치되는 주장을 할 때나 상식과 모순되는 듯한 이상한 개념들을 과학이 도입할 때 그렇다. 우리가 서 있는 바로 이 땅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혼란스럽게 하는 지진처럼 일상적인 믿음에 도전장을 내밀고, 우리가 의지해서 성장해왔던 교설들을 뒤흔드는 것은 우리를 매우 불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학이 겸손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자연에 떠넘겨 얻으려 하지 않는다. 대신 겸손하게 자연에게 묻고 자신들이 발견한 것을 진지하게 다룬다. 존경받는 과학자도 틀린 적이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해한다. 우리는 제안된 믿음의 주장들에 대한 독립적 - 가능한 범위에서 - 이고 정량적인 검증을 강조한다. 우리는 모순 또는 지속적으로 남아 있는 작은 오류를 끊임없이 찾아내어 문제 삼으며, 대안적 설명을 제시하는 다른 견해를 장려한다. 우리는 기존의 믿음을 신빙성 있게 반증하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보상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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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늘날 과학자들은 인간의 오류 가능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일치하는 진리에 점근선으로 접근할 수는 있어도 결코 진리에 완전히 도달할 수는 없다는 충고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일반 상대성 이론이 붕괴될 지도 모르는 영역을 탐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반 상대성 이론은 이른바 중력파라고 하는 놀라운 현상을 예측하였지만, 아직 직접적으로 관찰된 적은 없다. 그러나 중력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일반 상대성 이론에는 근본적으로 틀린 데가 있다. 펄서(pulsar)는 지금까지 측정한 바로는 10의 15승분의 1의 주기로 깜빡이며 빠른 속도로 회전하는 중성자별이다. 매우 밀도가 높은 두 개의 펄서가 서로의 주위를 돌면서 막대한 양의 중력파-이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두 별의 궤도와 회전 주기에 약간씩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 를 방출하는 것으로 예상된다. 프린스턴 대학의 조지프 테일러(Joseph Taylor)와 러셀 훌스(Russell Hulse)는 이 방법을 이용하여 아주 새로운 방식으로 일반 상대성 이론을 예측하는 실험을 했다. 그들이 아는 범위에서는 실험 결과가 일반 상대성과 일치하지 않을 것이며, 그리하여 현대 물리학을 떠받치고 있는 주요 기둥 가운데 하나가 무너질 것이었다. 그들은 일반 상대성에 기꺼이 도전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작업을 폭넓게 격려했다. 그러나 한 쌍의 펄서는 일반 상대성 이론의 예측을 정확하게 검증해 주는 것이었다. 이 공로를 인정받아 테일러와 훌스는 1993년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으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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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노력은 과학자들이 있는 한 계속 될 것이다. 일반 상대성 이론은 양자 수준에서 자연을 기술할 때는 솔직히 부적당하다. 하지만 일반 상대성이 어디에서나 그리고 영원히 옳다고 해도, 그 결점과 한계를 발견하려는 단합된 노력보다 더 좋은 방식으로 그것이 옳음을 우리에게 확신시키는 방식이 있을까?

이 점이 바로 조직화된 종교가 내게 확신을 불어 넣어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상에 어느 종교 지도자가 자신들의 믿음이 불완전하다거나 틀릴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래서 교리의 가능한 약점을 발견하기 위한 제도를 세우겠는가? 전통적인 종교의 가르침이 적용되지 않을 지도 모를 상황들을 일상 생활에서 체계적으로 시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로마 교황 또는 교부들의 시대, 중세 때 매우 잘 들어 맞던 교리, 윤리가 당시와는 전혀 다른,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는 전혀 옳지 않을 수도 있음은 분명하다.) 어떤 설교가 신에 관한 가설을 공명정대한 태도로 검토하는가? 기존의 종교는 종교적 회의론자에게 어떤 보상을 하고 있는가? - 또는 이런 문제와 관련해서 사회적 혹은 경제적 회의론자들에게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는 어떤 보상을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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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드루얀(Ann Druyan)이 주의 깊게 지적하듯이, 과학은 "명심하라. 당신은 이 분야의 초보자다. 당신은 실수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전에도 틀린 적이 있지 않는가"라고 우리의 귀에 대고 영원토록 속삭인다. 겸손의 말을 저버린 종교에서도 이에 비견되는 것이 있으면 보여주기 바란다. 바이블은 신에게 영감을 받아 - 이 구절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 씌어졌다고 한다. 그러나 바이블이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사람들이 만든 것일 뿐이라면 어떨까? 종교는 기적을 증거로 내세우고 있지만 오히려 기적이 허풍, 비정상적인 의식 상태, 자연 현상의 오해, 정신 질환 등이 뒤섞인 무엇이라면 어떨까? 오늘날의 어떤 종교나 뉴에이지 신앙도 과학이 밝혀낸 우주의 웅대함, 장엄함, 미묘함, 복잡함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내 생각에 현대 과학의 발견 가운데 바이블에서 미리 예상된 것이라고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는 사실은 신적인 영감에 대한 의심을 더 깊게 만든다.

물론 내가 틀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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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1905년 논문의 서두는 과학 보고서의 특성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남을 배려하고 신중하며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 논문의 절제된 어조를 가령 현대의 광고물이나 정치 연설, 권위적인 신학적 선언과 비교해 보라.

... 과학자들은 자신들이 세운 이론을 한계점까지 몰고 가서 시험하려고 한다. 과학자들은 무엇이 직관적으로 분명하다고 해도 무작정 신뢰하지 않는다. 지구가 편평하다는 것은 한때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무거운 물체가 가벼운 물체보다 더 빨리 떨어진다는 것은 한때 분명했다. 흡혈귀가 대부분의 질병을 낫게 한다는 것 역시 한때 분명했다. 한때 어떤 사람들은 자연적으로 그리고 신의 섭리에 따라 노예인 것이 당연했다. 우주에는 중심부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며 지구가 그 지점에 있다는 것이 한때는 분명했다. 운동의 절대적 기준이 있다는 것이 한때는 분명했다. 진리는 우리를 당황케 하거나 직관을 거스를 수도 있다. 진리는 기존의 믿음과 심각한 모순을 낳을 수도 있다. 실험은 바로 우리가 진리를 다루는 방식이다.

... 물리학과 형이상학의 차이는 어느 한 쪽 학문의 종사자가 다른 쪽의 종사자보다 더 똑똑하다는 데 있지 않다. 그 차이는 형이상학자에게는 실험실이 없다는 것이다.



- 칼 세이건, 이상헌 역,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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