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설정과 사고방식

저는 신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가 신이라고 적혀있기 때문입니다. 제 말은 진리입니다. 왠줄 아십니까? 제 일기장에 제 말은 진리라고 적어놨기 때문입니다. -엑스

문제설정과 사고방식

조한주 0 3,036 2004.08.21 21:16
 


 “철학은 의심하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철학이란 이런 방법으로 기존의 지배적인 사고방식, 지배적인 철학과 투쟁한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철학사는 전장(전쟁터)” 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치고 받는 이 투쟁을 통해 철학자들이 얻어내는 것은 그 때까지 지배적이던 철학 밑에서 사고되지 못했던 것, 또는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을 찾아내고 열어젖히는 것이다. 이로써 이전에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지만, 지금의 지배적인 사상 때문에 오히려 보이지 않고 사고되지 않게 된 것을 찾아내고 확보하는 투쟁이 바로 철학이다. 철학은 다른 사상과 차이를 보이면서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동의를 얻어내고 보편성을 인정받고자 한다. 결국 철학은 앞서 있던 것을 넘어서는 것이다.

 이 ‘넘어서기’도 무엇을 어떤 수준에서 넘어서는냐에 따라 여러 종류가 있다. 단순화시키면 다음과 같이 세 가지로 구분 가능하다.


 첫째, 당시에 지배적인 어떤 사상을 넘어서는 것(다시 말해 차이를 정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넘어서기’가 그 앞의 사상보다 나은 것이라거나 ‘발전’ 또는 ‘진화’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저 차이일 뿐이다. 물론 타당성이 갖추어져야 한다).


 둘째, 하나의 흐름을 넘어서는 것( 예를 들면 ‘이성주의’, ‘경험주의’, ‘생의 철학’, ‘구조주의’ 등과 같은 어떤 흐름을 특징짓는 전반적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을 말한다. 이런 ‘넘어서기’ 역시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경계선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만 발전이나 진화, 진보라고 말할 수 없다. 그것은 과학과는 달리 얼마든지 역전 가능하고, 얼마든지 반전될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하나의 시대를 지배하는 특정한 사고방식을 넘어서는 것(이성주의나 경험주의를 하나로 묶는 ‘근대철학’ 과 같은 것이다. 데카르트가 중세철학을 넘어서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연 사상을 세웠다고 할 때, 그것은 바로 이러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 세 번째 차원의 ‘넘어서기’는 매우 어렵다. 그것은 시대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알튀세르는 위대한 철학자를 “극한에서 사고하고 극한을 넘어서려고 감행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즉 우리가 사고할 수 있는 다양한 영역들을 체계적으로 살펴보고, 나아가 자신의 그리고 인간의 사고를 ‘극한’(limit)으로까지 밀어붙여 보는 것이 철학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철학의 경계를 확인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철학자의 사상이나 철학적 흐름에 깔려 있는 사고방식 등을 파악할 개념적 도구가 필요하다( 이른바 ‘있는 그대로 본다’ 나 ‘객관적’ 이라는 말은 불가능하다). 문제설정(problematique ; 이는 원래 알튀세르가 <맑스를 위하여>에서 사용했던 것이다)이란 개념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


 A씨가 집 대문 앞에 아무 양해도 구하지 않은 채 며칠 동안 계속 주차해 놓은 자동차 때문에 불편을 겪다가 화가 나서 그 얄미운 자동차의 바퀴에 펑크를 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런데 바로 그 때 마침 차 주인 B가 그걸 보고 달려왔다. B는 당연히 A에게 항의한다.


 “아니, 차 좀 잠시 주차시켰다고 이렇게 펑크를 낼 수가 있소? 이건 명백히 불법행위요. 책임지고 배상해 주시오.”


 그러나 그 자동차로 인해 숱하게 불편을 겪은 A로선 그 말에 순순히 응할 리 없을 것이다. 그러면 B는 ‘불법행위’라는 명목으로 고소하려 할 것이다. 그럼 A는 아마도 그 자동차 주인 B를 맞고소할 것이다. 그럼 이제 “불법 주차한 자동차에 펑크낸 게 불법행위인가 아닌가”를 문제 삼게 될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어떻게 설정되었나를 보자. ‘불법 주차한 자동차에 펑크를 낸 행위가 불법인가 적법인가?’ 그런데 이렇게 문제를 설정하면 그 대답 역시 그 문제를 설정하는 방식에 크게 좌우된다. 다시 말해 여기서는 A의 행위가 법에 맞는가 아닌가만이 문제가 된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라! 자동차와 나, 자동차 주인과 나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는 그 밖에도 많은 방법이 있다. 예컨대 그 사람은 왜 주차장이 아닌 남의 집 앞에 불편하게 주차해 두었나? 그건 주차장이 모자라기 때문이며, 근본적으로는 도시 교통정책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적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혹은 이럴 수도 있다. 왜 나는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 자동차에 펑크를 냈나? 자동차 없는 것도 서러운데, 남의 차 때문에 하루종일 고생을 했으니 화가 나서 그랬다. 이는 심리적 측면에서 접근한 것이다.


 그러나 이런 대답은 “불법인가 적법인가” 를 따지는 문제에선 결코 나올 수 없다. 그 같은 문제에선, 불법 주차한 차에 손해를 입힌 게 불법인가 아닌가라는 법적 문제만이 대답이 될 수 있다. 결국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는냐에 따라 어떤 종류의 대답은 ‘대답’ 이 될 수 없게 되고, 아예 생각하기도 힘들게 된다. 대답 뿐만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문제를 설정하는 방식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사회적인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해결은 교통정책을 통해서 가능하다. 불법이니 아니니 하는 건 이 경우에는 끼여들 여지가 없다. 심리적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하면 그 해결 역시 심리적 차원에서만 가능하다. 반면 법적인 차원에서 제기하면, 불법행위를 한 사람이 배상을 해주어야 해결이 된다. 이 경우 법 자체가 정당한지 아닌지는 결코 문제되지 않으며, 이렇게 문제설정을 하면 기존 법의 올바름은 당연시된다. 즉 법 자체를 다시 사고할 수 없는 문제설정인 셈이다.


이처럼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그 문제를 사고하고 처리하며 대답하는 방식은 전혀 달라진다. 이런 이유에서 “문제가 제대로 제기되기만 하면 이미 반은 풀린 것이다” 라는 말도 하는 것이다.

 이건 과학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어, 뉴턴의 이론이 나온 뒤에 다른 행성의 궤도는 다 그 이론에 따라 계산한 게 맞는데 오직 천왕성만은 안 맞았다. 이 경우 ‘이론을 반박하는 사례가 나오면 그 이론을 포기해야 한다’ 는 실증주의나 반증주의(포퍼)의 입장에서는 “이론과 사실 둘 중 어느 것이 옳은가? 사실에 안 맞는 이론은 버려야 한다” 는 문제설정을 갖고 있다. 그렇다면 천왕성 궤도를 잘못 계산한 뉴턴 이론은 거짓이라는 결론에 이르러야 하는 것이다.


 반면 뉴턴 이론의 지지자들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오히려 “다른 건 다 맞는데 오직 천왕성만 안 맞는다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요인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일 거야. 그 요인은 대체 무얼까?” 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렇게 문제를 설정하면 이젠 다른 요인들을 찾아나서게 될 것이다. 망원경이 부실해서 그런가? 아니면 70여 년마다 그 근처에 접근하는 핼리혜성 때문인가? 아니면 혹시 다른 별이 천왕성 근처에 있기 때문은 아닐까? 등등. 그리고 결국엔 천왕성과 명왕성 사이에 해왕성이란 행성이 하나 있기 때문이란 걸 발견하게 된다.


 상이한 문제설정은 이처럼 상이한 대답과 상이한 결과를 가져온다. 철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참된 인식은 무엇인가?” 라고 문제를 설정하면, 당연히 거기서 나올 수 있는 생각은 “참된 인식은 어떤 것이다” 라는 식으로 된다. 거기에는 참된 인식/거짓된 인식이란 대비가 깔려 있으며, 참된 인식은 중요하고 그것이 철학이 추구해야 할 목표다, 등과 같은 사고방식이 포함되어 있다. 이 경우 대보름날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행동이나, “저 마지막 잎새가 지면 나도 죽을 거야” 라고 생각하는 오 헨리 소설의 주인공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며, 단지 어떤 중요성도 없는 허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살든간에 말이다.


 지금까지 말한 데서 알 수 있듯이, 문제를 어떻게 설정하는냐는 것은 그 문제를 가지고 사고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제한한다. 그 안에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가치도 포함되어 있고, 그 중요한 것을 사고하는 데 기초가 되는 개념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사고할 수 있는 것과 사고할 수 없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설정을 통해 그 안에 포함되어 있는 사고방식을 찾아볼 수 있으며, 그것을 분석할 수 있다. 우리가 ‘문제설정’ 이란 도구를 통해 철학의 경계를 찾아내고, 그 경계의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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